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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화 28. 은둔의 변태 마스터 (6)


‘예전에도 누군가가 사용을 해 보았겠지. 160파운드라고는 하지만 전력을 다하면 못 당길 정도는 아니니까. 그리고 외면 받았을 테고.’ 160파운드가 대단하긴 해도 당기자면 못 당길 것도 없다. 문제는 활이라는 것이 그저 시위를 당기고 힘 자랑 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화살을 날려 정확하게 목표물을 타격하는 것에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활은 가볍고 작으면서도 적절한 위력을 지닌 밸런스를 찾기 시작했고, 궁사의 체형도 이에 맞추어 진화 되었다. 김미경의 말처럼 현재 전문 궁사들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활이 50에서 80파운드 사이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 활도 오래 사용하면 근육에 무리가 온다. 하물며 이렇게 무거운 활은 사용할 엄두를 내지도 못 할 것이다. 당연히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쓸데없는 물건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외면과 배척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강호는 입장이 다르다. ‘이건 마치 날 위해 만들어진 활이다.’ 좀 더 강력한 위력을 지닌 무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오죽했으면 미국에 넘어가서 몰래 총이라도 구한 다음 돌아올까 하는 생각까지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런 활이라면 순수한 위력만큼은 총에 버금갈 정도다. 은밀성에서는 오히려 총보다 낫다. 먼 거리에서 은밀하게 적을 죽이기에 활만큼 뛰어난 무기가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에 다시 묵시를 재어 활을 날렸다. 시위를 튕기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화살이 이번에도 과녁을 아예 관통해 버렸다. 세 번째, 네 번째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열 발을 연속으로 쏘아낼 무렵부터 담담하던 김미경의 얼굴에도 믿을 수 없다는 빛이 역력해졌다. 김미경이 만든 강철묵궁은 지금껏 많은 궁사들이 찾아와 쏘아 본 전력이 있는 활이었다. 소문을 듣고 저 먼 지방에서도 일부러 찾아와 쏘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다섯 발 이상을 제대로 쏘아내지는 못했다. 게다가 활자체의 무게만 3.2Kg이다. 그런 활을 한 손으로 들고서 자세를 꼿꼿하게 유지하고 시위를 당기고서 목표물을 겨냥까지 한다는 것은 대부분 마른 체형을 지닌 궁사들로서는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 묵궁을 사용해 본 이들은 처음의 기세등등하던 모습과는 달리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이 활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전설속의 헤라클레스나 삼손 같은 사람이 오지 않는 이상은 어림도 없다고. 한 마디로 쓸데없는 물건이고 실패작이라는 소리였다. 장난삼아 시작했지만, 그 어떤 활을 만들 때보다 오랜 시간을 투자했고 온 정성을 다해서 만든 활이기도 했다. 생애 처음으로 심혈을 다해 만들었던 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활이 사람들의 외면 속에 지난 몇 년 동안 방구석에 처박힌 채로 쓸쓸하게 잠들어 있었다. 그랬던 활인데. 지금 눈앞에서 제 주인을 만난 것 마냥 날뛰고 있다. 날아간 화살이 과녁판을 꿰뚫다 못해 대청마루 밑에 놓인 디딤돌에 푹푹 박혀 들고 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무엇보다 갈수록 활을 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그렇게 순식간에 스무 발의 화살을 쏘아내었다. 김미경이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강호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가득한 환희와 만족감을 본 순간 김미경은 이 활이 어쩌면 드디어 제 주인을 찾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활! 제게 팔 면 안 됩니까?”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의 모습에 김미경은 온 몸에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 비록 방구석에 처박아 두고 외면한 활이었지만, 모든 활은 그녀에게 자식과도 같았다. 그리고 묵궁은 그녀에게 있어선 아픈 손가락과도 같은 물건이었다. 그런 물건이 제 주인을 만났다.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낸 자식이 제 짝을 찾아 갔다고 생각하니 뭔가 속이 시원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가 이 활의 진짜 주인인지를. “다시, 다시 한 번만 더 쏘아 보시겠어요?” 그러면서 김미경이 과녁판 뒤로 달려가 바위에 박힌 활을 뽑아내려 했다. 하지만 쉽게 빠질 리가 없다. 그것을 강호가 다가오더니 단숨에 뽑아내기 시작한다. 뽑아낸 화살을 받아 든 김미경이 이리저리 상태를 관찰하더니 만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바위를 파고 들었음에도 화살은 문제 삼을 곳이 전혀 없을 정도로 원형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화살촉이 살짝 날이 상하기는 했지만, 바위를 파고든 것에 비하면 손상이라고도 할 수 없는 수준이다. ‘내가 이 묵시를 만드는데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데 겨우 이 정도에 촉이 상하면 안 되지.’ 이윽고 두 번째 사격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강호는 아무런 문제없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열 다섯발을 쏘기 시작하자 상박과 팔뚝 부근의 근육이 당겨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확실히 160파운드짜리 강철묵궁을 연속으로 당기는 것은 강호조차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강호는 끝까지 활을 쏘아내었다. ‘지금은 힘들지만 스텟과 스킬을 올리고 적응하면 돼. 이 활은 무조건 내 거야.“ 그런 생각으로 김미경을 바라보는 강호의 눈이 뜨겁게 타올랐다. 어떻게든 이 활을 소유하겠다는 의지가 눈빛에서 가득 전해오자 김미경이 쓴 웃음을 지었다. 국내의 내로라하던 궁사들이 호기심에 당겨 보았다가 하나같이 실패작이라거나, 어린 계집이 쓸 수도 없는 물건을 만들어 궁사들을 우롱한다는 이야기만 들었었다. 그렇게 모든 사람에게 외면을 받았던 활을 이렇게나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라니. 그것도 이 바닥에는 전혀 알려지지도 않은 사람이고 이름조차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참으로 인생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들고 가세요.” “네?” “세상에 물건의 진정한 주인은 따로 있다고 하더니, 그 아이의 주인이 그쪽인가 보네요. 어차피 그쪽 아니면 방구석에서 쓸쓸하게 시들어갈 아이였는데, 데려가 주신다면 오히려 이쪽이 감사한 일이죠.” “그... 그래도...” 그녀의 말에 강호가 잠시 당황했다. 무려 스텟이 붙어 있는 물건이었고, 히든 옵션이 붙어 있는 물건이다. 한 마디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물건이라는 이야기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활자체의 성능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이런 물건을 그냥 가져갈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김미경이 너무 완고했다. “화살을 추가 제작할 때에는 제대로 값을 받을 테니 그리 아세요.” 그렇게까지 말하는 데 계속해서 값을 치르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렇게 활과 화살을 든 채로 공방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강호의 마음은 마치 백만 대군을 얻은 듯 실로 든든했다. **** 게란트로 넘어가서 그곳에서 며칠을 머물면서 강철묵궁을 손에 익히는 데 주력했다. 묵궁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김미경의 공방에서 연습 사격을 할 때에는 거리가 짧아 활의 위력을 피부로 제대로 실감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게란트로 넘어와 활 수련을 위해 만든 간이 사격장에서 시험 해 본 활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50미터의 거리를 두고 쏜 화살이 3센티 두께의 원목으로 만든 과녁판을 거의 관통하듯이 박혀 들어간다. 리커버 보우로 사격을 할 때는 관통은커녕 가끔씩은 박히지도 못하고 튕겨져 나오곤 하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천양지차의 위력이었다. ‘이런 활이라면 그 시커먼 괴물도 상대할 수 있겠어.“ 강철처럼 단단한 근육으로 무장한 괴물의 모습이 떠오르자 절로 입가에 미소기 피어올랐다. 숙련만 되면 100미터 밖에서의 원거리 저격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고, 어쩌면 이야기 속의 궁사들처럼 200미터 밖에서도 저격이 가능할 지 모른다. 며칠 간 시간 날 때마다 사격 연습을 하자 강철묵시도 날 촉이 끝이 무뎌진 것이 눈에 띄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활대가 휘거나 찌그러지지 않은 이상은 당장은 숫돌에 갈아서 사용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대게 껍질을 가져가서 화살 만드는데 첨가하면 관통력이 지금보다 더 강해지려나?’ 나중에 화살을 다시 제작하게 된다면 한 번 의뢰를 해 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대충 계산을 해보니 지구는 지금 오전 7시 정도 되었다. 여기서 한 숨 푹 자고 넘어가도 8시를 넘기지 않을 것이다. 지구로 넘어가면 본격적으로 라그놀을 상대하기 위한 물품들을 구입하러 돌아다닐 생각이다. 라그놀을 상대하기 위한 최상의 무기 하나를 얻기는 했지만, 활 하나로 안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야생 멧돼지 덫을 알아보았더니 흔히 곰덫 혹은 발목 덫이라고 불리는 종류는 한국에서는 공식적인 제작 및 판매가 불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덫으로 인해 부수적인 피해가 자주 발생하다 보니 아예 금지를 시킨 것인데, 알아보니 시골에서는 암암리에 거래가 되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가끔씩 덫에 걸려 죽은 천연기념 동물이나 부상을 당한 사람들의 뉴스가 전파를 타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강호도 처음에는 조용하게 알아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괜히 불법적인 일이나 불필요한 행동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봐야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 포기했다. 캠프에 설치한 막사에 들어가 한 숨 푹 자고 일어났더니 딱 6시간이 좀 더 지난 시간이다. 주변 정리를 마친 강호가 오늘도 지구에서의 새로운 하루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차원문 앞에 섰다. 이따금씩 자신이 차원문에서 게란트로 넘어가는 것인지, 게란트에서 차원문으로 넘어가는 것인지 아리송할 때가 있다. 그게 무슨 차이냐고 할 지 모르지만, 이것은 일종의 시간의 괴리감에 대한 문제이기도 했고 정체성의 문제이기도 했다. 두 세상에 머무는 시간을 단순 비교해 보아도 차원문을 발견한 이후 지구에서 머무는 시간 보다 게란트에서 머문 시간이 몇 배 이상 된다. 처음에는 크게 의식하지 못했는데 게란트에서 시간을 오래 보낼수록 이쪽의 시간에 점점 익숙해져가는 듯한 기분이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지구로 돌아가자’가 아니라 ‘지구로 넘어가자’라고 생각하고 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게다가 최근 강시연과의 일 이후 지구로 넘어갈 때가 오히려 더 기대되고 흥분되는 듯한 느낌마저 생겨나는 중이었다. 마치 게란트에서는 생존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이라면 지구에서는 성인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성인 게임의 목적은 단순하다. 여자와 호감도를 쌓고 따먹은 다음, 계속해서 호감도를 쌓아 올리며 더 많은 관계를 가지고 더 많은 다양한 체위와 섹스 장면을 해금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히로인을 하나하나 정복해나가는 재미. 그런데 지금 차원문 앞에 선 강호가 그런 느낌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특히, 강시연의 칭호가 은둔의 변태 마스터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다른 이들이 지니고 있을 칭호나 스킬에 대한 궁금증이 피어 올랐다. 오하영은 어떤 칭호를 가지고 있을까. 한다혜와 한가연은 또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을까. 그러다 저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서 생각을 떨쳐버렸다. 한가연과 다혜의 칭호와 스킬을 궁금해 하던 중에 저도 모르게 두 사람과 함께 뒹구는 상상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정신 차려. 두 사람은 모녀야.’ 여성을 동반자로 만든다는 것은 섹스 파트너로 만드는 것을 넘어 발전된 관계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모녀인 두 사람과 동반자가 된다는 것은 아무리 상상이라 할 지라도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 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의식을 하지 않으려 할수록 오히려 다혜와 한가연의 얼굴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고, 두 사람과 함께 동반자가 되어 한 침대에서 같이 뒹구는 모습이 연상된다. ‘미치겠네. 나도 강시연씨한테 물들어 가나.’ 이러다 어쩌면 자신에게도 은둔의 변태 마스터같은 칭호나 업적이 생겨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에이, 설마.’ 설마 하면서도 이 빌어먹을 시스템이라면 왠지 그러고도 남을 것만 같았다. 강호는 애써 자신의 생각을 지우며 차원 문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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