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41. 자극이 너무 심해 (6)
****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고서 직접 음료들 들고 자리로 돌아온 다혜가 가방에서 파운데이션을 꺼내어 가볍게 얼굴 화장을 수정하고는 입술의 틴트도 새로 바른다.
손바닥 보다 작은 거울을 보며 머리 모양새도 새롭게 단장을 하고는 얼굴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꾸밈새도 확인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을 나이의 젊은 여성들이 보일 법한 행동이다.
화장품을 가방에 정리하고는 고개를 내려 가슴을 빤히 바라보던 다혜가 돌연 양손으로 가슴을 살짝 움켜쥐고는 한껏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남들에 비해 두 배는 더 큰 가슴이다. 그것을 의도적으로 끌어 모으자 가슴골의 계곡이 한층 깊은 그림자를 형성하며 더욱 자극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그게 끝이 아니다.
풍만한 가슴을 가리고 있는 셔츠의 라운드 끝을 살짝 잡아 당겨 가슴골이 좀 더 드러나 보이도록 만들고는 어깨 쪽의 라운드도 좀 더 끌어내려 어깨선과 쇄골이 좀 더 돋보이도록 만들었다.
그제야 만족한 미소를 지은 다혜가 돌연 고개를 돌려 칸막이 뒤쪽을 힐끔거리며 홀을 살폈다.
홀에 가득한 사람들 모두 제 할일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백구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
자기들끼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책을 펴 놓고 독서를 하고 있거나 하릴 없이 폰만 만지작 거리고 있는 사람들까지, 이쪽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게다가 바닥부터 천장까지 설치된 칸막이가 넝쿨 식물로 덮여 있다 보니 가까이 다가와 살피지 않는 이상은 안쪽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도 힘들었다.
사실상 밀폐된 공간이나 다름없다.
다혜가 이상한 행동을 보인 것은 그때부터였다.
자세를 고쳐 앉은 다혜가 강호가 주문한 아이스커피를 집어 들고는 살며시 빨대에 입을 가져다 대더니 한 모금 쭈욱 빨아 마시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더욱 이상한 것은 그 이후였다.
커피를 삼키는 대신 잠시 입 안에 머금고 있던 다혜가 다시 빨대를 통해 컵 안으로 살며시 뱉어낸 것이다. 그러고는 혀를 내밀어 빨대를 핥듯이 빨아대더니 살며시 강호의 자리에 내려 놓았다.
그러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표정으로 강호를 기다렸다.
마침 화장실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강호가 목이 탄다는 듯 커피를 들고 크게 한 모금을 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다혜의 눈빛이 반짝이며 입 꼬리가 살짝 떨렸지만 방금 큰일을 치르고 온 탓에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있는 강호로서는 눈치 챌 수 없었다.
“근데요, 아저씨.”
“왜?”
“아저씨 생일은 언제에요?”
“생일? 갑자기 그건 왜?”
“그냥요. 궁금해서요. 참고로 제 생일은 9월 이예요. 9월 27일.”
굳이 자신의 생일을 언급하는 모습이 속셈이 뻔하다.
“내 생일이 궁금한 게 아니라, 네 생일이 목적이냐?”
“에이, 사소한 건 그냥 넘어가고요. 그래서 생일이 언젠데요?”
“다음 달.”
강호의 대답에 다혜가 반색을 했다.
“다행히 안 지났네요. 정확히 며칠인데요?”
“왜? 선물이라도 해주게?”
“받고 싶은 거라도 있어요?”
강호로서는 그저 농담으로 해 본 말인데 다혜가 정말 해줄 것처럼 나오자 머쓱해졌다.
“아서라. 선물은 무슨. 그리고 보통 생일 선물 같은 건 깜작 선물이 국룰 아니냐?”
“사람 나름이죠 뭐. 그리고 괜히 엉뚱한 선물을 하는 것 보다는 그래도 당사자가 필요한 걸 주는 게 낫잖아요. 정말 뭐 필요한 거 없어요?”
그렇게 말하며 다혜가 슬쩍 상체를 숙이자 테이블 위로 묵직한 가슴이 눌리며 가슴골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화장실에서 빠르게 몇 번 사정을 한 덕에 다행이 들끓어 오르던 성욕은 어느 정도 진정시키는 데 성공한 강호다. 하지만 이것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다혜와 대충 이야기를 마무리 하고 빨리 자리를 뜰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자리로 돌아와 다혜를 다시 보게 되면서 억지로 가라앉혔던 성욕이 슬금슬금 고개를 세우려는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화장실에서 자위를 하면서 몇 번이고 자괴감에 빠져 들었었는데, 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발기해서 화장실에 가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던 강호는 대충 둘러대듯이 말했다.
“됐다. 그리고 나 딱히 생일 같은 거 찾아 먹는 스타일도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라. 생일이 무슨 벼슬도 아니고.”
강호의 말에 다혜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을 했다.
“하기야. 아저씨 평소 하는 거 보면 그런 거 잘 챙기는 스타일은 아닐 것 같긴 하더라구요. 아저씨 여자 친구 사귈 때도 백일이니 뭐니 이런 거 챙기는 스타일 아니죠?”
정곡을 찌르는 말에 강호가 멎쩍은 얼굴을 했다. 과거 여자와 썸을 타거나 여자 친구를 사귈 때에도 그런 부분에서 너무 둔감하다보니 잔소리를 꽤 들은 탓이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아저씨 생일 때 그냥 저랑 데이트해요. 제가 생일 선물로 특별히 데이트 해 줄게요.”
“데... 데이트?”
“네. 저 지금 선심 많이 쓰고 있거든요. 아저씨는 모르겠지만 이래 보여도 제가 인기가 꽤 좋다고요. 이제 미튜브도 하게 되면 정말로 인기 스타가 될지도 몰라요. 그때는 데이트 해 달라고 사정해도 힘들지도 모른다고요.”
“어이구! 제발 인기 스타가 되어서 나 좀 그만 괴롭혀 주라. 그게 내 소원이다.”
짐짓 너스레를 떨듯이 말을 하자 다혜가 눈을 흘겼다.
“그래서 싫어요?”
“넌 왜 이 좋은 주말에 남자친구랑 데이트 할 생각은 안 하고 여기서 나랑 이러고 있는 건데?”
“에이! 남자친구 같은 거 관심 없거든요. 그리고 아저씨가 어때서요? 키 크고 체격도 좋고 얼굴도 자....알 생기지는 않았지만 뭐 봐 줄만은 하고, 듬직하고 싸움도 잘 하잖아요.”
“중간에 조금 기분 나쁜 말이 섞인 것 같은데?”
“착각이에요, 착각! 그래서 할 거예요, 말 거에요.”
다혜의 재촉에 강호가 인상을 찡그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음 달에 자신의 생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당연히 생일 날 무언가를 한다는 생각조차도 없었다.
“너 내가 허락 안 하면 계속 귀찮게 굴 거지?”
“헤헤헤!”
“하아! 그래서 뭘 하고 싶은데?”
“데이트라니까요.”
“자꾸 장난하지 말고.”
“치이! 진짠데. 같이 영화도 보고 같이 저녁도 먹고 하면 그게 데이트지 뭐겠어요? 그리고 뭐 데이트가 꼭 연인들끼리만 하는 건가요. 아빠랑도 데이트 할 수 있는 거고, 오빠랑도 할 수 있는 거고 그런 거지.”
하기야 데이트의 의미가 연인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친구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내가 니 아빠냐? 그리고 나 극장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거 안 좋아한다. 좀이 쑤셔서...”
“아저씨... 진짜 요즘 사람 맞아요? 하는 말이 정말로 4, 50대 아저씨 같아.”
“그러니까 아저씨같은 사람 붙들고 귀찮게 하지 마시고 또래 남자랑 데이트나 하시라니까요.”
“됐고요. 하여간 데이트하기로 약속한 거예요. 그 날은 아저씨가 하자는 대로 다 해줄 테니까 할 일이나 잔뜩 생각해 두세요.”
뭐든지 다 해준다는 말에 강호의 머릿속으로 또 엉뚱한 상상이 떠오른다.
“여... 여자가 그런 소리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제가 그만큼 큰마음 먹고 선심 쓰는 거라니까요. 어디 가서 아저씨가 저같이 예쁘고 어린 애랑 데이트 해 보겠어요? 그러니까 괜히 튕기지 말아요.”
말로는 이길 수가 없다.
‘그보다 얘가 이렇게 적극적인 애였었나.’
처음 만났을 때에는 그저 평범한 여고생일 뿐이었다.
외모나 몸매만 놓고 보면 평범한 여고생과는 거리가 완전히 멀었지만, 어쨌든 마냥 귀여운 여동생 같은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화장이 달라져서인지 아니면 여름이 되면서 옷차림이 달라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쩍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아니, 단순히 어른스러운 분위기가 아니라 묘하게 야하고 색기 있는 느낌을 풍기고 있다.
게다가 행동도 미묘하게 바뀌어 갔다.
과거에도 몇 번 팔짱을 끼고는 했었지만, 최근에는 팔짱을 낄 때마다 꽤 강하게 몸을 밀착해 오는 것이다.
여자가 이런 식으로 다가오면 남자라는 동물은 단순해서 이 여자가 내게 관심이 있나 하고 착각하기 쉽다.
물론, 다혜같은 여자라면 마다할 남자는 없다. 오히려 보통의 남자라면 엎드려 절해도 모자랄 판이다. 문제가 있다면 다혜의 엄마인 한가연이다.
한가연과 한다혜.
강시연으로부터 한가연이 자신에게 이성으로서 관심이 있다는 언질을 받았던 강호다. 하물며 기회가 된다면 한가연도 따먹으라며 허락까지 한 마당이다.
그런 상황에서 딸인 한다혜까지 엮인다는 것은 아무리 강호가 새로운 자아의 정체성에 눈을 뜬 상태라고 해도 쉽게 용납할 수 없는 반사회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남자라는 동물에게는 애초에 원초적인 본능에 의한 성적 판타지가 존재하고 있으며, 특히 반사회적인 성적 판타지에 대한 강한 욕구를 지니고 있다.
이는 강호 역시 마찬가지여서 다혜가 한 명의 여자로 느껴질수록 한가연의 얼굴이 더욱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가연씨와 다혜를... 같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자지가 불끈거리며 반응하기 시작한다.
‘진작 도망쳤어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자리를 벗어나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서툰 강호다 보니 마땅한 구실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강호를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닌 전화벨 소리였다.
얼른 폰을 꺼내어 화면을 보니 오하영이다.
“네, 여보세요?”
[강호씨? 오하영이에요.]
“아, 네.”
[오늘 시간 괜찮으세요?]
“오... 오늘 말입니까?”
갑자기 시간 있냐고 묻는 말에 강호가 살짝 당황했다. 보통 누군가가 이런 식으로 시간 있냐고 묻는다는 것은 만나자는 의미를 내포한 말이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때였다면 시간이 없어도 만들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다혜랑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자극이 이리도 강한데, 어떻게든 자빠뜨릴 생각을 하고 있는 오하영까지 만난다면 그 결과가 어떨지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 그게...”
[왜요? 바쁘세요?]
“그런 건 아닌데 무슨 일로...?”
[그럼 오후에 식사라도 같이 하면 어떨가 해서요.]
“시... 식사요?”
[네. 제가 그때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못한 거 같아서요. 그래서...]
고맙다는 인사라는 말에 강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마도 멧돼지 사건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 일이라면 벌써 제대로 식사대접도 받았고 고맙다는 인사도 몇 차례나 받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인사라니.
강호가 대답이 없자 건너편의 오하영 역시 아무런 말이 없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로 전해오는 그녀의 미약한 숨소리에서 작은 떨림이 느껴지자 강호는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었다.
‘긴장하고 있구나.’
식사 대접이라는 것은 그냥 핑계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미약한 떨림을 내포한 숨소리는 그녀가 지금 상당히 용기를 내고 전화를 걸었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게 했다.
어릴 때 강호도 그런 경험이 있다.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만나자는 말을 꺼내기까지 꽤 큰 용기가 필요했었던 기억.
막상 시간이 없다며 거절당했을 때에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었던 기억.
그렇게 거절을 당하고 창피함을 느끼게 되면 다시 전화를 걸기까지 더 많은 시간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지금 오하영이 어쩌면 그런 용기를 가지고 전화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강호는 자신의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차마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딱히 별다른 약속은 없습니다.”
[그... 그래요? 그럼 오후에 시간 괜찮으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대번에 환해지는 느낌에 강호는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네.”
[그... 그럼 제가 잘 아는 프렌치 레스토랑이 있는데 거기서 만나요. 위치는 문자로 보내줄게요.]
그렇게 오하영과 약속이 정해졌다.
전화를 끊으며 강호는 내심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어 먼저 전화를 해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지금 큰 용기를 내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용기가 향하는 방향의 끝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너무나 궁금해진다.
[하영이를 빨리 따먹어 버리던가요.]
이제 정말로 강시연을 믿고 뻔뻔하게 나가야 할 순간이 찾아 왔다.
그런 생각을 하자 어느새 발기해 버린 자지가 거세게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