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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화 season2. 32. 이거, 물건일세(2)


season 2 32. 이거, 물건일세(2) 문밖이 잠깐 소란스러웠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회장님, 어서 오십시오!” 몇 명 되지도 않는 사무실에 우렁찬 인사가 연이어 울리더니 열린 문으로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장년 사내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로 비서나 수행원으로 보이는 건장한 사내 둘이 뒤따라 들어왔다. “아버지. 연락도 없이 갑자기 어쩐 일이세요?” 김하익이 안절부절 김종태 회장을 맞았고, 기찬은 적당히 눈치껏 일어서서 살짝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노(老) 회장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기찬에게 확 쏠렸다. 워낙 키가 커 앉아 있다가 일어서기만 해도 시선을 끌었다. 게다가 한눈에 보기에도 다부진 체격과 잘생긴 얼굴이 여지없이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잠시 기찬을 살펴보던 김종태 회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성기찬이로구나.” 어떤 경로로 알게 된 것이든, 기찬을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예를 갖추고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회장님. 성기찬입니다.” 그런데, 장년의 사내는 다짜고짜 기찬의 손을 덥석 잡았다. “……?!” 기찬은 속으로는 흠칫했지만, 겉으로는 동요 없이 태연했다. 보통 그런 경우라면 놀라 손을 빼거나 주춤 뒤로 물러섰을 텐데, 기찬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회장이 하는 대로 두었다. 아주 찰나였지만, 그 태연함이 인상 깊었는지, 아니면 그의 커다랗고 단단한 손 때문인지, 김종태가 감탄하듯 말했다. “사내로구나.” 그러고는 그만 기찬의 손을 놓고 소파 상석에 가 앉았다. 그제야 김하익도 따라 앉으며 다시 한번 방문 이유를 물었다. “여기는 안 오시기로 하셨잖아요. 더구나 이렇게 갑자기….” 하지만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야 했다. 김종태의 서늘한 시선 때문이었다. “날 이리로 오게 만든 건 네놈이다. 모른다고 잡아떼보던가.”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김하익도 그걸 잘 알기에 변명을 늘어놓는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붉어진 얼굴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기찬은 불편한 공기 속에서도 김종태 회장의 기도에 적지 않게 놀라는 중이었다. ‘확실히 김하익이 댈 데가 아니구나.’ 그가 사장실로 들어서고 몇 분 지나지도 않았다. 별다른 행동이나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건 말 그대로 기세였다. ‘그가 살아온 세월의 무게감이겠지.’ 기찬은 전생에도 그를 본 적이 있었다. 수도권에서 김종태 회장의 돈을 안 받아 쓴 조폭들이 없었기에, 조직 말단에 있던 그도 먼발치에서나마 봤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과 같은 기운을 느끼지는 못했다. 워낙 멀리에서 봤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때와 지금의 처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전생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나도 살아낸 세월이 있으니까.’ 산전, 수전, 공중전을 다 엮어 생각하면 결코 김종태 회장에게 밀리지 않을 삶이었다. 기찬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김종태 회장이 다시 기찬을 바라봤다. 쩔쩔매는 망나니 막내 아들과 비교되는 당당함이 자꾸 시선을 잡아끈 것이다. “서울대, 그것도 의대 다닌다고.” “네. 올해 2학년입니다.” “복싱은 왜 그만두고.” 기찬은 속으로 살짝 놀랐다. 자신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보고는 있었을 거로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자세하게 알고 있다는 게 의외였다. ‘아무리 제 자식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아직은 고작 대학생일 뿐인데….’ 김종태 회장의 꼼꼼함과 주도면밀함이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때 부분 기억상실 증상 때문에….” 몇 마디 질문과 답을 주고받던 김종태가 잠깐 말을 멈추고 다시 기찬을 뚫어지게 살폈다. 기찬은 멋쩍어하거나 민망해하지 않고 회장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런데, 뜻밖의 말을 듣게 됐다. “너, 내 밑에서 일해라.” 그럼에도 기찬은 조금도 당황한 기색 없이 정중한 태도로 거절하며 대답했다.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저는 의사가 되려고 의대에 입학했습니다.” 김종태 회장도 언짢음 없이 곧장 반론을 폈다. “누가 학교 때려치우라고 했나. 졸업하고 와.” “…….” 이번엔 기찬이 즉답하지 않았다. 대신 어떤 의미인지 알아듣지 못했다는 듯, 회장의 눈을 가만 바라봤다. 그러자 그는 기꺼이 설명을 풀어주었다. “여기 이놈, 고대 정치외교학과 졸업했다. 그리고 이놈은 성대 법학과 출신이고.” 김종태는 자신의 뒤에 시립 해있는 두 건장한 사내를 차례대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면서 김하익 뒤에 서 있는 이태석마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놈도 원래는 내 밑에 있던 녀석인데, 용인대 경호학과 출신이야. 다들 각자 가려던 길이 있었지만, 결국 다 내 밑으로 기어들어 왔다.” 말미에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그 서늘한 눈으로 기찬을 노려보듯 하며 물었다. “왜 그랬을 거로 생각하나?” 기찬은 잠깐 생각하는 듯 싶더니, 편하게 생각한 바를 내놓았다. “선배님들 생각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라면 두 가지가 맞아야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질문을 던지면 답해야 하는 사람은 보통 질문의 의도가 궁금하기 마련이다. 그걸 찾으려고 열심히 눈알을 굴린다. 그런데 기찬은 오히려 질문한 이에게 답을 궁금해하도록 만들었다. ‘호오. 이놈 봐라?’ 기찬도 회장의 심정 변화를 느꼈다. 오명환의 제자로 명함을 내밀게 되면, 분명 김종태는 적이 되는 관계다. 그런 그에게 일단 호감을 심어준 건 뜻밖의 큰 소득이었다. ‘나를 함부로 치지는 못하겠지. 갖고 싶을 테니까.’ 물론 위험도 함께 커진 건 사실이다. 김종태라는 사람의 성향상, 자신이 갖지 못하면 부수려고 할 테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에서 줄다리기를 잘해야 했다. 그리고 그 부분은 자신있었다. “그래. 그 두 가지가 뭐냐.”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김 회장이 기찬에게 넌지시 물었다. 기찬은 입을 여는 그 순간까지도 대답을 고민했다. 뻔하지만 안전한 답을 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색다르지만 호불호가 있는 답을 내놓을지. “보통은 명예욕이나 권력욕, 아니면 돈 욕심이 자리를 정하는 기준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일반론으로 밑밥을 깔았다. “저도 그게 현명한 판단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앞서 ‘저라면’이라는 단서를 붙인 이유는,” 잠깐 말을 끊고 그윽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김종태 회장의 눈치나 호흡을 살폈다. 꽤 기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그 가치에 걸맞게 나를 쓸 줄 아는 사람 밑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는,” 기찬은 김종태 회장의 성격이나 성향을 잘 알기에 자신 있게 말을 이어갔다. “저의 성장을 기꺼이 도와주거나 인정해 주는 사람이라면, 다른 고민 없이 모실 생각입니다.” 어쩌면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치기처럼 느껴질 수 있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아직 스물한 살이기 때문이다. 기찬의 대답 뒤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김종태의 코웃음이 정적을 거둬냈다. 흥. “그렇게 생각한다는 녀석이, 내 제안을 거절하면서 저런 놈 밑에서 일해? 어디 말 같지도 않은….” 다부진 장년의 시선이 김하익에게 가 닿아있었다. 고작 그런 놈이라는 게 제 아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하익의 귀가 빨개졌다. 그래도 사장인데, 아랫사람들 앞에서 하찮은 놈 취급을 받아 수치심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기찬은 굳이 그런 김하익을 두둔하거나 추켜세워줄 생각은 없었다. 사람 보는 안목이 형편없다고 평가받으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대신 변명은 필요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의사가 될 생각입니다. 김하익 사장님과는 어디까지나 계약 관계에 의한 고용주와 고용인일 뿐입니다.” 하지만 충분한 변명이 되지 못했는지, 회장의 질문이 이어졌다. “의사 된다는 녀석이 왜 엉뚱한 데서 일을 하나. 한 길 가기도 버거운 세상.” 적절한 지적이었지만, 기찬은 이미 예상에 두고 있던 질문이었다. 사실 그는 이런 흐름을 의도하고 있었다. “과분한 평가에 대한 나름의 보답입니다. 저를 고용하고 싶다는 진심을 충분히 느꼈고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기찬의 대답은 막힘없이 시원시원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김종태 회장은 혀를 찼다. “어린 녀석들은 이게 문제야. 세상 거칠고 험한 걸 몰라. 은덕이니 은혜니, 그딴 달콤한 말로 관계를 아름답게 보려고만 하니 원. 쯧쯧.” 기찬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자연스럽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질문을 유도했는데, 마침 지금 그 질문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잘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저는 철저하게 이익이 되는 계산적 판단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기찬의 웃음기 어린 대답에 김종태가 호기심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계산적이었다고? 그것도, 이익을 남기는 계약이었다?” “네.” 마침 김하익의 표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입술을 오므리며 웃음을 참는 듯한 모습이었다. 계약 내용의 진짜 의미를 까맣게 모르고 있는 기찬 때문이었다. ‘저 병신 같은 표정, 참 꼴 보기 싫네.’ 기찬은 그런 김하익의 표정을 보며, 계약서가 지금 이 자리에서 공개된 후 표정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했다. “솔직히 너무 과분한 계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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