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36. 강시연의 계획 (5)
오하영이 성소수자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나 이해는 명확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형태는 다양하며 그것이 같은 동성이나 특이한 성적 취향이라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입장이었다.
강시연이 성소수자 이야기를 꺼낸 것도 오하영의 그런 생각을 잘 알기 때문이다.
“너 그들에게는 아무런 편견도 없다면서? 그저 성적인 취향과 사랑의 방식이 조금 다를 뿐, 틀린 게 아니라고 했던 게 너잖아, 안 그래?”
“그... 랬었죠.”
“그런데 왜 이 문제에 있어선 편견을 드러내는 건데?”
“제가 언제 편견을 드러냈다고 그래요?”
편견이라는 말에 오하영이 발끈했다.
아이돌로 활동하는 내내 크고 작은 편견에 시달렸던 오하영이다.
아이돌이니까 노래는 못한다는 편견.
어딜 가도 외모만, 특히 가슴과 몸매만 언급되고 그녀의 노래 실력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다. 외모로 인해 노래 실력이 역차별 되고 편견을 받았다고 생각한 오하영이었기에, 편견에 대해 매우 진지하고 단호했다.
“그렇잖아.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수도 있고 여자가 여자를 사랑할 수도 있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형태나 방식은 다양하고 이유가 없으니까. 성소수자들이 하는 주장도 그런 맥락이고. 너도 그런 주장에 동의하고 그에 대해 편견이 없다며?”
“맞아요.”
“그럼 생각해 봐. 너도 말했잖아. 성적인 취향은 다양하고 사랑의 방식도 다양하다며? 그렇게 따지면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사랑하는 형태의 방식이 있을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형태의 방식이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그건....”
뭔가 궤변 같은데 이상하게도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과 지향점이 다를 뿐, 틀린 게 아니야. 그냥 다를 뿐이라고. 똑같은 거잖아.”
“하지만 언니는 강호씨를 사... 사랑하지 않는다면서요?”
“섹스가 없는 사랑은 있을 수가 없어. 마찬가지로 사랑이 있기에 섹스도 있을 수 있는 거지. 그 전에, 사랑이 넌 뭐라고 생각하니?”
“사... 사랑이요?”
“사랑에 특정한 형태나 방식이 있어? 사랑은 이래야만 한다고 정해져 있기라도 해? 아니잖아. 누구는 사랑을 집착이라고 하고 구속이라고도 해. 또 누군가는 노력이자 배려라고 하기도 하고 관심과 이해의 표현라고도 해. 그리고 누군가는 순수한 욕정과 욕망의 표출이라고도 하겠지. 너랑 나의 가치관이 다르듯이 개인의 개성과 가치관이 다 다르고 사람마다 사랑을 대하는 형태나 방식도 천차만별이야. 그럼, 나와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이들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그것도 따지고 보면 편견 아닐까?”
너무나 논리정연한 말에 오하영은 아무런 할 말도 없었다.
“사랑? 난 그런 거 몰라. 하지만 굳이 사랑이라는 이름에 어떤 방식이 필요하다면, 나는 내 방식으로 강호씨를 사랑할 뿐이야. 난 강호씨가 좋아. 그의 아름다울 정도로 우람하고 불같이 뜨거운 자지도 좋고 끊임없는 체력과 정력도 좋아. 그 큰 물건이 가랑이 사이로 파고 들 때면....”
그렇게 말하며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몽롱한 표정을 하던 강시연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난 강호씨 자지에 박힐 때면 그저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하는 생각 외에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도 않아. 그래, 행복해. 무엇보다 강호씨랑 있으면 내 진짜 본성을 숨길 필요가 없어. 아니, 숨기고 싶지도 않아. 그래서 강호씨는 내게 소중하고 강호씨에게 만큼은 최선을 다 할 거야. 거기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사랑인 거고 욕정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욕정이 되겠지.”
강시연의 말은 오하영에 있어 실로 충격적이었고, 굳게 뿌리내린 가치관의 벽에 금을 내고 흔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성소수자들 이야기 다시 해 볼까? 과거엔 그들의 동성연애 자체를 터부시 했었지? 그런데 지금은 어때? 유럽이나 미국에서 성소수자들 차별 금지법을 만들고 인권을 보장하자는 걸 넘어서 동성 간의 결혼까지도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지?”
강시연의 말에 오하영이 흔들리는 눈동자를 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에는 불법이었던 게 지금은 합법이 된 거야. 해서는 안 되는 게 이제는 해도 되는 일이 된 거지. 일부일처제만 해도 그래. 과거엔 용인 되고 합법이었던 것이 지금은 불법이야. 사회적 가치관이라는 것이 시대에 따라 불법이 되었다가 합법이 되었다가 하는 거란 말이야. 사람들의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은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그저 바라보는 시각과 가치관이 달라진 것 뿐이야.”
“그... 그래서 정말로 강호씨를 다른 여자와 함께 사랑.... 공유한다고요?”
오하영의 말에 강시연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왜 만날 때마다 했던 말을 계속 되풀이 하게 하니? 그 사람 나 혼자서는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네 말처럼 나도 적당히 하려고 했는데, 강호씨는 적당히라는 것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남자가 아니란 말이야. 그럼 감당하기 어렵다고 포기라도 할까? 그건 지금 나보고 죽으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야. 아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절대 포기는 못 해. 그럼 어떻게 할까? 응? 네가 내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래?”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말에 오하영이 움찔했다.
“그... 그냥 매일 하지 말고 며칠 에 한 번 하는 건...”
“쯧쯧쯧!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면 내가 이러겠니?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었으면 내가 지난 수년 간 남자를 그렇게 신발 갈아 신듯이 갈아 치웠겠냐고.”
답답하다는 듯 테이블까지 탕탕 두들기며 하는 말에 오하영이 어깨를 움츠렸다.
“오늘은 힘들어서 안 돼요. 내일은 촬영이 있어서 안 돼요. 이런 저런 핑계로 계속해서 거절해 봐. 그럼, 그 사람 정력에 다른 여자를 안지 않을 것 같아? 백 프로야 백 프로. 그런 식으로 골이 깊어지고 사이가 멀어지다 보면 그 끝은 뻔 할 뻔이잖아. 그렇다면 결국 방법이 뭐겠어? 혼자가 안 되면 둘, 둘로도 안 되면 셋으로 그 사람을 감당하면 되는 거야. 간단하지?”
둘도 안 되면 셋이라는 말에 오하영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강시연과 오하영의 근본적인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애초에 남자 경험이 없는 오하영이다 보니 강시연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해도 공감을 할 수가 없었고, 생각의 간극을 도무지 좁힐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오하영은 작년 들어 자신이 숫처녀라는 것에 대해 약간의 자격지심 혹은 콤플렉스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이제 막 데뷔를 한 십대 걸그룹 멤버들조차도 연애를 하고 남자를 경험하며 할 거 다 한다고 하는데, 자신은 남자와 섹스는 커녕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해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조바심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연애는커녕, 있지도 않은 동화 속의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다 노처녀로 늙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으로 가득했다.
그런 순간에 짠! 하며 등장한 남자가 바로 강호였다.
위기의 순간에 홀연히 나타나 탑에 갇힌 공주를 구해낸 백마 탄 왕자님.
그날 강렬했던 강호에 대한 인상이 노처녀로 늙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조바심과 만나자 한 순간에 강렬한 감정의 폭발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 남자야 말로 내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남자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오하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이런 감정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려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이것이 정말로 강호라는 남자를 향한 순수한 감정인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초조함과 조바심이 만들어낸 일종의 집착이자 착각인 것일까?
그러한 생각은 강시연과 대화를 나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언니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순간, 꿈속에서 강시연과 함께 강호의 아래에서 쾌락에 허덕이고 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라도 그 사람 옆에 있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좋은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다른 여자와 함께 같이 사랑할 수 있다는 자신이 없다. 아니, 자신 여부를 떠나 그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도 한 번 떠오른 생각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그러다 만약 강호씨 옆에 언니 말고 다른 여자가 생겨 버린다면?’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심장을 바늘로 쿡 쑤시는 듯한 통증이 전해오는 듯한 감각에 오하영이 인상을 썼다.
강시연의 결정적인 한 마디가 들려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전에 봤던 한가연씨 말이야.”
“하... 한가연씨요? 그 분이 왜요?”
“너도 그때 봤잖아. 그 사람, 강호씨한테 관심 있어 하는 눈치였던 거 말이야.”
“그... 그게 왜요?”
“왜는 무슨 왜? 그 정도면 인물도 빠지지 않고 강호씨에게 관심도 있는 것 같으니까 하는 말이지. 그때 너도 봤지? 강호씨도 은근히 한가연씨 가슴을 계속 훔쳐보던 거 말이야. 하기야, 그런 가슴에 눈이 가지 않으면 남자도 아니지. 내시지 내시.”
강시연의 말에 오하영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지더니 이내 발끈하며 말했다.
“그 가슴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래요? 나보다도 작은 거 같던데. 그리고 알아보니까 나이도 강호씨보다 10살이나 많던데, 그런 아줌마가 강호씨랑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그 정도 가슴이면 하영이 너랑 비교해도 꿀리지 않던데 뭐. 오히려 더 큰 거 같기도 하고. 아니, 그보다 한가연씨 나이는 언제 또 알아 봤데? 이거 정말 수상한데.”
그렇게 말하며 강시연이 가자미눈을 하고 바라보자 오하영이 속마음을 들킨 사람 마냥 흠칫하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수... 수상하긴 뭐가요? 그... 그냥 H&H 제품은 저도 자주 사용하는 제품이다 보니 그냥 궁금해서 한 번 알아 본 거죠.”
“너 솔직히 말해. 정말 강호씨 한 테 관심 있는 거 아니야?”
“제가 가... 강호씨한테 무슨 관심이 있다고 그래요?”
“아니면 이상하잖아. 한가연씨 말에 발끈하는 것도 그렇고,”
“제가 언제 발끈했다고 그래요?”
“이 봐. 지금도 발끈하잖아. 괜찮아 솔직히 말해봐. 난 차라리 한가연씨 보다는 하영이 네가 더 좋으니까 말이야. 너라면 편하기도 하고.”
별안간 돌직구처럼 날아온 한 마디에 또 다시 발끈하려던 오하영이 그대로 돌덩이가 된 것 마냥 굳어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