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32. 진격의 강시연 (6)
오하영 스스로도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얼굴이 화끈거리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저 잠시만 실례 좀 할게요...”
무릎 담요를 옆으로 치우고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그 모습이 또 강호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얀색 니트와는 대비되는 검은색 짧은 스커트를 입은 오하영의 모습은 강시연이 옆에 있다는 것조차 잠시 잊을 정도로 굉장히 뇌쇄적인 모습이었다.
‘꿀꺽!’
저런 얼굴에 저런 몸은 반칙이라던 사람들의 심정이 단박에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다 침 떨어지겠어요.”
“어? 네?”
“이거 샘나네. 당신, 제가 저런 옷 입었을 때와는 반응이 너무 다른 거 아니에요?”
그녀의 말에 강호가 지난 번 술자리에서 그녀가 입었던 옷을 떠올리고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변명했다.
“그때야... 꼴에 없는 자존심 지키겠다고 괜히 아닌 척 했던 거죠.”
“사실은 엄청 꼴렸었는데 억지로 참았다 그런 말이죠?”
“그렇죠. 아니면 제가 머리에 총 맞은 것도 아닌데 진짜 아무렇지도 않았을 리가 있겠습니까. 하하하!”
“피!”
어색하게 웃는 강호의 모습에 강시연이 삐진 척 입술을 삐죽이더니 이내 옆으로 슬쩍 붙어 앉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 하영이 어때요? 죽이죠?”
“네? 아, 네.”
“당신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하영이가 원래 사석에서는 저런 옷을 입고 다니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그녀의 말에 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도 들은 바가 있는 까닭이다.
“저도 들어 봤습니다. 하영씨가 가슴 때문에 악플이나 외설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오히려 그게 콤플렉스가 되었다고요.”
“뭐, 비슷해요. 콤플렉스라기 보다는 워낙 순진한 애다 보니 그런 소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것 뿐이죠. 하여간 중요한 건 평소에는 저런 옷을 절대로 입지 않는 다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강호씨를 만나는 자리에 입고 나왔어요. 이게 무슨 뜻이겠어요?”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를 수가 없다.
“당신 오기 전에 하영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슬쩍 떡밥도 뿌렸거든요.”
“떡밥이라뇨?”
“당신 물건이 너무 큰 데다 정력도 너무 강하고 섹스도 너무 잘해서 저 혼자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될 것 같다고 했거든요.”
“그... 그런 걸 전부 말입니까?”
강호는 살짝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개인적인 부분까지 언급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영이를 얻는 일인데 그 정도 각오도 안 했어요? 왜요? 여기서 그만 둘까요?”
강시연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강호의 고개라 돌아갔다.
“전 아무 소리도 안 했습니다.”
“그럼 제가 하는 대로 잠자코 따라 오기나 해요. 그럼 자다가 떡이 떨어지다 못해 떡을 치게 될 지도 모르니까.”
자다가 떡을 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녀 다운 표현에 어색하지만, 한편으로는 잔뜩 기대를 담은 미소로 화답했다.
“하여간 미끼를 좀 세게 던졌으니 하영이 반응을 보면서 양념을 쳐볼 생각이에요. 일단 첫 반응은 그리 나쁘지 않아요. 오히려 생각보다 좋아요. 전 그런 말을 꺼내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제가 하영씨를, 아니 다른 여자를 안아도 괜찮은 겁니까?”
일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강시연은 대답대신 허벅지를 쓰다듬던 손을 뻗어 하초를 움켜쥐고는 어루만졌다.
손바닥 안으로 강호의 물건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 느껴지자 강시연의 눈빛이 대번에 뜨거워졌다.
“난 말이에요. 지금 엄청 흥분되어서 미칠 것 같아요. 당신도 저랑 하영이를 한 침대에서 같이 안고 싶지 않아요?”
그녀의 대답에 강호는 침을 삼켰다.
동시에 궁금해진다.
‘그녀의 변태력의 수치는 대체 얼마일까?’
옵션으로 변태력이 +15가 붙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순수 스텟의 수치가 얼마인지는 알 방법이 없기에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변태력이 기본 10이라고 해도 25의 수치다. 하지만 변태 마스터의 칭호를 지니고 있는 여자의 수치가 기본일 리는 없을테고 최소 15이상이라고 가정해도 무려 30의 수치다. 하지만 강호는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마스터의 칭호가 붙었는데 겨우 30정도일 리가 없어. 반려자가 되면 스텟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강시연을 반드시 반려자로 만들겠다는 의욕이 새삼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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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건에 찬물을 적셔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던 오하영이 거울 너머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목 언저리가 붉게 달아올라 있고 얼굴이 홍당무처럼 변해 있다.
‘진짜 미쳤나봐.’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어떤 상태인지를 모를 수가 없다.
백마 탄 왕자와의 완벽한 사랑을 꿈꾸기는 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호감을 가졌던 사람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연예계라는 곳이 매우 거친 세계다 보니 어린 나이에 데뷔를 하고 버티어 나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카메라 앞에서는 훈련받은 대로 생글거리며 웃지만 무대 뒤에서는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때론 눈물을 흘리며 울기도 했다.
일이 힘든 것은 차라리 괜찮았다. 연예계가 힘든 곳이라는 것은 연습생 생활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고, 지변 사람들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특히, 강시연으로부터 순진한 꼬맹이가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이 하루라도 빨리 이 바닥에서 탈출해라는 소리도 들었다.
연습생 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이 힘든 곳이 연예계이며, 육체적으로도 힘든 것과는 별개로 웬만한 악고 깡다구 없이는 정신적으로 버티는 것이 불가능한 세계라는 것이다.
실제로 데뷔를 한 후 오하영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도 그런 부분이었다.
앞과 뒤가 다른 연예계의 모습.
앞에서는 항상 칭찬하며 살갑게 대하던 이들이 뒤에서는 자신을 손가락질 하고 수군거리며 있지도 않은 말로 험담을 하는 곳이 바로 연예계였다.
그런 곳에서 순진한 오하영이 적응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데뷔 초창기에는 사람에 대한 불신까지도 생겨났었다.
그렇게 힘든 시기이다 보니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가기도 했고, 작은 배려 하나가 어린 소녀의 방심을 흔들어 놓기도 했다.
만약 강시연이 아니었다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몇 몇 이들에게 넘어갔을 지도 모르고, 어쩌면 진작에 숫처녀 딱지를 떼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몇 년 동안 알고 지냈던 강시연의 남성편력을 알게 되면서 남자라는 동물이, 특히 연예계라는 곳이 생각 보다 더욱 지저분한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한 순간에 주변 남자들에 대한 관심과 호감이 식어 내렸다.
덕분에 백마 탄 왕자에 대한 동경이 더욱 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너무나 지저분하고 거친 세계에 있다 보니 오히려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동심의 꿈에 집착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지켜온 감정이었기에 꿈속에서 강호와 겪었던 감정의 여파는 한순간에 강력한 태풍의 쓰나미처럼 오하영의 마음을 잠식할 수밖에 없었다.
석양을 가르고 나타난 남자를 향해 순백의 드레스를 붉은 피로 물들이며 다가서던 그 순간, 오하영은 오랫동안 지켜왔던 순결을 그에게 허락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꿈에 그리던 백마 탄 왕자가 비소로 자신의 앞에 나타났다.
뒤를 이어 찾아 온 감정은 사무치듯 그리운 애틋함이었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욕망이었다.
그런 사람이 하필이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시연의 남자였다.
[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다고 해도 난 절대로 포기할 수 없어. 이제 내 인생에 남자는 강호씨 뿐이야.]
강시연이 했던 말을 떠올리던 오하영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에 입고 다니는 복장과는 확연히 다른, 도발적이고 선정적인 복장이다.
생명의 은인을 대접하기 위한 자리에 입을 만한 옷이라기에는 그 누가 보아도 과한 복장이 분명했고, 노골적으로 남자를 유혹하기 위한 복장이라 해도 할 말이 없는 모습이었다.
평소라면 절대로 입지 않았을 옷.
그런데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옷장에서 꺼내어 입고는 집을 나섰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다 이곳이 카페의 화장실이라는 것도 잊고는 화보 촬영을 할 때처럼 포즈를 잡아 보았다.
고개를 치켜 들고 도발적인 눈빛을 하고는 가슴을 양 손으로 살짝 움켜쥐고 상체도 숙여 본다.
남들은 신이 내린 가슴이니 타고난 몸이니 하지만 오하영은 오히려 이 가슴과 몸 때문에 자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고 콤플렉스가 되어 평소엔 헐렁한 옷만 고집한다던 어떤 잡지의 분석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오하영은 오랫동안 자신에게 스트레스가 되었고 콤플렉스를 안겨 주었던 풍만한 가슴과 몸매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만하면 내가 언니보다 몸매는 더 좋아. 일단 가슴부터 내가 월등히 크잖아. 언니도 그랬어. 이런 가슴이면 꼬시지 못 할 남자가 없다고.’
가끔씩 인터넷에 자신에 대한 글이 올라올 때면 오하영도 사람인지라 궁금해서 찾아보고는 한다. 그때마다 그녀를 반겨주는 것은 온통 가슴에 대한 선정적인 글들 투성이었다.
저 가슴에 파묻혀 죽고 싶다거나, 몸매가 어쩌고 하면서 품평을 하는 것은 귀여운 애교 수준이었고, 가슴에 끼우 채로 하고 싶다거나 튼실한 허벅지나 엉덩이에 하고 싶다는 글들이 태반이었다.
그런 글들을 볼 때마다 헐렁한 옷으로 자신의 몸을 숨기는데 치중했고, 평소에는 진한 화장을 하는 것도차 멀리 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이런 몸이 남자를 유혹하는 무기가 된다는 사실을 제대로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외모도 타고난 재능이야. 그리고 타고난 재능을 이용해서 성공하는 것 역시 노력이고 능력이야.]
언젠가 강시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그 말을 쉽게 수긍하지 못했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오하영 스스로도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부터 외모로 인해 제대로 된 능력을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인해,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이 강했다.
그런데 그 생각에 지금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강호씨도 남자라면 이런 몸을 싫어할 리 없어. 그러니까 계속 훔쳐보고 그랬던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거울에 투영된 풍만한 가슴이 더욱 돋보이도록 강하게 움켜쥐며 한껏 부풀어 오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무엇 하는가.
그는 이미 강시연의 남자가 되어 버린 상황이었고, 자신에게는 다른 여자의 남자를 빼앗을 만 한 용기가 없었다.
그것도 가족 이상으로 친하다고 생각하는 강시연의 남자를 빼앗을 정도로 오하영은 모질지 못했다.
‘하아! 정신 차려, 하영아. 그는 지금 언니의 남자야.’
그럼에도 머릿속을 가득 채운 혼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 여자 저 여자 아무 여자를 안고 다니는 것 보다는 차라리 강호씨한테 어울릴 만한 여자를 내가 직접 골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시연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녀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언니가 그런다고 해도 강호씨가 그런 걸 받아들일 리가 없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런 것을 받아들일 리도 없고, 그런 것을 생각할 리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안하다.
강시연이 늘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바로 남자라면 삼처사첩을 마다하지 않고, 여러 여자를 탐하고 거느리는 것은 DNA에 새겨진 수컷으로서의 본능이라고 했다.
강한 수컷이 여러 암컷을 거느리는 건 자연의 법칙이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욱 불안했고, 그래서 강시연의 모든 말과 행동이 진실처럼 여겨졌다.
‘오하영! 엉뚱한 생각 하지 마. 아무리 그래도 지금이 조선 시대도 아니고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날 리가 없어.’
‘그건 변태들이나 하는 짓이야’라고 중얼거린 오하영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감정을 정리하려 했다. 하지만 강시연을 바로 옆에 두고도 계속해서 자신의 가슴을 훔쳐보던 강호의 눈길이 계속해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