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생존을 위해
꼬맹이 덕분에 약간이나마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범죄자가 알려준 방문을 열어보자, 그곳에는 미라처럼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남성이 침대에 누운채 한가롭게 책을 읽고 있었다.
“여기에 왜 온 거냐...? 아~ 그래 알겠다 여기서 나가기 전에 내 모가지 따려고 온 거지?”
남성은 나에게 시선조차 돌리지 않은 채로 여유롭게 입을 놀렸다. 지금 밖이 무슨상황이 벌어졌는지 모르는걸까?
“지랄하지 말고 다물고있어 지금 농담이나 지껄이고 있을 때가 아니야.”
“농담할 때가 아니라는건 나도 아주 잘 알고있어 괴물새끼야! 내 목숨은 그렇다 쳐도 유일하게 그 거대한 근육을 견제하던 총까지 박살을 내놔서 우리 거점이 완전 난장판이 됐잖아? 안그래?!”
그제서야 남성이 책을 강하게 덮더니 날이 선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았다. 마치, 이 모든 일의 책임이 전부 나에게만 있다고 말하는 듯한 엿같은 눈동자. 그 눈동자가 무척이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
“전부 내 탓으로 돌리지 마. 네가 먼저 시작한 거야 살아남은 것만 해도 감사하라고”
“그래그래 전부 내 탓이지 우리 거점을 헤집고 들어와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백날 그 인형 같은 정박아 애새끼랑 짐승처럼 섹스...”
“너 뒤지기 싫으면 말조심해라? 꼬맹이 덕분에 살아남은 거 잊지 마”
나는 칼날을 뽑아 들어 남성의 목에 가져다 댔지만, 남성은 정말 무섭지 않다는 듯 코웃음 치더니 들고있던 책을 나에게 집어던졌다.
“정박아 애새끼를 정박아라고 하지 뭐라고 하냐? 씨발 죽일 거면 죽여 어차피 우리 전부 좆됐으니까. 함정들이랑 남아있는 바리케이드들 덕분에 지금은 어찌어찌 버티고 있지만 그것도 얼마 못 갈 거야”
“범…. 아니 나랑 같은 그룹에 있던 녀석은 꽤 버틸 거라고 하던데”
“지랄 지금 상황은 싫어도 내가 더 잘알아. 우리가 전에 있던 그룹도 따지고보면 뇌 때문에 무너진 거니까.”
[끼이익...]
[타-앙!]
남성의 말에 침음을 흘리던 도중 문이 열렸고…. 그대로 총알이 내 뒤에 있던 벽에 날아와 박혔다.
“너, 질리지도 않고 환자한테 검을 겨눈 거야? 온몸이 붕대에 감겨있는데?”
공포인지 분노인지 모를 감정으로 심각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나에게 말을 건네왔고 뒤이어 범죄자가 빠르게 달려오더니 나를 강제로 남성에게서 떨어지게 만들었다.
“아~ 오빠 또 왜 그래 칼좀 치워봐 상황 파악이 먼저라고 오빠가 말했던 거잖아 살아남아야지 안그래? 오빠야 걱정 없겠지만 난 여기서 죽고 싶지 않다고”
“나는 얼굴에 책까지 맞았다만?”
“하! 나는 몸에 커다란 칼자국이 생겼다만? 빌어먹을 괴물새끼야”
“그래 이제는 확실히 알겠네...저런 괴물새끼 받아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 이제서야 말이 좀 통하네... 진작에 그랬어야지 괜한 친절을 베풀어 준다고 우리 상황이 더 좋아지지는 않아 항상 그랬지”
전혀 이야기를 나눌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총잡이 여성은 권총을 손에 쥔 채 나와 꼬맹이를 노리고 있었고 범죄자는 내가 약해진 걸 알게 된다면 목숨을 걸고 싸움을 걸어올 것이 눈에 훤했으며 병상에 누워있는 남성 또한 틈이 보인다면 나를 죽이려고 할 것이 틀림없었다.
“하아... 그냥 전부 죽여버리면 안 될까 꼬맹아? 여기서 좀 버티다 보면 답이 나올지도 모르잖아 난 도저희 못하겠다.”
방안 모두에게 들릴 듯이 또렷한 목소리로 나는 또박또박 꼬맹이에게 물었다. 꼬맹이는 당연하게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었고 제일 위험한 범죄자 또한 내가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한 블러핑이었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 자기, 아니 왕자님이랑 대장도 살아남고 싶으면 잠깐 휴전하자고 휴전 응? 나도 오빠, 아니 이 괴물 새끼가 진짜 싫어 내가 있던 그룹도 이새끼 한명 한태 전부 개털려서 해체됐는데 어떻게 좋아해?!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살 방법이 이 괴물한테 기대는 방법뿐인데. 응? 진정하자고”
다행히도 범죄자는 내 뜻대로 움직여 총잡이와 남성을 필사적으로 설득했고 잠깐의 침묵 끝에 여성은 쥐고 있던 총을 주머니에 넣더니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살고 싶어 아직 죽고싶지않아”
“......씨발”
자리에 주저앉아버린 총잡이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남성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남성 또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적의를 거두었다.
“지금 당장에야 좀비들이랑 변종들이 여기까지 올라오지는 않겠다만은 아무리 길게 버텨봐야 일주일이야. 내가 저격총을 쓰지 못하게 되고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까지 빠르고 체계적으로 움직인 걸 보면 뇌도 움직이기 시작했을거고 몰려오는 좀비들도 점점 늘어나고있어”
“에엥 대장 일주일이라니!? 트랩도 있고 바리케이드도 잔뜩 싸여있잖아 머리까지 다친거야? 식량도 미리 잔뜩 옮겨놓은 게 있으니까 몇 달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어!”
“평소라면 그랬겠지. 우리를 못 보면 그냥 흐느적거리는 시체들이랑 이해 못 할 행동들 좀 하다가 자기들끼리 치고받는 변종들... 하지만 지금은 달라 그걸 통솔할 뇌가 있잖아 일주일도 최대한 길게 친 거야 짧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뚫릴지 모르지!”
남성의 말에 총잡이가 약간 서글프게 웃었고 그 모습에 남성은 당황한 듯 재빨리 말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아니, 그래도 좋은 의견이긴 했어! 뇌만 없었다면 너 말처럼 몇 달은 충분히 버틸 수 있으니까, 그사이에 차근차근 층을 되찾으면서 내려가면 시체들 정도야 쉽게 몰아냈겠지! 아무 의견도 없이 그냥 힘만 믿고 나대는 고릴라보다는 백배는 도움이 되는 말이었어”
“...있지 그거 내가 전에 냈던 의견 이었어 우리가 속해있던 그룹을 뇌가 습격했거든. 내부에서는 받아들인 외부인이랑 계속 마찰이 일어났고 몇 번 저항하지도 못한 채 다 죽어 버렸어 어때 지금이 상황이랑 비슷하지?”
“어...음...그게...괜찮은 방법이지 대장?”
“....닥쳐”
“그럼 뇌만 어떻게든 하면 된다는 거네?”
약간 소란스러워진 방 안 분위기 속에서 나는 작게 입을 열었고 순식간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네가 직접 말했잖아 그 좆같은 뇌만 없으면 몇 달은 버틸 수 있다고”
“염병 그야 통솔자가 없어지는 거니까, 저렇게 함정을 피해 빠릿빠릿하게 돌격해 오는 좀비들도 다시 방황하기 시작할 거고 연계도 못 하는 변종들이야 권총이랑 너희 둘만 있다면 어떻게든 되겠지. 근데 그 ‘좆.같.은 ’뇌를 어떻게 찾을 건데? 저 수백 수천 마리 좀비 사이에 숨어있을탠데”
“...좋네. 운이야 아주 차고 넘치고 있으니 금방 찾겠어.”
뇌, 그러니까 좀비들을 통솔하는 그 엿같은 새끼만 어떻게든 족치면 그다음부터는 쉽게 생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니. 어쩌면 살아 나갈 길이 보인 걸지도 몰랐다.
“하! 말 참 존나 쉽게 하네 할인점 안에 있을지 바깥에 있을지도 모르는 그새끼를 찾아 좀비랑 변종들이 득실거리는 새끼들한태 들이대서 족친다. 아주 좋아 씨발 자살할거라면 다른방법 찾아봐”
“잠깐 나도 반대야! 반대!! 결사반대 그럴거면 차라리 한 지점을 뚫어서 돌파하는 게 더 좋다고 봐”
“그것도 저 고릴라가 하는 말이랑 똑같아 자살행위야 빠르거나 약간 늦거나가 다를 뿐이지.”
“참나 그럼 대장은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서 계속 남들 의견에 태클 거는 거야?”
옆에서 자신의 의견에 태클을 건 남성이 못마땅했는지 범죄자가 한마디 하자 남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버티는 거야”
“에엥? 최대한 버텨봐야 일주일이 끝이라며?”
“그 일주일만이라도 더 살고 싶으니까. 말했잖아 최대한이라고. 우리 전부가 최선을 다해 막아서 일주일인 거야. 만약 저 고릴라가 내 생각보다 힘을 더 써준다면 2~3주 정도는 더 살지도 모르고 진짜 ‘또 한번’ 기적이 일어나서 우리 전부가 살아 나갈지도 모를일이지”
있일지 없을지도 모르는 신에게 기적을 바라며 버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방법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염병 그거 한번 좋은 생각이네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신에게 우리 목숨을 바치는거야”
“저번에도 그랬어 기적인지 뭔지 모를 이유로 뇌가 우리를 살려뒀으니까... 이번에도 그럴지도 몰라”
의견은 3가지로 갈라져 버렸다. 버티거나. 일점돌파하거나 뇌를 찾아 죽이거나. 우리 세명은 제각기 시선을 교환하다 아무 말도 하지않고 우리를 지켜보던 총잡이를 바라보았다.
“나,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웅얼거리던 총잡이는 이내 목을 가다듬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뇌를 찾는게 좋겠다고 생각해 일점 돌파도 지금으로서는 다친 대장이 죽을 확률이 가장 커 그다음은 어디로 보나 나겠지. 그리고 아무리 틀어박혀 버틴다고해도 이번에도 뇌가 우리를 놓아준다고는 생각할수 없어…. 찬성하긴 싫지만, 괴물…. 아니 저놈 말이 맞는다고 생각해”
“참나 이제 와서 대장 소리냐고 염병….”
“하...하 미안”
총잡이가 살짝 곤란한 듯 미소짓자 남성또한 웃었다.
“네가 그 고릴라 말에 찬성한다면 나도 그럴게. 그래도 쉽지는 않아 뇌의 위치부터 파악해야 하는데 저 수백의 좀비들 사이에서 생각하면서 숨어다니니까 말이야.”
“에엥? 대장은 몰라도 우리 자기는 내가 목숨 걸고 지켜줄 수 있는데 어째서!”
범죄자의 외침에 순간적으로 나와 나머지 두 사람의 얼굴이 절로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