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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화 37. 정욕의 소나타 (2)


“그보다 아까 정기 이야기나 해 봐라. 그놈 가게가 왜?” 마녀들 예능이 끝나고 잠시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다 분위기가 조금 정리되자 강호가 정기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고등학교에 올라 야구에 전혀 재능이 없다는 것을 진작에 파악한 정기는 학교를 졸업하기 무섭게 가장먼저 군에 입대를 했다. 공부 머리는 없었지만 평소 현실 감각이 빠르고 악바리 근성이 뛰어났던 정기는 전역을 하고서 몇 년 동안 악착같이 일을 하며 번 돈으로 2년 전에 작은 치킨 가게를 차렸다. 5년 동안 모은 돈에 부모님 집을 담보 삼아 은행에서 대출 받은 돈을 합해 들어간 가게였는데, 올 초까지만 해도 장사가 잘 되어서 술 한 잔 할 시간조차 제대로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가게에 문제가 있다고 하니 강호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도 자세한 건 모르는데, 가게 임대 계약 때문에 문제가 있나봐.” “임대계약이 왜? 주인이 가게를 비워 달라기라도 하는 거야?” “성남에서 산성대로 일대를 도시재생사업 구역으로 선정했다는 뉴스 봤어?” 재관의 말에 강호가 고개를 저었다. 평소 뉴스를 잘 보지 않는 편이기도 했지만, 그것이 아이더라도 굳이 다른 지역의 재개발 사업에 대해 관심을 가질 이유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남시에서 도시재생사업으로 지정한 산성대로 일대였는데, 정기가 장사를 하고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인 까닭이다. “최근에 그 사업에 한설건설이 사업자로 선정이 되었나 봐. 근데 이게 말이 재생사업이지 실상은 재개발 수준이나 마찬가지더라고. 그 지역 일대를 아예 싹 갈아 엎을 모양인 가봐.” “그게 무슨 소리야? 싹 갈아 엎는다니? 재생사업이라며?” “말장난인 거지 뭐. 하여간 들리는 소문에는 그곳을 싹 밀고 복합단지로 형성할 모양이더라고.” “복합단지? 뉴스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없던데?” 강호와 달리 다른 친구들은 뉴스를 찾아보는 모양인지 민기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런 소문들은 보통 현지 상인들이 가장 빠르잖아. 정기 때문에 좀 알아보니까 지금 그쪽 일대에 큰 손들이 들어가서 장난질이 아주 심한 가봐. 정기가 세 들어 있는 건물도 큰 손들이 개입해서 넘어간 모양인데, 그 뒤에 한성 건설이 있는 모양이야. 근데 이게 참.” 그렇게 말하다 말고 형일이 혀를 차며 술잔을 비우고는 침묵을 지키자 민수가 그를 재촉했다. “가게를 빼라고 한 거야?” 밀수의 말에 형일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직 계약 기간이 남아 있을 텐데?” “나도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한성 쪽에서 변호사를 대동해서 사소한 법적인 문제까지 걸고넘어지면서 정기를 압박하고 있는 것 같아.” “그 놈이 가게 인수한 게 언제였지?” “거의 2년 다 되어가지. 문제는 임대 계약이 2년 단위로 갱신하기로 한 계약이라는 거야.” “그래서 뭐가 문젠데? 어차피 게약이 종료되는 거라며?” 도무지 모르겠다듯 하는 말에 형일이 무식한 놈이라며 혀를 차고는 대답했다. “권리금.” “아!” 권리금이라는 말에 다른 이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권리금이란 일반적으로 용익권 혹은 임차권 등의 권리를 양도하는 대가로 주고받는 금전을 의미한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현재 운영되고 있는 매장의 권리를 돈을 주고 넘겨받는 것으로, 큰 틀로 보면 영업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권리금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 번째가 바닥 권리금이다. 바닥 권리금이란 주변 상가들에 의해 형성되어 있는 보편적인 비용으로, 시설이 없는 공실의 경우에도 존재할 수 있으며 좋은 상권의 경우에는 바닥 권리금만 따로 계약서가 존재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시설권리금이다. 말 그대로 매장을 처음 오픈할 때 들어간 시설과 인테리어 비용 그리고 리모델링 비용 등에 대한 권리를 넘겨받는 금전을 말한다. 세 번째는 영업 권리금이다. 해당 매장에서 발생하는 순수익에 대하여 미리 정산하는 비용을 말하는 것으로, 정확한 기준점은 없으며 대부분은 매장을 운영하는 점주의 요구에 따라 정해지게 된다. 보통은 이런 식으로 나뉘지만 대부분 계약서를 작성할 때에는 그냥 권리금이라는 이름으로 묶어서 작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평범한 이들이 알고 있는 권리금이라는 것의 의미는 해당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점주로부터 가게의 운영권과 시설의 양도를 넘겨받는 것에 대한 금전이라고 인식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문제는 이 권리금이라는 것이 법적으로 온전히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임차인과 전차인과의 거래 사이에서 개인적인 합의하에 발생하는 금전 거래인 까닭에 건물주로서는 이와 관련하여 아무런 관련도 없고, 추후 어떤 문제로 임차 계약이 말소할 시에도 건물주는 그 어떤 보상을 해줄 필요가 없는 금전이 바로 권리금이었다. “그 뭐냐. 상가보호법이라는 거 그거 있잖아.” “상가입대차보호법.” “그래, 그거.” 민수의 말에 형일이 제대로 정정해준다. 정기 때문에 이것저것 알아보았다고 하더니 확실히 많이 알아 본 모양이다. “그 상가임대차보호법인가 그걸로 계약을 갱신하면 문제없는 거 아니야?” “물론, 장사야 할 수 있겠지. 그리고 정기도 그걸로 밀고 나가는 모양이고. 문제는 저쪽의 배후가 다른 곳도 아니고 한성이라는 거지. 한성.” 한성이 어디인가.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다국적 기업으로 대한민국 안에서 만큼은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엄청난 영향력 행사하는 그룹이다.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이름이 있으니 바로 한성 공화국이다. 그 만큼 한성이 대한민국 사회의 각층에 로비를 통해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이 엄청나며, 한성이 한국의 사회와 경제에 이바지 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 이상의 악명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들의 친구인 문정기는 그런 괴물 같은 그룹과 생존을 건 싸움을 벌인 것이지만, 그 누가 보아도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막말로 오성에서 마음먹고 재채기만 해도 정기의 가게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한성이라도 법적으로 보호된 권리잖아.” 강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항변했지만, 이어진 형일의 대답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법적으로는 그렇지. 그런데 법이 언제 우리 같은 서민들 편이었던 적 있어?” 너무나 정곡을 찌르는 말에 잠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그때 권리금으로 얼마 줬다고 했었지?” “1억 2천.” 건물주와 한 계약을 제외하고도 권리금으로만 1억 2천이 들어갔다. 재벌 같은 이들에게는 별 것 아닌 금액이겠지만 서민들에게 1억이 넘는 돈은 전 재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가게에 들어간 지 겨우 2년 밖에 되지 않았다. 2년 이면 이제야 빚을 조금씩 갚아 나가는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1억이 넘는 권리금도 없이 가게를 빼라는 이야기는 은행 대출까지 걸려 있는 정기에게는 그대로 죽으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한성한테는 그깟 1억쯤은 없어도 되는 돈이잖아. 시발, 나 같으면 차라리 돈 내주고 점포 비우라고 하겠구만.” “점포를 비우는 게 쉽냐? 설령 보상금을 받고 가게를 뺀다고 해도 다시 가게를 알아보고 자리를 잡으려면 또 몇 년을 보내야 할 지 모르는데. 게다가 그렇게 얻은 가게가 지금처럼 제대로 자리를 잡는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화가 난 듯 씩씩 거리는 형일의 모습에 강시연이 술잔을 홀짝이고는 대신 대답했다. “한성 쪽에선 돈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 문제거든요. 기업이라는 곳이 의외로 그런 쪽으로 상당히 민감해요. 아니, 재벌들이라고 해야겠네요. 그들에게 1, 2억 정도는 큰돈도 아니고 쉽게 가려고 했으면 진작에 줬을 거예요. 그런데도 변호인들까지 대동해서 밀고 나간다는 건 돈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기업 입장에서는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은 거예요.” 선례라는 말에 강호를 포함한 친구들이 미간을 찌푸리며 몸마땅한 표정을 했다. 선례라는 말에 담긴 의미를 파악한 까닭이다. “하아! 골치 아프겠네.” “골치 아프지.” 그 말을 끝으로 서로 간에 잠시 말이 없어지며 분위기가 한순가에 가라앉았다. “하 시팔! 기분 꿀꿀하네. 이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괜히 저희들 때문에 막판에 기분을 잡친 것 같아서.” “아니에요. 친구가 걱정되어서 한 이야기잖아요. 개의치 마세요.” “아이고. 이거 정말로 아름다우신 외모만큼이나 마음씨고 고우십니다. 하하!” 형일의 너스레에 잠시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다시 되살아났다. 이후 의미 없는 대화들을 주절주절 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 2시가 다 되어 갔다. “자! 이제 그만 파장하고 가자. 손님이 너무 오래 죽치고 앉아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니야.” “왜요? 괜찮은데 더 계시다 가세요.” “아닙니다. 저희도 염치가 있지, 오늘 이렇게 대접 받은 것만 해도 이미 차고 넘칩니다.” 사실 자정이 지나면서 몇 번이나 일어나려던 것을 강시연이 괜찮다고 극구 말려서 지금까지 앉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주인이 괜찮다고 해도 이제는 끝내야 할 때였다. 그렇게 술자리가 파장을 하며 사람들이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나기 시작했다. 현관을 나서 마당을 가로지르는 동안 민수가 슬쩍 강호의 옆으로 따라 붙고는 팔꿈치로 옆구리를 찌르며 귓속말을 했다. “너 솔직히 말해라. 정말 강시연씨랑 무슨 사이냐?” “무슨 사이긴 개뿔이. 그냥 이번에 예능에 들어가서 알게 된 사이다. 그게 다야.” “지랄. 겨우 그런 사이인데 우리까지 집으로 초대해서 대접을 한다고? 어디서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를 하고 지랄이야.” “그럼 내 주제에 뭐, 강시연씨랑 사귀기라도 한다는 거냐?” 너무 대놓고 자신의 주제를 들먹이며 하는 말에 민수도 순간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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