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93화
93.
“여기서 좀 쉬기로 하죠.”
“헉헉헉... 예. 진짜 좀 쉬어요. 너무 힘드네요.”
“배는 안 고파요?”
“아... 힘들어서 배가 고픈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대단하네요. 지금 몇 시간째 걷고 있는데...”
“지섭씨가 제가 말한 뒤로 천천히 걸어 줘서 그래도 따라갈 수 있었어요.”
“음... 전 최선을 다해 빨리 걸은 건데... 좀 민망한데요?”
“풉... 힘든데 웃기지 말아요.”
“배 안 고파도 여기서 뭐 좀 먹고 가죠.”
“예.”
뭐... 먹을 건 정해져 있었다.
열량을 폭발시키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기운이 회복이 되고 피로가 조금은 가신다.
지금은 짐을 풀고 정식적으로 먹을 순 없었다.
그래서 간단하지만 열량을 폭발시키는 음식,
즉, 에너지바와 초콜릿 과자 등을 또 먹었다.
“뭐 맛있는 거 주는 줄 알았는데, 또 과자네요.”
“음... 싫으면 먹지 말고, 돌아가도 돼요.”
“지섭씻!”
“큽...”
“아... 놀리지 마요. 조금 전까지 엄청 슬펐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데?”
“엄청 슬픈데, 몸은 힘들고...”
“풉... 뭔가 맞지 않은데요?”
“그러니까요. 너무 이상했어요. 머릿속은 복잡한데... 몸은 엄청 힘들고... 이건 뭐. 머릿속으로 힘들 틈이 없었어요.”
“아... 큭큭큭 생각만 해도 웃기네요.”
“아... 내가 말해 놓고도 웃기네요.”
“저도 그랬거든요.”
“아...”
“제가 힘든 상황인 거 아시죠? 그래서 말을 조심하는 거구요?”
“아... 예...”
“고마워요.... 자 이제 갈까요?”
“예.”
“그런데... 이제부터는 잘 곳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날이 어두워지고 있어서요. 산은 어두워지면 정말 급하게 어두워지거든요. 그리고 아무래도 대피소까지는 무리일 듯하네요.”
“잘 곳이면?”
“음... 동굴 같은 곳은 없을 거고... 있어도 위험할 수 있으니... 음... 움푹 들어간 곳이나, 뭐 그런 곳. 흔히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하면 될까요?”
“대충 이해가 돼요. 텐트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곳 말이죠?”
“예. 그렇죠.”
“알겠어요. 저도 가면서 찾아볼게요.”
“일단 옆에 물이 흐르고 있으니, 지류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그런 곳이 나오지 않을까 싶기는 하네요.”
“알았어요. 두 눈 크게 뜨고 잘 찾아볼게요.”
난 생각을 멈추고 이제는 현실로 돌아와서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주변을 살폈다.
역시나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금방 어둑해졌다.
이대로 강행하는 건 위험하다.
길이 확실하게 나 있어도 잘못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그런데 지금, 이 길은 밝을 때야 헛갈리지 않을 정도이니, 밤은 위험할 수 있었다.
“앗! 저기 어때요?”
난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비 등으로 지류의 양이 늘어났을 때 땅을 파먹고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움푹한 곳이 있었다.
“오오. 좋은데요? 일단 저기로 가죠.”
“옙!”
그녀는 한 건 했다는 듯이 반갑게 대답했다.
실제로 보니 괜찮았지만 매우 좁았다.
그래도 이런 산속에서, 이런 시간에, 이런 곳을 찾았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일단 불을 피워야겠어요.”
“불 피우는 불법아닌가요?”
“당연! 불법이죠.”
“아... 그렇군요. 그럼 안피우고 그냥 쉬면...”
“아.. 우리가 추워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여기서 혹시나 어떤 동물이 나올지도 몰라서 저도 좀 겁이 나서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보통 동물들은 불을 보면 도망가니깐 꼭 피워야 할 것 같아요.”
“아하~”
“음... 아마 이 산을 태우지만 않으면 교도소는 안갈 거예요. 과태료 정도?”
“아... 그건 제가 낼게요. 부담가지지 마세요.”
“옙. 그럼, 부담 없이 크게 피우겠습니다.”
“풉~ 뭐야~”
“혹시나 사람들에게 걸리면 그 사람들 도움받아서 내려가면 되죠. 아마 조난 당했다고 하면 정상참작 해주지 않을까요?”
“만약 사람들이 오면 제가 열심히 울어 볼게요. 길을 잃어서 두려워서 우는 것처럼.”
“오케이. 그럼 역할 분담 끝났네요. 당신은 울고, 난 해명하고, 내려가서는 당신은 과태료 내고...”
“풉~”
난 정말 야생 동물이 겁이 나서 불을 피우려고 했다.
지금 날씨가 많이 춥지도 않고, 우리는 침낭을 가져 왔기 때문에 잠시 눈을 붙이는 것은 문제 없었다.
하지만 동물이 갑자기 오기라도 하면...
어휴...
난 주변의 나뭇가지를 가져와 그 장소 앞에서 작은 불을 피웠다.
애초부터 모닥불 수준의 불을 피울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그것도 불이라고 제법 따뜻한 온기가 나왔다.
난 혹시 몰라 불을 붙여서 휘두르기 위해서 긴 나무를 하나 준비해서 천을 조금 감았다.
난 준비한 나무는 불 옆에 두고서, 난 내 배낭과 그녀의 배낭에서 필요한 것을 꺼냈다.
그리고 익숙한 솜씨로 반합과 버너를 꺼냈다.
버너에 가스를 연결하고 반합에 물을 채우고는 올려놓은 다음,
바로 바닥에 깔개를 깐 다음 그 위로 침낭을 올렸다.
우리나라 결혼한 여성들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매일 소파에서 뒹굴어 도대체 뭘 제대로 할지 의심이 드는 남편들의 대부분은,
야지에서 이 정도는 거뜬히 할 줄 아는 남자들이다.
아니 더 열악한 조건에서도 별 어려움 없이 며칠을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당신은 그런 남자들과 사는 것이다.
대부분 총을 쏠 줄 알며, 야지에 던져놔도 별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전 세계에서 몇 퍼센트나 될 것 같은가?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남자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총을 쏘든, 야영을 하든 그걸 하라고 하면 엄청 좋아할지도 모른다.
거리에서 지나가면서 마주치는 남자들의 대부분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우리나라는 그렇게 무서운 곳이다.
다음 물이 끓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비상식량에 물을 부어 놓고는 반합에 다시 물을 부어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이번 쇼핑 중 캠핑용품점에서 군에서 먹는 전투식량과 비슷한 제품들이 워낙 많이 나와
이렇게 종주 등하면서 간편하게 먹을 것들을 구입할 수 있었고,
난 총 세 끼 분량의 음식을 이것으로 준비했다.
이렇게 준비하면 밥 종류를 먹을 수 있으면서도, 동결건조된 식품이라 짐의 무게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이 끓는 것을 보고 난 가루를 넣었다.
이것 역시나 군 전투식량과 비슷한 것으로 동결건조한 거라 끓는 물만 넣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국이었다.
물론 수준은 라면 스프 정도일지도 모르나, 추워진 날씨에 지친 몸을 떨어야 하는 우리로서는 몸을 녹여줄 진수성찬이 따로 없을 것이다.
“우와. 아까 꺼낼 때는 먹을 수 있는 건가 의심했는데, 먹을 수는 있겠는데요?”
“오오. 말씀이 너무 지나치신데요? 아마 먹으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난 국을 철제 컵에 따라서 그녀에게 주면서 말했다.
“후루룩.. 하아~ 와. 정말 맛있네요.”
“그렇죠. 아마 집에서 먹으라고 하면 절대 안 먹겠지만, 이런 곳에서는 이 뜨끈한 국물이 얼마나 귀중한지 모르죠.”
“그래요. 너무 좋아요. 마시다 보니 몸도 풀리는 거 같아요.”
그녀는 벌써 한 컵을 다 마시고 나에게 더 달라고 컵을 내밀면서 말했다.
난 그녀에게 국을 리필을 해주고서 밥을 먹었다.
역시 기술이 발전하면 무조건 좋아진다는 내 지론이 틀림없었다.
예전에 먹던 것과는 엄청나게 수준이 높아진 듯했다.
비록 무슨 화학 조미료를 더 써서 더 뛰어난 맛을 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이 시점에서 이러한 밥과 국은 정말 최고의 한 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우리는 정말 맛있게 밥을 먹었고, 난 다시 물을 끓였다.
그리고 국을 먹었던 컵을 대충 물로 행군 뒤 그곳에 믹스 커피를 탔다.
그리고 그 잔을 그녀에게 건넸다.
“커피도 준비하셨어요? 오오...”
“뭐. 이런 곳에서는 기본이죠. 믹스커피... 큭큭큭”
“그런데 제가 저번에 말해서 그런지 진짜 비박을 해 버렸네요.”
“큽. 그러게요. 말이 완전히 씨가 되었네요. 뭐 그래도 제수씨와 좋은 추억이 되는 거 같아서 전 좋은 것 같습니다.”
“저도 이런 거 처음이라 너무 좋은데요. 혼자 이런 상황이면 너무 무서울 것 같기도하고, 불편할 것 같기도 한데... 지섭씨랑 있으니 좋네요. 지섭씨가 다해주고...”
“아... 내려가서 돈 받을 겁니다. 많이요.”
“풉~ 커피 먹다가 뿜었잖아요!”
“음... 진짠데...”
“알았어요. 줄게요. 돈. 호호홋.”
“어떻게 생각의 정리는 잘되고 있어요?”
“아직 분노 단계예요. 분노 중...”
“저도 그런데...”
“아내분 생각하시는 거죠?”
“..... 그렇죠. 뭐.”
“힘드시겠네요.”
“......”
“아... 이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죠. 개인사는 개인이 걱정하는 걸로~”
“좋죠. 이제 자요. 내일 정말 일찍 출발할 예정이라.”
“아. 알겠어요. 그런데 지섭씨는요?”
“저는 그래도 눈을 뜨고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아... 괜찮겠어요?”
“예. 음... 생각도 좀 하다가 조금 졸기도 하다가 그럴 예정이에요.”
“제가 몇 시간 자고 나서 바꿔 드릴게요. 오늘 운전한다고 쉬지도 못했는데...”
“예. 알겠어요. 일단 자요. 제가 피곤하면 교대해 달라고 깨울게요.”
“예.”
그녀는 내 대답을 듣고는 자기 침낭에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난 불 앞에서 일단 등산화를 벗고 양말을 벗은 뒤 내 침낭을 가져와 몸에 두르고 나서 벽에 기대었다.
오늘 하루 종일 고생을 한 것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이렇게만 있는데도 너무나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지섭씨...”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던 중에 지혜 씨가 나지막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완전히 잠에서 깼다.
“예? 무슨 일 있어요?”
“그냥... 그냥 조금 주무세요.”
“그래도 혹시나 동물이라도...”
“제가 깨어 있을게요.”
“휴... 알겠어요. 저도 많이 피곤하네요.”
난 그녀가 부르는 소리에 잠에선 깨었지만, 그래도 몽롱한 상태에서,
그녀가 깨어 있겠다는 말에 잠을 자러 침낭을 펴려고 했다.
“그냥 여기로 들어오세요. 추운데 따로 자지 말아요.”
그녀는 자기 침낭을 열고 나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난 비몽사몽간에 홀린 듯이 그녀의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잠깐, 아주 잠깐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도 들었지만,
추워서 그런 거라고...
추워서 그런 거라고 스스로에게 핑계를 대며 그녀의 침낭으로 서서히 들어갔다.
이렇게 핑계를 대기 시작하니, 내 행동에 대수로울 것도 없었다...
어제 이 여자에게서 목구멍 깊이 오럴도 받은 판국에,
이제 와서 도덕성 따위를 생각하는 것이 위선적이라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난 머릿속에 남아 있던 양심 따위는 작게 피워 오르고 있는 모닥불에 나무와 함께 던져 버리고는 그녀의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땀 냄새난다고 흉보지 마세요.”
“킁킁~”
“아이~ 하지 마요. 오늘 정말 땀 많이 흘렸단 말이에요.”
“좋네요. 제수씨는 땀이 흘렸는데도 좋은 냄새가 나네요.”
“큽... 말도 안 되는데, 듣기는 좋네요. 아무튼 추우니까 절 꼭 안고 주무세요. 제가 여기서 깨어 있을게요. 그리고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바로 깨울게요.”
“예... 불이 약해져도 깨워주세요.”
“예. 알겠어요.”
난 내 침낭을 우리가 들어가 있는 침낭 위로 덮고는 그녀를 뒤에서 안은 채로 침낭의 자크를 올렸다.
아무리 요즘 침낭 안이 여유 있다고 해도 이렇게 두 명이 있기에는 비좁았기에 우리 몸은 딱 붙을 수밖에 없었다.
난 한 팔로는 그녀의 목에 넣었고, 나머지 팔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방황하자 그녀가 내 팔을 잡고 자기 겨드랑이를 지나 가슴 부위에 놓게 했다.
그녀의 몸에서는 땀 냄새가 섞인 그녀의 살 내음이 났고,
그녀의 살 내음을 맡은 내 아랫도리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분위기 파악을 전혀 하지 못한 채 또 껄떡대고 있었다.
난 이번도 저번과 마찬가지로 팔로는 그녀를 안고 있었지만,
엉덩이는 뒤로 빼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문제는... 침낭 안이라서 그리 뒤로 많이 뺄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찌이이익~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침낭의 자크를 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