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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화 35. 삼식이 (2)


백구 퀘스트를 완료하면서 받은 보상은 반려동물 시스템만이 아니었다. 숨겨진 스텟의 랜덤 개방. 시스템을 처음 얻고서 정력 스텟이 업데이트를 통해 생긴 것을 보며 어쩌면 수많은 숨겨진 스텟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백구 퀘스트 보상을 보면서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퀘스트가 완료되었을 때 개방될 스텟을 예상하며 큰 기대를 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호 본인의 스텟이다. 행운 스텟이 개방될 수도 있고, 혹은 변태력같은 스텟이 개방될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숨겨진 스텟의 수치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메리트였고, 앞으로 게란트에서 생존하거나 어떤 행동을 취하는데 있어 결정을 내리는 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개방된 스텟은 강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서강호 -여신의 선택을 받은 자 (매혹 +20, 정력 +20) 근력 : 20 민첩 : 20 지구력 : 18 지능(지식) : 10 지성(지혜) : 12 매혹 : 35 정력 : 42 어그로 : 31 백구 퀘스트를 완료하며 개방된 숨겨진 스텟은 ‘어그로’ 수치였다. 어그로라는 명칭은 강호도 익히 알고 있다. RPG 게임 등에서 주로 사용되는 개념으로, 이 수치가 높고 낮음에 따라 몬스터와 조우하거나 전투를 벌일 확률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란 말이지.’ 시스템은 게임의 설정을 차용하되 현실에 대응한다. 단순히 몬스터와 관련된 스텟이라기 보다는 보다 현실과 관련된 다른 무언가라고 해석해야 할 여지가 높다는 의미다. ‘현실 반영이라...’ 손을 뻗어 어그로 항목을 클릭하자 그와 관련한 설명이 뜬다. [어그로 : 태초의 의지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 참으로 간략하면서도 많은 것을 함축한 설명이다. ‘태초의 의지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언가 거대한 존재의 관심을 끌었다는 의미인데.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네.’ 예전에 어떤 소설에서 어그로 수치의 독특한 설정을 본적 있었다. 어그로 수치가 높을수록 귀찮은 일에 자주 휘말리게 되고, 가는 곳마다 사건이나 사고에 엮이게 된다는 설정이었다. ‘그렇다는 건, 이 수치가 높을수록 가는 곳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다는 말인데. 근데 31이라는 수치가 대체 높은 거야 낮은 거야?’ 다른 스텟과 비교하면 높은 편에 속하기에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결국 이 어그로 수치도 앞으로 직접 몸으로 겪으며 파악하고 알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뭐 하나 쉬울 일이 없다. **** 나침반으로 방위각을 정하고 서쪽을 향해 다시 이동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을까. 해가 중천에 떠오른 것을 보며 큰 나무 둥치 아래에서 배를 채운 후,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숲에서 별다른 일이 없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사실 게란트라는 곳, 정확하게는 이름 모를 이 숲은 의외로 많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때로는 하루 종일 이동을 해도 큰 짐승 한번 만나지 못할 때도 있고, 기껏 만나는 동물이라고 해도 작은 다람쥐와 같은 동물들 정도일 때도 많다. 그럼에도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며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언제 어느 순간 맹수나 몬스터가 등장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점심을 먹고 한 참을 이동을 하면서도 아무런 일이 없자, 강호는 이대로 돌아갈지 고민을 했다. 탐험이 주 목적이 아니라 백구의 레벨을 올리자는 목적으로 나선 길이었고, 이만하면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고, 너무 무리하지 말자는 생각에서였다. ‘레벨보다 안전이 우선이지.’ 결국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린 강호가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 베이스 캠프를 향해 돌아가던 순간이었다. 동쪽에서 불어오던 바람의 방향이 한 순간 멈추더니 별안간 등 뒤쪽인 서쪽에서부터 불어오기 시작한다. 숲에서 바람의 방향이 한 순간에 바뀌는 것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드문 일도 아니라는 것을 강호는 최근에 알게 되었다. 나무가 빼곡한 숲은 바람이 이동하기에 최적의 통로인 셈이다. 게다가 사방팔방으로 나 있는 숲의 길은 바람의 방향마저 자유롭게 바꾸어 버리기도 한다. 사냥꾼들이 사냥할 때 바람의 방향을 끊임없이 살피고 바꾸며 사냥감을 추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런 것을 최근에 비로소 알게 된 강호는 숲을 이동하면서 최대한 바람의 방향을 살피며 움직이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숲에서의 이동이 더욱 느려졌지만, 안전을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바뀐 바람을 통해 백구가 무언가 냄새를 맡았음인가. 갑자기 자세를 낮추고는 바람이 불어 온 방향을 향해 주시하며 낮게 으르렁 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강호도 황급히 나무 둥치 뒤에 몸을 숨기며 자세를 낮추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무언가 희끗한 그림자 하나가 저 멀리 50여 미터의 거리를 두고 나무 사이를 어슬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덩치는 그리 커 보이지 않는데 두 발로 서서 직립보행을 하는 동물처럼 보인다. “쉿!” 강호가 백구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낮게 자세를 낮추고는 조용히 전방을 주시하는 모습을 보며 확실히 똑똑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무 사이에서 움직이는 그림자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바닥을 살피는 것이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했다. 조심스럽게 단망경을 꺼내어 살펴보니 이전에 보았던 몬스터와는 또 다른 생김새의 몬스터다. 처음으로 보는 몬스터. 키는 대략 140정도로 초등학생 정도였는데 생김새가 꽤나 기이하다. 얼굴이 몸의 크기에 비해 유달리 크고 팔이 땅에 닿을 정도로 길며 약간 구부정한 자세를 하고 있다. 이목구비는 인간과 꽤나 흡사했는데, 입이 아래턱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크고 매부리코는 거의 주먹 만했으며 눈은 툭 불거져 나와 있는 것이 뭔가 귀여운 듯하면서도 오싹한 인형을 보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귀가 나방의 날개처럼 큰데, 보통 저런 식으로 귀가 큰 동물들은 청력이 발달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끼릭! 끼리릭!” 저 멀리서 놈이 손에 든 나무 꼬챙이로 바닥을 쿡쿡 찌르며 다니는 것이 보인다.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관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호의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다. ‘옷을 입고 있어?“ 지금껏 만났던 이족 보행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아랫도리를 훤히 드러낸 채 흉측한 하물을 덜렁거리던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 저 멀리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생명체는 아랫도리를 천으로 두르고 있다. 옷이라고까지 하기에는 어렵지만 확실히 아랫도리를 가리기 위한 목적이 분명한 형태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가방?’ 어깨를 가로지른 끈의 아래에는 가죽 같은 것으로 만든 듯한 가방이 달려 있고, 허리춤에 두른 끈에도 작은 가방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매달려 있다. 하지만 정말로 강호를 놀라게 한 것은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한 가지 물건 때문이었다. ‘칼이다.’ 왼쪽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것은 조악해 보이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칼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인간을 짐승과 구별 짓는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무엇일까? 바로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원숭이나 침팬지 같은 동물들도 도구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흉내를 내는 것과 도구의 목적을 명확하게 인식하여 응용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옷을 입고 있다. 의식주라는 것은 인간 삶의 3대 요소로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입고, 먹고, 살아갈 집이 필요하다. 그런데 식사와 거주가 생존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면, 의복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라고는 할 수 없다. 지구의 인류가 처음으로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로 보고 있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 과거에는 추위나 더위, 벌레에 물리거나 외부의 충격을 막기 위해 옷을 입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처럼 여겨져 왔었다. 하지만 시대가 발전하고 연구가 진행하면서 다양한 견해와 이론이 대두되었다. 단순히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일차원적인 개념이 아니라, 스스로를 꾸며서 강한 수컷을 유혹하기 위한 미적 장식의 용도로서 옷을 입기 시작했다는 가설. 의식의 수준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발현되었고 알몸을 가리기 위해 옷을 입기 시작했다는 가설. 마지막으로 외부 활동을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많이 지니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으로 옷을 입기 시작했다는 가설 등이 그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저 멀리서 보이는 생명체는 단순히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차원에서 옷을 입었다고는 볼 수가 없었다. 입고 있는 옷은 정확하게 아랫도리를 가리고 있고, 가방을 매고 있으며 허리에는 벨트를 하여 물건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이 모습만 보면 하물을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천을 둘렀다는 의미이며, 실용적인 목적으로 가방과 벨트를 하고 있다는 의미에 더 가까워 보였다. 무엇보다 가방이나 칼을 사용한다는 것은 도구의 명확한 의미를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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