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72화
72.
“아무튼, 저희가 사랑할 수 있는지 그걸 검증하는 실험에서... 제가 장모님을 장모님.. 장모님 이렇게 부르고 장모님은 절 현서방 이렇게 부르면... 그건 저에게 너무 불공평한 처사인 것 같습니다.”
“그게 뭐 어떤가? 서로의 호칭을 부르는 건데 말일세...”
“그럼 장모님과 저는 일단 벽이 만들어지는 건 분명합니다. 호칭 하나로 말이죠... 그건 인정하시죠?”
“그건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지금 와서 막 바꿀 수도 없지 않...”
“바꾸면 되죠...”
“지금?”
“예... 31번 만나는 동안만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떠신가요 장모님?”
“만나는 동안만?”
“예... 그리고 만약에 저번에 말한 것과 같이 사회적인 인식을 사랑이 벗어나지 못하겠다고 해서 다시 장모와 사위로 돌아간다면 그때 다시 그렇게 부르면 되지 않겠습니까?”
“음... 그건 그런데 그럼 당장 뭐라고 불러야 하나?”
“일단 동의만 해주시면 됩니다... 호칭 같은 건 가면서 정해도 충분하니 말이죠...”
“알았네. 자네 말은 충분히 알았네... 호칭은 가면서 적절하게 정해 보세...”
난 차를 출발시켰다.
난 가면서 일부러 신나는 음악을 틀었다.
호칭 문제를 바로 꺼내기보다는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그리고 난 일부러 오버해서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내가 생목으로 부를 때는 장모는 막 웃기도 했고, 장모가 아는 부분이 나오면 흥얼거리며 내가 부를 때는 자기도 따라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어디 가는가?”
잠시 노래가 멈추자 그녀가 갑자기 질문했다. 아마도 매우 궁금할 것이다.
난 오디오 소리를 많이 줄이고 대화를 시작했다.
“그건 말해드릴 수가 없죠. 완전 비밀이니까요...”
“뭐 그런 걸 비밀이라고.. 참... 이런 옷을 입히고 도대체 어딜 가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네...”
“장모님은 어디로 갈지 생각하시기보다는 오늘 즐겁게 저랑 보내실 생각만 하시면 됩니다.”
“어디로 가야 알아야 즐겁게 놀 수 있을지 없을지 알 거 아닌가?”
“아니죠... 그냥 마음가짐이죠. 어딜 가던 간에 이 사람과 즐겁게 놀겠다는 다짐? 그런 거만 있으면 되는 거죠.”
“풉... 말도 안 되네... 일단 알겠네... 이상한 속옷도 입었고... 이런 옷도 입었는데 뭐 어딘들 못 가겠는가?”
나는 다시 볼륨을 올리고 다시 노래를 불렀고... 잠시 가만히 있던 장모는 또 노래를 불렀고 이제는 제법 흥이 났는지 어깨를 좌우로 움직이기도 했다.
차가 고속도로를 타기 시작했고, 난 이제 노랫소리를 줄이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장모님 혹시 호칭 생각해 보신 거 있으세요?”
“지금까지 노래부르고 왔는데... 내가 언제 생각했겠나? 이 사람도 참...”
“일단 제 생각은 이름 부르면 어떨까요?”
“이름으로?”
“예”
“음......”
“장모님...최근에 누군가가 장모님 이름을 불러 주신 적 있으세요?”
“...... 없는 거 같네...”
“그러니까요... 그리고 이제 우리는 연인인데... 장모님... 현서방... 이건 좀... 많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거야 그치만...”
“그렇다고 자기야~ 하면 하실 껀가요?”
“자네 미쳤나?”
“그러니까요... 저희가 지금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최대가 그 정도일 것 같습니다.”
“...... 그럴 것 같기도 하네...”
“그럼 불러볼까요? 연희씨?”
“아이고... 그게 뭔가?”
“빨리 불러 보세요...”
“하아... 지,지섭씨?”
“오오 좋은데요?”
“휴... 정말 사위한테 이래도 되나 싶네...”
“장모님... 그건 아니죠... 우리 위치를 정확하게 말하고 싶네요...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건 확실한 거예요... 그것부터 부정하시면 안 되죠... 아닌가요?”
“아니... 그게...”
“연희씨는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이 불쌍해서 자기 자궁에 정액을 받아 주는 그런 사람인가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그렇게 이상한 여자로 보이나?”
“그렇지 않으니 하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은 여자인데... 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건 부정하세요? 말이 안 되잖아요.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랑하지 않아도 섹스할 수 있다는 건데... 방금 그건 발끈 하셨잖아요...아닌가요?”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휴... 자네한테는 말로 못 당하겠네...”
“자네? 지금 자네라고 하셨어요? 연희씨?”
“아... 난 못하네... 진짜 못할 거 같아...”
“항상 처음이 힘들 뿐이에요... 노력해서 처음을 극복해 보세요... 우리 관계도 그렇잖아요... 솔직하게 말해 보세요... 처음 섹스할 때보다 나중이 좀 더 쉽지 않았어요?”
“......” 그녀는 섹스라는 말에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였다.
“아... 이러면 진짜 곤란한데... 겨우 31번 만나는데... 마음부터 솔직하지 않으면 그런 거 증명하다가 만남이 끝날 것 같네요... 휴...”
“아... 휴... ”
“장모님 이렇게 하시죠... 31번 동안은 그냥 미쳐보죠. 그냥 속에 있는 거 다 보여주고 솔직하게 만나 보죠... 그리고 장모님이 이 실험이 끝나고 난 다음에 제가 싫다고 하시면... 제가 31번 동안 있었던 일은 모두 잊을게요. 어떠세요?”
“처음부터 그런 거 아니었나?”
“처음부터 그랬죠... 그런데 장모님이 안 그러시니 제가 답답해서 그런 거죠... 전 생각을 굳게 잡으시라고 하루라는 시간도 드렸어요... 그 시간이 부족하셨어요?”
“......”
“부족했다면 실험은 다음에 하시죠... 차를 돌려서 일단 집으로 가죠.. 그리고 생각이 완전히 정리되.”
“아니 아닐세... 생각 정리는 완전히 했네... 그리고 나름대로 다짐도 했고... 나도 31번은 후회없이 만나야겠다고 생각도 했네... 그런데... 아직 익숙지 않아서...” 그녀는 내 말을 끊고서 말했다.
“익숙하다가 31번 끝나겠어요... 그걸 바라신 거예요?”
“......”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처럼 이렇게 마음이 급할 때는 노력해 보겠다는 말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거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 그녀도 말은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호칭부터 제 맘대로 정하겠습니다. 장모님은 장모님 마음대로 하세요... 전 장모님 이름 부르겠습니다. 씨자도 빼구요.”
“... 마음대로 하게...” 그녀는 체념한 듯 말했다.
“아직 제 말 안끝났습니다...”
“아... 미안 하네.”
“그리고 이 대화가 끝나고 노래 한곡이 끝나면 전 장모님에게 반말할 겁니다. 제 맘대로 할 거고... 혹시 장모님이 그게 싫으시면 그냥 집에 가셔도 됩니다. 아... 혹시 사진 때문에 기분이 나빠도 못 가시는 거라면 장모님 차로 모셔다드리면서 지워드리겠습니다.”
“......”
“전 그냥 제 페이스대로 가겠습니다. 장모님은 장모님 페이스대로 가세요. 결국 장모님이 못 따라오신 채 실험이 끝나도 어쩔 수 없죠... 적어도 전 최선을 다 했으니 아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
“장모님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평생 후회하면서 사실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름 한 번 불러 보지 못한 거... 자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못한 거... 전부 말이죠.”
말하면서 계속 장모를 돌아봐도 장모는 고개만 숙인 채 아무 말도 없었다.
여기서 물러서서 다시 존중해 줘봤자. 이후에 장모는 다시 우리 관계가 진행된 것을 처음으로 되돌릴 것이 분명했다.
그럴 거면 여기서 큰 결단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 선에서는 다시 뒤로 돌아갈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알았네... 자네 말대로 하게...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겠네... 그런데 강요는 안 했으면 좋겠네...”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장모님은 장모님이 알아서 하세요...”
“알았네...”
난 노래를 틀었다.
나는 장모가 생각할 시간이 꽤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에 한 곡에 노래를 끊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 곡이 끝나자마자 내가 갑자기 반말하는 것도...
음... 내가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내 자신도 거부감이 들었다.
난 이 위기를 돌파할 방법을 찾기 전까지는 노래를 틀어놔야 했다.
그렇게 노래는 흘러 갔고 시간도 같이 흘러 갔다.
차 안에서 노랫소리만이 흘러가는 침묵이 계속되었다. 난 반전의 시간이 필요했다.
네비에서 휴게소가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다.
머릿속에서 섬광과 같은 생각이 지나갔다.
그래! 이거다 싶었다...
그녀가 목적지를 알 수 없도록 처음부터 네비를 찍지 말고 가려다가 혹시나 잘못 갈수도 있어서 그 근처의 주소만 찍고 가고 있었는데... 네비를 찍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휴게소가 보이자 차를 휴게소 방향으로 몰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휴게소는 차가 별로 없이 한산했다.
정말 좋은 기회다 싶다.
난 차를 대고 먼저 내려서 그녀의 문을 열었다. 그러곤 말했다.
“연희야 내려... 여기서 좀 쉬었다 가자...”
“풉....”
그녀가 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잡아주자 내 얼굴을 보고 빵 터졌다.
아... 이렇게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으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휴게소가 어쩌면 우리의 관계를 정립하는 곳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어색함을 감추고자 화장실로 바로 갔고... 난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한 대 물었다.
그렇게 담배가 다 탈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그녀가 화장실에서 나와 나에게로 다가왔다.
“지섭씨는 화장실 안 가도 돼?”
헉... 내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나의 놀라는 표정을 보고선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뒤돌아가 걸어갔다.
두 가지가 정말 놀랐다.
한 가지는 날 지섭씨라고 부른 것이고,
두 번째는 장모가 나에게 쓰는 특유의 말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차를 타고 오는 동안 장모도 엄청나게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고, 뭔가를 결심했지만 나처럼 타이밍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차 안에서 갑자기 지섭씨~ 이럴 수는 없었던 분위기였을 것이다.
그렇게 휴게소에 도착해서 내가 그렇게 말하니 자신도 바뀌려고 노력한 것 같았다.
오오... 오늘은 정말 뭔가 잘 풀리는 날인 것 같았다.
난 그녀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녀는 편의점에서 물과 음료를 산 뒤 커피 파는 곳에서 섰다.
“자네는 뭐 마실텐가. 아니 아니.. 지섭씨는 뭐 마실래?”
“풉....”
난 완전 빵터졌다...
“제발 웃지 말게나... 나 정말 용기 내는 거란 말일세... 정말 쪽 팔리고 남사스러워서 죽을 것 같단 말일세... 그리니.. 제발...”
“연희는 뭐 마실 거야?” 난 그녀의 말을 끊고 그녀를 커피 가게의 메뉴판 쪽으로 몸을 돌리고 내가 뒤에서 안으며 물었다.
“휴... 난 라떼 마셨으면 좋을 것 같네... 아니... 마시고 싶어.”
“웁... 난 계속 운전해야 해서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로...”
난 터지는 웃음을 겨우 참고 말을 이어갔다. 그녀는 뒤로 돌아보면서 째려봤다.
-저기요~ 여기 라떼와 아메리카노 한 잔씩요.. 뜨거운 걸로요.
우리는 커피를 받아 들고 벤츠에 앉았다.
“나 엄청 용기낼 건데... 당신이 좀 부담가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가 나도 모르게 예전 말투나 단어가 나와도 이해해 주게.. 아니... 주면 좋겠어.”
“응 알았어...”
“나도 31번은 정말 후회 없이 만나볼 거야... 그래서 나중에 내가 그 압박감을 결국 이기지 못해서 당신을 포기하더라도 이때를 생각하면 적어도 후회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게 말일세...앗. 아이 씨..참...휴... 후회 없다고 느끼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