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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화 29. 사냥 전야 – 육정(毓精) (2)


범인은 3일 뒤에야 잡혔고,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라진 8분 동안 여성을 강간했다는 증거들 까지 나오며 세간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국민들을 가장 분노하게 만든 것은 범인이 사건을 반성하기는 커녕, 나가면 공공연하게 여성을 죽이겠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재판부의 판결도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국민들은 최소 20년 이상의 중형 혹은 무기징역을 선고하라는 여론이 형성되었지만, 1심에서 고작 징역 12년이 선고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항소심 과정에서 강간 정황이 드러나면서 20년의 징역형을 받기는 했지만, 오히려 국민들로부터 더 큰 비난만 받아야 했다. 이때 국민들 사이에서 오르내린 이름이 바로 조두순이었다. 끔찍한 아동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고도 겨우 12년 형만 살고 나왔던 당시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며 맹비난을 한 것이다. 이로 인해 TV를 비롯해 모든 언론사는 물론, 미튜버와 같은 개인 방송인들조차도 하루 종일 돌려차기남과 조두순의 이름을 언급하며 공론화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문에 또 다른 끔찍했던 성폭력 사건들이 하나둘 알려지게 되면서 사회적인 공포와 불안함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세상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들불처럼 번져나며, 언제 어디서 무슨 짓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조성되었다. 그런 위기감이 호신용 무기나 용품 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실질적인 구매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올해 초에는 돌려차기남에 버금가는 또 다른 성폭력 범죄가 발생하게 되면서 호신 용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식기는커녕 더욱 커져 가는 추세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서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범죄까지 늘어나는 추세다 보니, 젊은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 사이에서도 호신용 무기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했다. “사실 이런 말은 하기는 뭐하지만 덕분에 장사가 잘 되고 있으니 이걸 남들 앞에서 내색하기도 참 뭐하고 그렇습니다.” 호신 용품점을 개업한 이래로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중이라면서 싱글벙글이던 사장이 잠시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는 그렇게 말했다. 이런 장사라는 게 어찌 보면 남의 불안과 걱정을 인질 삼아 하는 장사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마냥 남들 앞에서 좋아할 수 만은 없는 까닭이다. “이게 요즘 유행하는 건데 블랙가드SSS 라는 제품입니다. 가격도 적당하고 성능도 꽤 뛰어납니다. 보다시피 겉으로 보기에는 실제 총과 거의 구분하기 힘들고...” 그러면서 검은색 자동권총 형태의 가스총을 시작으로 다양한 형태의 가스총을 꺼내 보이며 소개한다. 그 중에서 강호의 시선을 끈 것은 실탄을 장전하는 형식의 가스총 두 정이었는데, 하나는 리볼버 형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탄창 형식의 가스총이었다. 외형이나 크기도 장난감이라는 인식 보다는 진짜 총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문제는 그런 제품을 소지하기 위해서는 경찰서에서 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발급되기까지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요런 건 별도의 허가증이 없어도 되긴 합니다. 고추액이나 후추액을 사용하는 건데, 최루액보다 약하긴 하지만 사실 가스총이라는 것이 5미터 이내의 근거리에서 사용하는 것이라서 큰 차이는 없습니다. 마시면 괴롭고 아픈 건 똑같거든요. 아, 억지로 참으려고 하면 참을 수 있긴 한데, 그거야 알고서 당하는 거고 모른 채로 불시에 당하면 절대로 못 참습니다.” 그러면서 슬쩍 후추액을 스펀지에 묻혀 냄새를 맡게 해 주는데 순간적으로 코가 마비될 정도로 지독하다. 짐승이나 몬스터들의 후각이 인간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해 보였다. “요건 스프레이 분무기 형식이고, 요건 총기 형태인데, 소지하기에는 총기 형태가 편하고 사용하기에는 사실 스프레이 형식이 편하긴 합니다. 다만 대부분의 손님들이 총기 형태를 많이 선호하시더군요. 외형 자체만으로도 상대방에게 두려움을 줄 수가 있거든요.” 허가증을 기다릴 시간 없이 당장 사용할 물건을 보여 달라는 말에 사장이 꺼낸 것이 최근 인기가 좋다는 가스총이었다. 손바닥 크기 정도의 작은 가스총인데 가격도 십만 원 대로 그리 높지 않다. 장난감 같은 외형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며칠 안에 게란트로 넘어가 라그놀의 부락으로 향할 계획인 강호로서는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다. “일단 이거로 주시고, 아까 봤던 그 가스총도 같이 사는 거로 하죠. 그리고 전술 방검복도 주시고요, 전술헬멧에 야시경이랑 나이프 벨트랑 전술벨트에...” 탄창 형식의 가스총을 시작으로 눈여겨보았던 전술 방검복과 전술 헬멧을 비롯하여 이참에 아예 필요하다 싶은 기타 장비들까지 일관 구매하자 사장의 입이 귀에 걸린다. 강호가 앉은 자리에서 주문한 가격만 거의 이백만 원에 육박하는 것이다. 전술 방검복에 전술 헬멧을 비롯해 부대 장비까지 구입해서 나오자 뭔가 든든한 느낌이다. 방검복과 헬멧은 혹시나 있을 지 모를 라그놀과의 근접전에 대비해서 구입을 했다. 그리고 차후 야랑족이나 다른 수인족과 조우할 때를 대비함이기도 했다. '메인 퀘스트에서 찾아가라고 해서 무조건 호의적일 거라고 생각하는 건 금물이지.' 전술헬멧은 영화에서 군인들이 자주 쓰고 등장하는 형태였는데, 측면에 후레쉬를 설치할 수 있고 정면에는 야시경 마운트를 설치할 수도 있다. 측면화 후방으로는 다양한 벨크로가 있어, 배터리를 비롯해서 이런 저런 장비들도 부착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구입한 물건들 중에서 강호를 가장 흡족하게 한 물건은 바로 야간투시경이었다. 지금껏 야간투시경을 일반인이 구매하는 것이 불법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강호다. 과거 군에 있을 때 군용 물품은 시중에 판매가 되지 않는 다는 소리를 들었던 데다가, 실제로 군복 같은 경우에도 시중에서 파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장의 말을 들어보니 1세대 성능의 야시경은 따로 허가가 없이 자유롭게 구매가 가능하고, 2세대는 허가만 받으면 민간인들도 구매가 가능하다는 말에 잠시 멍한 얼굴을 했다. 이래서 정보가 중요한 법이다. 구매한 물건을 차에 실으며 싱글벙글 하던 얼굴이 별안간 시무룩하게 변했다. 가스총이지만 그래도 권총에 밀리터리 장비까지 구입하고 나자 마치 군에 재입대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이러다 나중에 진짜 소총이라도 어찌어찌 구하게 된다면 영락없이 특전사의 모습이 되어 버릴 판이다. 총포사 몇 군데 돌아다닌 것 만으로도 시간이 훌쩍 지났다. 중국집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는 다시 시장이나 철물상을 돌아다니며 그물망 같은 것도 구입하고 덫으로 쓸 만한 것들도 구입하고 하다 보니 어느새 약속 시간이 가까워져 간다. ‘그나저나 지능은 어떻게 올려야 하나.’ 운전을 하던 중에 불쑥 지능 스텟으로 생각이 옮겨갔다. 그동안 다른 스텟들은 훈련과 실전을 병행하면서 꾸준히 오르고 있는 중이었는데 지능과 지혜 스텟은 겨우 1씩 올라 지능이 10가 되었고, 지혜는 12가 되었다. 다른 스텟들이 오르는 데 비하면 너무나 더디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마땅히 올릴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릴 때에도 공부가 힘들었는데, 다시 공부를 해서 지능을 올린다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그 시간에 차라리 다른 신체능력을 올리는 것이 현재로서는 훨씬 이득이다. ‘에잇, 몰라. 나중에 지능이나 지혜를 올려주는 아이템이나 업적도 나오겠지.’ 결국 그런 생각을 하며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 강시연과의 훈련은 일단 일주일에 한 번은 김태성의 배팅 연습장에서 하고, 그 외의 개인 훈련은 스케줄을 봐서 강시연의 집에서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사실 강시연의 입장에서는 매일 훈련을 핑계로 강호를 만날 계획을 세웠지만, 강호에게는 게란트라는 문제가 있어 그녀와 매일 훈련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 앞으로 열흘에서 보름 이상 게란트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질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되면 지구에서는 며칠 간 자리를 비워야 할 수도 있기에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배팅 센터로 항하면서 강호는 살짝 들뜬 마음이 되어 기대를 했다. 강호의 입장에서는 거의 한 달 만이다. 통화 중에 들려 온 목소리를 보니 오늘은 그녀와 관계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겨났다. 대신, 지난 번 처럼 무리만 하지 않으면 된다. 두세 번을 하고 그치더라도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을 강호는 지난 한 달 간의 지옥 같은 기다림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다. 오랜만에 찾은 배팅 연습장이다 보니 최태성이 타석에 한 번 서보라고 재촉한다. “이번에 160까지 던질 수 있는 기계를 새로 들였거든. 한 번 쳐 봐.” 160이라는 말에 박찬성의 마지막 공이 떠올랐다. 박찬성이 인터뷰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사실 그날의 마지막 공은 타이밍 상으로는 완벽했다. 강호조차도 배트를 휘두르는 순간 이건 무조건 넘어갔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꿈틀거리던 공이 중력을 무시하듯 위로 떠올랐고, 강호의 배트는 허무하게 허공을 가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공을 떠올리며 케이지 안으로 들어선 강호가 타격 자세를 잡았다. 과연 160의 공은 150과는 차원이 달랐다. 튀어나온다 싶은 순간 어느새 몸 쪽으로 공이 파고든다. 아무리 강호가 박찬성과의 승부에서 100마일의 공을 경험해 보았다고는 하나, 당시에는 강호가 무섭도록 집중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연히 그때와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맞이하는 160키로의 공은 지금의 강호에게도 꽤 버거운 공일 수박에 없었다. 공이 날아오고 처음에는 헛스윙 하기 일쑤였다. 우연히 배트에 걸리기는 했지만 하나같이 빗맞거나 내야로 흐르기 일쑤였다. 게다가 강시연과 오늘 밤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쉽게 집중을 하지 못하다 보니 공의 속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조금 시큰둥했던 것이다. 그런 강호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 것은 뒤에서 들려 온 목소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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