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017. 내가 진정시켜 줄게
“현태야, 일어났어? 정신이 들어?!”
“어…… 누나?”
눈을 뜨자마자 보인 건 밝은 전등과 하얀 천장, 그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서현이었다.
“오빠, 또 쓰러졌어?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옆에는 동생인 주혜도 있었다.
그녀도 현태를 보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왜 그러는데? 뭔 일 있었어?”
“무슨 일이긴. 오빠, 여기가 어딘지 알아? 응급실이야, 응급실!”
“응?”
응급실이라고?
난 병실에서 자고 있었는데?
“뭐야, 그 표정. 쓰러진 것도 모른 거야?”
“내가 쓰러졌다고?”
“그래. 언니가 오빠를 불러도 대답을 안 하길래 봤더니 혼수상태였다고!”
……진짜?
골로 갈 뻔했네.
그보다 이 장면, 어디서 많이 봤는데.
윽.
현태가 미간을 좁히며 이마를 짚었다.
두통이 느껴졌다.
꿈에서 느꼈던 그 두통.
‘꿈에서 봤던 그 여자는 서현이 아니었어.’
서현의 모습을 한 다른 누군가였지.
그리고 이젠 꿈인지도 잘 모르겠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꿈이었는지.
그 경계가 모호했다.
“다행이야……. 그래도 깨어나서…….”
서현은 엄청나게 당황했는지,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하긴, 누나 입장에서 동생이 혼수상태라면 저런 반응은 당연했다.
서현이 현태를 안았다.
그녀가 얼마나 이 몸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누나…….”
“네가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어. 다시는 널 보지 못할까 봐…….”
흐느끼는 서현.
자신도 괜히 뭉클해진다.
하지만 꿈속의 일이 너무 강렬해서 슬픔이 그다지 느껴지진 않았다.
‘위험하긴 했구나.’
설마 꿈에서 있었던 일 때문일까.
솔직히 마지막 장면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서현의 모습을 한 누군가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나 정말 괜찮아.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맞아. 오빠는 언니한테 미안 좀 해야 해.”
날카롭게 말하는 주혜였지만, 그녀도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감동적인 상황에 미안하지만 잠시 비켜줘. 장서현 의사.”
“앗…….”
그때, 누군가 응급실 병상으로 찾아왔다.
굉장히 차갑게 생긴 남자 의사였다.
저번에 봤던 남자들 이후로 본 세 번째 동성이었다.
남자 의사들은 연구실에서 잘 안 나온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장현태 환자.”
“네, 네.”
의사가 굉장히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서현은 그를 본 순간 눈물을 멈추고 굉장히 경직된 자세로 서 있었다.
“최대현 교수님…….”
세린과는 다른 호칭이었다.
서현은 세린을 선생님이라 불렀지만, 그는 교수라고 불렀다.
아마도 친근함의 차이가 아닐까.
“2시간 정도 혼수상태였더군.”
“네, 네…….”
현태도 그가 풍기는 카리스마에 위축됐다.
이 사람은 뭔가 다르다란 생각이 확 들었다.
“이번에는 단순한 기절이 아니라 위험한 상황이었어. 운이 나빴다면 다신 깨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지.”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아니. 나한테 죄송할 필요는 없다. 다만, 너는 우리 병원의 귀중한 존재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큰 손실이 나겠지.”
세린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자신이 성 기능이 퇴화하지 않은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도 대충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는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최근에 힘든 운동을 한 적이 있나?”
“어…….”
하긴 했지.
섹스.
그것도 여러 명이랑.
차마 그건 말을 못 하겠고.
“체력 좀 길러보려고 팔굽혀펴기를 했는데 혹시 원인이…….”
“그것도 원인 중 하나일 수도 있겠지. 다행히도 지금은 정상이야. 안정을 취하는 게 좋겠군.”
대현은 무표정으로 빽빽한 글씨가 적힌 종이를 바라보았다.
“장서현 의사.”
“네. 교수님.”
“동생이니 이후 관리는 너에게 맡기지. 우선 새 링거팩을 가져와.”
“알겠습니다.”
“그리고 거기 너.”
대현이 주혜를 보며 말했다.
“여긴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통행증은 발급받았나?”
“그, 그게…….”
주혜가 움찔했다.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제가 데려왔습니다. 마음이 급해서…….”
“그렇군. 마음에는 그러지 마.”
“네. 주혜야 잠시 응급실 밖에서 기다릴래?”
“으, 응.”
주혜는 가방을 챙기고 후다닥 응급실을 나갔고, 서현은 링거팩을 가지러 갔다.
그렇게 현태와 대현 둘만이 남았는데.
상당히 불편한 자리였다.
“세린 의사가 네 이야기를 하더군.”
“네?”
“그녀가 가져온 정액은 최상품이야. 연구 가치가 엄청나지.”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연구에 협조해 줘서 고맙다.”
대현은 세린이 어떻게 정액을 담아서 갔는지까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런 의미해서 한 가지 조언을 하지.”
대현이 보고서를 팔에 끼우며 말했다.
“그녀를 조심하게.”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유유히 떠났다.
그녀를 조심하라고?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누굴 말하는 건지.
무척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 ⁕ ⁕
현태가 응급실을 나온 건 저녁 10시가 넘어서였다.
1시간 동안 링거를 더 맞았고, 몸에 아무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올 수 있었다.
병실로 돌아온 현태는 한숨을 내쉬며 병상에 걸터앉았다.
그때.
“현태야.”
“누나?”
서현이 병실에 들어왔다.
“퇴근 안 해?”
“오늘은 현태랑 같이 자려고.”
응?
같이 잔다고?
“누울 곳은 하나밖에 없는데? 주혜는 어쩌고?”
“주혜는 먼저 돌아갔어. 나도 같이 가려고 했는데, 현태 네가 너무 걱정돼서.”
서현이 볼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안 될까?”
“안 될 건 없는데, 불편하지 않아?”
“현태만 괜찮다면 같은 병상을 쓰려고 했어.”
뭔가 이상할 것 같은데.
물론 가족이니까 같이 잘 수는 있지만.
계속 꿈속의 장면이 뇌에 맴돌았다.
“알겠어.”
“고마워. 그럼 일찍 자자.”
서현이 불을 끄고 가운을 벗었다.
굉장히 야릇했다.
현태는 속으로 애국가를 부르며 발기를 가라앉혔다.
“누나랑 같이 자는 건 오랜만이지?”
“그, 그러게.”
“후후, 어릴 때는 항상 같이 잤는데.”
어렴풋이 기억이 나긴 했다.
원래 몸 주인이 아니다 보니 무언가를 기억하려면 뇌를 굴려야 했다.
“같이 씻기도 하고.”
“그건 진짜 어릴 때 아니야? 초등학교 때잖아.”
“기억하고 있구나.”
서현이 천천히 병상에 올라갔다.
병상이 신기한 게 1인용은 아니었다.
그래서 옆에 1명 정도는 더 누울 수 있었다.
현태는 서현의 가슴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실수로 만지면 어떡하지.
‘이게 맞나?’
지금 생각해보니 누가 보면 곤란한 장면이었다.
가족이라고 해도 이성이 같은 병상에 누워 있으니까.
“현태도 누워.”
“어? 응.”
게다가 이 침대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면 괜히 아랫도리가 움찔했다.
……팬티도 조금 보이고.
현태와 서현은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다.
“현태야.”
“어.”
“세린 선생님의 진료는 어땠어?”
“으, 응?”
현태가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을 말할 순 없었다.
“의외로 친절하시더라.”
“그렇구나. 난 조금 걱정했어. 세린 선생님은 바이러스를 연구하시는 분이니까 널 차갑게 대하면 어쩌나 싶었거든. 괜한 걱정이었구나.”
서현은 굉장히 안심한 표정이었다.
‘착한 걸 넘어서 이 정도면 천사가 아닐까.’
아무리 동생이라지만, 이렇게까지 간호하는 누나가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스윽.
서현이 현태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잠시만 손잡아줄 수 있을까?”
“왜?”
“혹여나 현태의 손이 차가워지면 몸에 문제가 생긴 거니까. 바로바로 확인하고 싶어서.”
그런 거라면야.
서현이 뒤이어 말했다.
“……그리고 현태 너랑 손잡고 싶어.”
아마 이게 본심인 듯했다.
“빨리 현태 몸이 나아야 연애도 하고 그럴 텐데.”
“딱히 관심 없어.”
“혹시 바이러스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지금은 몸 회복에 집중하고 싶다는 거야.”
서현이 작게 웃었다.
“장난이야. 현태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넌 정직하니까.”
“…….”
“현태는 어떤 여자가 취향이야?”
가슴 크고 예쁜…… 이라고 하면 안 되겠지.
현태는 별 생각 없이 답했다.
“누나 같은 사람?”
“앗…….”
잠깐.
현태는 서현을 힐끔 바라봤다.
그녀의 볼이 붉어져 있었다.
“현태도 참…….”
“자, 장난해본 거야. 이상형이 너무 많아서 고민이네. 하하!”
분위기가 어색했다.
스륵.
서현이 방향을 돌려 현태를 바라봤다.
“왜 그렇게 봐?”
“그냥. 현태 자는 모습 보고 싶어서.”
“부담스러운데…….”
“조금만 볼게.”
잠이 안 올 것 같다.
서현은 현태의 누운 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현태야.”
“왜.”
“사랑해.”
……?
갑작스러운 말을 꺼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현태.
“물론 가족으로서. 주혜도 사랑하고.”
오해할 뻔했잖아.
현태가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하는데.
스윽.
서현이 먼저 현태의 심장에 손을 올렸다.
“심장이 빨리 뛰고 있어.”
“그거야 누나가 갑자기 사랑한다고 하니까…….”
“후후, 현태는 남자네.”
일부러 그런 건지.
남자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어차피 그렇고 그런 상황은 안 일어나겠지만.
“……잘게.”
“응. 잘자.”
현태는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서현의 숨소리가 들렸다.
그녀 역시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 ⁕ ⁕
다음날.
아침에 되고 현태가 일어났다.
옆에 있던 서현은 어디 가고 없었다.
〔현태야. 나 먼저 갈게. 약 챙겨 뒀으니까 오전에 꼭 먹어야 해.〕
일이 있으니까 먼저 병실을 나간 서현.
현태는 탁자 위에 올려진 알약을 확인했다.
〔아, 그리고 오늘은 외부 간호사를 불렀어. 오늘 하루 동안 현태 옆에 있을 거야. 현태 네가 아는 사람이니까 만나면 놀랄 거야.〕
외부 간호사, 아는 사람.
누군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현태가 알약을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시는데.
드륵―
누군가 병실로 들어왔다.
검은색 간호사 옷을 입은 여자였다.
단발에 분홍색 머리카락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역시 가슴이 컸다.
“현태야! 오랜만이야!”
그녀는 현태를 알고 있었다.
핑크 머리의 간호사가 현태에게 달려오더니 냅다 그를 끌어안았다.
“정~말 보고 싶었어!”
“우왓! 물 쏟아져!”
촤악―
그녀의 행동으로 현태는 들고 있던 물컵에 담긴 물을 쏟았다.
하필이면 핑크 머리 간호사의 가슴에.
“차가워! 다 젖었어.”
“조심하라고 했잖…….”
스륵.
가슴이 물로 흥건해지자 핑크 머리 간호사가 갑자기 상의를 벗기 시작했다.
뭐라 말하기도 전에 다 벗었는데.
‘……노브라?’
상의 다음으로 있어야 할 브래지어가 없었다.
곧바로 맨 가슴이 드러났고, 현태의 눈에 확 들어왔다.
“잠깐! 왜 갑자기 옷을 벗는 건데?”
“에이, 우리끼리 뭘 그런 걸 신경 써. 자주 있던 일이잖아?”
자주 있었다고?
노출증이라도 있는 건가?
다시 입기야 했지만.
“……현태야.”
“왜.”
“너 거기 발기해 있어.”
진짜였다.
가슴을 봐서 그런지, 아니면 자고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는 몰라도 텐트가 쳐져 있었다.
너무 빨딱 서서 제대로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좀 아팠다.
‘평소 이상으로 발기된 느낌인데.’
현태의 볼록한 텐트를 본 핑크 머리 간호사가 냅다 이불을 치웠다.
“뭐, 뭐 하는 거야?”
“너무 괴로워 보여서 내가 도와주려고.”
핑크 머리 간호사가 현태의 바지를 벗겼다.
굉장히 불거진, 현태의 자지를 본 그녀가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 오늘은 내가 하루 동안 널 돌볼 거니까 이런 건 나한테 맡겨.”
핑크 머리 간호사가 현태의 자지를 손으로 잡더니 혼란스러운 상황에 따라갈 틈도 없이 그녀가 천천히 입을 벌렸다.
“현태야, 내가 진정시켜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