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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인어 괴물


1. "……장사운 아저씨. 물속으로 총을 쏴서 안 들어가고 다 죽이는 게 가능할까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으나, 돌아온 대답은 회의적이었다. "총알은 물속에서 길어봐야 3m밖에 못 간다. 수중전용 총기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그것도 일반 소총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라서." "안 된다는 거군요." "그래. 저 괴물을 죽이기 위해서는 일단 물속으로 들어가서 근거리 사격을 해야 할 것 같군." 그렇다면 다음 수단으로. "안지우 씨. 물의 정령으로 공격하는 방법은요?" "한번 해볼게요. 운디네!" 안지우는 두말 않고 운디네를 소환해서 변종 좀비를 공격하려 해봤다. 그러나……. 변종 좀비들은 수십 미터 아래의 깊은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었고, 운디네가 쏘아내는 물의 칼날은 그곳까지 날아가기 전에 힘을 잃었다. "……안되네요.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공격해야 닿을 것 같습니다." "결국은 물속으로 들어가서 싸워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군요." "그거 말인데요……." 안지우는 금색의 안경테를 중지로 고쳐 쓰며 말했다. "제가 여러분에게 운디네의 축복을 사용하면 일정 시간 동안 물속에서 자유롭게 숨 쉬고 말할 수가 있게 됩니다." "오오!" "그럼 상황이 훨씬 낫네요!" 다들 얼굴색이 밝아졌으나 안지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마력 소모량이 너무 많아져서 저는 제대로 싸우기가 어려워요. 여러분들만의 힘으로 저 괴물을 처치하고 고치를 파괴해 주셔야 합니다." 랭킹 21위인 안지우가 전력에서 제외된다는 의미였으나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랭커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있는데 한 명 빠진다고 해서 전력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건 아니니까. 이어서 시선이 몇몇 사람들에게로 모였는데, 랭킹 1위인 나, 3위 류세인, 9위 장사운 아저씨가 그 주인공들이었다. 우리 세명이 가장 센 능력자들이니만큼 안지우의 염려에 답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류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문제없어요. 물속에서 숨 쉴 수만 있다면 최악의 상황이라도 제가 고치만큼은 파괴할 수 있습니다." "세인아, 설마……." "괜찮아요, 아빠. 요즘은 마력이 부족하지 않으니까." 자신감 넘치는 류세인의 확답. 류진용 아저씨는 무언가를 염려하는 듯한 눈치였으나 류세인은 괜한 걱정이라는 듯 가볍게 웃었다. "좋습니다. 그러면 바로 시작해 보죠. 운디네!" 안지우는 곧바로 우리들에게 운디네의 축복을 걸었다. 2. 첨벙-! 우리는 모두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오오……!" 신기한 기분이었다. 물속에서 말도 할 수 있고 숨도 자유롭게 쉴 수 있다니. 차갑지 않고 미묘하게 따듯한 수온. 수심 깊은 곳에서는 은은한 빛이 올라와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배성준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아래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빛은 정체가 뭐지?" 대답은 원전 직원인 강민기에게서 나왔다. "체렌코프의 빛입니다." "……?" '그게 뭔데 씹덕아?' 같은 눈빛으로 쳐다보는 배성준. 강민기는 다시 자세하게 설명했다. "……방사성 물질에서 방출된 고에너지의 입자가 빛의 위상 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일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씨발, 방사성 물질? 그럼 지금 이 물 전체가 방사능 덩어리인 거 아니야?" "아닙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방사선을 가장 잘 차폐해 주는 물질 중 하나가 물이라서요. 핵연료봉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거나 봉 내부의 우라늄이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는 이상, 물 자체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습니다. 붕소가 조금 함유되어 있을 뿐이에요." "……." 배성준은 표정을 찌푸린 채로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점점 깊은 곳까지 헤엄쳐 들어갔고, 인어 괴물과 변종 좀비들은 우리들을 주시하며 수조 밑바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언가 불길해. 저놈들이 우리를 밑으로 유인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장사운의 말에 내가 답했다. "그렇더라도 어쩔 수 없죠. 고치를 파괴하려면 밑으로 가는 수밖에요." "……그렇지." 칙칙한 분위기에 류세인이 자신감 넘치는 어투로 말했다. "걱정 마세요. 고치는 제가 파괴할 테니까." 이쯤 되니 정말로 궁금해졌다. 저렇게까지 자신하는 류세인의 비장의 한수가 무엇인지.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이, 곧 있으면 볼 수 있겠지. 점점 바닥에 가까워지는 우리들의 앞으로 지느러미가 달린 변종 좀비 50마리가 마중 나왔다. "캬캬캬캬캭!" "캬르르르륵!" "캬륵, 캬르륵!" 우리를 보면서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덮쳐오는 변종 좀비들. 아우우우우우우— 배성준이 하울링과 함께 늑대인간으로 변신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었다. 투투투투투퉁—! 장사운이 신기하게 생긴 총을 만들어내더니 놈들을 향해 난사했다. 아까 말했던 수중전용 총기인 것 같은데, 탄속이 물 위에서 쏘는 소총만큼 빠르지는 않아서 총알을 피하는 놈들이 많았다. 변종 좀비들은 물속에서조차 가공할 속도로 움직이며 우리들을 공격해왔다. 나는 허리춤에 찬 환도를 뽑아서 지척까지 다가온 녀석의 허리를 베어냈다. "캬르르륵!" [천상의 가호] 덕분에 무 자르듯 들어간 칼날은 변종 좀비의 척추를 끊어냈다. 그리고 그때……. "주인님, 아래쪽을 조심하세요!" 세레나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나는 재빨리 몸을 긴장시키며 고개를 돌렸다. 핵연료봉 사이에 뿌리를 내린 고치, 그 옆을 지키고 선 인어 괴물. 녀석은 오른손에 든 핵연료봉을 한껏 뒤로 당긴 채 허리를 비틀고 있었다. 명백한 투창의 준비 자세다. 물 밖에 있었을 때 현서희를 죽일 뻔했던 그 공격! "피해요!" 내가 소리치는 것과 함께 핵연료봉이 물살을 가르고 작살처럼 날아왔다. 표적은 내가 아니라 변종 좀비와 사투를 벌이던 류진용이었다. 그는 다급한 상황 속에서 투창 공격을 보지 못했고, 옆에서 함께 싸우던 류세인이 앞으로 끼어들었다. "아빠!" 채앵-! 류세인은 공격을 막기 위해서 검을 휘둘러 핵연료봉을 베어냈다. 반으로 잘린 핵연료봉의 안에서 검은색 물질이 튀어나왔다. "안돼! 우라늄이!" 강민기가 재빨리 손을 뻗어서 물살을 조종했다. "핵연료봉을 파괴해선 안됩니다! 물속이라고 해서 근거리 피폭까지 완벽하게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는 반으로 잘린 핵연료봉을 멀리 보내버렸다. 그러나 아무래도 피폭을 막지는 못한 것 같았다. 당장 내 입안에서 비릿한 쇠맛이 나기 시작했으니까. "크르르르…. 좆같은 상황인데." 배성준의 말대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현재 남은 변종 좀비는 약 40마리 이상. 랭커가 이렇게나 많은데 아직 10마리도 채 잡지 못했다. 물속이라는 환경이 생각보다도 더 불리했고, 변종 좀비들의 움직임이 너무 날랬다. 게다가 가장 심각한 것은……. "쿠르륵, 쿠륵-!" 묵직한 중저음의 기괴한 웃음소리를 터트리며 다음 투창을 준비하는 저 인어 괴물. 변종 좀비를 상대하는 동안 계속해서 저 핵연료봉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는 점이 사람들의 집중을 분산시켰다. 이젠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다. "세레나—." 내가 백기사 무장을 명령하려 할 때, 류세인이 앞으로 돌진하며 소리쳤다. "내가 고치를 파괴할게요! 잠시 동안만 변종 좀비들을 막아주세요!" "—세레나, 류세인을 지켜." "네, 주인님!" 나는 일단 그녀를 믿어보기로 했다. 우리들은 각자 변종 좀비들을 상대하며 수를 줄여나가고 있었고, 류세인은 눈을 감은 채로 검을 앞으로 겨누고 정신을 집중하는 듯했다. "다음 공격이다!" 장사운의 경고와 함께 인어 괴물이 핵연료봉을 쏘아냈다. 이번 표적은 류세인. 세레나가 앞으로 나서며 발차기로 핵연료봉을 튕겨냈다. 태앵-! 쥘부채를 휘두르며 물의 칼날을 쏘아내던 현서희가 반색하며 외쳤다. "멋져요, 세레나 씨!" 류세인은 세레나를 믿은 것인지 눈조차 뜨지 않고 집중을 계속하고 있었다. 점차 그녀가 든 검에 변화가 생긴다. 검신 전체에서 은은한 붉은빛이 솟아나더니, 그 빛이 점점 강렬해지며 검을 집어삼킨 아우라가 크기를 키워갔다. 그 모습을 본 류진용이 정색하고 소리쳤다. "세인아, 무리하지 마! 여기서 주화입마에 걸리면 큰일이다!" 그 외침이 들리지 않은 것일까? 류세인은 안색이 창백해지면서도 집중을 계속했다. 붉은빛의 아우라는 계속 덩치를 키워서 결국 검의 크기의 1.5배는 되어 보이는 수준까지 거대해졌다. 그 모습에 인어 괴물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고치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마침내 눈을 뜬 류세인. 고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인어 괴물을 보고, 그녀는 작게 미소 지으며 검을 휘둘렀다. "막을 수 있으면 한번 막아봐!" 변종 좀비와 싸우고 있는 급박한 와중에도 모두의 시선이 류세인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휘두른 검에서 붉은빛의 아우라가 반월형의 형태로 쏘아졌다. 그 순간. 인어 괴물은 비웃듯이 얼굴을 구기며 뒤로 돌아섰다. 처음으로 드러난 녀석의 등에는 딱 봐도 두께가 장난 아닌 검은색의 거북이 등딱지가 자리했다. '설마……?' 등딱지와 충돌한 반월형의 아우라. 콰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듯 강력한 충격이 우리들을 덮쳤다. "크르르릉!" "꺄아아악!" "크읏…!" 눈이 멀 듯 빛나는 붉은 섬광,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인어 괴물을 주시했다. 류세인이 쏘아낸 아우라는 확실히 엄청난 위력을 자랑했다. 등껍질을 뚫고 파고든 것은 물론이고, 인어 괴물을 거의 양분 낼 뻔했다. 그러나 결론은 실패였다. 그녀의 목적은 인어 괴물을 관통하고 고치까지 파괴하는 것이었는데, 인어 괴물조차 죽이지 못했으니까. "뭐야, 진짜 막혔네?" 류세인을 놀리는 듯한 배성준의 혼잣말. 그녀는 신음을 흘리듯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강기를……!" 류세인이 상당히 충격받은 것 같아 나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괜찮아요. 충분히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으니까." "……." 그러나 류세인은 전혀 괜찮지 않아 보였다. 일단 안색부터가 굉장히 창백하다. 투투투투투투퉁—!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들은 전투를 계속하며 변종 좀비들의 수를 착실하게 줄여나갔다. 이제 남은 것은 고작 10마리 남짓. 이 녀석들을 마저 해치우고 반쯤 시체가 된 저 인어 괴물을 마무리하면 끝이다. 그런데 그때……. "쿠르륵, 쿠르르륵—!" 몸이 반쯤 잘린 채로 수조 밑바닥에 쓰러져있던 인어 괴물. 녀석이 주변에 있는 핵연료봉을 닥치는 대로 잡아뜯어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핵연료봉의 안에 들어있는 우라늄을 초코볼이라도 되는 것처럼 게걸스럽게 빼먹는다. "어어—!?" 그 갑작스러운 기행에 강민기가 당황한 것도 잠시, 인어 괴물의 피가 멎더니 상처 위로 새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물속에 풀려난 우라늄들로 인해 체렌코프의 빛이라 했던 그 신비로운 빛이 더 강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강민기가 경악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이제 저 밑은 방사선의 지옥입니다! 고치를 파괴하기 위해서는 원거리에서 공격하거나, 피폭으로 죽을 각오를 하고 접근해야 해요!" "……."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에 절망의 빛의 드리웠다. 배성준이 모두의 심정을 대변해서 대답했다. "크르르릉…. 원거리에서 공격하라고? 아까 그 강기인지 뭔지도 막아낸 저 괴물이 다시 멀쩡해졌는데?" "……." 무슨 원리인지, 저 인어 괴물은 우라늄을 퍼먹는 족족 새살이 차올라서 상처를 회복했다. 지금은 검은색의 등껍질도 거의 회복된 상태였다. "내가…, 내가 다시 한번 강기를—." "안돼!" 류세인의 힘없는 목소리에 류진용이 소리쳤다. "강기를 또 사용했다간 틀림없이 주화입마가 온다!" "하지만—!" "세레나." 나는 류세인의 말을 끊고 세레나를 불렀다. "네, 주인님." 그녀는 충분히 최선을 다했다. 다른 랭커들의 힘만으로 봉쇄가 가능하다면 되도록 지켜보려고 했으나, 아무래도 무리인 듯싶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나설 차례다. "백기사 무장을 해라." "알겠습니다." 세레나의 몸에 하얀 기운이 어리더니, 전신을 뒤덮는 갑주와 함께 제 몸집만큼이나 거대한 츠바이헨더가 생겨났다. 물속에서 보는 그녀의 모습은 갑주에 반사되는 체렌코프의 빛까지 어우러져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밑으로 가자. 저 인어 괴물을 죽이고, 고치를 파괴한다." 피폭을 당하더라도 즉사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은총의 빛]으로 치료할 수 있으니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내 양옆에 선 세레나와 시엘이 대답했다. ""네, 주인님!"" 모두가 당황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와중에, 우리는 인어 괴물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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