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백선아
1.
21살 대학생 백선아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착하게 자라라는 뜻에서 지어주신 이름, 선아(착할 선善, 아이 아兒). 그녀는 지금까지 이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같은 반에 따돌림당하는 아이가 있다면 가장 먼저 나서서 손을 내밀었다. 학급 친구들이 서로 싸운다면 중간에 서서 적절히 중재했다.
모르는 문제가 있는 친구에게는 이해할 때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고, 남들에게 말 못 할 고민이 있는 친구에게는 진심을 다해 위로해 주었다.
옆 학교까지 소문날 정도로 예쁘장한 외모 때문에 사랑 고백도 수십 번은 받아봤으나, 그녀는 학업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했다.
그리고 백선아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할 때쯤, 그녀는 유명인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뛰어난 문제 해결사였으며, 어려운 일들에 적극적으로 나서 타의 모범이 되었다.
부모님의 자랑이었고, 친구들의 우상이었으며, 학생들의 귀감이었다.
백선아는 살면서 착한善 아이兒의 삶을 살아온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남들을 도와주는 만큼 자기 일을 할 시간이 줄어들고, 자신의 선의를 음해하고 헐뜯는 사람들은 어딜 가나 있는 법이었다.
그러나 선의는 베푼 만큼 돌아온다. 백선아는 남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만큼 자신도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서로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상부상조. 그것이 백선아가 생각하는 인간 사회의 본질이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 바닥에 똥을 싸고 있었다.
"흑…… 흐흑. 흐읍……!"
닭똥 같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서럽게 울면서, 똥을 싸고 있었다.
G7 국가의 정상들이 좀비 바이러스 팬데믹을 선언하고, 갑자기 출현한 좀비들로 인해 거리가 아비규환에 빠졌을 때.
그녀는 친구의 부탁으로 한 오피스텔 1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대타를 하고 있었다.
좀비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와 덮치려고 하자 그녀는 재빨리 편의점 창고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분명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금방 구조대가 찾아올 거라는 희망적인 믿음과는 달리, 112도 119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창고 문밖에서는 편의점 안을 돌아다니는 좀비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갇혔다. 편의점 창고에.
그나마 희망적인 점이 두 가지 있었다.
첫 번째로, 이곳이 편의점 창고라서 식량이 아주 많다는 점이었다.
과자는 물론이고 온갖 라면이나 통조림, 음료수까지 가득했다. 적어도 굶어 죽을 일은 없었다.
두 번째로, 가족들과 연락이 닿았다.
"어, 누나! 괜찮아? 나는 멀쩡해. 지금 엄마 아빠랑 생존자 대피소에 모여있어. 여기 사람 1000명도 넘게 있어서 안전할 것 같아. 뭐? 편의점 창고에 갇혀있다고? 어, 알았어! 내가 한번 사람들한테 말해서 구조대를 짜자고 건의해 볼게! 나 혼자서라도 갈 테니까 걱정 말고 기다리고 있어! 절대 혼자서 나올 생각하지 말고! 알았지?"
"야, 너야말로 혼자서 올 생각하지 마! 나는 여기 먹을 것도 많아서 괜찮아! 야, 야! 씨, 끊었네……"
듬직한 남동생이었다.
그녀는 안심했다.
여기서 과자를 먹으면서 버티고 있으면 구조대가 찾아올 것이다. 그러면 가족과 만날 수 있다.
다행이다.
그 생각이 부서진 것은 저녁에 특수 능력을 각성한 능력자들이 나타났다는 뉴스가 터진 이후였다.
계속 연락을 주고받던 동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누나. 여기도 능력자들이 열 몇 명 각성했는데 얘네 뭔가 이상해. 자꾸 지들끼리 모여서 뭐라 쑥덕거리는데 별로 느낌이 안 좋아. 상황 봐서 나랑 엄마 아빠만이라도 빠져나가볼게. 조금만 기다려.
이 이후로 동생은 연락을 받지 않았다.
아무리 문자를 보내도, 전화를 해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때부터 백선아는 불안 증세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다리를 떨고 손톱을 물어뜯었다.
틀림없이 남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평생을 누구보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그녀였다. 모두가 칭송할 만큼 높은 덕과 사회적 인망을 쌓아왔다. 그러나……
이런 좀비 아포칼립스에서는,
치가 떨릴 만큼 무능력했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녀는 계속해서 뉴스나 커뮤니티로 정보를 수집했다. 그럴수록 보이는 것은 능력자들이 일반인들을 상대로 벌이는 갑질, 패악질들뿐이었다.
그런 글들을 보면 남동생이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가 떠오르면서 불안 증세가 심해졌다. 그녀의 정신은 점점 더 망가져갔다.
"능력을 각성하는 법…… 강렬하게 염원해라, 강렬하게 염원. 염원……."
그녀는 하루 종일 주문처럼 염원이라는 말을 되뇌이며 자신도 능력을 각성하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능력을 각성하는 일은 없었다.
좀비 바이러스가 발생하고 하루가 지나고, 그녀를 찾아온 것은 능력의 각성이 아니라 참기 어려운 변의였다.
똥이 마렵다. 그러나 창고 안에는 화장실이 없다.
그녀는 참고, 참고, 참다가 결국 창고 바닥에 똥을 쌌다.
"흐읍…… 흑……."
눈물을 흘리며 똥을 싸고 결심했다.
싸우자. 직접. 목숨을 걸고.
내가 능력을 각성하지 못하는 것은 간절함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좀비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오면 각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직접 가족들을 구하러 가자.
하지만…… 각성하지 못한다면?
좀비에게 물린 사람들도 모두 위급한 상황 속에서 좀비를 물리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각성하는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의 선택받은 자들 뿐이다.
자신이 선택받지 못했다면?
"…………."
백선아는 의식적으로 생각을 멈췄다.
편의점 비품인 커터 칼을 손에 쥔 그녀의 얼굴에는 마지막 각오를 한 사람 특유의 비장함이 서려있었다.
2.
띠링- 1층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도착하자 오피스텔 로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좀비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대충 세어봐도 머릿수가 20은 넘어 보이는 좀비들.
"세레나, 좀비들이 약하다고 방심하지 마."
"네!"
지금까지 상대해온 좀비들은 모두 약했다. 능력치 상승으로 강해진 나와 세레나라면 100마리가 떼로 몰려와도 무서울 게 없었다. 그냥 때려 패면 되니까.
하지만 이런 약한 좀비들 사이에 쉽게 죽지 않는 특수 개체가 하나씩 섞여있어서 방심한 주인공 일행을 물어버리는 것이 좀비물의 클리셰였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방심은 금물이다. 현실은 게임이 아니니까. 한 번의 방심이 곧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랴압-!"
후웅— 깡!
마음을 굳게 먹은 나의 배트질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배트의 이점을 활용한 아슬아슬한 사거리에서의 풀 스윙에 좀비들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나갔다.
그리고 그런 나보다 훨씬 활약하고 있는 것이 세레나였다.
"……."
세레나는 말없이 조용히, 그리고 확실하게 후라이팬을 휘둘렀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좀비들이 두세 마리씩 터져나간다.
좀비들 사이에서 날뛰는 세레나의 모습은 세렝게티 초원의 한 마리 사자와도 같았다. 그리고 좀비들은 연약한 가젤 무리였다.
로비에 가득했던 수십 마리의 좀비들을 모두 해치우는 데에는 몇 분 걸리지 않았다.
"후우…… 고생했어, 세레나."
"아니에요, 주인님."
내가 한숨과 함께 긴장을 털어내는 동안에도 세레나는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함께 방 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세레나는 생각보다 듬직한 여전사 타입이었다.
어찌 됐든 1층에 왔으니 이제 계획했던 대로 편의점을 털 차례였다.
그리고 편의점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안쪽에서 여자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죽어어어어어엇———!!"
비명과도 같은 고함이었다. 무언가 다급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세레나!"
"네!"
나는 재빨리 달려나가 편의점 문을 발로 힘껏 밀었다.
안쪽의 풍경을 재빠르게 스캔한다.
보이는 좀비는 둘, 비명을 지른 여자 하나가 2:1로 싸우고 있다. 손에 든 조막만 한 커터 칼로.
심지어 바닥에는 목이 덜렁거리는 좀비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상태를 보니 방금 죽였다. 저 여자가 커터 칼로 해치운 거였다.
특수 능력은 없는 일반인. 하지만 싸움 수완이 좋은 여자다. 여기까지 판단을 내리는 데에 0.2 초 정도의 짧은 시간이 흘렀다.
"도와줄게요!"
휙! 깡!
상황이 급한 만큼 풀 스윙이 아닌 끊어치기로 가까이 있는 좀비의 관자놀이를 타격했다.
그걸로도 위력은 충분했다. 좀비는 한방에 죽지는 않았으나 맥없이 쓰러졌다.
나머지 한 좀비는 당장이라도 여자를 물어뜯을 듯 위협적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녀석의 아가리로 배트를 밀어 넣었다.
캉-!
좀비의 위아래 앞니가 통째로 뽑히면서 입안에 배트가 깔끔하게 들어갔다. 그대로 바닥에 찍어서 좀비의 뒷목을 뚫어버렸다.
탱-!
뒤쪽에선 세레나가 내가 쓰러트린 좀비에게 확인사살을 가했다.
이것으로 눈에 보이는 좀비는 모두 죽였다. 남아있는 위협이라곤 편의점 창고에 좀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
나는 재빨리 이 점을 확인했다.
"좀비는 이게 다예요?"
"네?"
"창고에는 좀비 더 없어요?"
"아 네, 네. 제가 창고에 있다가 나왔어요. 방금 죽이신 게 전부에요."
여자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휴우. 다행입니다. 타이밍이 좋았네요. 저는 김도하입니다."
"아…… 저는 백, 선아……"
흑, 흐흑. 하고.
여자는 갑자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뭐, 세상이 이 모양이 됐는데 사람마다 사연 하나씩은 다 있을 것이다.
"감사, 감사합니다…… 구해주셔서……!!"
"괜찮습니다. 정신 차리시고 힘내세요."
여자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주위를 둘러봤다.
편의점 안은 아무도 털어가지 않은 듯 모든 물품이 깔끔하게 놓여있었다.
다행이다. 이러면 아마 안쪽에 재고를 쌓아놓은 창고에는 물품이 더 많겠지.
나는 여자가 정신을 차리고 대화가 가능해질 때까지 편의점 재고 품목이나 확인하기로 했다.
그리고 열린 창고 문으로 다가갔을 때……
"아, 안돼요—!!"
"네?"
여자가 갑자기 소리질렀다.
"지, 지금 차, 창고로 들어가시면…… 안돼요."
"네? 왜요? 설마 이 식량을 전부 혼자 챙기시겠다는……"
"아, 아니요! 설마 생명의 은인한테 그런 염치도 없는……!!"
"그럼 왜요?"
여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마치 무언가를 들킬까 봐 두려워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 아무튼 안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