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도망
[쿠-웅! 쿠웅!!]
내가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인다면 곧바로 부서질 듯 맹렬한 기세로 문이 덜컹거렸고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귓가에서 지워지지 않을 만큼 소란스럽게 들려왔다.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응? 죽고싶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도망치는게 좋을거야]
나는 크게 심호흡하고 천천히 칼날을 끄집어내 손에 쥐었다. 왜인지 어제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칼의 무게감... 조금씩 손과 얼굴에 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
“왜? 내가 못미더운 거야?”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각오를 다지던 도중, 품 안에 꽉 끌어안긴 채로 조용히 나를 올려다보는 꼬맹이의 시선을 마주 바라보다 슬쩍 웃어 보였다. 그래... 골방에 처박혀 계속 자책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머리를 비우고 시체들과 싸우는 게 훨씬 편안할지도 모를 일이지.
“말했잖아 끝까지 널 지켜준다고. 그런 약속이야 내가 죽어도 네가 날 잊어버려도 나는 어떻게든 널 살릴 거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아직까지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파편들이 눈 안쪽에서부터 넘실거리고 있는 꼬맹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자세를 가다듬었다.
“후우..좋아 해보자고 썩을 시체 새끼들아!”
내가 도발하듯 소리치자 쿵쿵거리던 문의 소음이 잠깐 멈추더니... 순식간에 문이 부서지며 좀비들이 매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역한 시체들의 냄새가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던 감정들을 단숨에 저 멀리 날려버렸기에 마음이 급속도로 차분하게 가라앉아 냉정해 질수있었다.
“그어어어어!”
검붉은 피를 흩뿌리며 제일 선두로 달려오는 좀비의 목을 베어 넘긴 후 다른 녀석에게 시선을 돌려 미간 정중앙에 칼날을 박아넣자, 뼈가 가루가 되는듯한 고통과 함께 몸이 삐거덕거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이런 새끼들 상대로는 절대로 안 죽어”
[조금이야 아주 조금 움직였는데도 그 정도로 고통스러운데, 싸움이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 느껴지지 않아 니몸이 점점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들려오는 환청소리에 주춤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넋 놓고 당할 수는 없었다. 칼에 머리를 관통한 녀석을 발로 걷어차 좀비들에게 되돌려주며 약간 거리를 벌린 나는 차분하게 상황을 바라보았다. 침입해 들어온 좀비들중 변종은 없었으며 자기 몸보다 훨씬 작은 창틀 때문에 그 앞에서 어기적거리는 덩치 덕분에 미리 들어온 녀석들 말고는 더 이상의 증원은 없다.
진정해야했다. 차분하게 상대해야했다. 꼬맹이가 품안에 안겨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꽉 붙잡아라 꼬맹아 좀 격렬하게 움직일 거야”
칼날에 묻은 썩은 피. 그리고 들려오는 환청을 가볍게 털어낸 뒤 팔을 격렬하게 휘적이며 다가오던 녀석의 눈 안쪽을 향해 칼날을 집어넣은 후 왼손에서 칼을 하나 더 끄집어내 그 옆에 있던 녀석의 목을 베어 넘겼다.
“..끼에..”
몸통에서 분리되었음에도 입을 움직이는 좀비의 머리통을 즈려밟으며 문 안에서 나오는 다른 녀석들을 바라보자 문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부서진 방문으로만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좀비들의 전력은 더더욱 분산되어 있으니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더 간단하게 목을...
“키에에에에!”
[타-앙! 타앙!!]
건물이 흔들리는 것과 동시에 들려오는 총소리와 굉음. 상황이 점점 심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앞쪽에 집중해야만 했기에 발걸음을 움직여 좀비의 안으로 파고들어 가 검을 휘둘렀다.
“커억..뭐,뭐야 어떻게!”
순간적으로 방금까지 멍하니 우리에게 달려들기만 하던 한 좀비의 눈에서 이성이 내 빛이더니 내가 휘두른 칼을 간단하게 붙잡아 부러뜨리고는 내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하”
예상치 못했던, 아니 반응하지 못했던 불의의 일격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자, 좀비가 썩은 낯짝을 일그러뜨리며 소름이 돋는 비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꼬맹이가 몸을 떨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떨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백신도 없이 진화를 이룬 건가? 아니면 변종? 도대체 이건 뭐지?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평범한 좀비와 다름없는 모습과 행동이었는데..?
“그아아!”
방안에 남아있던 좀비들이 밖으로 나오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뒤를 돌아 내달렸다. 위험하다.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생존본능이 미친 듯이 경고해 왔다.
“그어어...”
“저리비켜!”
하지만 도망갈 길은 없었다. 어디를 보나 걸어다니는 시체들로 꽉꽉들어찬 내부는 이미 지옥이나 다름없었고 변종들까지 나타나 공격해 왔기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몰려, 어느새 어제 총잡년에게 끌려갔던 홀 중앙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씨발”
나를 빼고 전부 어디로 도망친 건지 잡아먹힌 건지 아무도 없는 홀 중앙에 홀로선 나는 칼을 뽑아 들었다. 한군데 중점으로 파고들면 어떻게든 될지도 몰랐다.
“크하!”
몸이 얼어붙을 정도의 한기가 내 몸을 막아섰다. 아주 조금만 움직여도 죽어버릴 것만 같은 공포심과 두려움이 몸안 깊숙이 뿌리를 내린 것 같았다.
“너, 도대체 뭐야 나를 물지도 않고 구석으로 몰아넣어서 뭐가하고 싶은거냐고”
“...너”
나를 비웃던 좀비가 내 앞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 말, 백신을 사용한 꼬맹이조차도 아직까지 하지 못한걸 내 앞에 한낱 좀비 한 마리가 말을 내뱉은 것이다.
[빠드드득]
“아아아아아!!”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좀비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다 턱뼈가 먼지처럼 무너져 내리더니 이내 온몸이 사라져 버렸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오빠?! 거기 아래 있는 거 오빠야?”
“....참 일찍도 온다.”
“일단 이거 잡고 올라와!”
휙 하고 내려온 밧줄과 이쪽을 향해 내달려 오는 좀비들을 마주 보던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그 줄을 잡고 기어 올라갔다.
“하아 다른 구역은 전부 덩치랑 변종들이 뚫려버렸어. 뭐 함정으로 들어온 놈들 몇 놈은 죽긴 하겠지만 말이야 히히”
“그게 끝이잖아. 밖에 있는 좀비들이 전부 안으로 들어올 거야 진짜 막다른 길이라고”
“최소 몇달은 버틸수 있을걸? 4층은 공들여서 개조했으니까”
이제는 약간이지만 품 안에 있는 꼬맹이의 무게감까지 느껴지고 있었기에 우선 꼬맹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자리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범죄자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지칠 때로 지친 나는 그 시선을 외면했다.
“오빠 어디 아파? 숨이 거치네?”
“어제 총 맞은 곳이랑 변종이랑 싸울 때 긁힌 상처 때문에 그런 거니까 신경꺼”
“흐음~ 그래?”
범죄자에게서 빠르게 날아온 단검을 간단하게 맨손으로 낚아채자, 범죄자는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지금 뭐하자는거지?
“...미친년 죽고 싶냐?”
“화난 거 아니지? 오빠한테는 이 정도면 장난이잖아. 그렇지? 귀여운 동생의 분풀이라고 생각해 줘 히히”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 낚아챈 단검을 범죄자의 얼굴을 향해 되돌려주었다. 뺨에 살짝 스치듯 날아간 단검은 벽에 박혔고 범죄자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도 이 지랄 하면 밖으로 던져버린다.”
“아니 오빠가 변종도 아니고 별거 아닌 좀비한태 쫓기고 있길래 혹시나 하였던 거야 확실하게 싸울려고 했거나 죽이려고 했으면 꼬맹이를 노렸겠지 안 그래?”
팔에서 칼날을 끄집어내 손에 쥐었다.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되는 년이었는데….
“개같은년…. 그래서 다른 두 놈은 어디 갔는데 혼자 여기 있던거야?”
“나는 오빠가 혹시나 이쪽으로 올까 싶어서 보고 있었지~ 대장은 휴식 중이고 다른 한 명은 계단에서 총질 중이야. 아참 오빠 발광하는 모습도 아름다워 보이는 건 기분이 참 오묘해 오빠도 알아?”
“...닥치고 일단 상황 파악부터 해야겠으니까 한군데에 모여봐. 마치 우리가 싸운 걸 알고 있던 것처럼 한순간에 몰려들었어”
“그건 그렇네~ 그럼 오빠랑 꼬맹이는 저쪽 끝 방으로 가 대장이 쉬고 있을 테니까 난 달링을 끌고 올게”
장난스럽게 경례하는 범죄자는 나에게 남성이 있는 의료실 위치를 알려주고는 계단 쪽으로 몸을 돌렸다.
“우리 따위는 그냥 버리고 갈 줄 알았는데 말이야 뭔가 이상하네”
나에게 들릴 만큼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 범죄자는 내가 무언가 말을 돌려주기 전에 몸을 움직여 계단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아. 일이 점점 꼬여가고 있어 식량이 바닥날 때까지 박혀있어야 했는데... 아니면 게이 새끼한테 식량좀 나눠달라고 부탁하거나”
“...”
“....미안하다 꼬맹아”
나는 다시금 사과를 건네며 꼬맹이를 다시 품에 안아서 들려 했지만, 꼬맹이가 발버둥 쳤다.
“이제는 안기기도 싫은거라면...”
“아...”
꼬맹이가 몸을 굽히고 있던 나를 꼭 끌어안더니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가운 감촉이 방금까지의 전투로 달아올랐던 열기를 식혀주었다.
“위로해 주는 거냐?”
아직까지는 전처럼 옹알이도 들려주지는 않았지만, 마음만큼은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저지른 실수도 화를 냈던 것도 전부 용서해 주는 것 같은…. 따뜻한 감각 내가 약해지는 만큼 꼬맹이의 상태도 그만큼 좋아지는 걸까?
“미안 다시는 화내지않을게 니가 하고싶은거라면 모든지 해줄게...”
휙 하고 나에게서 떨어져 손을 내미는 꼬맹이. 나는 그 손을 마주 잡으며 조용히 뒷말을 삼켰다.
[흑흑 그러니까 나를 버리지말아줘~ 병신같은놈 또 누구한태 끝까지 기대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