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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화 미쳐버린 딸쟁이와 프로토타입 백신 (2)


“뭐, 뭐야 이거 갑자기 몸에 전류가 흐르는것처럼 으읏…!” 손가락으로 통 안에 들어있던 액체를 살짝 찍어 만져보자 찌릿한 통증과도 같은 쾌감이 전기처럼 전신을 뒤흔들었다. 이느낌을 보면 확실히 뭔가 있긴 한 것 같긴한데… 이거 진짜. 백신이 맞기는 한 걸까? 미약이나 다른 위험한 약물 아니야? “염병, 이게 백신이 아니면 무덤에서 파내서 다시 죽여버릴 거야 알아들어? 엿같은 의사 새끼야” 손가락에 묻은 질척거리는 액체를 대충 털어낸 후 약이 담겨있던 물통의 뚜껑을 닫아 주머니에 쑤셔 넣은 나는 떡대와 함께 묻어줄 생각으로 의사의 시체를 어깨에 짊어졌다. “냄새하고는, 고작 몇일 지났다고 이렇게까지 냄새가 나는 거냐?” 의사에게서 풍겨오는 막 부패하기 시작한 썩은 시체의 냄새. 죽인지 3일밖에 안 지났을 텐데 그새 썩기 시작하다니…. 참 인정머리 없는 세상이라니까 “잠깐, 잠깐만 왜 다른 시체들은 썩지 않는거지?” 등뒤에서 느껴진 한기에 뒤를 돌아보자, 여전히 바닥을 구르고있는 시체들이 눈에들어왔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건물을 나섰다. “뭐가됐든, 이미 늦은거겠지 괜한 호기심이야” .... “형!” 해가 거의 저물었을 무렵이 되어서야 장벽을 뛰어넘어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오자, 집 앞 의자에 앉아있던 게이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의사랑 백신을 찾긴 했는데, 둘 다 반쪽짜리야. 죽어서 시체가된 의사에 프로토타입 백신. 참나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되어있었으면 훨씬 편했을 텐데 말이지. 푸흣 내 운이 그렇지 뭐” “하..하 그렇네요 운이없었네요...그것보다 의사도 저희 그룹에서 꽤 오래 지냈는데, 무슨 의사인지도 모르고 떠나 보내게됐네요 후회할게 투성이에요 덩치도 그렇고 의사도 그렇고 좀더 친해졌어야 했는데” 게이는 억지로 웃는 게 훤히 보일 정도로 얼굴을 구기더니 의사의 시체에 손을 뻗었다. “아 너는 못들었던가냐? 대머리가 그러던데 이 새끼 군의관이라고 하더라 발병 초기 때 좀비로 변하는 병의 원인을 조사하려고 차출됐다나 뭐라나. 이제 이 새끼 입으로 본인 정체를 듣기는 글렀으니 그렇게라도 생각해야지 어쩔 수 없어” “군의관도 여러 가지잖아요 군대의 연구원인지 아니면 진짜 야전 진료인지 뭐, 진짜 삭막하게 사람들이 죽어나는 세상이니 차근 차근 알고 지내는건 이미 늦은…. 아, 죄송해요. 마음이 심란해서 괜한 소리가 막 나오네요” “사과할 필요 없어 죽은 사람을 애도할 시간도 필요하고 현실 도피도 가끔은 필요한 거니까. 그것보다 할 거 없으면 땅 좀 파줄래? 좀 늦긴 했지만 의사랑 떡대 시체를 묻어주고 싶거든 더 늦어버리면 완전히 썩어서 냄새가 온 동네에 퍼질거야” “집안에 있던 떡대 시체라면 여자가 도와줘서 점심쯤에 이미 묻어줬어요. 막 친해지기 시작하던 새낀데 점점 썩어가는 몸뚱이로 바닥에 방치되어있는 게 계속 눈에 밟혀서…. 의사는 그 옆에 무덤을 만들면 되겠네요” “...그러냐?” “에이 형은 이런 거 신경 쓰지 마시고 백신 먼저 시험해보세요. 계속 찾아 돌아다니던 거잖아요! 저도 멀쩡해진 꼬맹이랑 대화도 좀 해보고 싶고요 어떻게 형을 그렇게 집착…. 이 아니려 꽉 잡으실 수 있었냐고 저도 좀 도와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괜한 소리하지 마 말했잖아 나는 여자가 좋아 너한테 꼬맹이처럼 집착할 바에야 자살할걸?” “에이 너무해~” 애써 밝은 목소리로 나를 격려하는 게이와 잠시 눈빛을 교환하다, 한숨을 내쉬며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의사의 시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럼 부탁 좀 하자, 진짜 미안하긴 하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꼬맹이가 우선이야.” “푸흣 그건 이미 알고 있다니까요 걱정 말고 내려가 보세요 땅을 파다 보니 나름 익숙해져서 금방 끝날 거니까 저도 곧 뒤따라 갈게요” 고개를 끄덕이며 게이를 뒤로하고 집안으로 들어선 나의 발걸음은 한층 더 가벼워져 있었다. 게이의 격려 덕분인지, 아니면 의사의 시체를 넘겨줘서 그런 건지…. 나도 모르게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르다 못해 터질 것만 같은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래 겨우 손에 넣은 백신이야, 다른 새끼들이 뒤진 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나한테는 꼬맹이만 있으면 만소 OK잖아? 괜히 힘을 뺄 필요 없어” 부정적인 감정들을 머릿속에서 몰아내며 백신을 주머니에서 꺼내 손에 쥔 나는 한걸음, 한걸음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 꼬맹이의 앞에 섰다. “그어어..” 이 귀여운 입으로 나를 다시 주인님이라고 불러줄 수 있을까? 나는, 다시 한번 너를 지켜줄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손을 뻗어 꼬맹이의 머리에 손을 얹어 쓰다듬었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꼭 지켜줄 게 누구에게도 넘기지 않아, 누구에게도 부탁하지 않을 거야 사랑해.” 나는 단번에 뚜껑을 열어 질척거리는 액체가 가득 담긴 물통을 꼬맹이의 입에 가져다 댔다. “형 잠깐만요! 기다려요!” 꼬맹이의 입에 약을 집어넣기 직전, 뒤편에서 우당탕하는 거대한 소음과 함께 게이가 달려오더니 내 손에 들려있던 약을 빼앗아 가져갔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순간적으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게이를 무섭게 노려보자, 게이는 다급히 영문 모를 쪽지 하나를 건넸다, “형 이거…. 그 의사 시체에서 나왔는데 먼저 읽어보시는 게 좋겠어요” “하아...무슨 쪽진데 그렇게 정신없이 내려온 거야?” [부디 이 약과 쪽지를 발견한 사람이 당신이길 바랍니다.] 끌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쪽지를 받아들자 익숙한 필체로 무척이나 정갈하게 의사가 쓴듯한 메시지가 보였다. “...야 유언이나 뭐 그런 거라면 나중에 해도 늦지 않잖아 굳이 이렇게 호들갑까지 떨면서 이럴 필요는 없었어” “아, 아무튼 빨리 읽어보시라니까요!” 빼액 소리를 지르는 게이의 모습에 얼굴을 찌푸리며 쪽지를 풀어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 쪽지를 발견한 게 당신이라고 생각하며 적겠습니다. 우선 죄송합니다. 이 프로토타입 백신은 3주 전에 이미 완성된 상태였습니다.] “3주 전…? 3주 전에 완성된걸 나한테 말도 하지 않았다는 거야?” “아마 대머리의 눈치를 보느라 말하지 못했던 거겠죠. 아니면 프로토타입이다 보니 백신에 대해 무언가 더 연구해야 할 게 있었다거나 형과 대머리가 하는 힘 싸움의 균형을 맞추려고 했다거나...이제 와서는 알 수 없겠지만 대충 그랬던게 아닐까요?” “빌어먹을 이놈이나 저놈이나 전부 나를 속일 생각만 하고 있었던거네 염병 기분한번 좆같네” 나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거리다 다시 글로 시선을 돌렸다. [당신의 혈액과 체액들에서 추출한 항체와 완벽하게 변이된 변이체, 변이하지 못한 좀비에게서 떼어낸 조직, 대머리가 구해준 약품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우연한 실마리를 통해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만약 완성했다는 게 대머리에게 들킨다면 이 약은 그저 대머리의 여벌 목숨 정도로 사용될 게 뻔했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부디….] 정말로 미안했는지, 단순한 변명인지 알 수 없는 문장들을 대충 훑다 문뜩 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약은 섭취가 아닌 몸에 바르는 방향으로 개발된 겁니다. 대머리가 모아놓은 사람들을 상대로 실험하면서 알아낸 건 약간의 부족용이 있긴 하지만 확실하게 효과는 있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약자들을 그 건물로 몰아놓아 인체실험으로 사용했던 건가…. 잘도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진행했네. [반쯤 죽어버린 뇌를 활성화하기 위한 비정상적인…. 를 통해 감염체에 자극을 주고 이성적인 생각을 하게 유도하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습니다. 대머리에게 들키지 않고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 생포했던 여성 좀비에게만 실험한 것이 전부지만, 반복적으로 투약하다 보면 효과는 반드시 나올 겁니다. 행운을 빌겠습니다.] 죽기 직전에 싸움이라도 한 것처럼 군데군데 찢어진 마지막 부분 너머로 보이는 행운을 빌겠다는 말이 어쩐지 의사다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추신…. 만약 정말 만약 군대에서 저를 찾기 위해 파견된 인물이 있다면 주먹으로 그 새끼의 머리를 한 대 때려주고 약간의 백신과 저의 방안 서랍 안쪽에 있는 보고서를 전달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이 쪽지 어디 들어 있었어?” “외투 바깥쪽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었어요. 형이 들고올 때 떨어지지않아서 운이 좋았죠 하..하” “그렇네... 그대로 약을 먹였으면 괜히 낭비할뻔했어 고맙다” “갑자기 달려들어서 죄송해요,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이랑…. 의사가 형을 생각했다는걸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같이 지내던 동료들이 전부 죽거나 배신…. 게이도 어느 정도 감성적으로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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