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뱀년(2)
-31화-뱀년(2)
뭐? 허세? 졸부? 나의 경계심과 분노는 한껏 고조되었다.
이년은 나를 우습게보고, 등쳐먹을 생각으로 가득 찬 꽃뱀.
뱀년이다.
처음 본 여자에게 스킬을 사용해 쓰리섬을 시도하려는 것에 대해 가졌던 일말의 죄책감 따위는 깨끗이 사라졌다.
‘이년은 쓰리섬이 아니라 갱뱅으로 걸레를 만들어도 시원찮아!’
바텐더가 세팅해준 위스키를 뱀년과 나누어 마시기 시작했다.
“이 로얄 000은 영국 황실에서 귀빈 만찬을 위해 만든 거잖아요? 지성씨 덕분에 왕세자비가 된 것 같네요.ㅎ"
"네.ㅎ“
대충 웃음으로 대답한 나의 생각은 이미 다른 곳에 빠져 있었다.
뱀년을 쓰리섬으로 조져 버리기 위한 작전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독심술과 동작정지, 그리고 최면술의 쓰리콤보는 강제플을 완성하는 최강조합이다.
여기서 독심술과 최면술은 강제플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제거하기 위한 안전장치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독심술 스킬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독심술을 쓰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마음을 읽지 못하는 섹스돌과 같은 뱀년을 마음대로 유린했을 때, 이 년이 나중에 보복할 수 있는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까 매니저로 최면술의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한을 막기 위한 최면술 사용은 필수다. 한계를 확인 한 만큼 최대한 강력하게 최면을 걸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독심술과 최면술 외에도 후한을 막을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았다. 협박을 할 수 있는 소재를 잡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이렇게 후한에 대한 대비를 가장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강제플을 실현시키는 핵심 스킬은 동작정지다.
그리고 동작정지 스킬을 쓰기 위해선 내 호텔방으로 끌고 올라가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내 방까지 이 뱀년을 끌고 올라가는 게 플랜의 첫 단계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생각 하세요? (뭐지. 갑자기 시큰둥해 보이네?)”
“네? 아. 그냥.”
작전을 생각하느라 대화의 흐름을 놓치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운 분과 대화를 하다 보니 넋을 잃고 말았네요.”
이빨을 대충 털었다.
“칭찬이 익숙하시네요? 역시 비즈니스 하시는 분이군요.ㅎ 빈 말이어도 기분은 좋아요.ㅎ(완전히 넘어 오려면 시간이 걸릴 거 같네. 좀 더 대화를 풀어가 보자.)”
역시, 뱀년은 눈치도 백단이다. 대충 말한 칭찬에 절대 넘어가지 않고 반대로 나의 심리를 파악하려 한다.
나는 일단 진심으로 상대에게 호감을 가진 연기를 하기로 했다. 그 연기에 뱀년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면서 이 년을 보다 면밀히 파악해 보기로 했다.
“오우! 비즈니스라뇨! 진심입니다!”
“정말요?ㅎ (과연.ㅎ)”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오버를 떨었고, 이내 쑥스러운 듯 더듬거리며 말했다.
“네... 제가 일에 파묻혀 살다 보니 여성분과 이렇게 대화할 시간을 가져 보지 못했네요. 거기다 이런 미인 분과는 더욱 더... 아직까지 좀 당황해서 그렇습니다...”
얼굴을 붉히며 위스키를 급히 들이켰다.
사업적 능력은 있지만, 여자에겐 쑥맥인 사업가 설정.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뱀년이 먹잇감으로 삼기 딱 좋은 상대로 보이려 했다.
“열정적으로 사시는 것 같아요. 멋져 보이네요~ (음. 생긴 거와 다르게 의외로 숙맥인건가?)”
뱀년도 여자의 본능이란 레이더로 나를 탐색하고 있다.
나는 내 배역에 진심으로 몰입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서로를 속고 속이는 초식을 주고받는 무림 고수들 간의 대결 같았다.
“하. 멋져 보인다니... 좀 부끄럽네요. 그 정도는 아닙니다.”
머리를 긁적이며 내 잔에 술을 따랐다. 그리고 상대의 잔이 비었는지 살피지도 않고 술을 따르려다 술잔이 채워진 것을 확인하고 주저하는 모습을 연기했다.
일부러 여자 앞에서 여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뱀년이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살짝 미소 짓는 것을 캐치하였다.
“뭔가에 몰두한 남자는 어떤 여자가 봐도 멋있어 보여요.ㅎ (의외로 순진하네?ㅎ 굿!)”
나의 전공이 연기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존경하는 봉 감독의 영화 촬영 현장이라 상상하며 내가 만든 배역에 더욱 깊게 몰입했다.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하네요...”
쑥스럽게 겸양을 떤 후 씨익 웃어 보였다.
뱀년은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잔을 들었다.
나는 뱀년의 잔에 내 잔을 부딪치고 분위기 있는 척 니글거리는 눈빛을 쏘아 보내며 위스키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아름다운 소현씨를 위하여~”
“ㅎ순수한 매력이 있는 분 같아요. (전형적으로 여자 앞에서 쌘 척하려는 찐따 스타일인가?ㅋ 오늘 사냥감 제대로 잡은 거 걸지도?ㅋ)"
이 년아, 네가 내 사냥감이야.ㅋ 아냐. 이런 딴 생각은 그만하자. 캐릭터 자체가 되는 메소드 연기를 해야 해.
“순수요? 훗. 사업가에게는 칭찬이 아닌데요?”
“아! 그런 뜻은 아니에요. 이성적인 부분에서 그렇다는 거예요~ (ㅎ역시 쉽게 발끈 하는 것도 완전 전형적이네.ㅎ 너무 자기중심적이어서 제대로 된 연애를 못해 본 모쏠 스타일.ㅎ 인물도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왜 이 모양일까?ㅎ)”
“이성적인 부분이요? 흐흐.”
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훗. 뭐. 그래도 역시 남자의 매력은 능력 아닐까요~?”
“물론 그렇죠~? (ㅎ좋아. 살살 휘감아 보자.)”
“제가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살아 보니 그렇더군요. 결국 남자는 능력과 결과로 자신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게 남자의 인생인 거 같더군요.”
나는 젊은 꼰대 캐릭터였다.
자기 분야에서의 성공에 도취되어 남을 가르치기 좋아하는 자신감 넘치는 사업가. 그 자신감을 감추지 못하고 드러내는 방식으로 여성에게 매력을 어필하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순정마초.
나는 내가 창조한 캐릭터와 하나가 되었다.
“네~ 능력과 결과로 자신을 증명해 오신 분 같아요. 정말 멋져요. 진심으로요. (ㅎ이런 놈은 칭찬만 해주면 정신을 못 차리지.ㅎ)"
“후훗. 뭐. 운이 좋았죠.”
“운도 실력인 거죠~”
“그렇다고 할 수 있죠? 훗."
뱀년은 색기가 흐르는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들었다.
나는 잔을 마주치고 술잔을 단 번에 들이켰다.
뱀년은 입만 축이고 있었다.
술에 취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에이~ 소현씨, 술잔 안 비우기 있습니까? 그건 술자리 매너가 아니죠~”
“ㅎ.어머, 편하게 마시려고 했는데.ㅎㅎ (진짜 너무 전형적이다.ㅋ 직원 술잔 하나하나 신경 쓰는 꼰대 사장님 같잖아.ㅋㅋ)”
“에이~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 쭉!쭉!쭉~쭉!♪”
나는 어깨춤까지 추었다.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내 어깨를 봐~ 탈골 됐잖아~♪”
뱀년이 썩소를 짓는 게 보였다.
나는 푼수처럼 어깨춤을 계속 추었다.
“하하... 네... (아... 가관이네... 진짜 심하다... 직원들이 불상타 증말....)”
뱀년이 술을 원샷 했고,
나는 윙크를 하며 엄지 척을 했다.
“오올~ 잘 드시네~ 역시! 미인은 술을 잘한다는 속설이 맞네요~~?”
“하하. 그 정도는 아니에요.ㅎ (이 만년 부장 같은 센스 어쩔... 진짜 정 안 붙는 스타일이다... 생긴 거랑 왜이렇게 달라....)”
나는 얼른 뱀년의 빈 술잔에 술을 채웠다.
“소현씨도 사업하신다고 했죠?ㅎ 사업하시는 여성분 중에 이렇게 예쁜 분은 처음 보네요! 흐흐.”
“ㅎ. 감사해요. 저도 큰 사업 하시는 분 중에 이렇게 멋있는 분은 처음이네요.ㅎ (그래. 내 할 일에 집중하자. 반한 척! 넘어 간 척!)”
“자자~ 한 잔 더 하시죠~ 서로 술이 좀 들어가야 대화도 술~술~ 풀리지 않겠어요?ㅋㅋㅋ”
“재밌으시네요.ㅎ (술이 들어가야 대화가 술술??... 하아... 진짜 드럽게 재미없네... 아냐! 웃자! 난 프로다!)”
“ㅋㅋ한 잔 하시죠~ 잼 발라 드리고 싶지만 잼은 없습니다~ㅋㅋ”
“하하하. 네. 진짜 너무 웃기시당~ (미치겠네...ㅠ)”
뱀년이 똥 씹은 표정을 웃음으로 애써 가리며 술잔을 비웠다.
나 역시 찐따 연기를 하는 게 괴로웠지만, 뱀년의 목적을 빨리 알아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만만하고 쉽게 사기 칠 수 있는 놈으로 보여야 본색을 드러낼 거라 생각했다.
독심술 스킬을 사용하는 시간대에 이 년의 목적과 작전을 다 알아내고 싶었다.
한 시간의 쿨 타임 시간까지 고려해 쓰리섬 상황으로 가야 했다.
“그런데 대표님은 자산 관리 어떻게 하세요? (그래.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미 지 혼자 한껏 들뜬 거 같으니까.)”
오케이. 슬슬 본색을 드러내는군.
“음. 그냥 돈 버느라 정신없다 보니 아직 자산 관리는 신경 쓰지 못하고 있네요.”
“저런... (진짜 순진한 놈이네.ㅋ) 그럼 저희 만남이 운명일지도 모르겠네요."
“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금융 투자 자문한다 말씀 드렸잖아요~ㅎ 제 말씀 까먹으셨구나.ㅎ (눈치도 드럽게 없네.ㅎ 아주 좋아.ㅎ)"
“아! 맞다! 그러셨죠! 정말 운명적이네요!”
“그러니까요.ㅎ 저희 회사랑 거래 좀 해보시는 거 어때요? (걸려라... 걸려라...)”
“제가 딱 사람 보면 느낌으로 아는데, 소현씨는 능력이 있는 분이네요. 그래도 사업 내용은 들어봐야죠?ㅎ 어떻게 투자금 운영 하시는데요~?ㅎ”
나는 잔뜩 흥미를 가진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 회사는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어요. 주식과 코인 모두 투자하고 있고, 연 평균 수익률 30%를 5년 째 유지하고 있어요. (좋아. 슬슬 넘어온다!)”
뱀년이 핸드폰으로 온갖 데이터를 정신없게 보여주었다.
나는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5년 전에 고등학교 친구라는 녀석이 갑자기 연락이 와 보험 상품을 설명할 때였다.
다행히 돈이 없었던 나는 보험을 들지 않았지만, 나중에 그 자식은 보험사기로 콩밥을 먹고 동창들 사이에서 매장을 당했었다.
그때 그 동창자식이 이빨을 털던 거를 생각하면, 그 자식은 조기축구, 이 뱀년은 프리미어리그였다.
“여기 보시면 확인 가능하시죠? 저희가 워낙 수익률이 좋다 보니 큰돈을 맡기시는 분들이 늘고 있어요. 그래서 수익 보장률을 낮추는 대신에 원금 보장을 하는 투자 방식으로 변환하는 시점이에요. 다른 투자 회사들이 원금 보장이 안 되는 것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큰돈을 운영하시는 큰손 분들은 원금 보장을 중요하게 생각하시잖아요?”
내가 이런 쪽으로 문외한이지만, 살살 꼬드기는 말들이 장난이 아닌 거 같았다. 그야 말로 뱀의 혓바닥이었다.
“좋네요. 그래서 어떻게 투자하면 되나요?”
나는 복잡한 데이터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관심 있는 척 했다.
“저희는 최소 10억부터 투자를 받아요. 이 자리에서 바로 투자 본 계약 체결은 어렵고, 선입금 해주시면 가계약은 진행 해드릴께요.”
“선입금이요?”
“네. 계약금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10%만으로 가계약 가능해요. 1억이요.”
세상에, 이런 쓰레기 같은 사기꾼을 봤나. 차라리 도를 믿으십니다가 이 보다는 설득력 있겠다. 처음 본 사람과 앉은 자리에서 1억을 빼 내려 하다니. 이 뱀년은 간이 배 밖으로 튀어 나온 게 아니라 아예 간이 없는 년이다.
“어떠세요? (ㅎ. 당연히 의심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진짜 올가미는 다른 곳에서 널 옭아 맬 것이다.ㅎ)”
살짝 소름이 돋았다.
역시 다른 꿍꿍이가 있구나.
이 뱀년을 띄엄띄엄 보면 안된다.
“음...”
나는 잠시 고민하는 척 했다.
“1억이 힘드세요? (ㅎ이런 게 자존심을 건드리지.ㅎㅎ)”
“하루 벌인데요. 뭐.ㅎ"
“그쵸. 그런데 저희도 거래하시는 큰 손 분들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잘 아시겠지만, 벤쳐 쪽 사업한다고 하는 분들 중에 빛 좋은 개살구 들이 많잖아요.(이것도 살살 건드리는 말이지.ㅎ)”
뱀년이 왜 이렇게 나오는 지 알 순 없었지만, 자존심이 건드려 지는 건 사실이었다.
마치 도박에서 ‘쫄리면 뒤지시든가?’ 라고 도발을 해오는 거 같았다.
“당연히 대표님이 그러실 분이라는 건 아닌데, 저희도 투자자 분의 재무 상태를 체크 한 후에야 저희의 수익 실현 노하우를 말씀 드릴 수 있는 어려움이 있어요. 이해하시죠? (ㅎ힘들게 공사 들어갔는데 빈털터리면 나도 골치지. 얼마나 빨아 먹을 수 있는 사냥감인지만 확인해 보자구~)”
이 뱀년, 내 사이즈를 재려는 거였구나. 역시 뱀처럼 교묘하네. 으. 쳐 죽일 년, 껍질 벗겨 먹을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