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구멍동서
1. 강제 주유
금요일 저녁, 프로젝트 마감 기념 회식 장소인 갈비집은 전쟁터처럼 시끄러웠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타는 매캐한 연기, 여기저기서 "위하여!"를 외치며 부딪치는 술잔 소리, 그리고 취기에 젖은 고성방가.
보윤은 구석 자리에 몸을 최대한 작게 구기고 앉아, 투명한 사이다만 깨작깨작 홀짝이고 있었다.
투명 인간처럼 조용히 있다가 1차만 끝나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어? 성 주임. 잔이 비었네? 제사 지내?"
불판을 갈던 박 차장이 보윤의 빈 소주잔을 매의 눈으로 포착하고 혀를 찼다.
"저... 팀장님, 제가 오늘은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술을 못..."
"에이, 오늘 같은 날 빼는 거 아니야. 우리 팀 프로젝트 성공적으로 끝난 기념인데. 분위기 깰 거야? 딱 한 잔만 해. 내 성의 무시하는 거야?"
'무시'. 그 단어는 보윤에게 거역할 수 없는 명령어이자 저주였다.
거절했다가는 내일부터 어떤 보복이 날아올지 뻔했으니까.
보윤은 떨리는 손으로 두 손을 모아 소주잔을 받았다.
"자, 원샷! 남기면 벌금 만 원이다! 밑장 빼기 없기!"
맞은편에 앉은 윤 대리가 젓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깐죽거렸다.
그의 눈빛은 이미 보윤의 가슴골을 훑고 있었다.
보윤은 눈을 질끈 감고 소주를 털어 넣었다.
역한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찌르고, 쓴 액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장을 할퀴었다.
"캬! 잘 마시네! 역시 성 주임이야. 자, 한 잔 더! 이번엔 내가 따라줄게."
그때부터 지옥의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박 차장이 따라주면 윤 대리가 쌈을 싸서 억지로 먹여주고, 윤 대리가 따라주면 박 차장이 "팀워크를 위하여"라며 러브샷을 강요했다.
거절하려고 손사래를 칠 때마다, 두 사람은 식탁보 아래로 보윤의 허벅지를 은밀하게 꼬집거나 엉덩이를 슬쩍 더듬으며 '마셔'라는 무언의 압박을 보냈다.
"으윽... 저 진짜 못 마시겠어요..."
"야, 성보윤. 너 지금 내 잔 거부하는 거야? 내가 우스워?"
윤 대리의 협박에 보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또다시 잔을 비웠다.
소주 세 병이 넘어가자 정신이 빠르게 흐려졌다.
천장이 빙글빙글 돌고, 눈앞의 불판이 두 개, 세 개로 분열되어 보였다.
2. 식탁 위의 잉여물
밤 11시.
1차, 2차가 끝날 때마다 눈치 빠른 직원들은 하나둘씩 "막차 끊긴다"며 도망쳤다.
김 대리도, 신입 사원들도 다 떠났다.
식당 앞 거리에는 취객들만 비틀거리고 있었다.
남은 사람은 딱 셋이었다.
박 차장, 윤 대리, 그리고 인사불성이 된 나.
"자, 아쉬우니까 딱 한 잔만 더 하고 가자. 조용한 데로. 우리끼리 뒤풀이해야지."
박 차장이 비틀거리는 보윤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귓가에 입김을 불었다.
보윤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해,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다리가 오징어처럼 흐물거렸다.
"지... 집에... 가야 하는데..."
"보윤아, 오빠가 택시 태워준다니까? 걱정 마. 안전하게 모셔다드릴게. 가자, 응?"
윤 대리가 반대쪽에서 보윤의 팔짱을 끼며 가슴에 자신의 팔을 밀착시켰다.
두 남자가 양쪽에서 보윤을 부축하는 척하며 어두운 골목 쪽으로 끌고 갔다.
보윤의 구두 굽이 아스팔트 바닥에 질질 끌려 긁히는 소리가 났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그저 '술 취한 여직원을 챙기는 동료들의 훈훈한 풍경'으로 보았을 것이다.
사실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무력한 짐승인데도.
3. 교집합
3차 장소는 노래방 간판을 단 지하의 프라이빗 룸소주방이었다.
붉고 어두운 조명, 푹신한 벨벳 소파, 그리고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방음 밀실.
보윤은 소파 한가운데 짐짝처럼 던져졌고, 박 차장과 윤 대리가 약속이라도 한 듯 보윤의 양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보윤아, 덥지? 얼굴이 빨개. 좀 벗어. 편하게 있어."
박 차장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보윤의 블라우스 단추를 위에서부터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윤 대리는 반대쪽에서 보윤의 치마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스타킹 위로 그의 손가락이 허벅지 안쪽을 거칠게 파고들었다.
"으음... 하지 마세요... 팀장님... 대리님..."
보윤이 힘없이 손을 허우적거리며 저항하자, 윤 대리가 킬킬거렸다.
"야, 너 오늘 팬티 입고 왔냐? 저번에 비상계단 올 땐 안 입고 와서 죽여줬는데. 오늘은 입었네? 실망이다, 성보윤."
그 말에 블라우스 단추를 풀던 박 차장의 손이 딱 멈췄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윤 대리를 쳐다보았다.
눈빛이 날카로웠다.
"어? 윤 대리.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저번에 노팬티로 온 거, 나랑 회의실에 있을 때였는데? 너 설마 훔쳐봤냐?"
순간 얼음장 같은 정적이 흘렀다. 술 취한 보윤의 머릿속에서도 윙윙거리는 비상벨이 울렸다.
들켰다.
박 차장에게는 윤 대리와의 관계를, 윤 대리에게는 박 차장과의 관계를 철저히 숨겨왔는데.
이제 나는 죽었다.
양쪽에서 보복당할 것이다.
하지만 윤 대리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는 당황하기는커녕, 비릿하고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박 차장을 마주 보았다.
"팀장님... 혹시 팀장님도? 와... 역시 팀장님 안목이 탁월하십니다. 어쩐지 성 주임이 요즘 때깔이 좋아졌다 했더니."
박 차장이 잠시 멍하니 있다가,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 이 앙큼한 년 보게. 나만 바라보는 척, 순진한 척 내숭은 다 떨더니, 뒤로는 윤 대리랑도 붙어먹었어? 아주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네?"
"아니, 저는 팀장님이 먼저 찜해놓으신 줄 몰랐죠. 알았으면 제가 양보해 드렸을 텐데. 와... 우리 그럼 구멍동서입니까? 대박이네."
4. 도원결의
보윤은 공포에 질려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화를 낼 줄 알았다. 서로 "내 여자 건드렸다"며 싸우거나, 배신감에 나를 때릴 줄 알았다.
하지만 두 남자는 서로를 보며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더러운 동지애였다.
같은 장난감을 공유한다는 유대감.
"야, 윤 대리. 너도 얘 맛 좀 봤냐? 어때? 쩔지?"
"말도 마십쇼. 조임이 아주 예술입니다. 명기예요, 명기. 특히 노팬티로 비상계단에서 뒤로 박을 때, 물 나오는 거 보고 진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크크크, 나는 회의실 책상에서도 했는데. 젖 흔들리는 거 봤냐? 위에서 내려다보면 진짜 장관이지. 빨아도 빨아도 젖이 계속 나와."
그들은 보윤을 가운데 두고 마치 맛집 메뉴판을 평가하듯 시식 후기를 적나라하게 공유하고 있었다.
보윤의 인권은 그 술자리 안주보다도 못했다.
박 차장이 보윤의 턱을 거칠게 잡고 들어 올렸다.
"보윤아, 너 아주 바빴겠네? 위아래로 상사들 봉사하느라. 어쩐지 요즘 살이 빠졌다 했어. 아주 걸레가 다 됐어."
"죄...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때리지 마세요..."
보윤이 눈물을 흘리며 빌자, 박 차장은 씩 웃으며 그녀의 볼을 톡톡 쳤다.
"잘못하긴 뭘. 오히려 잘됐지. 윤 대리, 우리끼리 눈치 볼 필요 없잖아. 스케줄 겹칠까 봐 걱정 안 해도 되고. 어차피 공공재인데 같이 쓰면 더 좋지."
공공재.
그 단어가 보윤의 이마에 붉은 낙인처럼 찍혔다.
누구나 쓸 수 있는 물건.
주인이 없는 공중변소.
윤 대리가 눈을 번들거렸다.
"그럼 팀장님, 오늘 날 잡은 김에... 같이 한번 가시죠? 저 항상 해보고 싶었거든요. 3P."
"오... 그거 좋지. 나도 혼자 하긴 좀 벅찼는데, 네가 도와주면 아주 재밌겠어. 오늘 아주 뽕을 뽑아보자고."
두 남자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하며 건배를 했다.
짠.
그들의 시선이 동시에 보윤의 몸으로 쏟아졌다.
하나의 먹잇감을 두고 경쟁하던 하이에나들이, 이제는 효율적인 협동 사냥을 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5. 지옥행 급행열차
"가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제대로 판 깔자. 침대 넓은 데로."
박 차장이 벌떡 일어났다.
윤 대리가 보윤의 팔을 잡아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보윤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지만, 두 남자는 그녀를 짐짝처럼 들어 올려 부축했다.
"보윤아, 오늘 계 탔네. 오빠 두 명한테 동시에 사랑받고. 좋지? 오늘 네 구멍 쉴 틈 없겠다."
윤 대리가 보윤의 귓가에 혀를 날름거리며 속삭이고는 엉덩이를 쥐어짰다.
박 차장은 보윤의 가슴을 주무르며 콧노래를 불렀다.
4차는 모텔이었다.
편의점도, 술집도 아닌, 월풀 욕조와 킹사이즈 원형 침대가 있는 VIP 특실.
모텔로 들어가는 엘리베이터 안.
전신 거울 속에 비친 보윤의 모습은 처참했다.
머리는 미친년처럼 산발이고, 립스틱은 번져서 조커 같았고, 블라우스는 반쯤 벗겨져 브래지어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눈은 약에 취한 듯 풀려 있었다.
그리고 양옆에는, 오늘 밤 보윤을 갈기갈기 찢어발길 두 마리의 굶주린 짐승이 입맛을 다시며 서 있었다.
그들의 바지 앞섶은 이미 불룩하게 솟아 있었다.
'도망쳐야 해... 살려줘...'
하지만 보윤의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술 때문인지, 압도적인 공포 때문인지, 아니면... 이제는 저항할 의지조차 거세되어 체념해 버렸기 때문인지.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 열린 문 너머 복도의 붉은 조명 아래에는, 보윤이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그리고 결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새로운 차원의 지옥이 입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박 차장이 카드 키를 대고 문을 열었다.
"들어가"
윤 대리가 보윤의 등을 떠밀었다.
보윤은 침대 위로 쓰러졌다.
방문이 닫히고, 철컥 소리와 함께 도어락이 잠겼다.
이제 그녀의 비명은 이 방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