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39. 백구, 유명세를 떨치다! (3)
[그거 맞죠?]
“뭐가요?”
[일전에 뉴스에 나왔던 그 사건요. 멧돼지.]
어차피 다 알고 전화를 하는 마당이고, 이건 간을 보고 자시고 하며 협상할 문제도 아니기에 순순히 대답했다.
“맞아요. 시간이 좀 지났지만 크게 화제가 되었던 사건이라서 금방 기억하셨나 보네요. 어때요? 잘만 사용하면 시청률에 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
[그래서 부탁을 하나 드리려고 하는데 말입니다.]
“말씀해보세요?”
부탁이라는 말을 꽤 조심스럽게 하자 강시연은 대충 짐작을 하면서도 모른 척 대꾸했다.
[일단 그 사건과 관련하여 오하영씨의 인터뷰 하나를 따서 넣으면 해서요.]
그 정도는 강시연도 예상한 바다. 하지만 강시연이 예상한 범위는 그 보다 넓다.
“그 정도야 어려울 것 없죠. 그리고요?”
마치 자신이 하영이 소속사 사장이라도 된 것처럼 척척 결정한다.
[사실 뜬금없이 오하영씨 인터뷰를 내보내는 면 시청률이야 상승할지 몰라도 역효과가 더 클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래서 일일 매니저같은 것으로 한 번 출연시키는 것은 어떨까 하는데. 그래서 뭐랄까.... 그게...]
“뭔데요? 뜸 들이지 말고 말해보세요.”
[그게, 오하영씨랑 강호씨를 약간 핑크빛 기류처럼 그리는 겁니다. 생명의 은인인 만큼 시청자들이 설정을 억지라고 여길 여지도 없고요. 그래서 강시연씨가 살짝 질투를 하는 듯한 장면도 넣고...]
최병철 PD의 말에 강시연이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오하영의 얼굴을 잠시 바라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PD님이라서 그런지 거기까지 생각하셨나 보네요. 그럼 까메오가 아니라 차라리 고정을 시키는 건 어때요?”
[고... 고정이요?]
“원래 로맨스 드라마에서 삼각관계는 빠질 수 없는 클리셰잖아요. 다 알면서도 보고,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그... 그게.... 그러면야 저야 좋지만,...]
“하영이는 제가 설득해 볼게요. 만약 하영이가 OK 하면 다음 촬영부터 바로 들어가는 걸로 해요.”
다음 촬영이면 대충 4화에서 예고편으로 내보내고, 5화부터 등장 시킬 수 있다.
순간 최병철 PD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하영이 자신과 친한 사이인 강시연을 응원할 겸 일일 매니저로 왔다가 강호와의 관계를 밝히면서 인터뷰와 함께 멧돼지 사냥 장면까지 내보낸다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현장에서 일일 매니저가 아니라 강호와 함께 부 매니저 형태로 섭외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하영씨와 강호를 자연스럽게 클로즈업 하고...’
그런 식으로 전개한다면 조금 작위적일 수도 있지만 어차피 드라마도 아니고 예능이다. 그 정도 억지는 시청자들이 충분히 납득 가능한 선이다.
‘시연씨와 하영씨가 연예게 대표 절친이니 만큼 시청자들이 알아서 이런 저런 살을 덧붙여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테고. 좋아.’
일부러 삼각관계처럼 엮지 않고 그저 살짝 살짝 맛보기로만 보여 주어도 시청자들이 알아서 삼각관계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럼 세 사람의 관계가 예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점점 더 몰두하게 될 테고, 그만큼 고정 시청자를 형성하여 시청률 방어에도 큰 도움이 된다.
중요한 건 오하영이 섭외에 OK 해야 하는 것이고, 소속사에서도 마찬가지로 OK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약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엄연히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상태다. 소속사에서 브레이크를 걸면 섭외 자체가 진행될 수가 없다.
[일단 오하영씨 승낙도 중요하고 소속사에서도 승낙해야 하는데...]
“흐음! 일단 하영이는 오늘 내로 제가 확답을 받아서 연락 드릴게요.”
[오... 오늘 내로 말입니까?]
“아니, 기다려요 제가 금방 확답을 받아서 연락을 드릴 테니. 소속사 문제도 제가 며칠 내로 해결해서 연락할게요.”
그러고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옆에서 통화를 듣고 있던 오하영은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고 계약이라는 소리가 거론되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 뭐에요? 출연이라니?”
오하영이 아무리 착하고 순진하다고 해도 7년이 넘게 이 바닥 밥을 먹은 사람이다. 이 세계는 인맥이 그 어느 곳보다 중요한 곳이지만, 그 인맥 때문에 크고 작은 문제에 휘말리기도 한다. 아니, 대부분의 문제가 사실은 인맥 때문에 벌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연예인들은 이미지를 먹고 사는 직업이기에 출연하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예능 한 편에 잘 못 출연해서 오랫동안 쌓아 왔던 이미지를 날려 버리기도 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대번에 개선하기도 하는 것이 이 바닥이다.
그런 부분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독단으로 처리하려고 하니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쉬게 넘길 수 없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오하영의 눈빛과 표정에도 강시연은 꼼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는 태연히 제 할 말을 했다.
“너! 내가 출연하고 있는 마녀들 말이야.”
“그게 왜요?”
로맨스 드라마가 어쩌고 삼각관계 어쩌고 하기에 어떤 드라마 작가나 PD와 통화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는 한순간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마녀들에 고정으로 들어갈 생각 없니? 강호씨랑 같이 매니저 자격으로 말이야.”
****
백구는 최근 강호의 집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 일대를 어슬렁거리며 영역을 표시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중이었다.
강호의 품에 안겨 이 세상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백구는 태어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새끼에 불과 했다. 그래서 지구와 게란트 두 세상의 차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두 세상을 오가는 와중에 조금씩 두 개의 세상이 전혀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두 세상에서의 행동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도 파악하기 시작했다.
백구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 매우 위험한 세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세상은 조금만 방심해도 한 끼 식사 거리로 전락해 버릴 만큼 무서운 괴물과 짐승들이 사방에 널려 있는 곳이었다. 그 세상에서 만큼은 먹이 사슬 피라미드의 제일 밑바닥에 속한 힘없는 짐승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 곳이니 만큼 주인과 함께 고향으로 넘어갈 때면 휴식을 취하는 순간에도 최대한 주변을 경계하고 위험을 감지하는데 집중을 했다.
이동을 할 때도 사주 경계를 철저히 했고 잠을 잘 때에도 언제나 한쪽 귀를 열어 두고서 선잠을 잤다.
백구는 그 일이 하나도 번거롭거나 귀찮지 않았다.
부모의 원수를 대신하여 갚아준 주인은 백구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충성을 바쳐야 할 존재였기에, 목숨까지 바친다고 해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절대로 주인이 주는 소고기 육포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게 매 시간 매 초마다 긴장해야 하는 고향과는 달리 주인의 세상은 완전히 달랐다.
사방이 빽빽한 나무로 뒤덮인 산과 숲으로 형성된 고향은 위험하기는 해도 공기는 맑고 기운도 강해서 그저 숨 쉬는 것 만으로도 강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라면, 주인의 고향은 공기도 탁하고 무거우며 기운도 미약해서 숨이 턱 턱 막히는 곳이었다.
객관적인 사실만 놓고 보자면 백구가 주인의 세상을 좋아할 이유가 없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건물에 사방에선 역한 냄새가 난다.
무엇보다 고향에서는 외부의 위험만 조심하면 실질적으로 행동하는 부분에서는 크게 제약이 없었다. 하지만 주인의 세상은 외부의 위협이 현저하게 낮은 대신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했다.
거리를 혼자 돌아다녀서도 안 되고, 함부로 짖어서도 안 된다. 사람들에게 함부로 다가서는 것도 안 되고, 특히 꼬마 주인처럼 어린 인간들에게 다가갈 때에는 더욱 주의해야 했다.
산책을 할 때에는 반드시 목줄이라는 것을 해야 했고, 특히,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는 행동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었다
그럼에도 백구는 주인의 세상이 좋았다.
이곳에는 주인이 살고 있고 주인의 가족이 살고 있으며 조금 귀찮게 굴기는 하지만 자신을 좋아해주는 어린 꼬마 주인도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고향에서는 절대로 맛 볼 수 없는 온갖 맛있는 것들이 가득했다.
처음으로 신세계를 경험하게 했던 소고기 육포와는 별개로 달고 부드럽고 고소한 음식들은 백구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육포 때문에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 절대 아닌 것처럼, 절대로 맛있는 음식 때문에 주인의 가족을 지키는 일에 열중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백구에게 최근 매우 중요한 임무 하나가 생겼다. 그것은 주인이 자신에게 내린 임무가 아니라 백구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내린 결정이자 임무였다.
고향의 세상과는 달리 주인의 세상은 자신을 위협할 만한 동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완전히 깨달은 백구였다.
이곳에는 이상한 괴물 따위도 없고 맹수라고 부를 만한 짐승도 없었다. 기껏해야 조금 덩치가 큰 개 정도가 위협의 전부였는데, 그런 놈들 따위는 한 입 거리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부모의 원수를 갚은 이후부터 백구는 자신의 몸에 생겨나고 있는 변화를 감지했다. 주인과 함께 사냥을 하면서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 온 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백구가 강해지는 만큼 야생의 본성도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고 자신의 영역에 대한 본능도 강해졌는데, 언젠가부터 주인의 집을 중심으로 주변 일대를 자신의 영역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영역 관리를 한 것은 아니었다. 고향과 달리 큰 위험이 없는 세상이다 보니 주인의 가족들이 주로 생활하는 건물 주변만 잘 살피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그것이 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