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40. 모녀의 하루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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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연과 다혜가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던 그 시각, 강호는 강시연으로부터 뜬금없는 데이트 신청을 받고는 카페로 나섰다.
강시연의 직업을 생각해보면 이런 식으로 데이트를 신청한다는 것이 평범한 일은 아니었기에 조금은 얼떨떨한 기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카페로 들어서자 테이블에 몇 몇 손님이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창가 쪽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특히 젊은 여성들을 보고 있자니 또다시 마음이 싱숭생숭 해진다.
보지 않으려 해도 사방이 탁 트인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아예 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억지로 시선을 외면해 보아도 어느 샌가 정신을 차려보면 거리를 오가는 여자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차라리 게란트에 있는 게 더 편해.’
위험하기로 따지면 몇 배, 아니 몇 십 배는 더 위험한 게란트가 더 편하게 느껴진다니 참으로 모순적이었지만, 실제로 강호의 심정이 그랬다.
위험하다는 이야기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가장 안전한 캠프에 있을 때조차도 항시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기에 애초에 다른 생각이 끼어 들 여지가 없다.
군대에 있을 때, 먼지 풀풀 날리는 연병장에서 땀 뻘뻘 흘리며 구르다 보면 잡생각이 없어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지구로 넘어 오면 몸은 편한 대신에 들쑥날쑥 피어오르는 성욕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너무나 피곤한 느낌이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눈을 질끈 감으려다 저 만치서 카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두 여성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간다.
심플하고 캐주얼한 옷차림을 한 두 명의 여성.
그렇다고 두 여성의 옷차림이 결코 수수하다거나 보기에 편안한 복장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마치 자매라도 되는 듯 두 여성 모두 심플한 민소매 셔츠에 한 여성은 몸에 착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다른 여성도 몸에 착 달라붙는 핑크빛 면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멀리서 보기에도 몸의 굴곡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어 절로 시선이 간다.
특히, 우측에 선 여성은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의 라인이 완벽하게 대비되어 매우 육감적이면서도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다.
당연히 뭇 남성들의 시선을 절로 잡아 끄는 모습일 수밖에 없어 거리를 오가는 남자들이 하나같이 두 여성을 힐끔거리기에 여념이 없다.
‘죽이네.’
그런 감상을 하며 가까워진 여성의 얼굴을 확인하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오하영?’
청바지 차림을 한 풍만한 가슴과 육감적인 엉덩이에 허벅지 라인을 자랑하고 있는 여성은 바로 오하영이었다. 그 옆에서 핑크빛 바지를 입고서 특유의 시크하면서도 도도한 매력을 뽐내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강시연이다.
‘갑자기 데이트를 하자고 하더니...’
아마도 오하영을 같이 데리고 나오려고 그랬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날 이후로 처음이네.’
시스템으로 인해 신체능력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강호는 문 밖에서 들려오던 달뜬 신음소리를 똑똑하게 들을 수 있었다.
분명하게 성적으로 흥분하고 있었고, 실제로 문 밖에서 잠시이기는 했지만 자위를 하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자 저 만치서 다가오는 오하영의 표정이 왠지 모르게 색기가 흘러넘치는 느낌이다.
‘오늘도 아주 작정하고 입고 나왔네.’
평소 오하영의 SNS에 올라오는 사진들 대부분이 몸매를 가리는 헐렁한 옷차림인 것을 생각해 보면, 정말로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인터넷에는 오하영에 대한 이야기들로 잠시 소란이 인 적이 있었다.
일전에 카페에서 상당히 도발적인 복장을 하고 처음 만났던 날, 누군가에 의해 당시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팬 커뮤니티에 올라가면서 화제가 된 것이다.
당연히 팬 커뮤니티에서는 그녀의 갑작스런 변화에 심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온갖 추측성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오하영이 드디어 자신의 외모에 대해 자각을 하게 되면서 성적인 어필을 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시작으로, 새 영화나 드라마를 준비 중에 있다거나, 혹은 기획사로부터 계약이 얼마 남지 않다 보니 이제 기획사의 간섭에서 벗어나 본 모습을 표출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들까지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유독 사람들의 관심을 끈 글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오하영에게 남자가 생겼을 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아니면, 최소한 호감이 가는 남자가 생겼다는 것만은 확실하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남자에게 관심이 생긴 여자의 대표적인 변화 중의 하나가 바로 옷차림을 비롯한 외모의 변화인데, 오하영의 모습이 그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글은 비추 폭탄 세례를 받고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는데, 진성 팬들의 경우 오하영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 까닭이었다.
연예인과 팬들의 사이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서로 공존하는 관계라고 한다.
연예인이 있기에 팬이 존재할 수 있고, 팬이 있기에 연예인이 존재할 수 있다. 연예인에게 있어 팬은 든든한 지지 기반이라 할 수 있고, 연예인은 그런 팬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며 인기와 몸값을 유지한다.
이런 관계가 오래 지속되면 좋아하는 연예인의 성격이나 사생활 전반에 걸쳐 가족들 이상으로 잘 알게 되기도 하고, 사석에서 만나는 친구 같은 사이로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당연히 오하영의 진성 팬들은 오하영이 사실은 동화 속 왕자와의 사랑을 꿈꾸는 이상주의자라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없다.
게다가 연예계에서 온갖 더러운 소문을 몰고 다니는 강시연과 절친한 사이면서도 그 어떤 스캔들이나 구설수에도 오르지 않은 깨끗한 사생활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오하영에게 남자가 생겨 그를 유혹하기 위해 갑자기 변했다는 이야기는, 진성 팬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발톱에 낀 때만큼이나 일고의 가치가 없는 이야기였다.
다만, 진실을 알고 있는 강호로서는 오하영이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변했다는 이야기를 절대로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가 없었다.
그것도 백마 탄 왕자라니.
[백마 탄 왕자를 꿈꾸던 하영이에게 마침 죽을 위기에 처한 자신을 구해준 당신이 눈앞에 딱 나타난 거예요. 그것도 이십대가 꺾어지며 슬슬 자신이 꿈꾸던 운명적인 사랑에 대해 조금씩 회의적으로 변하기 시작하던 그 순간의 절묘한 타이밍에 말이에요.]
대체 왜 오하영이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며 몇 번이나 되묻던 말에 대한 강시연의 대답이 떠올랐다.
그런 말을 몇 번이나 듣고 보니 이제는 정말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전 운명적인 사랑 같은 건 믿지 않지만, 하영이는 달라요. 평생을 그런 사랑을 꿈꾸어 온 애라구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런 남자는 평생을 가도 만나지 못한다는 말만 들었던 애에요. 그러다 늙어 죽을 때까지 독수공방 한다고요. 그런데 정말로 눈앞에 그런 운명적인 남자가 짠! 하고 등장했네? 그럼 지금 하영이 마음이 어떨 거 같아요? 지금 하영이는 자신조차도 자기 마음을 제대로 모를 걸요? 이게 정말 운명적으로 엮인 사랑의 감정인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초조함이 만들어 낸 집착인지 말이에요. 뭐, 내가 보기엔 그게 그거 같지만요.]
그렇게 말하던 강시연을 보며 그녀가 의외로 자신과 닮은 면이 있다는 것에 조금은 놀랐다.
사실 강호 역시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라거나 운명적인 사랑은 믿지 않는 주의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저 첫눈에 반한다고 해서 사랑이 싹트고 운명적인 감정이 싹튼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강호가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비판적이었다.
흔히 하는 말 중에 사랑의 유효 기간은 길어도 3년이라는 말이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뇌에서 발생하는 도파민 호르몬의 분비로 인한 화학작용의 결과물이라고 하는데, 이 도파민의 유효 기간이 1년에서 3년 사이인 까닭이다.
그래서 감정의 화학작용이 끝나면 그때부터 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지며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신 사랑의 열정이 줄어 든 자리를 채우는 것이 애착 혹은 집착이라고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익숙함 혹은 정이라고 부르는 감정이다. 그래서 부부는 사랑이 아니라 정으로 산다는 말이 사실은 틀린 말이라고 할 수가 없다.
세상 모든 사람이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사이라면 헤어질 이유도 없고, 이혼을 할 이유도 없거니와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울 이유도 없다.
그래서 강호가 생각하는 사랑은 시간과 노력의 산물이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더 멀어지지 않기 위해 매시간 노력을 아끼지 않고 경주하는 것.
‘정작 나는 그런 노력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지만...’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어쩌면 그래서 사랑이라는 감정에 더욱 비판적이고 현실적일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강시연이라는 여자를 안고 있으면서도 오하영을 범하는 상상을 하는 주제에 사랑을 논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시연씨. 어머, 하영씨도 반가워요.”
카페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이 카운터에 있던 서미진과 인사를 나누었다.
제법 카페에 들렸다고 두 사람도 이제 서미진과 꽤 살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특히, 강시연의 경우에는 어느새 언니라고 부르며 친해졌는데, 그 모습에 오하영이 살짝 놀란 얼굴을 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테이블로 다가오는 것을 보며 강호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더럽고 이기적인 자신의 모습을 혐오하던 것이 방금 전이었건만, 테이블로 다가서는 오하영과 강시연의 모습을 확인하기 무섭게 언제 그랬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강호가 멀뚱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모두 외모 하나만큼은 대한민국에서 탑 급에 속한다는 연예인들이다. 그런 두 사람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모습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순간, 두 사람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자신의 앞에 누워 다리를 쩍 벌리고는 자지를 박아달라며 애원하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저런 두 사람을 한 침대에서 같이 따먹을 수 있다면, 더럽고 이기적인 변태가 되어도 좋다. 빌어먹을! 어디 한 번 끝까지 가 보자.’
세상 그 어떤 남자가 이런 여자들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시스템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내면에 숨어 있던 본성인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시스템이 원하는 것이라면 시스템이 원하는 대로 따라준다.
이것이 숨어 있던 본래의 본성이라면 더 이상 거부하지 않겠다.
그런 생각으로 앞에선 두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축하합니다. 새롭게 발현된 욕망의 자아를 탐구하고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위대한 여정의 첫 발을 내딛으셨습니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내가 바로 욕망의 바람돌이!’ 업적을 부여하며, 히든 퀘스트인 ’도전! 초보 하렘 마스터!‘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정말로 빌어먹을 시스템이다.
크크크크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