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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 108 - 기사의 왕 레이드 下


차캉!! 니스는 묵직함에 뒤로 몸을 날렸다. 샤누흐는 강했다. 그런데 그 잠깐 사이에 갑자기 더 강해진 기분이었다. 이건 착각이 아니었다. 샤누흐가 자신에게 걸린 금제를 풀었기 때문이었다. 백신이 자신과 함께했고 그들의 일을 돕고 있으니 이 정도는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금제를 풀고 처분 당했던 드래곤과 달리 멀쩡히 살아있었다. 간만에 느껴보는 해방감. 이 얼마나 즐거운가. 팔을 휘젓는 것도 갑갑하고 숨 쉬는 것조차 짜증났다. 온갖 불편한 것이 뒤얽힌 느낌이었다. 그런 불편에서 벗어나니 머리가 어질거렸다. “후우-” 샤누흐는 나직하게 숨을 뱉었다. 그러다 주변 공간에 가해지는 묵직한 압력에 입가를 비틀었다. 금제를 풀기 전이었다면 상당히 귀찮았을 마법이었다. 인간들의 기준으로 대마법이라 칭하는 11성 마법. 이건 드래곤이 작정하고 발현한 마법과 그 힘이 비슷했다. 샤누흐가 금제를 풀었다고 해서 이걸 연달아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마법을 파훼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공간을 장악해버리는 11성 대마법 이시스. 이건 기류나 마나의 흐름에서부터 물리적인 힘까지 억제하고 있었다. 호흡이 꼬이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힘겨워졌다. 당연히 마법을 쓰기도 어려웠다. 마치 백신이 쓰는 금제를 특정 공간에 부여한 거 같았다. 그러나 이건 샤누흐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심지어 백신의 금제에 비하면 열화판이나 다름없었다. 가아아악- 그 다음 마법. 근방의 모든 시신을 되살리는 11성 대마법 오시리스. 죽은 용린병들이 되살아났다. 심지어 그것들은 이전보다 강해진 상태로 살아나 샤누흐에게 덤벼들었다. 샤누흐는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용린병들을 주먹으로 쳐냈다. 강해진 건 마법 능력만이 아니었다. 육체 능력 역시 강해졌다. 그래서 강해졌다고 한들 용린병을 쳐내는 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 수가 좀 거슬렸다. 그나마 라이의 마법에 휩쓸려 수가 줄었기에 열세에 몰리지 않았다. ‘꽤나 귀찮게 잘 했네.’ 만약 라이가 2개의 대마법을 공격 마법으로 썼다면 파훼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라이는 거슬리게 하는 타입의 마법으로만 발현했다. 그냥 무시하기에는 거슬리고 파훼하기에는 시간도 걸리고 귀찮아지는 마법이었다. 차라리 이것만 있다면 모르겠으나 문제는 다음이었다. ‘저년…….’ 샤누흐는 니스를 노려보았다. 한 번 공수를 주고 받은 그때,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손바닥이 욱씬거렸다. 그녀의 칼날은 그의 피부와 비늘을 충분히 꿰뚫을 수 있었다. 거기에 정면에 서있는 데도 존재감이 흐릿했다. 그녀가 작정하고 기습을 벌였다면 최소 중상은 입을 것이다. 훌륭한 공격수이자 변수. 방심하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그렇다고 상대가 틈을 주지 않을 것이다. 샤누흐는 눈을 굴려 라이를 삿대질 했다. 손끝에서 뿜어진 샛노란 번개가 뻗어나갔다. 그러나 번개는 라이에게 닿지 않았다. 라이가 순식간에 주문을 약화시키고 번개를 상쇄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틈에 니스가 거리를 좁혀 검을 휘둘렀다. 샤누흐가 무심코 검의 경로에 두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검이 흐느적거리더니 손을 피해 샤누흐의 몸을 강타했다. 쩌걱- 샤누흐가 충격에 뒤로 물러나자 니스가 추가로 암기를 던져 후속타를 가했다. 암기는 대부분 쳐냈지만 몇 개가 샤누흐의 피부를 뚫고 들어왔다. 그냥 평범한 암기가 아니었다. 몬스터 드래곤의 뼈를 가공해서 만든 특수한 암기였다. 그래봤자 피부에 살짝 꽂히는 정도였지만 그 끝에 발린 독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 샤누흐는 니스에게 먼저 달려들었다. 치고 빠지는 전략을 보아하니 힘 싸움에 약할 거라 생각해서 그랬다. 그런데 웬걸, 니스의 힘싸움은 생각보다 발군이었다. 아니, 요령이 있었다. 힘의 방향을 따라 최소한의 힘으로 쳐내는 기술이 상당했다. 손목을 틀거나 허리를 뒤틀며 순간적인 압박을 가해도 유연하게 대처했다. 분명 작고 힘없는 존재인데 거인과 힘싸움을 벌이는 기분이었다. 차캉! 샤누흐의 손이 쳐내지고 니스의 칼날이 들어올 기회였다. 그런데 니스는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샤누흐를 쳐내기만 할뿐이었다. 그때 라이의 마법이 날아들었다. 약식 대마법. {브라흐마} 위력은 낮아졌지만 그래도 11성 마법이었다. 샤누흐는 날아드는 마법을 보고 혀를 차며 손을 휘적였다. 그 틈을 노리고 니스가 뒤늦게 공격을 가했다. 빠각- 샤누흐는 다시 뒤로 날아갔다. 순간 짜증이 치민 샤누흐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이번에는 마법이 아니다. 순수한 에너지의 결정체. 그 힘을 숨결에 담아 뿜어냈다. 푸하학- 황금빛 물결이 라이를 향해 뿜어졌다. 그리고 라이는 그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다시 나타났다. “쯧.” 참으로 귀찮은 조합이었다. 언제든 거리를 좁히고 벌릴 수 있는 기동력과 방심할 수 없는 공격력의 암살자. 견제와 보조만을 더하면서 빈틈없이 귀찮게 굴는 마법사. 혹시나 해서 속임수를 더해 라이를 공격하는 척 니스를 공격해도 먹히지 않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방금 그 마법은 뭐야? 다섯 원소의 결합? 그것도 한 원소를 파훼하면 다른 두 원소가 방해를 해서 세 가지 각기 다른 원소를 풀어내야 파훼할 수 있다고?’ 샤누흐는 니스를 보았다. ‘체술의 수준은 나 이상이다. 반사 신경이나 힘도 리아주크의 권속 수준. 인간종에서도 손꼽히는 괴물이다. 이상해. 분명 마기가 더해져 있는데 독자적인 노선을 타고 있어.’ 샤누흐는 혀를 찼다. 이곳에서 본신을 보일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체되는 것도 좋지 않았다. 쩌적- 샤누흐의 피부 곳곳에 황금빛 비늘이 돋아났다. 동공이 세로로 쪼개지고 송곳니가 비대해졌다. “페이즈2 돌입했다!” “발악 패턴도 생각해둬!” 니스의 외침과 라이의 대답. 그리고 두 사람은 즉시 변이 중인 샤누흐를 공격했다. 니스가 그림자로 암기를 빚어 던지고 라이는 그 틈에 11성 대마법을 준비했다. 투두둑- 암기가 샤누흐의 몸에 꽂혔다. 라이는 메두사를 격퇴했던 대마법 {라그나로크}를 발현했다. 쩌엉- 창이 날아간 순간 샤누흐가 금빛을 흩뿌리며 정면돌파했다. 창은 박살났지만 샤누흐도 곳곳에 상처를 입고 피투성이가 되었다. “크하-!!” 그러나 샤누흐는 목적을 이루었다. 그는 라이의 몸에 다섯 손가락을 전부 쳐박고 독과 같은 마나를 흘려보냈다. 라이는 그 한 방에 피를 토하며 나뒹굴었다. “쓰훕-” 샤누흐는 방심하지 않았다. 라이를 끝내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켰다. 가벼운 마법으로 공격하거나 몸으로 몰아붙여도 됐지만 변수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끝낼 수 있는 건 이 방법이었다. 푸- 샤누흐가 숨결을 뱉으려는 순간 그의 입이 다물렸다. 갑자기 니스가 나타나 턱을 올려찼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샤누흐가 뿜으려는 에너지는 코와 목으로 역류했고 데미지를 입었다. “크학!! 이 개같은!!” 샤누흐는 잔여 에너지를 뱉어대며 팔을 휘둘렀다. 언뜻 보면 단순한 몸부림처럼 보였지만 정확히 니스의 위치를 노렸다. 퍽- 니스는 샤누흐의 공격을 허용했다. 라이가 당하는 걸 보고 뒤는 생각하지 않고 달려들어서였다. 그래도 두 팔과 무릎 하나로 충격을 분산했지만 강해진 샤누흐의 완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니스가 샤누흐의 팔에 얻어맞고 날아간 사이 라이가 복귀했다. 스스로에게 신성 마법을 걸며 흑마법 하나를 시전했다. {타나토스} 샤누흐의 몸에 새까만 낙인이 찍혔다. 그가 자신에게 걸린 저주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카학……!” 아무리 강하다한들 생물이라면 즉사에 가까운 데미지를 입어야 할 흑마법이었다. 그런데 샤누흐는 고작 해야 피를 게워내는 것에 그쳤다. 그래도 라이는 차분히 마법을 외웠다. 방금 그 흑마법으로 그가 죽을 거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마법사는 자고로 모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하는 법. 방금 그걸로 죽었다면 좋았지만 그게 아닐 때의 방비도 해두어야 했다. {신의 포옹} 라이가 신성 마법 하나를 완성한 순간 샤누흐의 숨결이 뿜어졌다. 푸하악- 10성 마법도 거뜬히 막아낼 수 있는 고위 신성마법이 흔들렸다. 라이가 그의 숨결을 버티는 사이 니스가 뒤에서 나타나 샤누흐의 등을 단검으로 찍었다. “큿-” 그의 숨결을 멈췄다. 분명 데미지도 충분히 주었다. 하지만 수를 하나 잃었다. ‘그림자로군!’ 샤누흐는 라이를 마무리 지으려 할 때 니스가 나타난 걸 감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기척을 죽인 게 아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그림자에서 솟구친 것이었다. 버트는 물론 루하다도 애용하는 평면 이동! 그러나 평면 세계로 이동하는 둘과 달리 니스는 고작해야 입구와 출구로 쓰고 있었다. 그래도 이것만으로 기습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츠츠츳- 샤누흐의 몸에 번개가 감돌더니 사방팔방 흩뿌려졌다. 니스가 그 기세에 밀려 뒤로 밀려난 순간 샤누흐가 니스를 향해 숨결을 내뱉었다. 푸확- 간발의 차로 니스의 몸이 그림자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어깨가 살짝 스쳐버렸다. 츳- 니스는 라이의 반대편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가 모습을 보인 순간 희미한 빛이 몸을 감돌았다. 라이가 멀리서 신성 마법으로 치료해준 것이다. “야! 어떻게 할래! 혹시 죽을 거 같아?” 라이의 질문에 니스가 콧방귀를 뀌었다. “우리 애기들 놔두고 어떻게 죽어. 걱정 마.” “너 버트랑 비슷한 상황이란 건 염두에 두고 있어라! 위험할 수도 있어!” “기껏 해야 쇼크지. 너나 잘 해!” 샤누흐는 목을 뿌득 풀며 둘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꽤나 여유롭나보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라이의 마법과 니스의 공격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샤누흐는 그 둘과 난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 바틸카스는 샤누흐와 라이, 니스의 전투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의 전투는 생각보다 터프하고 박력있었다. 어느 순간 마구잡이식 전투가 시작되더니 왕성 내부가 엉망이 되었다. 샤누흐의 마법과 숨결이 곳곳에 작렬했다. 라이의 마법이 샤누흐와 성을 강타했고 니스의 검격이 샤누흐와 함께 바닥을 난자했다. 그 여파로 바틸카스의 몸이 흔들릴 정도였으니 직접 전투를 벌이는 현장은 어떨까. 바틸카스는 인상을 구기며 자리를 피했다. 이건 도망가는 게 아니다. 그저 무능한 이들과 불경한 자들을 피할 뿐이다. “계시를 내려주소서.” 바틸카스는 마검을 들며 속삭였다. 그에게 내려준 여러 권능. 바틸카스가 전 대륙에 선전포고를 하게 만든 힘. 그 중 하나가 스며들었다. “아아…… 보인다……” 바틸카스는 자신의 힘을 나누어 준 병사들의 시야를 얻었다. 그들은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다. 분명 초반에는 판테스 왕국군이 우세한 듯 했다. 하지만 점점 서로 뒤얽히면서 난전이 벌어지니 키런 왕국이 우세를 점했다. 분명 길렌 백작은 강했다. 그를 따르는 푸른비늘 기사들도 강했다. 어쩌다 보니 전투에 참전하게 된 화이트슈트도 강했다. 만일 이 싸움이 100 대 100의 국지전이었다면 압도적으로 이겼을 것이다. 1000 대 1000의 전투였다고한들 수세에 몰리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수의 차이가 너무 심했다. 심지어 키런 왕국군은 마검의 힘을 부여받으며 훨씬 용맹해지고 강해졌다. 소수의 인원으로 어찌할 수준이 아니었다. 심지어 단기간에 부딪치는 힘싸움이 아닌 장기전으로 가면서 판테스의 기세가 점점 기울 수밖에 없었다. 짓쳐들어오는 병력은 많다. 그걸 막을 수는 한정되었다. “푸른비늘 기사들은 들어라! 각기 퍼져서 10인장 셋을 통솔! D-7 편성으로 버텨라!” 길렌 백작은 키런 왕국의 병사 셋을 양단하며 소리쳤다. 그의 명령을 받은 푸른비늘 기사들은 사전에 훈련 받았던 내용 중 하나를 떠올리며 조금씩 다른 구역으로 이동했다. 커엉-!! 화이트슈트의 포효. 근방에 있던 수 백의 병사들이 적아를 가리지 않고 {압도}당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다시 기세를 차린 키런 왕국군이 화이트슈트를 향해 검을 내뻗었다. 쾅! 화이트슈트는 병사들을 몇 입에 집어삼키고 앞발로 짓뭉갰다. 그리고 이 모습은 판테스 왕국군에 똑똑히 보였다. “으…… 으으……” 그들 중 몇은 아직 늑대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눈앞에서 동료가 찢겨죽는 걸 본 이들은 무기를 놓쳐버리기도 했다. 화이트슈트의 참전은 역효과를 낳았다. 그러나 사기가 떨어진 일부 병사들을 제외하더라도 그의 존재감은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자리에서 이탈하지 마라!” “죽여라! 빈틈을 노려!!” “정면을 봐! 뒤나 옆을 치지 마!!” “창을 잡아 당겨라!!” “방패 똑바로 들어!! 놓치면 아군이 죽는다!!” “1창진 준비! 찔러!!” “아아악-!!” “누가 여기 좀 도와줘!!” “여기 방패가 비었- 아악!! 악!!” 판테스 왕국군은 난전 속에서도 노련하게 전투를 이어나가려 했다. 그러나 키런 왕국군의 기백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한 명이 당황해서 실수를 하니 분대 하나가 와르르 무너졌다. 그렇게 분대 하나가 무너지니 부대가 위태로워졌다. 피가 비산하고 비명이 퍼져나갔다. 도망치려다 아군의 발에 짓밟혀 죽었다. 앞에서 버티려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공격에 벌집이 되어 죽었다. 적을 죽이고 나니 다른 적이 나타나 기습을 해버려 죽었다. 적군의 눈먼 검에 맞아죽었다. 눈에 핏발이 선 적군이 잘린 팔로 구타를 해 죽었다. 아군이 놓친 검이 날아와 뒤통수를 때리는 바람에 죽었다. 살려달라는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 순간 방패를 쥔 손에 힘이 풀려 깔려죽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이 벌어졌다. 하나 같이 어이 없이 죽거나 말도 안 되는 죽음으로 이어졌다. 물론 적을 여럿 베어버리거나 합동하여 수 십의 적에게 포위당한 아군을 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이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아군에게 둘러싸여 있는 데도 죽음의 공포에 떠는 병사가 있었다. 그는 침을 흘리며 오들오들 떨다가 아군을 적으로 착각하여 공격하기도 했다. “침착해!! 정신 차려라!!” “적만을 봐라! 적은 앞에 있다! 뒤에 있는 건 아군이야!”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줘!!” “정신 차리라고 씨발 것들아!” “니가 빠지면 옆에 동료가 뒤져! 자리를 지켜!!” “방패진 물러나지 마라!!” 발악과 격려. 고함과 비명. 공격과 방어. 참살과 살인. 적군과 아군이 뒤섞인 전장은 혼란스러웠다. 이런 상황에서도 길렌 백작을 비롯한 지휘관들은 침착하게 전황을 지휘했다. 그들 중 몇 명은 광기에 버티지 못하고 오줌을 지리며 달아나거나 엉뚱한 명령을 내리다 아군에게 살해당했다. 안 그래도 불리해지는 전장이 점점 추락했다. 바틸카스는 흡족하게 웃었다. 어디를 어떻게 보아도 위기는 없었다. 키런 왕국군도 손해를 좀 입겠지만 그들을 물리치면 끝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바틸카스의 표정이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아우우우- 전장 곳곳에 퍼지는 늑대 울음. 여기저기 흩어져 비명이 섞인 와중에도 그 소리만큼은 똑똑히 들렸다. “저거…… 늑대들이다……!” “늑대 위에 뭐가 있어!!” “저거……?” 라이칸슬로프. 그들 대부분은 두 발로 서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사족보행을 한 채 무언가를 등에 태우고 있었다. 황금늑대 기사들. 그들은 라이칸들을 말처럼 탑승한 채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가자.” 아우우우- 라이칸들이 전장에 투입되었다. 그들은 말보다 빨랐다. 그리고 적들 사이사이를 헤집고 다니거나 머리를 밟고 튀어오르는 등 날렵하고 치명적이었다. 서걱- 삭- 크하아악-!! 기사를 태우지 않은 라이칸들은 날카로운 손톱으로 적을 찢어발겼다. 갑옷에 한 번 튕겨나가도 힘으로 우그러뜨리거나 손톱을 세워 투구의 눈구멍을 뚫어버렸다. 당연히 적들의 반격도 있었다. 하지만 강해진 병사들이라고한들 마기를 되찾다 못해 강해진 라이칸들의 털가죽을 찢을 수 없었다. 오히려 검에 이가 빠진 상황에서 휘두르다 검이 두 동강이 나거나 반격의 틈을 주어 역으로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라이칸들의 합류는 당장 눈에 띄지 않았다. 그들의 수는 많아 봐야 사백에서 오백 정도. 몇 만에 이르는 대군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다. 그러나 그들이 주는 영향력은 서서히 드러났다. 빠르고 눈에 띄게 적들을 도륙하니 키런 왕국군도 점점 움츠러들었다. 늑대들에 공포를 느끼거나 겁에 질렸던 판테스 왕국군들도 서서히 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계속 뒤로 물러나거나 죽어가던 판테스 왕국군이 점점 반격을 하거나 앞으로 나아갔다. “싸워라! 늑대들을 따라 싸워!!” “개새끼들한테 쫄지 마라!!” “물러나지 마라!!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리를 지켜!!” “죽여라! 기사 티도 못내는 병신들이야!!” “앞으로 가! 앞으로 가라고!!” “뒤로 가지 말고 앞으로 가!!” 두 왕국군은 점점 극렬한 소모전에 빠져들었다. 누가 이겨도 처참한 지경에 이를 정도로 두 왕국군은 점점 무너졌다. 그래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전선은 몇 번이고 밀고 당기며 흔들렸다. 이제는 진영에서 적군은 전멸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을 때쯤 그들은 전부 시체를 딛고 서있었다. “헉…… 허억……” “미친 새끼들……!!” “씨발, 씨발……! 내 친구가 저깄는데……!” “배신자 새끼들! 치욕스럽다!” “진정해, 다들.” 그들은 전부 각기 다른 감정으로 적진을 바라보았다. 공포. 혼란. 분노. 슬픔. 격앙. 투지. 허탈. 뒤섞인 시체처럼 그들의 감정도 뒤엉켰다. 무기를 굳게 쥔 이도 있었고 달아나고 싶어서 벌벌 떠는 이도 있었다. 그들 모두 다른 마음을 품었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막지 못하면 끝난다. 뚫지 못하면 죽는다. 두 왕국군은 잠시 소강 상태에서 서로를 보았다. “전군…… 다시 진격하라!!” “와아아아-!!” “으아아아-!!” * 바틸카스는 전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키런 왕국군 중 일부는 별동대로 구성되었다. 총 4만의 군세 중 약 4천 가량이 빠져나왔다. 그 중 절반은 수도로 진격했고 나머지 절반은 로디아 마을로 향했다. 그래서 1할이 빠져나간만큼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약해지다니. 바틸카스는 별동대의 시야를 확인했다. 별동대는 새롭게 각성한 힘으로 만들어진 용린병이었다. 그들은 검은불꽃의 병사들과 달랐다. 왕성에 비치해둔 용린병들처럼 공격력과 방어력을 골고루 갖춘 정예병들이었다. 하지만 왕성에서 단 두 사람에게 죽어나가는 걸 보니 믿음이 가지 않았다. ‘아니, 그것들은 마검의 힘으로 강화한 병사들보다 훨씬 강하다. 그리고 약하지만 드래곤처럼 마법이나 불도 뿜을 수 있어. 그 녀석들은 순순히 당하지 않을 거다.’ 콰창! 얼음창 하나가 날아와 바틸카스의 근방에 박혔다. 그는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분노했으나 전투에 끼어들지 않고 용린병의 별동대 상태를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의 감각에 거슬리는 느낌이 들었다. ‘데이론?’ 그림자늑대 기사. 그들을 통솔하는 나이트 마스터 데이론의 신호가 미약해졌다. 쓰러지고 있다! 바틸카스는 이를 빠득 갈았다. ‘쓸모 없는……’ 바틸카스는 돌아섰다. 그대로 달아나려던 그의 눈앞에 새하얀 소년이 서있었다. “웬놈이냐?” 소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더니 바틸카스의 이마를 콕 찍었다. 그 행동을 할 때까지 바틸카스는 움직일 수 없었다. “크-” 바틸카스는 혼이 빠진 얼굴로 다시 왕좌로 돌아갔다. 자리를 떠나려던 그는 마검을 굳게 쥐고 왕좌를 지켰다. 소년은 처음 나타난 것처럼 다시 사라졌다. 그 시각 용린병의 별동대는…… * “앞으로 가라.” 용린병들 중 로디아 마을로 향하는 2천의 병력. 그냥 평범한 병사였어도 영지 하나로 막기엔 버거운 숫자였다. 하물며 강화된 용린병이라면 지금 수의 1할이라도 영지 하나를 박살낼 수 있는 전력이었다. 그들도 자신의 힘을 알고 있었다. 마검의 힘으로 강화되었다고는 하나 그들은 샤누흐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희미하지만 그의 권위의식과 자존심도 이어받았다. 척- 척- 그들은 500명씩 4개의 조로 나뉘었다. 1조는 영주성을 타격하기 위해 출범했다. 2조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인근에서 대기. 3조는 로디아 마을을 타격. 4조는 마을에서 달아나거나 외부에서 오는 적들을 차단하기 위해 넓게 퍼졌다. “움직이는 모든 걸 처단하라.” 용린병들은 진군했다. 아무리 로디아 마을이 목책을 세웠다고는 하나 전투에 적합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 중 일부는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모두가 당황한 건 아니었다. “저게 뭐지?” “왜인지 모르겠는데 짜증이 솟구치는데.” 마성자들. 그들은 마을 곳곳에서 건물을 관리하고 버트의 굿즈를 관리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뭔가 께름칙한 느낌이 느껴져서 밖을 나와보니 용린병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혹시 신고 받은 거 있어?” “없어. 영주성에서 아무 말도 없었는데……?” “지부장 님은?” “마법사 영감님이랑 근처 산책 가셨어.” “어쩐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용린병들은 서서히 다가왔다. “내가 가지.” 마성자 중 하나가 목책 밖으로 나섰다. 용린병들은 나아가다 말고 우뚝 멈췄다. 마성자는 그들을 슥슥 훑어보며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기 편한 자리까지 왔을 때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어디에서 오셨는지요……?” “키런 왕국.” “예? 키런 왕국이면……” 마성자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기울이다 용린병이 휘두른 검에 베였다. 푸샥- 그의 몸에 피가 비산하며 뒤로 넘어갔다. “공격하라.” 용린병은 마성자를 베어 넘기고 마을을 가리켰다. 그들은 각자 검을 빼들며 흉포한 울음 소리를 냈다. 이제 그들은 무자비하게 마을을 파괴하고 주민들을 학살할 것이다. 그들의 난폭한 발걸음이 마을에 들어섰다. “우와아악-!!” “이게 뭐야!!” “뭐하는 건데! 으악-!!” 용린병은 침착하게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살인에는 무덤덤했다. 애초에 약한 인간종이 죽는 거야 큰일도 아니었다. 그러니 이 정도 학살에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턱- 그렇게 나아가려던 용린병이 무언가에 우뚝 멈췄다. “끄윽…… 기습을 하다니……” 방금 그가 쓰러뜨린 마성자가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용린병은 검을 수직으로 세워 녀석을 찍으려 했다. 깡!! 그때 무언가 날아와 용린병의 머리를 강타했다. 잠깐 뇌진탕이 온 그때 마성자가 벌떡 일어나 그의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빠각! “크…… 단단하네.” 마성자는 발갛게 달아오른 주먹을 내려다보며 용린병을 보았다. 용린병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맨손으로 용비늘에 덮인 몸을 두들겼다. 그러고도 골절이 아니라 그냥 빨갛게 달아오르고 끝났다. “뭐지?” “그건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인데.” 마성자가 턱짓을 하자 어디에선가 무언가 날아왔다. 용린병은 이번에 그걸 낚아챘다. “돌?” 용린병이 주변을 둘러보니 먼 곳에서 돌이 담긴 천을 붕붕 휘두르는 아이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아이가 천을 후려친 순간 방금 잡았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돌이 날아와 용린병의 가슴팍을 때렸다. “큿-” 그는 얼빠진 소리를 내며 휘청였다. 뭔가 이상하다. 그 생각을 했을 때 뒤늦게 마을에서 소리가 들렸다. “감히……! 석상 건설 기념 굿즈를 박살내!! 이 씨발 새끼들이!!” “방금 니가 부순 건물이 어제 새로 올린 건물이다 개새꺄!!” “애를 왜 때려요!!” 용린병들의 참혹한 학살과 어울리지 않는 외침이 들렸다. 용린병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고개를 삐걱 돌렸다. 그때 마성자가 다시 거리를 좁혀 얼굴을 때렸다. 뻑- 이번에는 아까보다 충격이 셌다. 마성자의 손에는 시커먼 마기가 둘둘 감싸져 있었다. “키런 왕국이라고? 감히 마을을 노리고 이따위 술수를 부려? 너 잘 만났다. 내 아들 놈 팔매질이랑 같이 패죽여주마.” 3조의 침공이 난항을 맺고 있을 때 다른 용린병의 상황도 썩 좋지 않았다. 영주성을 치려던 1조는 다크나이트들과 조우했다. 그 근방을 지키고 있던 2조는 갑자기 하나둘씩 잠이 들거나 이상한 환상을 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포위망을 형성한 4조는…… “이게 별안간 무슨 일이래?” 로디아 마을의 촌장이자 블랙스타 로디아 지부장. 그는 넬하트와 함께 마을 확장 공사를 위한 탐색을 하고 온 참이었다. 그러다 마을을 향해 넓게 진을 치고 있는 용린병들과 마주했다. “허허, 이거 참…… 인간에게 특이한 생물의 힘을 합성하였구만.” “합성? 엠파이어 일족이 보낸 겁니까?” “엠파이어? 그건 모르겠지만……” 넬하트는 손가락을 빙글거렸다. “꽤나 불쾌하구먼.” 용린병들은 넬하트의 손끝에 모이는 마나를 보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그리고 그가 마법을 쓰기 전에 처리한다는 생각으로 달려들었지만 용린병 셋 중 둘은 머리에 새빨간 구멍이 뚫려 죽었고 하나는 순식간에 잿가루가 되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영창을 준비하고 있건만 이 무슨 실례인고.” 넬하트는 혀를 차며 용린병들을 가리켰다. 그의 손 끝에 모인 마나는 시뻘건 열기를 품은 새떼로 변했다. “붉은 새의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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