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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화 35. 삼식이 (6)


공터의 한쪽에는 최근 강호가 새롭게 짓기 시작한 오두막의 흔적이 있다. 목책을 설치하면서 같이 짓기 시작한 것인데, 목책을 쌓는 것과 달리 사람이 거주할 집을 짓는 일이에 일이 더디게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집을 짓는 것에 대한 지식이 있을 리가 만무하기에 지반을 다지고 토대를 세우는 것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블린이 그 오두막의 모습을 살피고 캠프를 이리저리 오가며 주변을 살피더니 돌연 나무판자 하나를 들고는 땅을 파는 게 아닌가. ‘뭐 하는 거지?’ 오두막에서 살짝 떨어진 공터의 외곽 쪽에 땅을 파는데, 놈이 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강호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땅... 잘 파네?’ 그냥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나무판자였다. 놈은 그 판자의 끝을 정글도로 깎아 대충 뾰족하게 만들더니 땅을 파기 시작하는데, 뾰족한 판자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마치 게임에서 땅이 꺼지듯 푹푹 파여 나간다. 예전에 목책을 쌓을 때 강철삽으로 그렇게 삽질을 해도 안 파지던 땅이 겨우 나무판자에 푹푹 깎여 나가는 것을 보며 강호의 어깨가 축 처졌다. 어쩌면 고블린에게 삽질 마스터나 혹은 노동 마스터와 같은 스킬이 붙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놈에게 삽을 줘 볼까?“ 생각이 들기 무섭게 오두막 옆에 있던 캐비넷을 열어 도끼와 삽 그리고 곡괭이를 비롯해 이런 저런 공사 장비 일체를 꺼내었다. 그런데 막상 고블린에게 삽을 주려고 보니 체형에 맞지 않을 듯 싶었다. 삽의 길이만 거의 1미터가 넘는데 고블린의 키는 고작해야 150이 채 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아무리 장비가 좋아도 사용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때 강호의 머릿속으로 캠핑용 야전삽이 떠올랐다. 황급히 인벤토리를 뒤져 야전삽을 꺼내고는 고블린에게 조립법과 사용법을 알려주자 놈의 큰 눈이 그 어느 때보다 똘망똘망하게 빛난다. 간단히 설명을 끝내고 건네어 주기 무섭게 직접 땅을 한 번 파보더니, 이내 질풍과도 같은 속도로 땅을 파내려가기 시작했다. [푹! 푹! 푹! 푹!] 삽질을 몇 번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가슴까지 파고 들어갔다. 게다가 그냥 깊이만 파는 게 아니라 꽤 넓은 범위를 파내려가는 중이다. 일하는 모습을 보니 깡마른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강골인 모양인지, 한 시간 가까이 쉬지도 않고 삽질을 하고 있음에도 전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공사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보면 의외로 깡마른 이들이 많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도 대부분 깡마른 체구들이다. 그런데도 하루 종일 힘든 일도 거뜬히 해 내고, 무거운 짐도 척척 들고 다닌다. 공터에 있는 목책을 언제 다 건설하나 하고 걱정했었는데, 고블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든든해지는 느낌이었다. **** 고블린에게 삼식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딱히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고블린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고등학교 야구부 선배였던 마삼식 선배의 얼굴이 떠올라 그냥 붙인 것뿐이다. 키가 작고 강마른 체구에 순둥순둥 귀여웠었던 선배는 사람도 좋아 강호를 비롯한 후배들에게도 잘 대해주었던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삼식이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일을 상당히 잘 했다. 놈은 꾀라는 것을 모르는 듯 강호가 시키는 일을 군소리 없이 하는데다, 생각보다 일머리도 좋아서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특히, 삽질과 곡괭이질은 정말로 그 부분에 있어 특화된 것 마냥 독보적이었다. 아마도 저들 종족의 능력이 전투 보다는 이러한 노동에 최적화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삼식이는 이틀 만에 자신이 살 거처를 뚝딱하며 만들어 내었다. 공터 한쪽에 땅을 파고 지하 동굴을 만들어 그 안에 집을 만들었는데, 입구에는 돌과 흙을 쌓아 올려 비가 오면 물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 했다. 입구 쪽에는 도끼로 잘라온 나무들을 엮어서 덮었고 나뭇가지와 풀로 그 위를 다시 치장하자 상당히 그럴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삼식이가 집을 지을 때 가장 신기했던 것은 바로 내부의 벽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이었다. 일하면서 내내 흙에 침을 퉤! 퉤! 하고 내뱉기에 처음에는 그저 더럽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침을 뱉어 반죽을 한 흙으로 입구를 쌓고, 동굴 내부의 벽에도 바르는데, 평범한 흙이었던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시멘트처럼 굳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신기한 모습을 보며 이건 무슨 살아있는 시멘트 제조기도 아니고, 정말로 별의 별 생물들이 다 존재하는 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삼식이의 거처는 이틀 만에 만들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그럴 듯 했다. 강호의 입장에서 보자면 겨우 3, 4평도 안 되는 작은 넓이에 천장도 낮은 다락방 혹은 골방 같은 느낌이었지만, 체구가 작은 삼식이 혼자 살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다. 게다가 내부 공간은 마치 이글루처럼 타원형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게 마구잡이로 대충 지은 것이 아니라 마치 자로 정확하게 재어서 만든 것처럼 균형과 비율이 그야말로 완벽했다. 동물이나 곤충들 중에서는 집을 지을 때 본능적으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어 집을 만드는 종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었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로 신기했다. 노동에 최적화 된 능력이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지만 막상 결과물을 보니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다. 삼식이가 옆에 있으면 베이스캠프의 방어 시설을 만드는 것도 정말 금방일 것만 같았다. ‘삼식이가 목책을 박을 땅만 파줘도 큰 도움이 되겠어.’ 그런 생각을 하자 금방이라도 베이스캠프가 완성이 된 것만 같은 생각에 흐뭇해졌다. “어디 보자. 앞으로 많이 부려 먹게 될지도 모르는데, 무일푼으로 부려 먹을 수는 없고.” 뉴스를 보다 보면 외국인 노동자를 홀대하고 임금도 제대로 지불하지 않으면서 온갖 학대를 하는 이들에 대한 내용이 나오곤 한다. 그런 뉴스를 볼 때면 강호는 자신이 야구부를 하며 이유도 없이 체벌을 받고 폭력을 당하곤 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욕을 바가지로 하고는 했다. 조직 사회에서 인간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하나는 위로부터 당한 불합리한 갑질과 폭력을 아랫사람에게 똑같이 행사하는 부류고, 다른 하나는 그런 불합리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거나 최소한 같은 일을 행하지 않는 부류다. 강호는 전자 보다는 그래도 후자 군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불합리를 없애고 조직을 개편하려는 인간까지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위에서 당한 불합리를 후배들에게 그대로 돌려주는 인간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유달리 뉴스에서 나오는 불합리한 체육계에 대한 처우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처우에 대해선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었다. 게다가 고블린에 대한 설명이 몬스터라고는 하지만 분명 지성체라고 명시되어 있었고, 고대에는 요정이라고 불리운 적도 있다고 했다. 단순한 몬스터나 짐승이 아니라 엄연히 지성을 지닌 인격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지구에서는 문명이 발달하고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지면서 동물을 보호하고 동물의 권리도 지켜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반려동물에게도 보험을 적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한 주장이 너무 심화되어 때론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도 있지만, 강호 개인적으로 그들의 주장에는 일부 공감하는 면이 있었다. 특히, 멸종위기종을 보호하자는 취지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옹호하는 입장이기도 했다. 당연히 지성체라고 명시되어 있기까지 한 삼식이를 노예처름 함부로 부려먹는다는 것은 강호의 양심상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돈이나 재물 같은 게 필요할 것 같지는 않은데.’ 고블린의 사회 체계를 모르니 강호가 생각하는 것은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한 참을 고민하던 강호가 인벤토리의 식량 보관함에서 소고기 육포를 꺼내었다. “자!” 강호가 내민 육포를 하나 집어 들더니 코를 벌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꽤 놀란 얼굴을 한다. 마트나 시장에서 파는 육포라는 것이 그저 고기를 대충 건조시켜 파는 것이 아니다. 고기를 베이스로 하여 각종 향신료와 양념을 섞어 충분히 베이게 한 후 건조시켜 만드는 것이 육포다. 당연히 생고기 특유의 누린내도 나지 않고, 짭조름하게 간이 베여 맛이 없을 수가 없다. 하물며 야생에서 살아온 삼식이가 이런 육포를 먹어 보았을 리가 없다. 눈을 껌뻑이며 육포를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던 삼식이의 눈이 저러다 밖으로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화등잔 만해졌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육포를 바라보더니 한 입에 모조리 털어 넣고는 와그작와그작 씹기 시작한다.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꿀꺽 삼키고는 강호의 손에 들린 또 다른 육포 봉지를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백구에게 주려고 꺼낸 것인데 간절함이 가득 담김 삼식이의 눈동자를 보고 있지나 차마 거절할 수가 없다. 두 번째 내민 육포 봉지도 순식간에 뚝딱 해 버렸다. 그리고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지는 삼식이의 모습에 다시 한 봉지를 더 건네어 주자 아예 감격한 얼굴을 한다. ‘근데 내가 여기 없으면 혼자서 뭘 먹으며 지내려나?’ 문득 자신이 없을 때 삼식이가 굶고 지낼까봐 걱정이 되었지만 이 마저도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캠프 주변은 먹을 거 천지다. 조금만 나가도 각종 과일에 채소들이 널려 있었고, 모르긴 몰라도 땅 밑에는 뿌리채소가 뿌리열매들이 널려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숲에서 한 평생을 살아온 삼식이에게 먹을 것을 걱정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삼식이도 펫으로 등록이 되면 좋겠는데.’ 지성체라고 해도 동물이다. 인간도 동물이고 백구도 동물이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만 갖추어 진다면 삼식이도 반려동물에 등록될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강호는 그 조건을 이미 알고 있다. 일정한 수준까지 친밀도를 쌓는 것. 그렇게 친밀도를 쌓으면 백구처럼 사이드 퀘스트가 생길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반려동물로 등록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친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부지런히 소고기 육포를 사다 먹일 이유 하나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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