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서나래 (4)
*
월화목토월화수목.
승현이 연지와 섹스를 한 날이다.
특히 토요일에는 아르바이트하는 날도 아닌 연지가 승현의 집으로 놀러오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매번 4번씩 한 것은 아니어서, 정기를 1800가량 모을 수 있었고, 여유는 없었어도 필요한 만큼 일반등급 <매력의 포션>을 구매할 수 있었다.
정기를 고갈시키면 기절을 하는 것인지, 승현은 왼쪽에 잠든 연지를 팔베개 한 상태로 누워 심란한 한숨을 쉬었다.
“휴우…”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늦은 시각.
승현이 심란한 이유는 3번째 섹스를 끝내고 쉬기 위해 나란히 누웠을 때 연지에게 들은 말 때문이었다.
“승현아 나 사실은…”
“응?”
“실은 나… 남자친구 있어.”
“?!!”
그 말을 듣고 승현이 처음 느낀 감정은 여러가지 뒤섞인 혼란스러움이었다. 그러다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가만히 있던 연지에게 <매혹의 추파>를 던져 섹스를 하게끔 만든 것은 다름아닌 승현 자신이었고, 연지도 긴 고민 끝에 남자친구가 따로 있음을 고백한 것일 테니까.
아까부터 니온은 승현의 자취방 안에 있었지만 승현의 기분을 헤아려 주듯이 아무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요.”
“어떤 생각 말입니까?”
“지금은 연지한테 미안한 감정인데요, 사실 얘가 처음에 남자친구 있다고 했을 땐 황당했달까? 분노… 아니 혐오감부터 느꼈어요. 솔직히.”
“남자친구가 있는 것을 숨긴 채 승현님과 만나온 사실 때문에요?”
“네. 근데 따지고 보면 연지를 이렇게 만든 건 저 잖아요.”
“그렇지요.”
니온은 차분히 승현의 감정을 받아주었다. 승현의 혼란스럽게 소용돌이치는 기분이, 니온의 차분한 음성으로 인해 천천히 가라앉았다.
승현은 계속해서 연지와의 대화를 곱씹었다.
‘근데 이번 주 내내 너랑 섹스하면서 알게 됐어. 내가 널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바 끝나고 만나자는 남자친구에겐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너의 자취방에 왔으니까…’
‘……’
‘근데 내일은 남자친구 생일이야. 그래서 가야해. 나에겐 남자친구도 소중해.’
‘그랬구나…’
‘응… 속이려던 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속여서 미안해. 지난번 편의점에서 있었던 일부터 시작해서… 나도 너무… 뭐가 뭔지 모르겠어.’
‘아냐. 네가 미안해할 일 아니야. 나도 너랑 하는 섹스가 좋았어.’
물기어린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연지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게 너에 대한 내 솔직한 마음이야.’
승현은 연지에게 키스를 하며 안아주었다. 둘은 말 대신 몸을 섞어가며 감정을 풀었다. 고조된 분위기가 카타르시스처럼, 두 사람에게 최고의 오르가즘을 선사했다.
“인간의 잣대와 몽마의 잣대는 다릅니다. 섹스는 단지 행위일 뿐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뿐이지요.”
“……”
“가까운 시일 내에 결정하셔야 합니다. 인간으로 남을지, 몽마의 길을 걸을지를요.”
그게 진정한 각성이니까. 라고 니온은 생각했다.
*
금요일.
이번엔 꼬박 하루를 같이 지샌 승현과 연지는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자취방 건물 앞에서 헤어졌다.
“남자친구 생일이라며. 오늘도 알바 해?”
“응 그런데 교대를 좀 일찍 부탁해서, 4시쯤 끝나.”
“그래… 남자친구 잘 만나고.”
“…응”
“다음 주에 보자.”
연지는 뭔가를 말하려다,
“그래.”
라고 대답하고 인사를 나눴다.
멀리 걸어가는 연지를 보는 승현의 마음이 여전히 편치 않았다. 자신의 욕정 때문에 연지를 계속 이용하는게 맞는지 자신 없었기 때문이다.
둘이 헤어지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던 니온이 쾌활하게 소리쳤다.
“그래도 승현님 덕분에 여자는 행복을 느꼈을 겁니다아~”
“……”
“내내 제 발로 승현님을 찾아온 것이 그것을 증명하지요.”
승현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짐짓 익살스럽게 말하는 니온이었다.
“어제 해주신 말을 생각해 봤는데.”
승현이 앞으로 걸으며 말을 받았다.
“그래서 누군가가 제게 섹스를 몰랐던 때가 낫냐, 지금이 낫냐 물어본다면 역시 전 지금이 좋다고 대답할 거 같아요.”
승현의 걸음에 맞춰 어깨 위에 둥실 떠 있는 니온의 꼬리가 살랑거린다.
“그 전까진 왜 살고 있나 싶을 정도로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비록 초자연적인 능력 덕분이지만 여자의 따뜻한 품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젠 악몽도 꾸지 않고, 나쁜 상상도 잘 안 하게 됐구요.”
어쩐지 승현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행정복지센터에 도착하니 직원들이 창고에서 플라스틱 의자 뭉치를 꺼내고 있었다.
“승현씨, 미안한데 옷 빨리 갈아입고 이거 좀 도와줄 수 있을까? 우리도 갑자기 연락 받아서, 주민행사에 쓸 의자랑 테이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 보내줘야 하거든요.”
서나래가 사복차림의 승현에게 말했다. 그 누구보다 사람의 태도에 대해 예민한 승현은 확실히 그녀가 전보다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누그러졌음을 느꼈다.
서나래의 승현을 향한 호감도는 18.
몇일만에 이렇게나 호감도를 올린 비결은, 시키는 일에 토 달지 않고 열심히 하고 가끔 간식이나 음료를 사다 바치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이유 없이 싫어한다고 느낄 땐 자신의 태도가 잘못되진 않았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승현은 깨달았다.
[퀘스트 : 서나래와 섹스하기]
[남은 시간 : 7일 5시간]
[완료 시 보상 : 정석 A 10]
‘호감도 18이 대체 어느 정도일까…’
환복하러 가는 도중, 디스크 덕분에 노역에서 열외 된 박영돈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에겐 쓸 생각도 못했는데 비교를 위해선 어쩔 수 없지… 스캔!’
랭크 : D
남은 정기 : 100%
경험 인수 : 1
호감도 : 32
‘어라, 아다가 아니었다고? 진짜 의외네.’
그러고보니 영돈이와는 여자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일반적인 사회복무요원 간의 거리감과 승현과 영돈을 비교했을 때, 둘은 꽤나 친한 편이었다. 특히 친구가 얼마 없는 승현에겐 영돈은 챙겨주고 싶은 동생이었다.
‘그건 그렇고 흠… 32라. <매혹의 추파>효과가 종료된 연지의 호감도가 68이었으니까 이러나 저러나 비교하기가 애매하네. …서나래 호감도를 60대로 올리면 말이 되는데 그건 시간 안에 절대 무리 같고.’
도저히 시간내로 서나래와 섹스를 할 자신이 없다…! 승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미 처음 주어진 시간에서 3분의 2가 지나간 것이다.
승현은 환복 후 나래의 요청대로 창고 건물로 와서 준비된 트럭에 각종 기자재들을 옮겨 실었다. 비교적 가벼운 잡화를 옮기며 거들던 서나래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확실히 달라졌어.’
어느 날을 기점으로 딴 사람이 된 것처럼 승현의 태도가 바뀌었다. 개인 업무를 부탁하거나, 센터의 일을 지시할 때 한 번도 고분고분 말에 따른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더 시킬 일은 없냐고 되물어 오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그 전에는 불만의 표현인지는 몰라도 일을 처리해도 어딘가 엉성했다면, 지금은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로 빈틈없이 처리하는 승현이었다.
게다가 각자 점심을 먹고 들어와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요 며칠 꼭 먹을 것을 이것저것 챙겨 준다.
‘설마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그러는건 아니겠지?’
실제로 최후의 최후까지 버티다 안되면 고백까지 하려던 승현이었다.
‘에이 아닐거야.’
서나래는 꽤나 비율이 좋은 몸매의 소유자로, 키가 171cm나 되었다. 게다가 평소에 신는 구두의 굽까지 더한다면 서나래의 눈높이는 한국남자의 평균키 174cm를 가볍게 넘었다. 그런 서나래에게 164cm 남짓한 승현은 남자보다는 동생으로 느껴졌다. 그것도 한때 철이 없었던 동생.
“다 했는데 더 시키실 일 있으신가요?”
어느새 주관사에서 요청한 만큼의 물건을 모두 적재한 승현이 나래에게 물었다.
“아니요 올라가서 업무 보셔도 될 거 같아요.”
“네. 수고하세요.”
‘확실히 달라졌어.’
나래는 승현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자리로 돌아갔다.
센터에서의 공익의 하루란 늘 그렇듯이 여유롭게 흘러간다. 소위 말하는 꿀무지. 꿀 같은 근무지라는 뜻이다. 물론 같은 센터라도 규모를 비롯해 종사자의 숫자에 따라 업무강도는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적어도 승현이 근무하는 곳은 다른 사회복무요원의 부러움을 살 만큼 편한 곳이었다.
근무시간에 대놓고 잠을 자는 등의 태업을 하는게 아니라면 핸드폰을 만져도 괜찮을 정도. 그래서 승현이 이 사실에 대해 감사하느냐? 그건 아니다. 새파랗게 젊은 시절의 2년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희생당하고 있으니 좋은 기분일리 만무했다. 나라를 위해서 봉사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기란 2년에 가까운 복무기간을 거칠수록 어려운 일이다.
그때 민원대 방향에서 남자의 쩌렁쩌렁한 남자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상황발생.”
영돈이 웹서핑을 하던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평온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승현도 별 일 아니겠지 생각하며 한번 흘깃거리고 말았다.
하지만 고성이 더 심해지고, 집기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서야 사태가 생각보다 심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선생님, 이미 영치된 번호판은 저희가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구요~! 구청 교통과에 가셔야 해요.”
“아니 날도 더운데 왜 사람을 오라가라 하느냐고! 여기 동사무소 아니야?”
자리에서 일어난 승현이 눈을 치켜 떴다. 악성민원인이 고래고래 떼를 쓰면, 서나래가 최대한 좋게 안내하고 있었다.
“선생님, 자꾸 이러셔도 제가 어떻게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승현이 봐왔던 까랑까랑한 그동안의 모습과 상반되게, 서나래는 진땀을 빼며 민원인의 기분을 풀어주고 돌려보내려 애쓰고 있었다.
“이 싸가지없는 계집애가…! 니들 다 시민이 내는 세금 받아먹으며 사는거 아냐! 근데 이래도 돼?! 내가 몇 번을 말했어! 엉?!”
급기야 악성민원인은 민원대에 고정된 서명패드를 뜯어내고 휘두르며 서나래를 위협했다.
“꺆!”
서나래의 뒤편으로 던져진 서명패드는 계장 책상에 맞고 산산조각났다. 그 기세가 흉흉해 김형렬이 목을 움츠렸다.
“저기 선생님 흥분을 가라 앉히시고…”
김형렬이 흥분한 민원인을 진정시키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나 돈 냈다고! 지들이 처리를 잘못 해놓구서 여기 가보셔라 저기 가보셔라 뺑뺑이를 돌리구 앉았어! 내가 며칠 전에도 더워 죽겠는 날씨에 차 없이 걸어서 구청 다녀왔다고! 늬들 때문에!”
민원대를 탕탕탕 두드리며 쏘아대는 민원인을 보며 안되겠다 생각했는지 승현과 영돈이 움직였다. 보통은 직원 선에서 무마해야 할 일이라 좀처럼 공익이 나설 일은 없었지만 이젠 의자까지 집어 드는 통에 누구라도 나서야 했다.
“사장님, 의자는 내려놓고 말씀하셔도 되잖아요.”
승현이 의자를 가로로 든 민원인을 향해 붙으며 말했다. 영돈은 서나래의 앞을 가로막았다.
“놔! 안놔!?”
의자를 붙잡고 옥신각신하던 남자와 승현. 순간 승현의 몸이 붕 떠서 민원대에 쳐박혔다.
“으으…”
다소 과장되게 충격 받은 모습으로 승현이 코를 감싸 쥐고 바닥에 굴렀다.
“으… 영돈아. 화장지좀.”
다친 사람이 나오자 찔끔한 남자가 살포시 의자를 내려놨다. 그러자 승현이 코를 틀어쥔 채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장님 어디 가지 마시고 거기 계세요. 경찰 부를라니까. 예?”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영돈은 생각했다.
‘언제봐도 일품인 연기라니까.’
*
“괜찮아? 진짜 안 다쳤어?”
“에이- 승현이형 연기한거에요 괜찮아요.”
나래가 승현에게 걱정스러운 듯 묻자 영돈이 너스레를 떨었다.
“야… 부딪친 건 진짜야. 코피는 구라였어도.”
살집이라곤 없는 앙상한 팔에 멍이 들어있었다.
“덕분에 무사히 넘겼어… 미안하고 고마워 승현씨.”
“어디 찢어지고 그런 건 아니니까 괜찮아요. 신경 안쓰셔도 돼요.”
“그래도 아픈데 있으면 꼭 말해줘. 알았지?”
“네.”
그 둘을 지켜보던 영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나래가 자리로 돌아가자 영돈이 얼굴을 들이밀며 추궁한다.
“뭐야 뭐야? 둘이 언제부터 이렇게 친해졌어?”
“뭐가?”
“찬바람 쌩쌩 불던게 불과 며칠 전인데 저 서나래가 형 걱정을 한다고? 아니 형도 그래. 말투 이상해 형~?!”
“뭐가 어쨌다고 그래… 빵이나 먹어.”
“어디가?”
“화장실.”
승현이 자리에서 뜨자 영돈이 납득이 안 간다는 시선으로 그 뒤를 쫓았다.
한편, 승현은 서나래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호감도를 체크하기 위해 스캔을 사용했다.
랭크 : A
남은 정기 : 100%
경험 인수 : 0 명
호감도 : 33
그 동안 가져다 바친 간식과 자바칩 프라푸치노가 무색하게 단번에 대폭 올라버린 호감도.
‘이거… 잘 하면 가능하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