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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12화 - 현모의 비밀 [2]


색에 미친 여자는 입의 느낌도 달랐다. 사장은 흐느끼듯 신음을 토해내는 선미의 작은 입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녀가 귀두 끝을 깨문 채 머리를 흔든다. “하으흥~” “아바요? (아파요?)” “아, 그런데 좋았어요. 더 해줘요.” 선미는 사장의 자지를 혀로 말아쥐고 기름칠하듯 왕복운동을 시작했다. 남자의 페니스에 묻어있던 윤활액이 그녀의 침과 섞여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꽃을 발견한 나비처럼 그녀의 고개는 ‘8’자를 그리며 사장의 페니스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아우욱~ 아흣!” 그때 주방 밖 인기척이 느껴졌다. “엇, 선미 씨 잠깐만!” 사장은 황급히 바지를 추켜올리고 밖을 내다봤다. 홀에는 여전히 귀를 때리는 락사운드가 흐르고 있었고, 요란한 나이트 조명 아래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는 군상들의 모습뿐이었다. “별일 아녜요. 잘 못 들었나 봐.” * * * “시발할 것들, 쟤네 뭐냐?” 난 대성의 팔을 잡아끌었다. “왜 이래? 난 더 구경할 건데.” “나가야 한다고!” 애초에 를 찾아온 것부터 나의 실수였다. 그리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현모 형 대신, 선미 누나에게 인사하려고 주방을 기웃거린 것이 두 번째 실수였다. 축축하고 음침한 속살을 드러낸 채 사장의 사타구니에 머리를 박고 있던 여자는 누구였을까. 대성과 나는 현란한 사이키 조명과 인파를 뚫고 밖으로 나왔다. 홀의 손님 중에는 교양수업 시간에 봤던 익숙한 얼굴도 몇몇 보인다. “후아~” 건물 1층을 빠져나와 의 입간판 옆에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는 사이야?” “가만히 있어 봐.”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누군데? 남자? 여자?” “가만히 좀 있어 보라고!” “씨발놈 까칠하기는...” 세상일은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더구나 에서 일하는 알바생이 선미 누나 하나란 법도 없지 않은가. 나의 오해이길 바랐고, 현모 형이 상처받길 원치 않았다. “너 지금 본 거 아무한테도 말...” 그러나 말을 끝맺을 겨를도 없이 눈앞에 그가 나타났다. “왜 안 들어가고 밖에 있냐.” 현모 형이었다. “어... 형 기다렸지.” “들어가자.” 나도 모르게 형의 손목을 잡아챘다. “잠깐만. 안에 지금 아주 시끄러워.” “단체 손님?” “응. 동양화과 회식인가 봐.” 저지른 일을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붉어졌고 현모 형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친구 인사 안 시켜줘?” 나와 함께 주방에서의 정사 장면을 목격한 대성... 나는 그가 알아서 침묵해주길 바랐다. “아...얜 고향 친구 대성이에요. 지금은 D 공전 다니다가....” 그런데 대성을 본 현모 형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아까부터 의심쩍은 표정으로 현모 형의 얼굴을 쳐다보던 대성도 처음으로 입을 뗐다. “니 현모 아이가?” “너 현모 형을 알아?” 대성은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콧방귀를 뀌었다. “중3 때 학급비 땡가먹은 반장 이현모 맞재?” 대성이의 한마디에 현모 형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버렸다. “이 자슥, 멀쩡히 살아있었네!” * * * “아줌마! 이기 무슨 닭갈빕니꺼~” 주차장 근처 구제 골목의 닭갈빗집에서 현모 형... 아니, 현모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국물이 흥건한 전골을 숟가락으로 뒤적거리며 투덜대고 있었다. 난 아까부터 팔짱을 낀 채 말이 없고, 대성이도 동치미 국물만 들이켤 뿐이었다. 우리 모두 현모의 뻔뻔한 행동에 할 말을 잃었다. 현모는 여전히 주방 쪽을 향해 구시렁거리고 있다.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현모는 얼굴이 두꺼운 녀석이었다. 그런데 닭갈빗집 여 사장님은 현모만큼 초연하지 못했는지 아까부터 주방에 들어가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는다. “철판에 볶아야 닭갈빈데, 이건 그냥 닭도리탕이네!” “조용하고 그냥 무라.” 대성이가 현모를 째려보더니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가져온다. “사장님~ 진로 하나 꺼내 가요~” “사장님~ 맥주 글라스도 주이소~” 타인의 감정 변화에 무딘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크흡!’ 말없이 전골 국물을 들이켠 현모가 자신의 잔에 소주병을 가져간다. “우리, 이렇게 만났으니 건배 한번 하자.” “얼빠진 자슥...” 대성은 술병을 뺐어 들더니 현모의 잔을 채워줬다. “얘기 좀 해봐.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은데...” 나라면 들통난 거짓말 때문에 도망쳤을 테지만 현모는 그러지 않았다. 단단히 삐쳐버린 우리의 비위를 맞춰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 현모의 처세가 효과가 있었는지 대성은 더는 나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어쩌면 아까의 상황을 눈치챘는지도 모르겠다. 민정당 당원이면서 부산의 선거판에서 잔뼈가 굵었던 현모의 아버지는 현모가 중학교 1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셨다. 학교에서 공부나 운동, 심지어 싸움판에서까지 일등이던 현모에게 갑자기 홀로 남겨진 어머니와 어려워진 가정형편은 자존심에 큰 상처가 되었다. 그 뒤로 현모는 전학을 자주 다녔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똘마니였거든, 그래서, 마! 나도 국회의원 한번 하려고 서울 왔다.” 현모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 서울대란 간판이 필요했고, 마침 그는 공부 머리 대신 그림 그리는 재주는 있었다. 그런데 늘 그렇듯 사람 일은 계획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여자까지 알게 된 그의 성적은 곤두박질쳤고, 대신 그림 실력이 일취월장 진전을 보이며 H 대학으로 진학한 것이다. “그럼 고등학교는 어디서 다녔는데?” 대성이가 현모의 잔을 다시 채워준다. “내 검정고시다.” 고모가 운영하던 작은 미술학원에서 청소도 하고 초등학생을 가르치며 숙식을 해결했다고 한다. 조소과를 선택한 이유도 수채화나 디자인은 재룟값이 많이 드는데 조소는 흙만 있으면 됐다고. 결국, 그는 독학으로 입시 준비를 한 것이다. 손목시계에서 밤 11시 알람이 울렸다. 간단히 밥만 먹고 헤어지려던 자리가 현모 덕분에 길어졌다. 나는 기숙사 때문에 먼저 일어나야 했고, 현모는 여전히 술자리가 아쉬운 모양이다. 이미 둘은 얼큰하게 취해있다. 대성인 잠이 가득한 얼굴이었고, 현모의 혀도 꼬이기 시작했다. “야, 일어나. 지하철 끊긴다.” 우린 식당을 나와 길거리 자판기 커피를 홀짝거렸다. 차가운 밤공기 때문일까. 대성인 술이 좀 깬 것 같다. 우린 각자 담배 한 개비씩을 입에 물고 지하철역까지 대성을 배웅했다. “닌 적응 잘할 기다.” 현모가 대성의 어깨를 두드려준다. 그러고 보니 현모 때문에 대성의 얘기를 못 들어줬다. “영장 나오면 한 번 더 연락해. 못다 한 얘기는 그때 하자.” “그래~ 고맙다! 대영, 그리고 현모야.” 우리는 그렇게 웃으며 대성이를 보냈다. 그러나 여전히 내 마음은 편치 않다. 선미 누나 때문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녀는 누가 봐도 오래 사귈만한 여자가 아니었다. 더구나 현모가 나이를 속인 2살 연하의 남자란 사실을 알게 되면 그녀가 먼저 이별을 통보할지도 모른다. 난 그런 것보단 현모의 앞날이 걱정되었다. 현모의 거짓말은 언젠가 들통날 것이다. 누군가 조금만 관심 갖고 현모의 인적사항을 확인한다면 금방 탄로 날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나이에 따른 위계질서가 엄격한 우리 과에서 현모의 거짓말은 제법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진급이나 채용, 심지어 연구조교 자리까지 우리 과는 인맥으로 움직이는 순혈주의가 확고히 자리 잡고 있었다. 비록 그의 행동이 터무니없고 염치없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나이를 속여서까지 기죽기 싫었던 녀석에게 나는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동기들도 군대 가기 시작하겠네.” “뭐래니? 그러는 넌?” “나? 나는 군대 면제야.” “와! 이런 시발 놈.” “낄낄낄.” 우린 정문 앞에 도착했다. 현모는 방송국 쪽으로 내려가는 방향이고, 나는 교정을 가로질러 기숙사로 들어가야 했다. “현모야, 기숙사 시간 조금 남아있는데, 조용한 데서 얘기 좀 하자.” 현모는 앞뒤로 몸을 흔들며 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말없이 앞장선다. 학교 정문을 지나 가파른 고개를 오르자 술기운 때문인지 숨이 찼다. “에구, 헥헥.” “...” “나이가 드니 힘드네.” “나이 얘길 또 하고 싶니?” “벤치에서 좀만. 쫌만 쉬었다 가자.” 공대 벤치 주변은 도서관에서 나오는 사람들로 제법 북적거렸다. “여기 사람들 많잖아.” “됐어. 그냥 말해.” “아는 사람 만나면 어쩌려고.” “그게 대수냐?” “대수?” “내가 돈을 훔쳤냐, 아니면 사람을 때렸냐?” “야, 너...” “나이 좀 속인 게 무슨 큰 죄라고...” “선미 누나도 모르지?” “당연하지.” 그때 처음 눈치챘다. 어쩌면 현모가 나이를 속인 이유는 그녀 때문일지 몰랐다. “언제까지 속이려고?” “세상에 비밀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딨노?” “이 새끼가 그걸 말이라고.” “니도 혜영 누나 몰래 좋아했잖아?” 심장이 내려앉을 것처럼 놀랐다.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본다. “새끼, 뭘 그리 놀래?” 세훈을 의심했다. 그나마 비슷하게라도 눈치챈 사람이 있다면 내 옆자리를 쓰는 세훈일 것이다. “세훈이가 그래?” “세훈이? 세훈이도 알고 있나? 하긴 그렇게 티 내고 다니는데 와 모르겠냐.” “이런 씨발! 좋아하는 거 아냐.” “임자 있는 여자 좋아하는 거 아이다. 더구나 선배의.” 그날 밤의 일이 떠올라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녀에 대한 배신감과 성철에 대한 분노, 그리고 부끄러워 도망친 기억 때문에 숨고 싶을 만큼 창피했다. “잠깐이었어.” “잠깐?” “그래 잠깐. 지금은 당연히 아니고.” “그럼, 와 여태 짜져 있는데?” “뭐라고!?” “고백했다 퇴짜라도 맞았나, 아님, 못 볼 거라도 본...” “우악!” 현모는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졌다. 밑창까지 통으로 연결된 가죽 등산화로 놈의 조인트를 까버린 것이다. 현모는 정강이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바닥을 구른다. “우왁! 우왁! 이 뭔 일이고! 아이고오~” 현모는 바닥을 기며 고통스러워했다. “엄살 마라 새끼야~” “야! 시발 이게 뭔!” 정강이를 부여잡고 앉더니 한참 동안 심호흡을 했다. “왜 갑자기 조인트를 까냐고!” 나는 사실 완력으론 현모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데 반격할 생각조차 없는... 바닥에 쓰러진 커다란 덩치의 현모를 보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안 쪽팔려?” “뭐가 쪽팔리나! 이까짓 학교 때려치우면 그만이지!” 본심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몸을 기울여 현모 가까이 얼굴을 가져갔다. “현모야.” “와.” “내가 형이라고 불러주면 되겠어?” “뭐라노?” 현모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내가 형이라고 불러줄게.” “지금 나 놀리나?” “형이라고 불러준다고.” “지금 재밌나? 수작 부리지 말고 꺼지라. 새끼야!” “어렵게 입학한 거 다 알아.” 잠시 현모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할게.” “대영아...” “대신 너도 조심해야 할 거야. 특히 조교실.” “그래 알았어.” “이제 일어나.” “미안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알아.” “절대 악의를 갖고 그란 게 아니고...” “안다고.” 나를 올려다보는 현모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다. 후회와 반성의 눈물인지, 아니면 그저 눈물이 ‘핑’ 돌만큼 정강이가 아팠는지는 현모만 알고 있을 것이다. “내일 보자.” 나는 현모를 남겨두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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