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40화 - 멍 (3)
코끝을 찌르는 악취.
오늘도 여전히 악몽에 시달리다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킨다.
가장 먼저 스마트폰에 그의 메시지가 와 있을까 생각하며, 헛된 기대를 품고 화면을 켰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울음을 참고 방에서 나오자, 쓰레기로 가득한 거실 풍경이 보인다.
청소를 해야 하는데 의욕이 하나도 없었다.
한숨을 내뱉고, 거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물통을 집어 뚜껑을 열었다.
이제 반도 남지 않은 마지막 물이 든 물병.
본능적으로 움직인 손이 통 안에 든 물을 목으로 넘긴다.
“하아아….”
혼자 남겨진 지 꽤 긴 시간이 흘렀다.
며칠, 아니 몇주가 넘는 시간 동안 매일 울다 지쳐 잠들었던 난, 바뀌는 것 하나 없는 현실에 좌절하기를 반복.
그와 헤어진 그날부터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삶이 무기력해진 난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고, 그가 주었던 용돈과 아르바이트비로 매일 배달 음식을 시켜 끼니를 때웠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나면, 먹은 것을 치우지도 않은 채로 폐인처럼 방안에 혼자 웅크려 종일 울었다.
밤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텨도, 눈을 뜨면 혼자 남겨졌다는 외로운 사실에 금방 울음이 터져버린다.
그는 이제 내 번호를 차단한 건지 전화도 받지 않았고, 내 진심이 가득 담긴 메시지조차 읽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정말 고작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 때문일까, 아니면 같이 일했던 남자 때문에 이러는 걸까….
갑자기 그가 돌아선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정말 내가 싫어진 걸까…. 아니었는데…. 우린 분명 너무 사랑했었는데….
가슴이 무언가로 막혀버린 기분이 든다.
매일 수백번, 아니 수천번을 생각해도 모든 게 다 내 잘못인 것 같아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러나, 이미 끝나버린 그와의 관계가 바뀌는 일은 없었고, 우울한 감정만이 계속 쌓여 마음이 너무나 괴로웠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이젠 정말 끝이겠지….
“하아… 보고 싶어….”
깊어만 가는 한숨.
욱신거리는 왼쪽 손목에 자연스레 눈이 향했다.
왼쪽 손목에 남겨진 흉터.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흉터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왜 그때처럼 용기가 나지 않을까.
죽고 싶은 마음은 지금도 한결같은데, 어째선지 죽을 용기는 하나도 없었다.
억지로 흉터에 칼을 갖다 대도, 칼을 쥔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한심해….”
고작 잠깐의 고통이 두려워, 손을 내지르지 못하는 나 자신이 바보 같고 한심하다.
결국 모든 걸 체념하고, 쓰레기로 가득한 식탁으로 가 앉았다.
먹다 남은 배달 음식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쓰레기를 치우지도 않은 채로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차가운 물로 온몸을 적시고 나와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틀었다.
억지로라도 웃고 싶었던 나는 리모컨으로 예능프로를 틀었지만, 눈에 비친 건 텔레비전의 화면이 아닌 흐려진 시야였다.
우는 것도 지겨운데 대체 왜 눈물이 멈추지 않을까….
텔레비전을 끄고, 억지로 눈물을 삼키며 방으로 가 또 잠을 잤다.
악몽을 꾸긴 해도, 자는 시간만큼은 우울한 감정을 느끼지 않으니까….
그렇게 또 무기력하게 잠이 들었던 나는 끔찍한 악몽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눈을 떴고, 목에서 느껴지는 갈증으로 인해 물을 마시러 거실로 나왔다.
그러나, 거실 바닥에 뒹구는 빈 페트병은 내 타는 듯한 갈증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오랜만의 외출준비를 했다.
거울에 비치는 땀에 젖은 헝클어진 머리.
거울 근처에 있던 빗을 들고 머리를 빗어내려 했지만, 무력해지는 감각에 들었던 빗을 그대로 내려놓았다.
“… 그냥 가자….”
피곤하다.
종일 잠만 자는데 왜 이렇게 피곤하고 무기력한 건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차라리 영원히 깨지 않는 잠에 빠지고 싶다.
“하아아….”
깊은 한숨을 내뱉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밖으로 나왔다.
[쏴아아아-]
여전히 내리고 있는 비.
우산을 가지러 다시 집에 들어가기가 너무 싫었다.
결국 비를 맞으며 근처 편의점으로 걸음을 옮겼고,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 오늘따라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편의점으로 가는 내내 부정적인 생각이 끊이질 않았고, 지나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은 나를 흘긋 쳐다보며 지나갔고, 그걸 보자 안 그래도 우울한 마음이 더 울적해진다.
비에 흠뻑 젖은 채로 편의점에서 물 두병을 사서 밖으로 나오자, 아까보다 더 거세진 빗줄기가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종일 쏟아지는 거센 빗줄기가 내 마음속을 대변하는 것 같다.
차가운 비를 맞으며 다시 집으로 향하는 길이 너무나 외로웠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아무도 날 찾아주지 않았다.
과 단톡방도 새로 판 건지 마지막 메시지의 날짜가 한 달 전이었고, 심심찮게 오던 과 동기들의 메시지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외롭다.
이젠 나라는 사람을 모두 잊어버린 것 같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병원에 가서 수면제를 왕창 받아, 그것을 한꺼번에 삼켜버리고 죽어버리자는 상상이 들었다.
“… 그래….”
무기력했던 마음이 드디어 결심을 한 것 같았다.
“내일은 병원에 가자…. 가서 이 괴롭고, 외로운 삶을 끝내자. 나 같은 건 조용히 세상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테니까….”
그렇게 내리는 빗속에서 결심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쓰레기장 같은 집을 청소했다.
오랜만에 하는 집안일이라 힘들긴 했지만, 목표가 생기니 더 이상 망설여지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계속된 청소.
빨갛게 물든 침대 커버도 빨랫감들과 함께 세탁기에 넣고 돌린 뒤, 피로 얼룩진 바닥을 닦으며 집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한 뭉텅이로 나온 쓰레기 더미를 집 앞 쓰레기를 모아두는 곳에 버리고, 다시 집에 들어와 비와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매일 찬물만 끼얹었던 몸에 바디워시와 샴푸로 몸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밖으로 나와 침대에 기절하듯이 뻗었다.
그렇게 몽롱한 정신으로 침대에 뻗어있다가, 세탁기가 멈추는 소리에 다시 거실로 가 엄청난 양의 빨래를 거실 바닥에 널었다.
피 얼룩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오랫동안 방치된 악취는 조금 사라진 것 같았다.
빨래를 전부 바닥에 널고, 소파에 앉아 그가 두고 간 라이터와 담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독한 연기가 속을 울렁거리게 하며, 머릿속이 멀미가 난 듯 어지러웠던 경험.
그들에게 심한 짓을 당할 때 억지로 담배를 피웠던 것이 떠오른다.
떨리는 손으로 그가 두고 간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문 뒤, 라이터를 켰다.
[칙…. 치직…!]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억지로 피워보려 했던 담배엔 불이 붙지 않았고, 그것의 끝부분엔 그을린 자국만이 남아있었다.
담배라도 피우면 울적한 마음이 가실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손에 든 라이터와 입에 물었던 담배를 다시 테이블에 올려두고 그대로 소파에 누웠다.
담배 하나 피울 줄도 모르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하고 지독한 악몽에 잠을 설치다, 다음날이 되어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마르지 않은 축축한 옷으로 갈아입고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와 시내에 있는 큰 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에 들어가, 정신과 접수처에 접수를 한 뒤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고,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가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했다.
상담을 하는 내내, 의사에게 요즘 잠을 통 못 잔다고 많은 양의 수면제 처방을 요청했지만, 그는 갑자기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더니 이상한 검사들을 하기 시작했다.
의사는 내게 계속해서 뭐라 뭐라 질문하며 무언가를 체크하는 것 같았지만, 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나는, 고개만 끄덕이며 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대신했다.
길었던 검사가 끝나고, 이틀 뒤 다시 오라는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진료실에서 나와 수납처로 갔다.
처방전을 발행한 뒤 병원에서 나와 근처 약국에 들른 나는 약사에게 처방전을 건네주고 약을 받았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의 약이 들어있지 않았다.
수면제를 조금 더 따로 구입할 수는 없겠냐며 약사에게 묻자, 그는 의사의 처방 없이는 수면제를 처방할 수는 없다며 내 요구를 거절했고, 내가 너무 힘들다고 간절히 부탁하자, 그는 시중에 판매 중인 수면유도제를 보여주었다.
많은 양의 수면유도제를 산 나는 그의 의심 가득한 표정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약국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드디어 이 지독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집으로 가는 내내 떨림이 멈추질 않았다.
그렇게 쏟아지는 빗길 사이를 걷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집 앞.
현관 계단에 앉아있는 사람이 있었지만, 별생각 없이 그를 피해 계단을 내려갔다.
[삑 삑 삑 삑]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갈 때였다.
“……?”
섬뜩한 기척에 뒤를 돌아보자, 계단에 앉아있던 사람이 어느새 내 등 뒤에 다가와 있었고, 문이 열리자 그는 내 입을 틀어막으며 나를 강제로 집에 끌고 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비명도 내지 못하고 집에 끌려들어 왔고, 그가 비에 젖은 모자를 벗어내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이야.”
“아…. 선배님….”
최진혁의 집에서 돈을 주고 나를 안았던 3학년 선배였다.
“선배는 씨발, 남의 인생에 빨간 줄 그어버린 년이.”
“그건…. 제 잘못이 아니라…. 선배가 잘못하신 거잖아요….”
큰 바람 소리와 함께 내 뺨에 날아오는 그의 손.
[짜악-!]
“아윽?!”
“그래, 그렇지. 그래서 어차피 인생 나락 간 거. 너한테 화풀이 좀 하려고.”
다짜고짜 그에게 뺨을 맞은 나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고, 그는 내게 발길질을 해대며 억지로 일으켜 복부에 주먹질까지 했다.
한참이나 쉬지도 않고 그에게 맞은 나는 고통스러운 신음만 흘릴 뿐, 살려달라는 비명은 하나도 뱉지 않았다.
이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허억…. 헉…. 씨발, 좆 같은 년. 지도 좋아서 돈 받고 다리 벌린 년이 어디서 피해자 행세야?”
[퍼억!!]
“윽…!!”
쉴새 없이 몰아치는 그의 발길질.
한참이나 자신의 억눌린 분노를 표출하던 그는 지친 건지, 나를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콜록…!! 하아…. 끝이에요…? 다 때리셨으면 이제 그만 가주세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끝은 무슨 씨발년이. 이제 시작이니까 걱정 마.”
피우던 담배를 내 몸에 지지며 끈 그는, 무자비한 폭력을 다시 시작했다.
결국 한참을 그에게 맞던 나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게 되었고, 그는 내 머리채를 붙잡아 방으로 끌고 가서 나를 침대에 던진 뒤, 옷을 벗었다.
이 상황에 와서까지 자신의 성욕을 풀려는 그의 모습에 구역질이 났고, 억지로 옷을 벗겨내는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어차피 인생 망한 거, 네 인생도 나처럼 똑같이 만들어줄게.”
“… 한심해.”
“씨발, 지금 뭐라 했냐?”
[짜악-!]
내 몸을 주무르던 그의 손바닥이 내 뺨을 날린다.
“으윽…. 너 같은 남자들은 다 똑같아…. 본인 욕구를 채우고 싶어서 남의 기분 따윈 생각조차 안 하는 쓰레기잖아….”
“이 씨발년이!!!”
동공이 풀려버린 그의 눈동자.
이성을 잃은 그가 내 몸에 올라타,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커흑?! 켁…!!”
“씨발년이…!!! 돈 받고 몸 파는 창녀 주제에 감히 그딴 소릴 지껄여?!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씨발!!!!!”
목에 가해지는 압박에 서서히 시야가 풀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