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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63. 임신 시켜주세요.


집으로 돌아간 민아는 잠도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해가 뜨고 평소처럼 부모님께는 등교하는 척하면서 바로 산부인과로 향했다. 9시부터 진료 시작이었지만, 민아는 8시부터 병원 문 앞에서 대기했다. 1시간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고, 배 안에서 계속 정액이 꿈틀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무 불쾌했다. 사후 피임약만 먹으면… 문제없을거야… 불안한 민아는 계속 아랫배를 붙잡고 있었다. 그때 엘리베이터에서 간호사가 나왔다. 넋이 나가 있는 민아의 상태를 보고 간호사는 직감했다. 산부인과에 근무하다 보면 종종 강간이나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종종 온다. 민아의 표정과 행동이 피해자들과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배를 계속 쓰다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직감했다. “들어오세요. 원장님 곧 오실 테니까 바로 진료 봐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병원으로 민아를 안내한 간호사는 바로 전화했다.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론 민아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했다. “원장님. 빨리 오셔야 할 거 같아요. 레드 환자 같아요.” -그래요? 주차장이니까 금방 올라가요. “네. 준비하고 있을게요.” 전화를 마친 간호사는 민아에게 문진표와 볼펜을 하나 주었다. “저랑 원장님만 볼거니까 안심하고 작성해 줘요. 걱정 말고.” “네…” 문진표를 받은 민아는 천천히 확인했다. 간단한 인적 사항과 생리주기 등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민아같은 피해자들 전용 문진표라는걸 알 수 있는 질문이 있었다. [이전 관계 유/무] [관계일자 : 00월 00일 00시 00분] [횟수 : 00 회] [피임여부 : 유/무] [관계 후 샤워, 목욕, 좌욕 중 취한 행동]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시각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대략적인 시간을 적었다. 적고 있는 순간 40대로 보이는 여의사가 병원으로 들어왔다. 원장은 문진표를 작성하는 민아를 쓰윽 봤다. 민아가 어려 보였지만, 고등학생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경찰엔 신고하지 않았다. 만약 미성년자가 당했다면 경찰에 신고를 했어야 했다. 성인의 경우는 본인의 의사를 묻고 경찰과 시설에 도움을 청한다. 문진표를 다 작성한 민아는 간호사에게 전달했다. 간호사는 문진표를 확인하고 컴퓨터에 정보를 입력했다. 그리고 얼마 뒤 민아를 원장실로 불렀다. *** 처음 산부인과 진찰실에 들어간 민아는 모든 게 두려웠다. 처음 보는 굴욕의자를 보고 너무 두려웠다. 자기가 저 의자에 눕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두려운 마음으로 굴욕의자에 누워 다리를 벌렸다. 다리를 벌리자 다시 그 순간이 떠올랐다. 다리 사이에 김환의 얼굴과 몸이 보였고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 다리걸이에 걸린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김환의 성기가 들어오는 걸 막고 싶었다. 김환이 성기를 잡고 점점 다가오자, 음부를 양손으로 꽉 막고 봉쇄했다. 김환은 씨익 웃으며 민아의 팔을 잡았다. [손을 막고 있으면 어떡해. 저번처럼 재밌게 해 줄게.] 김환이 악마의 얼굴처럼 보였다. 겁에 질린 민아는 소리치며 김환의 팔을 뿌리쳤다. “그, 그만…!!! 하지 마세요!!” *** 김환의 악마 같은 얼굴이 사라지고 걱정의 눈빛으로 민아를 바라보고 있는 원장의 얼굴이 보였다. “환자분 괜찮으세요?!” “하아 하아” 민아는 원장의 얼굴을 빤히 쳐다 봤다. 김환의 모습은 없어졌고 원장만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조용한 진료실 내부였다. “죄송해요… 갑자기 이상한 게 보여서…” “트라우마가 좀 심하게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진료 끝나면 상담하는 곳도 연결해드릴게요.” “하아 하아… 네… 감사합니다.” 민아가 진정할 때까지 원장은 기다려 줬다. 굴욕의자가 불편하다는 걸 깨닫고 잠시 내려와 있으라고 했다. 급하게 진료 볼 이유는 없었다. 마음의 진정이 온 민아는 다시 굴욕의자로 올라갔다. 원장은 더 쉬어도 된다고 했지만, 빨리 진료 받고 병원을 나가고 싶었다. 일반 베드에 누워서 진료를 받고 싶었지만, 그러면 정확한 진찰을 할 수 없으므로 양손을 꽉 붙잡고 겨우 버텼다.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혹시라도 잘못됐을까 무서웠다. 원장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민아의 보지를 만지고 진찰했다. 질이 빨갛게 부어올라와 있었다. 경험도 없고 준비도 안 되어 있던 상태의 질에 거칠게 들어온 흔적들이 보였다. 질에 아주 소량의 정액이 남아있는 것도 보였다. 민아가 샤워기로 음부를 닦긴 했지만, 안쪽까지 닦고 긁어 낼 순 없었다. 질에 이 정도로 남아 있다면 분명 자궁에도 정액이 남아 있을 것이다. 정자는 자궁에서 3일 정도 살수 있다. 민아가 작성한 문진표에 보면 임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빠르게 사후 피임약을 처방해야 한다. “다 됐어요. 천천히 정리하시고 내려오시면 돼요.” 원장은 최대한 친절하고 담담하고 따뜻하게 말해줬다. 원치 않는 성관계로 불안 해하고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며 너무 딱한 마음이 들었다. 옷을 갈아입고 원장 앞에 앉은 민아는 계속 불안 해하고 있었다. 언제쯤이면 이 불안 함이 사라질지 막막했다. “사후 피임약은 72시간 이내에 먹으면 99퍼 피임되는 건 알고 있어요?” “네… 알고 있어요…” “아직 24시간도 안 됐고, 질 안에 있는 정액은 소독하면서 처리했으니까 너무 불안해 하지마세요.” “감사합니다…” 원장의 따뜻한 목소리와 위로 민아의 마음에 파고들었다. 그동안 참고 있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원장은 민아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려 줬다. 민아도 계속 울고 있을 순 없어서 억지로 눈물을 참았다. “약 먹고 일주일은 푹 쉬면서 상담치료 잘 받아요. 자책도 하지 말고. 본인 잘못 하나도 없어요.” “흑흑 네… 감사합니다…” 상처만 가득했던 민아의 가슴속에 원장의 따뜻함이 스며들었다. 그때 민아는 결심했다. 산부인과를 전공해서 꼭 저런 의사가 되기로. 사후 피임약을 먹은 민아는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지냈다. 학교에서도 김환을 만날까 두려워 최대한 숨어다니며 생활했다. 다행히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민아의 생리주기는 꽤 주기적이었다. 늦어도 하루 정도면 예정일을 벗어나지 않았다. 드디어 생리 예정일. 생리를 하지 않으면 바로 산부인과로 가려고 했다. 그래서 그날은 수업도 가지 않고, 병원 근처 카페에서 공부하며 생리를 기다렸다. 너무 의식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공부에 집중했다. 하지만 생리를 하지 않았다. 불안한 민아는 떨리는 몸을 이끌고 병원으로 올라갔다. 병원 진료시간 10분이 남은 시간이었다. 간호사는 민아를 바로 알아봤다. 처음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쳤던 민아의 얼굴이 꽤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민아가 말하기도 전에 간호사는 접수를 했고, 바로 진료실로 안내했다. 원장도 불안했는지 바로 초음파 검사와 임신 검사를 했다. 1초 1초가 지옥같았다. 그리고 얼마 후... 민아는 청천벽력 같은 소견을 들었다. 분명 사후 피임약을 바로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신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이세상에 100%란 없다. 피임도 100%피임은 없다. 사람이 예측하기엔 너무 어려운 변수들이 많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몸속의 일까지 다 제어하기란 불가능하다. 너무 황당해서 슬픈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원장은 천천히 다음 과정에 대해 설명해줬다. 하지만 수술을 하기전에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민아는 부모님께 연락드리기가 너무 두려웠다. 원장이 직접 민아의 어머니와 연락을 했고 차근차근 설명을 해드렸다. 얼마 뒤 민아의 어머니가 병원에 오셨다. 넋이 나간 민아는 그동안의 사정을 어머니께 감정없이 여과없이 모든 걸 다 이야기했다. 침착하게 설명을 다 들으신 어머니는 민아의 의견을 물었고, 민아는 당연히 수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는 의사와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을 마친 민아는 충격에 빠져 1년간 휴학을 했다. 휴학하는 동안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의아스러웠지만 어머니의 변호로 잘 넘길 수 있었다. *** 민아의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갑자기 이상한 과거 얘기해서 놀랐죠?” “아… 네… 조금…” “이건 남편도 모르는 이야기예요.” 당연한 일이다. 병원장이 알았다면 결혼을 했을까? 음... 그래도 본인의 권력욕심 때문에 했을려나?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긴하지만... “남편은 임신을 강요하고 있는데 할 때마다 그 때 일이 떠올라서 힘들어요.” “상담치료 받지 않으셨어요?” “받았죠. 받았는데 그것도 잠시뿐이고… 쉽게 사라지지 않아요.” 트라우마는 너무나도 복합적인 원인과 현상으로 이루어진다. 정신과 의사들도 힘들어한다. 치료 방법이 확실하게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증상과 해결 방법이 너무 다르다. 이런 어려운 병을 왜 나한테… 쉽게 살고 싶어서 개원한 거고 수술도 안 하려고 하는 건데… "그래서 제가 태준씨한테 어려운 부탁을 좀 드릴려고요." "네? 어떤? 임신 클리닉은 당연히 해드릴게요. 나중에 병원장님도 같이 병원에 오시면..." "아뇨. 그건 필요 없어요." 민아의 단호함에 태준은 살짝 당황했다. 무슨 말을 하는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민아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기가 원하는 걸 말했다. “저 임신 시켜 주세요. 태준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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