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07화 - 훔쳐보기 구멍 [2]
남문을 지나 기숙사 풀밭에 주저앉았다.
손에 들고 있던 포장 만두는 창고에 두고 온 모양이다.
침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목 끝이 쓰라렸다.
충격적인 혜영누나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대영아, 너 얼굴이 왜 그래?”
복도에서 방장 준모 형과 마주쳤다.
컴공과 4학년인 그는 취업 준비로 바쁜 모범생이다.
“좀 피곤해서요.”
“샤워실 문 닫으려고 한다. 어서 다녀와.”
“네 알겠습니다.”
침대에 누웠지만, 의식은 점점 더 또렷해진다. 새벽부터 열이 나는가 싶더니 몸살처럼 뼈와 살이 아프기 시작했다.
* * *
오후 수업이 휴강 되면서, 나는 평소보다 일찍 혜영누나의 실기실을 찾았다. 누나는 다른 선배들과 함께였다.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네가 대영이구나.”
“오늘 일찍 왔네?”
누나는 평소처럼 살가웠지만, 난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네... 휴강이라.”
“잘 왔어. 밥은 먹었고?”
밥생각은 전혀 없었다.
“네 먹었습니다.”
전날 밤 소파에서 흐느끼던 여자의 모습은 지금 누나의 얼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어쩌면 나의 착각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린 교직 들으러 가야 하는데,
두 시간 동안 혼자 있을 수 있겠어?”
“그럼요.”
“음악 듣고 쉬어. 만화책 보던가.
수업 마치면 같이 시작하자.”
실기실에 혼자 남겨졌다.
흙 통을 열어두고 분무기로 물을 뿌렸다.
물방울은 아주 천천히 스며들 것이다.
어제 나를 돕던 벽의 구멍이 눈에 띄었다. 지금 보니 너무 낮은 위치라 불편할 수밖에 없었고, 시야를 가리는 물건이 많았다. 난 창고를 살펴보기로 했다.
호기심이라기보단, 그들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용접 가스를 보관하는 창고는 어젯밤의 기억보다 천장이 높은 구조였다. 시멘트 바닥엔 내가 흘린 만두가 흩어져있다.
환기구 아래 키가 닿지 않는 높이의 좁은 틈이 보인다. 녹슨 철제 테이블을 구멍 밑으로 옮겼다.
테이블에 올라설 때 소리가 난다. 다음번 이곳을 찾는다면 소음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새로 발견한 구멍의 위치는 좋았다. 누나의 자리는 물론 실기실이 한눈에 들어오는 적당한 구멍이었다.
두 시간 뒤 수업을 마친 선배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졸전 준비, 교생실습 이야기로 한참 동안 수다를 떨더니 오후 해가 지기 전에 모두 자리를 떠났다.
실기실엔 혜영누나와 나. 단둘이 남게 되었다.
“교직 수업은 재미있어요?”
“그럭저럭... 곧 교생실습도 나가는걸?”
“선생님이 되는 건가요?”
“뭐 집에서 성화하시니까.
선생 안 할 거면 시집가라는데 별수 없지.”
처음으로 꺼낸 누나의 사적인 얘기였다.
미술 선생님이 된 혜영누나의 모습도 어울릴 것 같았다.
“졸업생 모두가 전업 작가가 될 수는 없잖아.
그리고 교사란 직업도 나름대로 매력 있는 것 같아.”
누나가 나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저렇게 밝고 선한 웃음을 가진 누나가, 이제 곧 선생님이 될 누나가 어젯밤의 난잡한 모습일 리 없었다.
나는 자신을 자책했고, 간밤 목격한 풍경은 착각이라 확신했다.
그때 땅을 울리는 단단한 배기음의 엔진 소리가 들렸다. ‘삐그덕’ 소리와 함께 실기실의 철문이 열리며 대학원생 성철 선배의 모습이 나타났다.
“오빠! 이 시간에 웬일이야?”
“오라며?”
성철 선배는 민소매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늘어진 틈 사이로 활배근과 옆구리의 잔 근육이 드러났다. 큰 키에 구릿빛 피부를 한 다부진 몸이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누꼬?”
어색한 사투리와 촌사람 같은 말투. 내가 알던 성철 선배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98학번 윤대영입니다.”
“짜식, 잘 생겼데이~.
눈이 똘망똘망하네.”
그에게서 비릿한 술 냄새가 났다.
“닌 시다도 얼굴 보고 뽑나?”
“취했는데 여길 온 거야?
화이바도 안 쓰고...”
쌀쌀맞은 누나의 말투가 낯설었다. 성철 선배는 혜영누나를 힐끗 보더니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돌린 채 말을 뱉었다.
“야, 대충 끝내고 가자, 아나고 먹으러.”
성철 선배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나에게 난잡한 기억을 남긴 그 소파였다.
“오빠!”
“그러게 왜 아나고...”
누나는 선배의 싸구려 말장난에 화가 난 듯싶었다. 저런 농담이 허용될 만큼 둘은 각별한 사이일까.
“대영아,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자.”
“아, 네. 알겠습니다.”
난 흙 조각 위에 젖은 천과 비닐 덮개를 입혔다.
“앗, 퉷! 퉤!”
그때 성철 선배가 신경질적으로 뭔가를 바닥에 집어 던진다.
“아이~ 씨발! 오늘 일진이 사납네!”
거꾸로 문 담배에 불을 붙인 것이다.
“오빠, 나 간다.”
“어딜?”
누나는 선배의 말을 무시하듯 돌아섰다.
“어디 가느냐고!”
“얘 밥은 먹여야 할 거 아냐!”
혜영누나가 앞치마를 벗어던지며 쏘아붙이자 성철 선배는 쭈뼛거리며 시선을 피한다.
“와, 가시나, 억수로 쌀쌀맞네.”
“대영아, 밥 먹으러 가자.”
“전 괜찮아요. 누나.”
“무슨 소리야, 일당은 못 줘도 밥은 먹여 보내야지.”
누나가 내 손을 잡고 끌었다. 풍만하고 단단한 가슴이 팔뚝에 닿았다.
“선배님, 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씨벌, 나랑만 아나고.”
성철 선배는 내 인사 따윈 관심 없다는 듯, 타고 온 오토바이를 실기실 안으로 옮긴다. 초보 같은 폼이 그의 사투리만큼이나 어색했다.
누나의 실기실은 성철 선배의 작업실이기도 했다. 작년 이곳을 사용하던 성철 선배가 대학원 진학 후에 짐을 빼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오늘 성철 오빠 때문에 놀랐지?”
“아, 괜찮습니다.”
실기실이 멀어지자 누나의 팔짱이 느슨해진다. 우린 자연스럽게 정문 앞 계단집으로 들어간다. 학교 앞엔 오래된 닭곰탕 식당이 많았는데, 건널목 앞 계단집은 우리과 학생들의 단골집이었다. 반주와 함께 든든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러고 보니 대영인 사투리 안 써?”
“충무에선 3년 정도 살았고요. 원래 고향은 경기도예요.”
“아, 그렇구나.”
실기실이 추웠는지 식당에 들어오자마자 누나의 뺨이 붉어진다.
“반주 한잔해야지?
사장님~ 여기 진로 한 병 주세요.”
주문과 함께 깍두기와 잘게 썬 양파, 닭곰탕, 그리고 소주가 내어진다.
“웬일이야, 혜영 학생이 술을 마시고.”
닭곰탕 그릇에 엄지손가락을 담근 여사장이 혜영누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우리 새내기예요. 예쁘게 생겼죠?”
“그러게. 호호, 멀끔히 잘 생겼네.”
나는 누나가 건넨 잔을 두 손으로 받았다.
“자, 첫 잔은 원샷.”
“잘 먹겠습니다.”
나는 이미 어제의 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누나의 뺨과 목덜미에 생긴 홍조를 바라보며 소주 한 병을 천천히 나눠마셨다.
그녀는 따듯하고 상냥했으며, 함께 있는 시간이 애틋했다.
빈 소주병이 늘어가자, 취기 오른 누나는 실기실에서 하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도 저런 놈하고 엮이는 것보단 취업이 나아.
아이들한테 선생님 소리도 들어보고.”
누나 말을 듣는 순간 실기실에 있을 성철 선배가 떠올랐다.
“저런 놈은 성철 선배를 말하는 건가요?”
“어머! 너 알고 있었구나!”
모를 리가 있나요.
“지금도 누나를 기다리지 않을까요?”
“성철오빠가? 그러거나 말거나.”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누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꽤 오래 사귀긴 했어.
지겹게 싸우고, 또 지겹게 화해하고.
지금은 완전히 끝났어.
나와 너무 안 맞아.”
나의 오해가 맞다.
이렇게 오래되고 사이가 멀어진 연인이 실기실에서 그런 관계를 맺었을 리가 없었다. 어제의 그 커플은 혜영누나나 성철 선배가 절대로 아니다.
“대영인 기숙사 몇 시까지 들어가야 하니?”
“11시까진데 오늘은 지각사유서 적어놓고 나왔어요.
아무 때나 들어가면 돼요.”
거짓말이었다.
기숙사엔 지각사유서란 없고 외박사유서만 존재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미 11시가 넘은 시간.
기숙사 문은 굳게 걸렸을 테고, 새벽 사감 교대 전까진 절대 열리지 않는다.
닭곰탕 집의 셔터가 닫힌다.
“혜영 학생, 미안한데 12시가 다 됐어.”
사장 아주머니가 다가와 양해를 구했다.
당시엔 식당과 술집은 밤 12시까지만 영업할 수 있었다.
“네, 이번 잔만 비우고 일어날게요.”
밖은 어둡고 쌀쌀했다.
계산을 마친 누나가 팔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다.
우린 비스듬히 마주 보며 팔짱 낀 모양이 되었다. 모른 척 내맡긴 팔꿈치에 아까의 익숙한 감촉이 느껴졌다. 추운 날씨 탓에 그녀의 가슴은 더욱 단단해져 있었다.
“어흐~ 춥다. 대영아~”
누나는 귀여운 콧소리를 냈다.
“누나 덕분에 잘 먹었어요. 집은 어디예요?
“우리 집? 산울림 소극장 근처.”
느린 걸음으로 30분 넘게 걸리는 거리다.
“왜에? 바래다주려고?”
그녀의 집까지 따라가 누나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원하는 결말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순간, 내 팔에 몸무게를 지탱했던 누나가 비틀거리며 나에게 안기고 말았다. 난 누나의 허리와 가슴을 손으로 만졌고, 그녀의 몸이 내 물건에 닿자 당황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누. 누나, 저 먼저 들어갈게요.”
이런 제길!
너무 놀란 나머지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어? 으응?”
비틀거리며 일어난 누나도 약간 당황한 것 같다.
“그래, 그럼.
난 술도 깰 겸 천천히 걸어갈게.”
속마음을 들긴 바보처럼,
빨간 얼굴을 한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대영아... 오늘 고마웠어.”
누나는 잠시 할 말이 남은 사람처럼 머뭇거리더니...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멍청한 자식’
‘멍청한 자식’
‘멍청한 자식’
난 자신을 책망하며 학교로 돌아왔다.
내가 더욱 비참한 이유는 기숙사 문이 닫혀 돌아갈 곳도 없다는 것이다.
터벅터벅 걷다 보니 익숙한 1학년 실기실 앞이었다. 출입문은 자물쇠로 걸렸지만, 창문은 잠기지 않았다. 난 어렵지 않게 실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잠깐 눈만 붙였다가 일어나야지.’
새벽엔 기숙사로 돌아갈 생각이었던 나는 의자 몇 개를 이어 자리를 만들고 벽에 기대 눈을 감았다.
방금 헤어진 혜영누나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나긋하고 부드러웠던 손과 팔에 닿았던 가슴의 감촉이 다시 살아났다. 기억을 좀 더 자세히 떠올리고 싶었지만, 너무 짧은 순간 일어난 일이었다. 부끄러운 상상과 아쉬움으로 몸이 뜨거워졌고, 한참을 뒤척이다 결국 일어나 앉았다.
‘잠은 포기다.’
얼큰한 기분에 취해있던 나는 갑자기 실기실에 남겨진 성철 선배를 떠올리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두들겨 맞는 것처럼 쿵쾅거리는 맥박이 느껴진다.
‘누나가 다시 실기실로 돌아왔다면?’
나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며 누나의 실기실로 뛰어 내려갔다.
“하악, 하악...”
성철 선배가 있던 4학년 실기실엔 불이 밝혀 있다. 탁상 스탠드가 켜져 있는 모양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볼 수도 있지만, 내겐 그런 용기가 없다.
‘후아, 후아...’
나는 어제의 용접 가스 보관창고로 들어갔다.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나는 철제 테이블 위로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발밑이 조금씩 흔들리며 ‘삐그덕’ 대는 소리가 들렸다.
충분히 밝진 않았지만, 실내전체를 살펴보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혜영누나의 빈자리가 보였다. 누나가 쓰던 작은 작업 테이블과 이젤, 해체된 심봉대와 석고상... 구석진 공간까지 눈으로 세어나갔다.
그때 대형 바이스가 설치된 두꺼운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철근이나 금속 파이프를 휘거나 용접시킬 때 쓰는 커다란 철제 테이블이었다.
거친 작업의 흔적들이 가득한 그 커다란 작업대 위에서 낯익은 여자가 발버둥 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