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36. 강시연의 계획 (2)
보통 격투기를 배우지 못한 이들은 이런 공격에 무방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식 격투기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이들도 종합 격투기로 넘어오면 그라운드 기술에 속수무책인 경우가 많은데, 하물며 강호는 제대로 된 격투기를 배워본 적조차 없다.
고작해야 액션스쿨에서 영화 촬영을 위해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운 것이 전부였기에 강호 입장에서는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공격이기도 했다.
하지만 강호에게는 지난 수개월 동안 게란트를 오가며 목숨이 걸린 실전을 통해 익힌 전투감각이 있었고, 여기에 각종 스킬과 스텟들이 존재했다.
특히 육체적인 스텟은 대부분 20을 훌쩍 넘긴 상태였는데, 10이 평균이라고 가정할 때 20이라는 수치는 단순히 신체능력이 두 배가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 깨닫기 시작했다.
스텟들은 유기적으로 다른 스텟과 스킬들에 영향을 미친다. 즉, 근력 1이 오른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1 이상의 능력을 부여한다는 의미다.
그런 고로 강호는 현재 자신의 신체적 능력이 과거보다 최소한 서너 배 혹은 그 이상 향상되었다고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강호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겸손하려고 노력했고, 겸손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도 게란트에서는 쉽게 상대할 수 없는 괴물들이 수두룩한 까닭이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다리를 땅에 박은 채로 힘을 주고 굳건히 버티자 막 테이크 다운을 하고는 파운딩을 하려던 근육돼지가 당황한 표정을 했다.
이런 식으로 기술이 완벽하게 들어가면 선수라 할지라도 버티는 것이 결코 쉽지 않는 법이다.
게다가 기술로 버티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힘으로만 버틴다는 것은 프로 선수들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체급의 차이와는 별개로 균형을 무너뜨리면 결코 힘으로는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근육돼지 2호를 놀라게 만든 것은 손과 팔을 통해 전해오는 근육의 단단함이었다. 인간의 근육이 아니라 마치 강철로 만들어진 쇳덩이가 품 안에 가득 안겨있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
근육돼지 2호의 입에서 당황한 탄성이 새어나오는 것과 함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강호의 무심한 눈빛과 마주쳤다.
동시에 근육돼지 2호의 머릿속으로 비상등이 깜빡이는 것과 함께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저 무심한 눈동자일 뿐이다.
그런데 그 안에 흉포한 야수 한 마리가 들어 앉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근육돼지 2호는 오금이 저리며 온 몸에서 힘이 한 순간에 쑤욱 하고 빠져나가 버렸다.
눈동자 안의 야수는 그 어떤 위협도 없이 그저 무심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근육돼지 2호는 지금껏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 살기가 어찌나 강렬했던지 바닥에 주저앉은 근육돼지 2호의 가랑이 사이가 한 순간에 축축하게 젖어들기 시작했다.
“어? 오... 오줌 싼 거 아냐?”
근육돼지 두 마리가 강호에게 다가설 때부터 뭔가 일이 터질 것이라 직감한 사람들이 이쪽을 구경하고 있던 중이었다.
개중에 몇 몇 이들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혹은 재밌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폰을 꺼내어 촬영까지 하고 있던 중이었다.
당연히 처음의 상황은 사람들이 예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근육돼지들이 시비를 걸기 무섭게 다짜고짜 선빵을 날렸고, 그렇게 싸움이 시작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어진 상황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한 눈에 척 보기에도 대단해 보이는 공격을 고개만 까딱이는 수준으로 피해낸다 싶더니, 앗 하는 사이에 두 사람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남자는 그 어떤 공격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옆구리에 주먹을 날리던 남자를 향해 가볍게 발을 건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일이 커지나 싶던 순간, 돌연 바닥에 주저앉은 남자 하나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더니 이내 오줌을 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에 이제 곧 큰 사단이 날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무엇을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자가 눈 빛 하나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다 못해 오줌까지 지려버리게 만들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눈으로 보고도 도무지 쉽게 믿을 수 없었다.
마치 소설이나 만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실제로 일이 아닌가.
당연히 주변의 수군거림은 더욱 커졌고, 저마다 폰을 꺼내어 영상을 찍어 대기에 바빴다.
그 모습에 그나마 정신을 붙들고 있던 근육돼지 1호가 다리를 절뚝이며 다가와서는 오줌을 지린 친구를 허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건드려선 안 될 존재였다.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 그런 생각을 했었지만, 친구를 믿고 한 번 들이대 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처참했다.
근육돼지 1호도 똑똑히 보았다. 그저 눈을 마주한 것만으로 친구가 사색이 된 얼굴로 오줌까지 지린 모습은 가히 충격이었다.
동시에 뒤에서 덮쳐 들려고 하던 생각이 저 만치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근육돼지 1호가 강호의 눈치를 살피며 아직도 사색이 된 얼굴로 멍하니 앉아 있는 친구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어찌나 오줌을 많이 쌌는지 바닥이 흥건할 정도였지만 근육돼지 1호는 창피하고 자시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근육돼지 1호가 친구를 부축한 채로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사라지자, 잠시 뒤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기다렸다는 듯 몇 몇 남자들이 다가와 강호에게 엄지를 날리며 이런 저런 말들을 쏟아내었다.
별다른 말은 아니었고 그저 대단하다거나, 눈빛만으로 사람을 제압하는 것은 처음 봤다는 식의 말들이었다.
하지만 강호는 그런 이들의 관심이 오히려 어색했다.
때마침 다리던 친구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정말로 어색해서 죽을 지도 모를 순간이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친구들이 나타나기 무섭게 후다닥 자리를 떠 버리자 오히려 더 궁금해진 친구들이 강호를 재촉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긴. 아까 보니까 사람들이 널 둘러싸고 있두만. 게다가 폰으로 널 촬영까지 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이고. 이거, 벌써 유명세를 타는 거냐?”
유명세라는 말에 친구들이 하나같이 ‘오!’하는 표정을 했다.
그들도 최근에 강호가 예능에 출연한 것을 알고 있는데다, 일전에 박찬성과 명승부를 벌였던 일화까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명세는 무슨. 알아보는 사람 하나도 없는데 무슨.”
“그럼 무슨 일인데?”
“별거 아냐. 그냥 누구랑 시비가 좀 붙었던 거 뿐이야.”
“뭐? 시비? 묻지마 폭행 같은 거냐?”
시비라는 말에 친구인 민수가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최근에 뉴스에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묻지마 폭행이나 시비로 인한 폭행 사건인 까닭이다.
“별 거 아니라니까. 그냥 누가 시비를 걸길래 잘 ㅌ타일러서 보냈어. 그게 다야.”
정말로 별 거 아니라는 듯 하는 말에 친구들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더 이상 따져 묻지는 않았다.
올 초에 보고 거의 반 년 만에 만나는 날이다 보니 시간은 짧고 할 이야기는 많은 탓이다.
게다가 강호의 모습에서 맞기는커녕 딱히 싸웠다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으니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는, 바로 회포를 풀 장소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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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어릴 때 한 동네에서 나고 자라거나 사귄 친구들을 가리켜 불알친구라고 한다.
그렇다고 어릴 때 한 동네에서 같이 뛰어 놀던 친구들 모두가 불알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라면서 이런 저런 사정에 의해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경우도 있고, 각자의 생활환경이나 가치관에 따라 연을 끊어 버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을 모두 이겨낸 친구들이라면 진짜 친구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하고, 지금 강호의 눈앞에 있는 이들이 바로 그런 친구들이었다.
김민수, 박형일, 권재관. 그리고 이 자리에는 나오지 않은 문정기까지.
가족을 제외하고는 강호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진짜 친구들이 바로 이들 세 사람이었다.
“근데 정기 이 새끼는 장사가 잘 되나 보네. 어째, 술 한 잔 하러 나올 시간도 없다냐.”
“자영업이 그렇지 뭐. 우리만 해도 사는게 바빠서 이렇게 술 한 잔 하기도 이제 쉽지 않잖아. 우리도 올 초에 보고 처음 보는 거잖아.”
“정말 격세지감이구만. 몇 년 전만 해도 매일 같이 붙어 다녔었는데, 이제는 다 먹고 살기 바빠서 얼굴 볼 시간도 잘 없다는 게 말이야.”
“그게 철이 들었다는 증거 아니겠냐. 그리고 바쁜 게 좋은 거야, 새끼야. 정신 못 차리고 백수 짓 하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생맥주 집에 들어가 술잔이 돌기 시작하자 의례히 그렇듯 과거의 일들이 하나둘 툭툭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어릴 때 동네에서 같이 뛰어 놀던 이야기나 싸구려 야구 장갑과 배트로 야구를 하던 시절의 이야기도 나오고,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나 지금 살아가는 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술자리의 의미 없는 이야기들일 뿐이다.
“방송 10시지?”
“뭐?”
“마녀들 말이야. 그거 오늘이잖아.”
민수의 말에 강호가 머리를 긁었다.
친구들도 강호가 대역 배우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따금씩 술자리를 하게 되면 연예인을 직접 본 적은 있느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이런 저런 질문들로 꽤나 귀찮게 구는 것이 정기 레파토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겨우 대역 배우 출신인데다 그냥 어쩌다 일을 하게 된 것이지 연예계에 원대한 꿈 같은 게 있어서가 아니다 보니 딱히 들려 줄 만 한 이야기가 없었다.
그저 멀리서 어떤 연예인을 잠시 봤는데, 실물이 훨씬 예쁘더라는 이야기를 하는 정도가 고작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