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미쳐버린 딸쟁이와 도망
성인 남성의 세배 정도 되는 크기에 더불어 발조차 제대로 디딜 곳 없는 콘크리트 담장을 잠시 올려다보던 나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곧장 몸을 움직여 담장을 오르기 시작했다.
“(존나게 크게도 만들어놨네!)”
“대, 대단하세요 그, 그렇게 높은 담장을 간단하게 뛰어넘으시다니...!”
옛날 방에 틀어박혀있었던 신체상태 그대로였다면 터무니없다고 생각할만한 도전이었지만, 어찌어찌 몇 번 미끄러진 끝에 정상에 도달하자 내가 이렇게까지 신체 능력이 높은 줄 몰랐다는 듯 등 뒤에서 여성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야 너 정신 사나우니까 알짱거리지 말고 가서 꼬맹이랑 대기하고 있어, 쯧 그리고 좀비들이 사라지고 5분에서 10분이다 잘 기억해해 괜히 물려서 나 원망하면서 죽지 말고 잠자리가 사나워 지니까”
“네, 네 기억할게요!! 꼭, 무사히 돌아와주세요”
담장 꼭대기에 걸터앉은 나는 우선 걸리적거리는 여성에게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한 후 아래를 내려다보며 상황을 살피며 머릿속으로 움직일 동선을 그려나갔다.
“(우선 좀비가 적은 쪽으로 뛰어내려 앞쪽 좀비들이 있는 곳으로 한번 갔다가 어그로를 끌고 옆에 담장을 이용해서 뒤로 넘어간뒤 으음... 저쪽 골목길로 한 바퀴 돌아서 오토바이를 타고 탈출.... 어떻게든 되려나?)”
아래쪽 담장의 크기는 그렇게 높지는 않았지만, 좀비들의 손길을 피할 수는 있어보였고 담장 위에서 중심만 잘잡아서 입구 쪽까지만 간다면 정말 가능성이 있어보이는 생각이었다.
“...오케이 그러면 어디로 내려가야 가장 안전하려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뒷문은 정문 쪽만큼 좀비들 수백 마리가 몰려있지는 않았지만, 수십 마리 좀비들이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채 모여들어 나를 뜯어먹기 위해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푸하하 이거 인기스타란거지?”
“그어어...”
좀비들의 그런 모습은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괴기해 보였고 순간적인 내가 좀비들에게 뜯어먹히는 망상이 떠올랐다. 울부짖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그저 그런 시체로 끝나는 나의 인생...
“시체라 원래부터 시체같은 사람이니 상관없나?! 좋아 좋다고 만약 붙잡힌다면 맨손으로 싸운다면 몇 마리나 죽일 수 있을지 시험해볼거야!“
기대감 때문인지 공포심 때문인지 세차게 뛰기 시작한 심장박동 소리와 함께 나는 좀비들이 그나마 없는 공간을 향해 단숨에 뛰어내렸다. 바이러스에 의해 강화되어있는 내 몸은 꽤 높은 거리위에서의 낙하였음에도 충격을 완전히 완화해주었지만 아무런 고통 없이 착지에 성공했다는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머리가 반쯤 깨져있는 좀비 무리가 나를 행해 달려들었다.
“그어어...”
“전부 따라와라 시체 새끼들아! 운이 좋으면 이 최고급 육질을 먹을수 있을지 모르잖냐?!”
내 팔을 물어뜯으려던 좀비 한 마리를 발로 걷어찬 넘어뜨린 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생각했던 그대로 도서관 앞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뒤쪽에 포진해있던 좀비 중 우선 달릴 수 있는 무리가 그런 나를 뒤쫓기 시작했고 뒤이어 움직임이 느린 녀석들 또한 몸을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순간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여기까지는 생각했던 대로인가... 여기라고 병신같은 새끼들아, 따라오라니까?!”
내가 희생했음에도 잘 풀리지 않았던... 꼬맹이를 잃었을 때처럼,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철문이 있던 앞문 쪽에 도착하자, 이미 내 소리를 듣고 몰려오는 좀비들이 생각했던것보다 일찍 이를 들이밀며 나를 반겨주었다.
“키에에엑!!”
[퍼억!]
“비켜 비켜!”
[뻥!]
“크르르르...”
“(이정도면 충분하게 시선이 끌린모양이네)”
앞과 뒤가 좀비에 둘러싸여 순간적으로 주춤하긴 했지만, 재빠르게 옆에 있던 담장 위로 몸을 피했다. 간발의 차이로 나를 놓친 좀비들은 화가 무척이나 많이 났는지 그르렁거는 소리를 내면서 나를 어떻게든 잡기 위해 손을 휘적거렸다.
“푸하하하 병신같은 새끼들 그거하나 제대로 못잡냐?!”
이대로 담장 너머 도망가 혼자 살아남는게 어떨까? 확실하게 나는 간단하게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변종도 없고 저런 짐덩이들 방해만 될뿐이야
긴장이 살짝 풀어지자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이 머릿속에 울리는 것과 동시에 2층 창가에서 나를 걱정스럽게 보고있는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입에 재갈이 물려있는 꼬맹이를 품 안에 꼭 끌어안는 여성은 내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곧바로 꼬맹이와 함께 밖으로 뛰어내릴 것처럼 위태롭게만 보여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미친년 내가 혼자 도망치려 하거나 잡아먹히면 진짜 뛰어내릴 작정이잖아 저거... 빌어처먹을 야 좀비 새끼들아 같이 산책이라도 한번 해야겠어!!”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앞을 향해 걷는 나를 필사적으로 뒤따라오는 좀비들, 만약 실수해서 한 걸음이라도 잘못 내딛는다면 그대로 망상에서 처럼 좀비들에게 벼까지 전부 물어뜯길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나는 필사적으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떨지 마 할 수밖에 없는거잖아! 살아남아야지 복수해야지 제발...떨지마!”
목숨을 걸고서 좀비들 사이를 걷고 있다는 공포심과 그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무력감이 나를 조금씩 집어삼켜 나갔다. 지금 환각과 환청이라도 본다면 나는 아마 이성을 잃고 혼자 떠들다 발을 헛디뎌 떨어지겠지.
“(...미치겠네!)”
생각해보면 그날, 꼬맹이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려 했던 그날도 그랬다. 밑에서 미친 듯이 쫓아오던 좀비들과 문을 열려고 하는 좀비들 그때는 아직 체력도 정신력도 모자랐기에 무력감과 공포심에 휩싸여 꼬맹이를 배신자 새끼들에게 맡겨버리는 최악의 선택을 했었다.
“(생각하지 마, 생각하지 말라고 지금은 생각하면 안되는거야)”
언제나 그랬다. 믿었던 야구부원들에게 버림받았을 때도, 부모님에게 실망하게 하고 버려졌을 때도, 배신자들을 구해주기 전에도... 그때도 그날도 그시간에도 전부 전부
“키에에에엑”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마치 그런 나를 비웃듯이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머리의 피가 쏠려 이대로 여기서 뛰어내려 나를 비웃는 모든 녀석을 죽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히, 힘내세요!!!”
변종을 처음 죽였던 날처럼 네거티브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 돌발행동을 하기 직전, 돌연 여성의 목소리가 나의 귓가에 날아와 모든 상념을 부숴주었다. 정말 순수하게 나를 응원하는 소리를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더라?
“... 소리치지 말고 들어가 있어 멍청한 년아!”
내가 여성의 더욱더 커다랗게 소리를 지르며 분산되려던 시선을 다시 모은 뒤 고개를 돌려 여성을 올려다보자, 여성은 남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멍청한 건지 순수한 건지...)”
그생각을 한 순간 나는 깨닫고 말았다. 저런 점이 꼬맹이와 닮아있었다고 누군가를 응원하고 누군가를 끌어줄 수 있는 작지만 강렬한 태양과도 같은 점이 닯아있다고
“하하, 하하하하 야 어렵게 만들지 말고 닥치고 보고 있어 망할 걸레년아!!! 왕년 4번 타자의 저력을 보여주마”
여성의 돌발행동에 놀랐기 때문일까 나를 감싸고 있던 역겨운 감각도 무력감도 순식간에 사라진 것 같은 느낌에 천천히 심호흡해 숨을 고른 나는 단숨에 난간 끝을 향해 달려 나갔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완벽한 서커스와도 같아 보이는 나의 움직임에 귓가에서 여성의 환호성이 들린 것 같아 괜스레 가슴이 뛰었다.
“하하하 꼬맹이들이 보고있으니 멋진 모습한번 보여줘야 되는거네?..야 시체 새끼들아 산책하러 가자고! 여기다 여기!!”
내 뒤를 쫓아오는 좀비들의 약을 올리듯 정문 앞에 멋지게 착지한 후 가운뎃손가락을 올려 보였다.
“키에에엑!”
정말 뜻을 이해한것인지 내 손놀림에 발작하듯 소리를 질러대며 내 뒤를 바짝 따라오는 좀비들의 모습에 만약 이상황을 지켜보는 변종이 있다면 나를 어떻게 해서든 붙잡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의 지성 나를 잡아 먹기위한 전략, 아직까지는 크게 위헙적이진 않지만 실제로 본적도없는 변종이 여기서 더욱더 진화를 한다면 나는 살아남을수 있을까?
“아아 됐어 가자고 가자!”
잠시 고민하며 최대한 좀비들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리던 나는 좀비가 나를 잡기 직전 전력으로 내달려 봐두었던 골목길로 향했다. 전기가 끊기기전 화재가 있었는지 그을음이 잔뜩 있는 건물, 쓰러진 가로등 모든 풍경이 순식간에 나를 스쳐 지나갔다.
“잘 따라오지 않으면 나를 잡아 먹을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말거라고?! 나이를 먹고 싶지 않은 거냐?”
몸의 컨디션은 단연코 최상의 상태, 이대로라면 충분히 좀비들을 따돌리고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