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미쳐버린 딸쟁이와 학교(11)
“지금까지 죽인 녀석들도 없던 걸로 해줄게 원하는 것 바라는 거 뭐든지 들어줄 수 있어”
나에게 강렬한 열기를 뿜어내며 설득하려는 녀석을 보자 전에 대머리가 말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새끼는 내가 원하는 거 어느 것 하나 들어줄 수 없는 위험한 녀석이라고 자신만이 나를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라고.
“...조건만 맞는다면 들어가지 못할 것도 없는데 들어줄 생각은 있냐?”
나는 그 말이 진실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 설마 지금 배신하는 거냐?! 장난치지 마!”
“작은형님 작은형님 해주니까 아주 눈에 배는 게 없지?! 씨발 큰형님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이런 빌어먹을 새끼가!”
진짜 적에게 넘어갈듯한 내 반응이 예상 밖이었는지 뒤편에 몰려있던 노예들이 악의에 찬 목소리로 윽박질러대기 시작했다. 대머리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또 자신들이 나를 이용하기 위해 무슨 거짓말을 했는지도 전부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저런 말들을 스스럼없이 내뱉을 수 있는 걸까?
“전부 입 닫아”
노예들의 발언에 내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지는 것을 보자 내 앞에 있던 대장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뒤편에 있던 인원들에게 손짓했다.
“...”
“씨발!! 큰형님이랑 결판이 날 때까지 우리는 건드리지 않기로 했잖아 이봐!”
“자, 잠깐 조용히 할게! 조용히 한다고!!”
단 한 번의 손짓, 그 손짓에 맞춰 노예들을 둘러싼 채 우리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인원들이 마치 잘 훈련된 군인들이 제식동작을 하는 것처럼 노예들을 향해 일제히 공격을 감행했다.
노예들의 고통에 찬 비명과 절규 어린 외침이 잠시 동안 운동장에 처절하게 울려 퍼졌고, 그 소리는 대장이 다시 손짓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으음 이 친구가 내 밑으로 들어온다고 한다면 너희는 이제 필요 없어, 아니 이 친구가 기분 나빠하니 죽어주는 게 훨씬 도움이 되는 거지, 자 그럼 친구 속이 풀린 것 같으니 원하는 게 뭔지 말해봐”
노예들이 힘없이 쓰러져가는 장면을 재미있는 만화영화라도 되는 듯 낄낄거리면서 지켜보던 대장은 악마와도 같은 모습으로 방금보다 나에게 더욱더 가까이 다가와 어디서 꺼내는지 모를 과자 한 봉인지를 뜯어 나에게 건넸다.
“야동생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전에 말한 걸 떠올려 그 새끼는 네가 생각하는 새끼가 아니라니까?!”
이쪽을 주시하고 있던 대머리가 한마디 던졌지만 나는 그 말을 무시한 채 대장이 건넨 과자를 입에 집어넣었다.
“아아 대머리 넌 좀 닥치고 기다려봐 지금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까, 저 새끼는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말해봐 친구~”
“... 감염된 내 여자친구가 있어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해”
순식간에 주변의 공기가 다시금 얼어붙었다. 불이 붙은 듯 뜨겁게 타오르는 대장의 눈이 나와 마주쳤고, 순식간에 과자를 입안으로 집어넣던 내 손등을 향해 단검이 날아들었다.
“잠깐. 빌어먹을 좀비를 내 아지트에 들여 놓겠다고?”
호의적이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돌변했지만, 깊게 박힌 단검을 단숨에 뽑아내 바닥에 던져버리는 사이 순식간에 상처가 치료되는 것을 보더니 끄응하는 신음을 토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치유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 같은데…. 긴장으로 인해 정신이 흐트러져서 그런 건가?
“거절하려면 지금말해”
“하아…. 오케이 좋아, 좋다고 허락할 게 대신 경비는 두 명씩 계속 새워둘 거다. 이해할 수 있겠지? 감염자가 집안에서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그걸로 거점을 한번 잃었었거든.”
“지켜주기만 한다면 상관없어. 저 대머리 옆보다는 안전하겠지.”
“오케이 그것 됐고 또 있냐?”
“내 여자친구를 감염되게 내버려 둔 새끼들이 군부대로 들어갔어 그 새끼들을 찾아 조지고 싶다”
“오오. 그건 잘됐네! 마침 군부대에 물어볼 일도 있고 총이 필요할 때가 되긴 한 것 같으니 이것도 받아드리지. 이걸로 끝이지? 그럼 곧바로 나 대신 대머리를 조져버려”
이번 조건에는 순순히 끄덕거리는 대장, 의외로 말이 통하는 상대 같았기에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았다. 나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완전히 관계가 끝이 난 대머리를 마주 보았다.
나에게 했던 말들은 전부 거짓말이었을 뿐이었나.
“...뭐 그렇게 됐으니 이제 지긋지긋한 악연을 여기서 끝내야 겠지?”
“내가 네 목숨을 구해줬잖아 동생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장난은 그만치고 대장 나으리 목을 부러뜨려라”
“저번에도 말했잖아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거. 나를 멋대로 부려 먹은 거 전부 합해서 없던 것으로 하자고”
초조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대머리의 얼굴이 지금까지 마주보았던 어느 때 보다 심각하게 찡그려졌지만…. 순식간에 다시 밝아졌다.
“잠깐, 대장 나으리 아래로 들어가기 전에 부탁할게 마지막으로 하나더 있지않아 동생? 의사양반이 있어야 꼬맹이가 치료되지않겠어?”
“지금 입을 다물면 정을 생각해서 고통 없이 한 방에 보내줄게 눈감아”
“치료?”
“어 치료제를 개발하는 의사가 우리 그룹에 있거든 푸하하하 지금도 거점에서 열심히 자료랑 씨름하고 있을걸? 말하기 싫었는데 네가 이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
대머리가 이상한 말들을 더하기 전에 해머를 휘두르려던 찰라 대장이 정색하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게... 사실이냐?“
“... 왜 그게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는데? 빨리 비켜 저 새끼가 입을 거 놀리기 전에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야 해”
푸핫하고 대장이 웃음을 터트리더니 얼굴을 쓸어 넘겼다.
“야 대머리 쪽 거점이 어디냐? 지금 당장 말해”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내가 입을 다물자 대장의 얼굴에 처음으로 초조함이라는 감정다운 감정이 나타났다.
“야 새끼들아, 지금부터 전부 입 다물어라? 알겠냐?!”
“예 큰형님!”
대머리의 커다란 목소리에 바닥을 기고있던 노예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대장 나으리 우리 거점은 여기서 꽤 멀리 떨어져 있을 거야. 우리가 점심까지 돌아가지 않으면 남아있는 새끼들한테 도망치라고 이야기해놨어.”
“좋아 거점의 위치를 말하는 새끼는 살려주겠다 약속하지 말해 어디야”
“누, 누가 당신 말을 믿은 것 같아?!”
“푸하하하 대장 나으리 이미 약속을 한번 어겼잖아 누가 당신 말을 믿을 것 같아? 다 알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목을 베어 죽일 거잖아? 아까 당해서 알고 있겠지? 지금 말하는 순간 제일 먼저 죽는다”
불신감 어린 눈빛이 아직 살아남은 노예들 사이에 퍼졌다. 잠시 노예들을 내려다보던 대장은 누구도 쉽게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서 말하라는 무언의 압박감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치료제가 있어야 감염자들을 더쉽게 처리할수 있게될꺼다. 감염된 사람들도 정상으로 돌아와서 세상이 수복되겠지.”
“그게 안 된다는 거잖아 잘 들어 멍청한 새끼야 치료제 따위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되는 거야 너도 알고 있잖아? 우리같이 밑바닥에서 생활했던 새끼들이 그나마 사람답게 생활하려면 감염자들이라는 무서운 적이 필요해”
“대장 나으리 그 의견엔 나도 동의하거든?”
“닥쳐!”
입을 놀리던 대머리가 주변에 있던 인원들에 의해 제압당해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좋아 네가 말했던 조건은 전부 들어줄게, 대신 대머리는 됐으니까 네가 말했던 의사 그 새끼 내 앞에 데려와”
“...도대체 뭘 하려는 건대?”
“푸핫 동생 그 새끼 군의관이었어! 군대에서 처음 발병된 감염을 확인하러 왔다나 뭐라나 내가 왜 그 새끼를 그냥 내버려 뒀는지 알아? 너를 통제하는 것을 넘어서 치료제 개발에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야”
“... 물어볼 것도 좀 있고, 말도 좀하고 별거 없으니까 날 믿어라 앞으로 같이 지낼꺼잖아?”
대머리를 무시한 채 나를 마주 본 대장의 눈동자가 살의로 번들거렸다. 말한 대로 단순히 대화만으로 끝내지 않을듯한 분위기. 나는 쥐고 있던 해머를 고쳐잡았다.
“죽여도 상관없는데 꼬맹이를 치료할 때까지 내버려 둬 그럼 데려온다고 약속하마”
“하아...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대장이 가슴과 목에 구멍이 뚫은 해머를 휘두르려던 손을 걷어찼다.
“이건 부탁이 아니야 명령이지. 당장 어딘지 말해”
멀리 날아가 버린 해머가 바닥을 나뒹굴었고 구멍이 뚫린 장소에서 강항 고통이 느껴졌다.
“마지막순간에 교섭이 뒤엎어져 버린거냐... 빌어먹을 대머리새끼”
고통을 참아내며 나는 곧장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삼단봉과 권총을 꺼내 겨누었고 대장은 자신이 건네준 삼단봉을 보자 환하게 웃어 보였다.
“말했던 대로 잘 가지고 있네 예비 무기는 언제나 필요하거든!”
손에들린 권총이 무섭지도 않은지 웃음을 유지한 채 거리를 좁히는 대장, 나는 곧장 그의 머리를 향해 권총을 격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