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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화 season2. 44. 개강 파티(4)


season 2 44. 개강 파티(4) 기찬은 다급하게 앞을 막아선 유세현을 무심한 눈으로 잠시 바라봤다. 노려보는 것도 아니고, 비키라느니 어쩌니 입을 연 것도 아니었지만, 세현은 기찬의 기세에 눌려 곧바로 눈을 깔았다. 그 순간 기찬은 그를 툭 치고 지나가 룸 안을 들여다봤다. 안의 상황을 보니 여자가 소파에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기찬은 잠깐 생각했다. ‘아무 일도 없었을 리가. 똥개가 똥을 끊지.’ 눈을 조아리며 좀 더 자세히 여자와 주변을 살폈고, 곧 여자 얼굴이 엉망이라는 걸 확인했다. 그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당황스러웠을 텐데, 나름대로 대처를 잘했네. 하지만 넌 덫에서 벗어날 수 없어.’ 기찬은 여전히 무심한 눈으로 세현을 돌아봤다. 그의 어깨는 잔뜩 움츠려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저 여자, 뭔데?” 그 질문에 유세현이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이내 뻔뻔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안 그래도 그 말을 하려고 한 거야.” 입술이 바짝 마르는지, 혀로 입술을 한번 훔치더니 입을 털기 시작했다. “숙대 다니는 여자애들인데, 우리가 여길 통으로 빌린 줄 모르고 들어왔다가….” 여자들이 한 말 그대로를 읊어대던 세현은 이후 그녀와 함께 술을 마시며 대화한 게 전부라고 강변했다. “그런데 화장실 갔다가 들어와 보니까 그새 취해서 잠들었더라고. 술 공짜라니까 아주 환장하고 퍼마시더라니….” 기찬은 조악한 거짓말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이제 그를 다그쳐 스스로 무덤을 파게 할 때였다. “시끄러워서 뭐라는지 하나도 안 들려. 일단 들어와.” 기찬이 룸으로 성큼 들어가자, 세현이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룸으로 따라 들어서며 문을 닫았다. 그는 문이 닫히자마자 이러쿵저러쿵 변명을 쏟아냈다. 하지만 기찬은 그 말들을 귓등으로 듣다가 말을 자르고 물었다. “그런데, 여자애들? 그러면 저 여자 혼자가 아니야? 또 있어?” 그러자 유세현이 당황해 말까지 더듬었다. “어, 하, 한 명 더, 더 있는데, 화장실 갔어.” 기찬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며 일단 숨통은 트여주기로 했다. “그렇단 말이지? 하, 나 참. 뭐 이런 경우가 다….” “내, 내말이!” 기찬의 말에 얼른 맞장구를 친 세현은 급한 고비는 넘겼다는 듯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기찬이 기습이라도 하듯 물었다. “근데, 저 여자 얼굴은 왜 저래? 누구한테 맞기라도 한 것처럼.” “어?” 유세현이 다시 한번 경기를 일으켰다. 기찬은 번번이 깜짝깜짝 놀라는 그의 반응이 재밌기까지 했다. ‘이거 의외로 놀리는 맛이 있는 녀석일세.’ 똑같은 개자식이지만, 허동훈과는 다른 허당끼가 있었다. “설마 네가…?” 의심의 눈초리에 그는 거세게 손사래를 치며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 아니야! 들어오니까 저러고 있었어!” 기찬은 흔들리는 그의 멘탈에 쐐기를 박았다. “이 새끼. 너 혹시 저 여자 강간했냐?” 그러면서 손으로는 그의 주머니에 삐죽 나와 있는 여자 속옷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하얀 속옷에는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서둘러 흔적을 치운다고 치웠지만, 꼬리를 밟힌 것이다. 헙. 그는 너무 놀라 들숨을 쉬고는 내뱉지를 못했다. 얼굴까지 창백해진 것이, 기찬의 눈빛에 숨도 못 쉬는 듯 보였다. 그러다가 눈을 질끈 감더니 무릎을 꿇었다. 털썩. “기찬아, 나 취해서 그랬어. 정말 기억이 잘 안 나. 한 번만 모른 척해 줘!” 결국 세현은 더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빼도박도 못할 증거가 나왔으니 별수 없었다. 기찬이 녀석에게만큼은 고개 숙이고 싶지 않았던 그였지만,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내세울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기찬은 여전히 냉담했다. “모른 척? 내가 왜?” 세현은 눈앞이 캄캄했다. 한다면 하는 기찬의 성격을 아는지라, 그가 어떻게 일을 처리할지 너무 자명했다. 이 일이 알려지기라도 하는 날엔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된다. 아니, 학교가 문제가 아니라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공포는 아버지에게 죽기 직전까지 맞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세현이 기찬의 다리를 붙들었다. “미안해. 사실, 동훈이가 너한테 복수한다고 이런저런 것들을 준비하고 있어. 나한테 시킨 일들도 여럿 있고.” 기찬은 그가 거래를 시도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세현은 알아서 비밀을 전부 털어놓고는 천천히 기찬을 올려다보며 간절하게 말했다. “네가 이 일만 눈감아주면, 시키는 일 다 할게. 평생 너한테 은혜 갚으며 살게. 진짜야!” 기찬은 그의 눈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세현도 이번에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마치 충성을 맹세하고 진심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렇다고 기찬이 그의 말을 믿지는 않았다. ‘네가 나한테 은혜를 갚으며 살아? 지랄.’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뻔한 거짓임을 너무 잘 알았다. 하지만, 그를 수족으로 부릴 기회를 만든 건 사실이었다. ‘너무 쉽게 덫에 걸려들어 좀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기찬은 세현에게 넌지시 물었다. “지금 한 말, 지킬 수 있어?” 그 질문이 마치 구원이라도 되는 양 세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무, 물론이지! 뭐든 말만 해! 하라는 대로 다 할 테니까!” “너, 네가 말한 그 일들, 동훈이한테 할 수 있어?” “… 도, 동훈이한테?”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세현을 보며, 기찬은 다시 한번 속으로 웃음을 삼켜야 했다. 뭐라고 대답해도 곤란해지는 건 정작 세현 자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하겠다고 대답할 것임을 알기에 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럼! 할 수 있지! 네가 시키면 할게!” 세현은 진심으로 큰 각오를 하고 한 대답이었다. 빈말이라는 걸 하지 않는 기찬이었기에, 정말로 일을 시킬 거로 생각했다. ‘일단 하겠다고 해야지. 그다음 일은 나중에 다시 생각하자.’ 기찬이 무서운 만큼, 동훈이도 두려운 게 사실이었다. 사자에게 느끼는 공포와 뱀을 보고 느끼는 두려움의 차이 정도일뿐, 둘 다 제가 감히 맞설 수 없음을 본능이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일단 살고 보자는 생존 본능이 가장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기찬은 그런 세현의 심리를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고양이도 쥐를 구석에 몰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한발 물러서 주기로 했다. “일단, 여기 정리를 먼저 해야겠다. 다른 애들이 보면 안 되니까. 넌 홀에 있으면서 이쪽으로 오는 애들 있으면 막아.” “어? 어! 그, 그래! 고마워 기찬아!” 세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기찬을 와락 안으려다 말고 엉거주춤했다. 결국 감히 안기지는 못했다. 그저 어정쩡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돌아서서 홀로 나갔다. 세현이 사라진 후, 방에 홀로 남은 기찬이 주머니에서 녹음기를 꺼내 녹음을 멈췄다. 딸깍. “이건 허동훈에게 보내면 되고.” 그러고는 룸 구석에 짐을 쌓아놓은 틈에서 녹화 중인 캠코더를 꺼내 확인했다. 재생한 화면 안에는 여자들과 술을 마시는 때부터 강간하고 폭행하는 장면, 주변을 깨끗이 치우는 장면까지 다 담겨있었다. “녹화도 잘 됐고.” 만족스러웠다. 이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김종태와 김하익에게 배운 방법으로 여럿 잡게 생겼다. “좋은 건 공유해야지.” 훗. 기찬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고는 기절해 잠들어 있는 여자를 보며 뒤늦게 생각했다. ‘그나저나, 송지연에게는 좀 미안하네. 사람을 다치게 했으니.’ 세현의 폭력 성향을 알고 준비한 덫이었지만, 예상을 벗어난 사고였다. 몇 대 때리고 말 줄 알았더니, 저리 심하게 만들어 놓을 줄은 몰랐다. ‘보상을 해야겠지. 저 여자나, 송지연에게는….’ 그 보상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얻은 게 얼만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룸 문이 열렸다. 덜컥. 고상민이 들어왔다. 그는 기찬을 보고 멈칫했다. “어?” 기찬은 그에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했다. “세현이 찾아?” 그는 대답도 못 하고 놀란 채로 고개만 끄덕였다. “방금 홀로 나갔어.” “그, 그래? 고, 고마워.” 기찬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비릿한 그의 미소는 상대에게는 섬찟함이었다. 그래서인지 고상민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허접한 새끼. 뭐가 고맙단 건지.” 고상민이 나가고, 얼마 안 있다가 그와 함께 나갔던 다른 여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얼굴이 잔뜩 부은 채로 소파에 누워 있는 제 동료를 보며 잠깐 놀라더니, 의외로 금방 침착해졌다. “하아, 씨발. 좆같네.”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담백하게 욕을 박아주고는 기찬에게 다가와 녹음기를 건넸다. 기찬은 별말 없이 녹음기를 받아 들었고, 두 사람의 눈빛이 잠깐 마주쳤다. 서로 말없이도 의미를 이해했고, 기찬은 뒤이어 들어온 웨이터에게 두 여자 에스코트를 부탁했다. 그러면서 십만 원짜리 수표 몇 장을 찔러넣어 줬다. “알겠습니다.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그녀를 배웅하듯 룸 입구까지 따라 나온 기찬의 눈에 홀 구석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를 속삭이고 있는 세현과 상민이 보였다. 죽상을 하고 있는 둘을 보고있자니 괜히 웃음이 났다. “뭘 그리 심각해? 즐기라고. 친구들.”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미래에 절로 흥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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