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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화 28. 은둔의 변태 마스터 (5)


“이 죽시를 사용하세요. 제가 사용하는 거예요. 그런 활은 화살도 아무거나 막 사용하면 안 되거든요. 출전피가 금방 상해요.” 그러면서 내민 다섯 대의 화살을 보니 일전에 보았던 야랑족의 화살처럼 나무로 만들어진 화살이다. 하지만 야랑족의 것이 고풍스러우면서도 조악한 느낌이었다면, 여성이 내민 화살은 단아하면서 단단한 느낌이다. 활을 당기자 65파운드임에도 매우 가벼운 느낌이었고 시위를 놓을 때 팔꿈치에 전해오는 반동에 의한 충격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화살은 리커버 보우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가 과녁에 박혀 든다. 겨우 단 한 번의 사격이지만 이전에 구입했던 리커버 보우가 마치 장난감처럼 느껴지는 위력과 성능이다. ‘장인이 만든 건 뭐가 달라도 다르네.’ 다섯 대의 화살을 날리고 다시 한 번 더 쏘아 본 강호가 조금은 아쉬운 얼굴로 활을 바라보았다. 분명 마음에 든다. 리커버 보우에 비해 크기도 작고 쏘는 맛도 일품이며, 활이 반동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명중률에도 확연한 차이가 난다. 하지만 파운드가 좀 더 높았으면 싶은 욕심이 있다. 앞으로 박쥐머리 괴물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고, 야랑족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최대한 성능이 뛰어난 활이 필요하다. “좀 더 파운드가 높은 활은 없나요?” 강호의 말에 공방의 사장, 김미경이 살짝 인상을 썼다. 지금 가지고 나온 활만 해도 상급자들 이상을 대상으로 만든 활이다. 활이라는 것은 단순히 크기가 크고 파운드가 높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자신에게 맞는 적절한 무게와 파운드를 지닌 활을 사용할 때 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활이다. “그것만 해도 충분할 텐데요?” “시위가 너무 가벼워서요. 좀 더 위력이 강하면 좋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작은 동물은 몰라도 덩치가 큰 동물에게는 크게 위력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좀 묵직한 느낌이면 좋을 것 같은데...” 그 말에 김미경이 살짝 미심쩍은 얼굴을 했다. “꼭 큰 동물을 사냥하러 다녀본 사람처럼 말씀하시네요?” “하하! 그럴리가요.” 태연하게 대꾸하는 모습이 오히려 미심쩍긴 했지만 손님에게 그런 걸 일일이 캐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다시 공방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또 다른 전통 활을 하나 들고 나왔다. 73파운드짜리 활이라며 건넨 활을 몇 번 쏘아 보자 시위를 당기는 힘도 다르고 위력의 차이도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강호는 만족한 얼굴을 하지 못했다. 분명 대단하고 엄청난 활인데 자신이 원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녀의 말처럼 무조건 강하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는 말은 충분히 수긍이 간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활을 직접 만드는 장인이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이 틀릴 리는 없다. 하지만 강호가 활을 사용하는 곳은 게란트다. 맹수와 몬스터가 판을 치고 거대한 괴물이 툭하면 튀어나오는 곳. 손에 든 각궁이 훌륭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구라는 세상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무기다. 애초에 사용 목적 자체가 한계가 있다는 의미였고, 박쥐머리 몬스터나 톱니집게대게와 이미 조우한 적이 있는 강호의 입장에서는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몇 번의 활을 바꾸어 쏘아 보았음에도 강호의 마음을 딱히 사로잡는 활은 없었다. 그러자 김미경도 슬슬 못마땅한 감정이 표정과 목소리에서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말했지만 활이란 게 파운드가 높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파운드가 높을수록 활은 무거워지고 다루기도 힘들어져요. 그만큼 명중률도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이야기고요. 특히 100파운드 이상의 활은 전문 궁사들도 시위를 끝까지 당기기 힘든 경우가 많아서 레저나 시합용으로 적합하지 않아요. 그래서 각궁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50에서 80파운드 사이에서 제작되고 있고요.” 살짝 짜증이 섞인 말에 강호도 충분히 수긍을 하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 표정 때문일까. 잠시 말없이 강호를 바라보던 김미경이 아무런 말도 없이 몸을 홱 돌리더니 공방 안으로 사라졌다. 한 참이 지나 또 다른 활을 하나 들고 나오는데, 그 활을 보기 무섭게 강호의 눈빛이 바뀌었다. 나무 특유의 빛깔과 검은색의 묵빛이 전체적으로 뒤섞여 있는 활의 옛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모습이 한눈에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160파운드짜리 활인데 한 번 보세요.” 그러면서 대수롭지 않게 툭 하고 던지듯 건네는데, 그 활을 받아 들다 말고 묵직한 무게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활이라는 무기는 한 손으로 들고 사용하는 무기다. 그것도 오른 손이 주 손인 경우 상대적으로 약한 왼 손으로 활을 들고 무게를 지탱해야 한다. 당연히 활은 최대한 가벼워야 하는데, 보통 300g 내에서 제작되고, 500g 이상을 넘어가는 활은 거의 없다. 그런데 여성으로부터 건네어 받은 활의 묵직함은 대충 느끼기에도 2, 3Kg은 되어 보인다. 군대 있을 때 그렇게 무겁게만 느껴지던 소총에 필적하는 무게라니. 이런 활은 시위를 당기는 건 둘째 치고 한 손으로 제대로 들고 있는 것조차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강호는 검은 묵빛을 뿜어내고 있는 활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전반적으로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면서도 나무와 금속이 뒤섞여 있는 몸체는 세련되고 묵직한 느낌을 전해준다. 게다가 할 시위까지 검은색 와이어로 되어 있다. 이런 시위는 잘 못 사용하다가는 손가락 날아가기 딱 십상이다. 하지만 강호를 놀라게 한 것은 단순히 활의 무게나 그런 외형 때문이 아니었다. [김미경의 강철묵궁 – 지킴이의 마지막 일족이자 전통 활 제작 장인의 후예인 김미경의 손에 의해 탄생한 비운의 명궁. 어릴 때 읽었던 무협소설의 영향을 받아 충동적으로 반 장난삼아 만들어 진 이 활은, 전통의 방식과 현대의 주물 방식을 결합하여 만든 실험적이면서도 파괴적인 활이다. 한 손으로 들기 힘들 정도로 무겁고, 당기기 힘들 정도로 장력이 높으며, 활의 반동 또한 매우 강해서 웬만한 궁사는 아예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장난삼아 만들기 시작한 활이지만 김미경의 장인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여기에 우연과 우연이 겹치며 탄생한 명품 중의 명품. 그럼에도 이 활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궁사를 찾지 못한 까닭에 외면을 받고 배척을 당한 비운의 활이다. 만약, 이 활을 제대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숨겨진 능력을 뽑아낼 수 있다. * 옵션 : 궁술 마스터리 +2, 둔기 마스터리 +2, 민첩 -1. 근력 +1, 지구력 +1 * 히든 옵션 : 개방 조건에 부합하지 않음.] 활의 설명을 읽은 강호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부릅떠졌다. ‘대박이다!’ 대박도 이런 대박이 없다. 스킬과 스텟 옵션이 붙어 있다. 장어 액기스에서 스텟을 발견했을 때에도 대박이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이 활에 붙은 옵션은 대박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게다가 히든 옵션이라는 것은 돋보기 스킬을 통해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한 이후로 처음으로 보는 것이었다. 그것도 지구의 물건에서 발견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민첩이 감소되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활의 모든 스펙은 그것을 감수하기에 충분했다. 설명을 읽은 강호가 놀란 얼굴로 활과 김미경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지난번에 그녀의 할아버지가 무형 문화재로 등재되었다고 듣기는 했었는데, 그 손녀라는 젊은 여성이 설마 이런 물건을 만들어 낼 정도의 실력을 갖춘 능력자였다니. “왜 그러세요?” “아... 아닙니다. 그냥, 활이 대단해 보여서요.” “그리 대단한 건 아니니까 그런 표정 할 것 없어요. 장난삼아 만들어 본 건데 쓸데없이 무겁고 파운드만 높아서 사실 명중률도 형편없는 실패작이거든요.” 뭔가 조금은 자조 섞인 말투였지만, 강호가 지금 보고 있는 활은 그런 식으로 말할 정도로 형편없는 활이 절대 아니었다. 시스템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제대로 사용할 궁사만 만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명품 중의 명품이라고. “쏘아봐도 될까요?” 잔뜩 기대를 머금은 말투에 김미경은 대체 이 사람이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잔뜩 기대를 머금은 얼굴을 한 강호가 시위에 활걸 걸고는 당겼다. 오른 팔의 근육에 힘이 들어가며 대번에 부풀어 오르는 것과 함께 활시위가 당겨진다. 160파운드라면 거의 72Kg에 육박하는 무게의 장력이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당기는 것조차 힘든 장력. 한두 번은 어찌 당긴다고 해도 그런 것을 연속으로 당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강호가 처음 시위를 당길 때만 해도 김미경의 표정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핑!] 기타 줄의 현을 튕기는 듯한 맑은 소리와 함께 번개처럼 쏘아져 나간 화살이 과녁에 박혀든다 싶은 순간 박살이 나버린다. 활의 강력한 힘을 이기지 못한 죽시가 터져나간 것이다. 다시 한 발을 더 날려 본다. [피잉!] [콰직!] 이번에도 화살이 날아가기 무섭게 산산이 박살이 나며 사방으로 비산한다. 그 모습에 잠시 인상을 찡그린 김미경이 한 숨을 내쉬고는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녀가 들고 온 것은 시커먼 화살이 들어 있는 화살통이었다. “이걸로 쏴 보세요.” 그녀의 말에 화살을 하나 뽑아 든 강호의 얼굴이 흥분으로 가득 차올랐다. [강철묵시 – 김미경이 강철묵궁을 위해 특수 제작한 화살이다. 강철묵궁의 성능을 온전히 끌어낼 수 있는 궁사가 사용할 경우, 두꺼운 강철마저 관통할 수 있으니 사용에 주의하자.] 화살의 무게만 해도 묵직한데, 설명도 놀랍다. 두꺼운 강철마저 뚫을 수 있다니. 비록 활의 성능을 온전히 끌어내야 한다는 전제가 붙었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엄청난 위력을 보여줄 것이 분명해 보인다. ‘활의 성능을 온전히 끌어낸다는 건, 히든 옵션을 말하는 거겟지?’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손에 들린 화살을 바라보던 강호가 김미경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대체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활과 화살을 만든 것일까? 설명에는 어릴 때 무협소설을 읽고는 반 장난처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장난삼아 만든 물건이 명품 중의 명품 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물건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설명에는 우연과 우연까지 겹쳐 탄생했다고 하는데 정말로 세상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는 하는 모양이다. 천재 과학자들이 우연히 혹은 장난삼아 노트에 낙서를 하다 희대의 발견을 하듯이 말이다. 김미경이 내민 화살통을 허리춤에 메었다. 화살은 딱 스무 발이다. 합금으로 만들어진 화살이 담긴 통을 메자 묵직한 감각이 전해 온다. 마치 쌀 한 포대를 허리에 진 느낌이다. 한 발을 빼어 들어 시위에 걸고 당기자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감각이 전해오고 있다. 그저 느낌일 뿐이지만 왠지 이제야 제대로 된 짝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에 시위를 놓자 현을 튕기는 듯한 고운 소리와 함께 검은 빛줄기가 되어 날아간 화살이 그대로 과녁판을 관통해 버린다. “허!” 강호가 잠시 놀란 얼굴을 하다 김미경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담담하다. 하기야 그녀가 직접 만든 활이니 그 누구보다 활의 위력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담담한 표정 뒤로 씁쓸한 감정의 여운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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