153화 휴식(2)
“그래? 너도 그렇게 생각해 꼬맹아?”
체력도 스피드도 지구력도 전부 사라졌고 몸에서부터 뽑아낸 검조차 이렇게 약간만 힘을 강하게 줘도 부서져 버리고 만다. 볼품없는. 하등 쓸모없는 나 자신을 칭찬하는 꼬맹이의 앞에서 발가벗겨진 것처럼 수치심이 몰려들었지만, 나는 애써 웃어 보였다. 적어도 어제만큼은 움직여야 한다. 조금 더, 아주 조금이라도 더 꼬맹이와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나는 강한 염원을 담아 손을 강해가게 쥐어 새로운 검을 뽑아내려 했다.
“아악!”
갑작스럽게 시야가 흐려지며 온몸에 퍼지는 알싸한 통증에 몸을 가누지 못해 쓰러지려 하자 옆에 있던 꼬맹이가 작은 몸으로 나를 지탱해 주었다.
“...주인 피나”
“.....그러네”
검을 뽑아내려던 손목이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인 듯 피가 거세게 뿜어져 나와 기껏 치워놨던 옥상의 바닥을 더럽혔다.
“하하 핏자국 같은 건 지우기 힘들다고 하던데 이거 어쩌냐 기껏 힘들게 만들었는데”
“....”
유일하게 남은 장점마저 사라진다는 절망적인 상황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꼬맹이 앞이었기에 한껏 허세를 부리며 말을 내뱉자, 꼬맹이는 그런 나의 얼굴을 잠시 가만히 응시하다 이내 아무런 말도 없이 나를 번쩍 들어 올려 품 안에 안아 들고는 그대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야 갑자기 뭐 하는 거야 됐으니까 내려줘 아직 괜찮다니까?”
“...”
“꼬맹아 됐으니까 내려주지 않을래? 적어도 내 발로 걸어가게는 해주라”
“...안돼 주인 가만있어”
아무리 발버둥을쳐 품 안에서 벗어나려 해봐도 꼬맹이의 가는 팔은 마치 거대한 소나무의 뿌리처럼 더욱더 나를 옭아맬 뿐 절대 풀어주지 않았고 말로 설득하려 해봐도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아무 말도 돌려주지 않았기에 결국 나는 꼬맹이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진짜 괜찮다니까”
“...얌전히있어 주인”
나를 침대 위에 정성스럽게 내려놓은 꼬맹이는 잠시 나와 눈을 마주 보더니 총총 달려가 책장 위에 올려놓았던 구급상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
“....”
이리저리 손을 뻗어봐도 꼬맹이의 신체 특성상 절대 닿지 않을 것만 같은 높이, 꼬맹이는 잠시 뒤를 돌아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나의 손을 보고는 각오를 다진 것처럼 책장 앞에 자리를 잡더니 제자리에서 높이 뛰어올라....
[콰앙!]
굉장한 소리와 함께 천장에 머리를 박고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아파”
“푸핫!”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오자, 머리를 부여잡은 채 고통에 신음하던 꼬맹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나를 노려보았다. 감정에 뒤이어 이제는 통각까지 살아나다니 참 경사로운 날이네... 한참을 웃던 내가 튀어나온 웃음을 가까스로 멈춘 뒤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꼬맹이에 곁으로 다가갔다.
“미안 네가 너무 귀여워서 그만”
“...주인 때문이야”
“엉?”
“...주인이 신경 쓰여서 빨리 잡으려고 했단 말이야”
“그러냐? 그것참 고맙네”
나는 꼬맹이에게 멀쩡한 팔을 내밀어 일으켜준 뒤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나저나 그렇게 강하게 부딪혔는데 천장에 구멍이 안 난 게 신기한 정도네”
[퍼억]
“악! 야 이거 안 보여 나 다쳤다니까!”
“...흥”
배에 정통으로 주먹이 꽂혀 바닥에 쓰러지자 꼬맹이는 나에게 콧방귀를 뀌었다. 이런 격한 감정표현을 하는걸 좋아해야 하는 것인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
손목에난 상처에 소독약을 바른 뒤 대충 붕대로 감았지만, 여전히 꼬맹이는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부루퉁한 채였다. 어쩌면 그저 내가 반응해주기를 바라며 하는 연기일지도 모르지만...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겠지.
나는 침대 귀퉁이에 앉아 내가 상처를 치료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있던 꼬맹이를 안아 침대 위로 넘어뜨렸다.
“아직도 화가 난 거냐? 난 괜찮다니까?”
“...거짓말”
“...으음 어떻게 그렇게 단정해서 말씀하실까 우리 꼬맹이는? 내 생각이라도 읽을 수 있는거야?”
“...알수있으니까”
꼬맹이의 단호한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침대에 쓰러진 꼬맹이의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 달콤한 과일 같은 꼬맹이의 체취가 코를 간질였고 흔들리던 마음에 불을 지폈다.
“....그러네 사실 거짓말이야 불안해서 미치겠어 이 힘이 전부 없어져 버려도 난 너랑 같이 있을 수 있을까?”
끝까지 거짓말을 하려던 내 마음이 사르르 녹아 역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끝까지 같이 있을 거야”
이렇게라도, 이 말이라도 듣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또다시 혼자 남겨질 것 같아서, 버려질 것 같아서, 어두운 방안에 홀로 남겨질 것 같아서. 누군가에게 꼬맹이를 빼앗길 것 같아서. 무섭고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고마워 매일같이 하는 말에 똑같이 대답해줘서”
마지막 양심에 꼬맹이의 얼굴을 보지않은 채로 웅얼거리듯 한 말이었지만, 꼬맹이는 내 뒤통수를 잠깐 매만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거 존나게 쪽팔리네 오늘은 진짜 무슨 어린아이가...?
조심스럽게 꼬맹이의 몸에서 떨어지려 하자 꼬맹이가 차가운 손을 뻗어 내 몸을 마주 안아주었다. 나의 심장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지며 차갑지만 따스한 꼬맹이의 체온이 그대로 느껴져 저절로 눈이 감겨올 것만 같았다.
“...주인 내가 이렇게 되기 전에는 어땠어?”
“응?”
“...내가 이렇게 차가워지기 전에, 주인이랑 나는 어땠어?”
“으음...”
무엇을 묻고 있는 걸까? 나는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잠을 참아내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지금이랑은 달랐어. 너는 뭐랄까 지금이랑 달리 호들갑스러웠지. 지구가 멸망한 게 아닐까 걱정하면서 시도때도없이 말을 걸었거든, 게다가 힘은 없는 주제에 괜히 밝고 명랑했어”
꼬맹이는 조용히 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엄청나게 덜렁거렸어 그런 주제에 손재주는 또 좋아서 바리케이드 같은 건 엄청나게 잘 쳤었지...혼자있는것도 싫어했고, 처음 섹스한 이후에는 빠져든 것인지 내가 질릴 정도로 요구해왔었....어”
조용조용 이어져 나가는 말들, 곧 의식이 끊어져 잠에 들것만 같았다.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해봐도 무언가 약물을 들이마신것처럼 정신이 점점 몽롱해져왔다.
“...지금의 나는 싫어?”
“......아니 좋아, 좋아해”
“히히...잘자 주인”
◆
수면제를 다량으로 먹은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렸다. 요즘은 항상 잠에서 깨어나면 이렇다. 지금까지 이용한 힘의 대가라도 바라는 것처럼 내 뇌가 미쳐 날뛰어 나에게 고통을 가한다.
“빌어먹을 토냐?”
뚝뚝 코에서 코피가 쏟아져 나와 황급히 코를 막았지만, 침대에 피가 튀어버려 저절로 욕설이 나왔다.
“꼬맹이가 일어나면 또 한소리 하겠네”
“...으음..”
다행히 내 뒤척임에 깨지는 않았는지 이불을 꼭 끌어안은 채 천사처럼 잠이 들어있는 꼬맹이를 잠시 지켜보다 오늘 하루 피를 참 많이도 흘린다고 자조하며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서서 거실로 나왔다.
“....”
정막한 거실은 어둡기 그지없었고 창문 밖으로 보이는 멸망한 세계의 풍경도 그저 짙은 어둠이 깔린 채였다. 어째선지 달빛도 비치지 않는 깊은 심연 과도 같은 풍경. 나는 생수를 써서 얼굴을 대충 씻고는 의자에 주저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아침이 오려면 얼마나 남았을까?
“할인몰에서 도망친 지 두어 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배터리가 다된 장난감처럼 온몸이 삐걱 거리네 지랄도 유분수야”
담배연기를 창문 밖으로 내뱉으며 멍하니 중얼거리다 타들어 가는 담배를 바라보았다. 꼭 나와 같지 않은가? 원치 않게 몸에 불이 붙어 타들어 가다 재가되어 바닥으로 떨어지는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기대는 하찮은 식품
“....좆같네”
[차이이익 형 거기 있어요?]
“씨발 뭐야”
한참 사색에 잠겨있자 식탁위에서 헤어지기 직전 게이에게 억지로 받았던 무전기에서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형?!]
받아야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하던 나는 그간에 정을 생각해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무전기를 들어 올렸다.
[내가 자고 있으면 어쩌려고 이 시간에 무전을 치는 거야]
[아아 다행이다 형 저희 좀 도와주세요 처음보는 변종인지 괴물인지 모를 거대한 개가 습격을...]
[하아...미안한데 지금은 누굴 도울 처지가 못되거든 다른 사람 알아봐라]
다짜고짜 도움을 요청하는 말에 나는 인상을 구기고 무전기를 놓아버리려던 찰라, 게이의 말이 황급히 나를 붙잡았다.
[무장한 군인들을 봤어요 형]
[군인?]
[정확히는 제가 본 게 아니라 3일 전쯤인가 근처를 순찰하던 정찰병이 발견한 거긴 한 데, 말을 걸어 보려 했다가 총으로 위협해서 바로 도망쳤대요]
[...그걸 왜 지금 말하는 거냐? 3일 전이면 한참 전이잖아 씨발년아]
[.....죄송해요 형도 고생을 많이 하셨고, 뭔가 정보를 더 모아서 전 해드리려고 했어요 정말 다른 의도는 없었어요 형 믿어주세요.]
[아 됐다 됐어 네 성격상 일부로 숨기려고 한 건 아닐 테니까 그래서 어딘데? 아직도 그 학교에서 모여 살고 있냐?]
[네, 그쪽으로 오시면 되요 형 부탁인데 최대한 빨리 와주세요]
[....알았다]
리더로서 뭔가 관록이 붙었달까, 옛날이랑 다르게 게이의 목소리에 힘이랄까 자존심 같은 게 잔뜩 들러붙어 있었다. 몇달만에 다 죽어가는 송장이된 나보다는 훨씬 낫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