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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화 35. 삼식이 (4)


‘서... 설마 이거 진짜 버그 같은 건가?’ 유니버스 아키텍쳐 시스템에 의해 능력을 처음 얻었던 날, 누락된 항목이 발견되었다며 급히 정보를 수정하고 업데이트 하는 것을 보며 시스템에도 허점이 있다는 것을 짐작했었다. 그렇다면 시스템 충돌이나 버그 역시 존재할 수 있고, 반려동물 시스템의 레벨 시스템이 일종의 버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말 버그라면 언제 패치가 될 지 몰라.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 백구를 위험으로 몰지 않기 위해 최대한 안전한 방식으로 사냥을 하기로 생각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런데 생각이 바뀌고 있다. ‘백구는 후방으로 물려서 서포터의 역할 정도만 맡기고 나 혼자 사냥해도. 보자, 나 혼자 사냥할 수 있는 몬스터 종류가...’ 이래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고 실수를 되풀이 하는 법이다. ‘아니야. 그래도 최대한 조심하는 게 상책이야. 일단 이 문제는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하고...’ 활을 인벤토리에 갈무리한 후 미스릴 장검을 빼어 들고는 조심스럽게 몬스터와 표범을 향해 다가갔다. 표범은 확실하게 죽었기에 당장은 눈앞에 선 정체모를 몬스터를 경계해야 했다. 가까이서 보니 생김새가 더욱 요상해 보인다. 인형의 눈을 연상케 할 정도로 큰 눈은 너무나 순수하고 똘망똘망해서 한 치의 악의도 없어 보였고, 전체적인 생김새도 흉측하다거나 무섭다는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순해 보이는 눈망울 때문인지 귀엽다는 인상이 더 강하다. [그린 고블린 : 게란트 대륙의 최약체 몬스터 중의 하나. 몬스터로 분류되어 있지만 지성체이며 약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동굴에 무리를 지어 부족 생활을 하며 약초 채집과 약 조제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천성적으로 겁이 많고 공격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 고대에는 요정의 한 갈래로 분류되기도 했다.] 고블린이라는 이름에 강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고블린이라면 서양의 동화나 전설에서 사람들에게 장난을 치고 괴롭히는 작은 키의 괴물 혹은 요정으로 묘사되는데, 많은 영화나 게임에도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었다. 그런 이름이 게란트에서 등장하고 보니 이 세계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고블린은 표범에 의해 가슴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린 채로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슬쩍 상처를 살펴보니 꽤 깊어 보이기는 하지만 죽을 정도의 상처는 아닌 듯 보였다. ‘어떻게 할까.’ 당장 이 한 놈만 두고 보자면 딱히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설명에서도 언급했듯이 장난이 심하다고는 하지만 천성이 겁이 많고 공격성이 강한 몬스터가 아니라고 했다. 무엇보다 요정이라고도 불린다고 하는데, 강호가 아는 요정은 예쁘고 늘씬한 몸매에 귀가 긴 엘프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 이런 게 요정이라고?’ 왠지 요정이라고 하니 함부로 대하기도 껄끄럽고, 그렇다고 이대로 그냥 보내기에는 뒤가 찜찜하다. 그때, 고블린이 가슴에 두르고 있던 가방을 향해 손을 움직이는 모습에, 강호가 대뜸 들고 있던 검을 내밀었다. 아까 표범을 향해 던졌던 최루탄 주머니가 떠오른 것이다. 고블린이 고개를 흔들고는 대뜸 손사레를 치더니 조심스럽게 가방으로 손을 뻗는다. 그 모습에서 고블린이 자신에게 어떤 위해를 가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강호가 슬쩍 고개를 끄덕이자 놈이 반색을 한다. ‘확실히 사고 능력이 있어.’ 조심스럽게 가방을 열고 가죽에 쌓인 무언가를 꺼내는데, 가죽 안에서 나온 물건의 모습에 강호가 눈을 반짝였다. 푸른색을 띤 돌. [마정원석 – 마정의 원석이다. 세공과 마법적 처리를 통해 마정석으로 만들 수 있다. 가루로 만들 경우 마법진을 그리는데 이용되며, 약의 조제에 첨가할 경우 약효를 대폭 상승시켜 준다.] 마정의 원석이라는 설명에 강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과거 해골을 발견했던 동굴에서 발견한 마법진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때 마정석이 마법을 가동하는 데 필요한 거라고 했어.’ 당시 발견했던 것이 부서진 마정석의 파편이었다. 그리고 설명에는 마정석이 마법을 발동하는 에너지원이라고 했다. 그 말은 이 원석이 지구의 기준으로 보자면 배터리 같은 거라 할 수 있었다. ‘정말로 에너지원이라고 한다면...’ 어쩌면 강호는 지금 이 순간 지구의 환경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세기의 발견을 한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의 환경 문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에너지 문제다. 문명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삶은 윤택해지고 세상은 그만큼 편해졌다. 그리고 인간의 삶을 윤택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에너지다. 하지만 세상에는 공짜는 없는 법이다. 인간의 생활이 편리해지고 윤택해지는 만큼 환경오염은 심각해지고 지구는 점차로 그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전 세계가 탄소중립 선언을 하며 에너지 위기에 대처하고 친환경 에너지로 대체하기 위해.... ‘시발! 당장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것부터 문제구만. 환경은 개뿔이.’ 당장 게란트에서 생존하는 것이 중요했고, 백구의 레벨을 올리는 것이 중요했다. 메인 퀘스트에는 북쪽의 산맥에서 수인족을 찾으라고 하는데, 저 거대한 산맥을 모조리 뒤져 찾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눈앞이 깜깜하다. ‘그런데 친환경 에너지는 개뿔이.’ 그런 생각을 하는데 고블린이 손에 든 마정원석을 받으라는 듯한 시늉을 하며 내밀었다. 아무래도 방금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는 의미인 듯 했다. 생명의 은인에게 내어줄 정도라면 고블린에게도 상당히 귀한 물건일 게 분명했다. ‘마법과 관련한 물건이다 이거지. 지금 당장은 필요 없을지 몰라도 언제고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지 몰라. 약을 조제하는데 사용할 수 도 있다고 했고. 일단 주는 거니까 받아 두자.’ 그런 생각에 마정원석을 받아 들자 고블린의 표정이 대번에 환해졌다. 그러다 가슴의 통증 때문에 인상을 쓰더니 또 다시 가방으로 손을 뻗는 것이 보였다. 이번에 고블린이 가방에서 꺼내어 든 것은 작은 목각함이었다. 손바닥 크기의 작은 목각함을 꺼내어 뚜껑을 여는 모습을 보며 강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가방도 가방이었지만 물건을 보관하는 목각함을 만든다는 것은 도구의 기능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목각함의 뚜껑이 열리자 상당히 고약하고 비릿한 냄새가 훅하고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런데 그 고약한 냄새 뒤로 뭔가 익숙한 냄새가 섞여 있다. ‘한약 냄새랑 비슷한데?’ 그런 생각으로 상자 안을 보자 시커먼 덩어리 같은 것이 담겨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어릴 때 사용하던 고약을 연상케 하는 진득한 덩어리. 검은 덩어리에서 손톱 크기 정도를 때어낸 고블린이 손바닥에 올리고는 돌연 침을 탁 뱉었다. 걸쭉한 침을 잔뜩 내뱉는 모습에 강호가 잠시 인상을 썼지만 고블린은 개의치 않고 검은 덩어리와 침을 뒤섞기 시작했다. 그러자 꽤 딱딱해 보이던 덩어리가 걸쭉한 젤리 형태로 변했다. 한 참을 손바닥으로 비비며 걸쭉한 형태로 만든 것을 가슴에 바르는 모습을 보며 강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약이구나.’ 처음에 고약처럼 보인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로 약이었던 모양이다. 놈이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던 강호가 상자를 보여 달라는 시늉을 하자 고블린이 울상을 했다. 아마도 빼앗으려는 것으로 오해한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니 별 것 아닌 그 물건이 놈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물건인 듯 싶었다. 하기야 위험이 가득한 숲에서 살아가다 보면 표범에게 습격을 당한 것철머 언제 무슨 일을 당하게 될 지 모르는데, 상처를 치료하는 약 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 리가 없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미는 목각함을 받아 들고 안을 살피자 바로 정보가 뜬다. [고블린의 고약 – 고블린이 숲에서 캐낸 여러 가지 약초와 재료를 마정석의 가루를 혼합하여 그들만의 비법으로 만든 고약. 대부분의 타박상이나 외상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화상 및 흉터 제거에도 탁월하다. 마정석의 가루가 들어가는 만큼 만들기가 매우 어렵고 까다롭지만 그만큼 효과는 엄지척! 냄새가 매우 고약하다. 그래서 고약인 것일까?] 냄새가 고약해서 고약인 것일까? 라니. 이건 무슨 시답잖은 말장난인가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대부분의 타박상이나 외상에 ‘탁월’하다는 설명이 붙은 만큼 가볍게 볼 물건은 아닌 듯싶었다. 게다가 엄지척이라니. 아이템에 이런 설명이 붙은 것은 또 처음이다 보니 효과가 정말로 대단한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고블린이 울상을 한 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민 것도 이해가 되었다. 정보를 확인한 강호가 상자의 뚜껑을 덮어 되돌려 주자 고블린의 얼굴이 대번에 화색을 띄었다. 일단 고블린에게서 자신을 향한 적의가 없다고 판단한 강호가 이번엔 바닥에 쓰러져 있는 표범처럼 보이는 짐승에게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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