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누군가에게는 ‘유물’이 나에게는 ‘무기’다 (2)
레이나는 불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일레느는 그런 레이나의 표정을 즐겼다.
일레느는 레이나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 미묘하게 손을 움직이면서 자신의 가슴과 음부까지 주물렀다.
질투에 사로잡힌 레이나의 표정까지도 그녀에게는 입맛을 돋우는 반찬이었다.
‘어휴~. 진짜~.’
나는 슬쩍 딴청을 피우며 두 사람을 외면했다.
그렇게 각기 다른 뜻을 품은 눈길을 견디며 로이드를 기다렸다.
“자, 이게 제가 말한 물건입니다.”
로이드는 뭔가 길쭉한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그것을 살며시 식탁에 올려놨다.
[더-커-덩-!]
“이건!!”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나무상자는 특유의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뚜껑이 젖혀지자 안에 들어있던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활?’
그랬다.
상자에 들어있는 물건은 ‘활’이었다.
그것도 현대적인 활이 아니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국궁’이나 ‘각궁’처럼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활이었다.
“어때요? 대단하죠?”
“활이군요. 꽤 오래된 물건처럼 보이네요?”
“네. 그렇습니다. 적어도 500년은 넘은 물건이죠.”
“어머, 500년!!”
로이드가 공개한 물건에 레이나도 흥미를 보였다.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이것저것 물어보자 그는 짐짓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물건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500년이나 된 물건이라고?
그런데 저걸 왜 가져온 거지?
“그런데 이 귀한 걸 왜 가져오신 거죠?”
“아, 제가 이걸 진기 씨에게 드리기로 했거든요.”
[[“!!!”]]
레이나와 나는 놀란 표정으로 로이드와 일레느를 바라봤다.
그러나 둘의 표정에는 딱히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나도 비싸고 귀한 물건은 좋아한다고.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 유물은 무용지물일 뿐이야. 차라리 먹는 것이 더 값지다고.’
내가 의아함과 불만이 섞인 표정으로 입술을 삐쭉거리자 로이드가 손사래를 치면서 얼른 입을 열었다.
“아, 아, 단순히 유물을 떠넘기려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이걸 무기로 쓰시라고 드리는 거예요.”
무기?
확실히 활은 무기로 쓸 수 있는 도구다.
인류가 개발한 원거리 사격 도구.
그게 활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활이 쓸모가 있어도 500년이나 흐른 물건을 도대체 어떻게 쓴단 말인가?
낡고 삭아서 만지기만 해도 부서질 수가 있었다.
그런 게 유물이란 것이고, 오랜 세월을 지나온 물건의 숙명이었다.
“자. 가까이 와서 보세요. 이 녀석은 아직도 현역이라고요.”
레이나와 내 표정을 읽었는지 로이드는 선뜻 활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공중에 휘두르면서 튼튼함을 과시했다.
나는 그의 행동에 잠시 놀랐다.
하지만 곧 그가 우리에게 소중한 유물이나 골동품까지 희생시키면서 장난을 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분명 이렇게 거칠게 다뤄도 될 정도로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겠지.
‘정말 이게 500년이나 된 물건이라고? 빛깔과 광택도 살아있어.’
붉은빛이 감도는 활대는 마치 새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윤기가 가득했고, 시위도 삭은 곳이 없이 팽팽했다.
“한번 만져 보세요.”
나는 로이드가 넘겨주는 활을 받아 들었다.
손에 느껴지는 감촉도 상당히 좋았다.
어딘가 낡고 해진 구석을 느낄 수가 없었다.
정말 단단하고 매끈한 것이 ‘좋은 활’이라는 촉감만 느껴질 뿐이었다.
“어떻게 500년이나 흐른 물건이 이렇게 멀쩡할 수가 있죠?”
“같이 발견된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더군요. 용으로 만든 활이라고.”
“용?”
“네. 문서의 내용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뭔가 범상치 않은 재료로 만든 게 분명해 보이더군요.”
“그래요?”
“네. 일단 활대를 이루고 있는 물질이 무척 단단했어요. ‘수압 절삭기’나 ‘레이저 커터’로도 자를 수가 없더군요. 덕분에 아주 약간의 샘플도 얻을 수가 없었죠. 정말 아주 조금이라도 채취해서 성분을 분석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게다가 또 일정 이상의 힘을 가하니 부드럽게 휘어지는 특성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강도’ 뿐만 아니라 ‘연성’도 상당하다는 거죠.”
나는 시위를 슬쩍 튕기며 로이드에게 말했다.
“그러면 시위도?”
“네. 그것도 정확히 어떤 물질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활을 살폈다.
보면 볼수록 이상한 활이었다.
분명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면서도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생생했다.
마치 지금이라도 쓸 수 있는 물건처럼.
“한번 당겨보시겠어요?”
나는 로이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는 활도 제법 다룰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정신수양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무성무기로서 매우 효과적이다.]]
바로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활을 당길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붙자 주말마다 활터로 데려가시곤 하셨다.
그곳에서 ‘국궁’과 ‘각궁’은 물론이고, ‘중국식 장궁’, ‘영국식 장궁’, ‘일본식 죽궁’까지 모두 섭렵하게 만드셨다.
물론 ‘컴파운드 보우’나 ‘리커브 보우’같은 현대식 활까지 가르치신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끼-리리릭-!! 쭈-우우욱-!!!]
나는 힘껏 시위를 당겼다.
‘노른이 쓰기에는 너무 장력이 강한데? 장식이나 의식용으로 쓰인 활인가?’
나는 몇 번 정도 더 시위를 당기면서 자세를 잡았다.
얼추 느끼기에 상당한 장력을 지닌 활이었다.
노른의 신체능력을 고려하면 도저히 쓸 수 없을 정도의 물건이었고, 지구인의 기준으로도 꽤 버거운 물건이었다.
“이...이럴 수가!! 이걸 당기다니!!”
일레느와 로이드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시위를 천천히 놓으면서 말했다.
“이거 장력이 얼마나 됩니까?”
“족히 100kg은 넘어갑니다.”
“이거 노른이 쓰기에는 너무 장력이 강한데요? 실제로 사용이 가능한 물건입니까?”
“네. 실제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하지만 너무 장력이 강해서 평범한 노른은 쓰지 못했다고 하네요.”
아마 그랬을 것이다.
얼추 느끼기에도 상당한 ‘강궁(强弓)’이었다.
내가 이렇게 느낄 정도면 노른은 도저히 다룰 수 없는 물건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유물을 넘기나 했는데. 이 정도면 무기로 쓸 수 있을 거 같다.’
나는 활을 꼭 쥐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느꼈던 반감은 사라지고 이 활에 대한 묘한 애정이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이름은 ‘화룡궁(火龍弓)’이라고 합니다.”
“화룡궁(火龍弓)?”
“네. 문서에 기록된 내용이 꽤 재미있더군요. 이세계에서 날아온 사람이 화룡과 친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곧 화룡은 악마와 처절한 싸움을 벌이게 되죠. 사투 끝에 화룡은 악마를 물리치지만, 자신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서서히 죽어갔다고 합니다. 그때 그 화룡은 친구에게 자신이 죽거든 유체로 활을 만들라고 했다는 겁니다.”
“...믿기 힘든 이야기네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도 힘들고요. 하지만 적어도 이 활이 전투용으로 제작되었다는 점. 그리고 아직 사용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터무니없이 강한 장력을 지닌 탓에 노른은 쓸 수 없다는 것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죠.”
로이드의 설명으로는 단순한 장식품은 아닌 모양이었다.
‘무게도 그렇게 무겁지 않다. 마침 원거리 무기도 필요했고.’
나는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정말 주시는 겁니까?”
“네. 우리가 가지고 있어봐야 쓸 수도 없으니까요.”
“그러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무기를 입수했다.
화룡궁.
정말로 용으로 만든 활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500년의 세월을 버텨낸 것은 물론이고, 웬만한 벽돌보다 단단한 물건이었다.
급할 때는 그냥 쥐고 휘둘러도 상당한 타격을 낼 수 있을 듯했다.
거기에 일정 이상의 힘을 가하면 부드럽게 휘어지는 ‘한오금’하며, 팽팽하고 탄력이 넘치는 시위까지.
정말 이상적인 활 그 자체였다.
‘혹시 내가 아직 모르는 약점은 없을까?’
문득 나는 조선의 태조였던 ‘이성계’의 일화가 떠올랐다.
그가 고려 말기에 장수로서 활동할 때의 이야기였다.
당시에 그는 요동정벌을 반대했다.
그때 내세웠던 이유 중의 하나가 <날씨가 덥고 습도가 높은 장마철에는 부레풀이 녹아서 활이 풀린다>였다.
그만큼 ‘전통식 복합궁’은 강인하고 높은 성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온도나 습도에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현대처럼 강한 접착력을 지닌 접착제가 없었던 탓이다.
“이거 복합궁 맞죠?”
“네. 저희가 분석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열이나 습도에 약한 건 아닐까요? 보통 이런 방식의 복합궁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하하하, 관리문제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그거라면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은 이 활을 분해할 생각으로 꽤 거칠게 다뤘거든요. 높은 열과 습도에 노출도 시켜보고, 수압 절단기나 레이저 커터도 써봤습니다. 분해해서 부속품을 각각 분석할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정말 튼튼했죠. 아마 진기 씨가 우려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달리 신경 써야 할 부분도 없어 보였다.
로이드의 설명으로는 별다른 약점도 없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500년 전에 이런 활을 만들 수 있었을까?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이야기도 대충 끝난 거 같고, 자기 전에 간단히 한잔 어때요?”
나와 레이나가 활을 살펴보며 연신 감탄사를 흘릴 때였다.
일레느가 뭔가를 들고 나타났다.
언뜻 보기에도 술병으로 보이는 물건이었다.
‘그러고 보니 메테르의 술은 마셔본 적이 없네.’
나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침이 넘어갔다.
그동안 고생하며 돌아다녔던 탓일까?
아니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탓이었을까?
술 생각이 간절했다.
“괜찮습니다. 우리는 내일 바로 떠날 계획입니다. 음주는 곤란합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이나는 일레느의 권유를 단칼에 거절했다.
아니, 도대체 왜?
‘어? 표정이...’
하지만 곧 나는 레이나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술병을 들고 있는 일레느는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로이드도 음심이 깃든 얼굴로 나와 레이나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느낀 레이나가 그저 얌전히 따를 리가 없었다.
일레느가 슬며시 흘린 이야기에도 질투를 느끼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음란한 꿍꿍이를 감춘 그들의 요구를 따를 리가 없었다.
“아, 그렇군요. 그러면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일레느와 로이드는 아쉬운 기색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우리를 손님용 방으로 안내했다.
“그러면 편안한 밤 되세요.”
우리가 방에 들어서자 그들은 인사를 건네고 물러났다.
“후훗, 그러면 술은 우리끼리 마셔요.”
“그럽시다.”
멀어지는 일레느와 로이드의 목소리에서 다시금 음탕함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나와 레이나에게 향했던 음심을 서로에게로 돌린 모양이었다.
아마 저 부부는 오늘 밤 미친 듯이 몸을 섞어 댈 것이다.
[꽉-악-!]
“레이나?”
부부가 사라지고 문이 닫히자 갑자기 레이나가 내 팔을 잡아끌었다.
그리고는 그 힘을 이용해서 그대로 내 품에 안겼다.
“오늘 일레느를 몇 번이나 범했어요?”
“에?”
“빨리 대답해요.”
그녀는 내 ‘소중이’를 붙잡고 슬쩍 힘을 주는 것이었다.
아무리 내가 노른과 비교해서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급소는 급소였다.
그녀의 손아귀에 잡힌 내 성검은 나에게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아-아아-! 아얏-! 아...아파요!”
“빨리 말해요.”
“여섯 번? 아니, 일곱 번이던가?”
내가 얼추 횟수를 대답하자 레이나는 금세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그리고는 내 입술에 그녀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쪼-오오옥-!]
부드러운 입술이 잠깐 머물다가 떨어졌다.
나는 놀란 표정으로 레이나를 바라봤다.
“나도 그만큼 따먹어줘-!”
“에-?!”
“똑같이 박아줄 때까지 안 재울 거야.”
질투와 어리광이 깃든 목소리로 나에게 협박을 날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