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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화 42. 원초적 본능 (5)


불이 붙었다는 것은 폭발이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누구 소화기 없어요? 소화기.”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소리에 강호도 본능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오하영이 소화기를 들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가... 강호씨. 여기요!” 최근 5인승 이상의 차량에도 의무적으로 소화기를 비치하도록 법이 개정되었지만 과태료 부과의 대상이 아닌 탓에 실제적으로 효과는 미비하다고 한다. 그래도 시민 의식이 과거에 비해 향상되기도 했고, 최근 차량 사고로 인한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소화기를 비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는데 오하영이 그런 사람들 중의 한 명인 모양이었다. 얼른 소화기를 넘겨받은 강호가 능숙한 동작으로 안전 고리를 제거한 후 화재를 진압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소화기를 든 또 다른 사람들이 합류하자 금방이라도 크게 일 것 같던 불길이 대번에 잡힌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화기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이고, 불이라는 것은 작은 불씨 하나에도 금방 되살아나기도 한다. “젠장. 꽉 끼었어요.” “뭐 들어 올릴 것 없어요?” 사람들의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자 중년의 남성이 옆에 서 있던 강호를 저도 모르게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가 돌아보기도 전에 강호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차량이 추돌하고 전복되는 과정에서 자체가 내려앉고 일그러지면서 뒷좌석에 있던 사람이 좌석과 일그러진 프레임에 몸이 끼인 상황이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어 보였지만, 이미 한 번 불이 붙은 차량이었고 언제 다시 불길이 되살아날지 알 수가 없다. 강호가 차량의 옆으로 다가서자 중년의 남성이 알아서 주변 사람들을 물리며 정리해 준다. 차량의 옆에 누워 남자를 누르고 있는 좌석에 발을 대고는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철근이 휘면서 내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남자를 짓누르고 있던 소파가 들리며 틈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어서... 어서 뺍시다.” 이번에도 중년의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차에 끼인 남성을 꺼내었다. 그렇게 급한 상황이 종료되나 싶은 순간이었다. “이 개새끼! 안 내려?” “어어? 이 새끼! 도망간다!” 누군가의 외침 소리에 사람들이 돌아보니 사고의 주범인 외제차들 중에서 비교적 멀쩡해 보이던 한 대가 급발진을 하듯이 움직이며 현장에서 도망치려는 모습이 보였다. 차량을 에워싼 사람들이 운전자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보지만 당장 차 안에 있는 사람을 어쩔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운전자는 다른 사람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급격하게 핸들을 꺾으며 전복된 차량과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자칫 또 다른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방금 전 2살 남짓한 아이를 직접 손으로 구해 내었고, 심각한 부상을 입은 몸으로 아이를 걱정하던 엄마의 모습까지 목격했던 강호의 눈에서 대번에 불똥이 튀었다. 망설임도 없이 앞에 선 차량의 보닛을 밟고 뛰어 오른 강호가 차량 천장을 밟으며 도움닫기를 하더니 단숨에 7, 8미터를 날아 외제차의 보닛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콰앙!] 마치 폭격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외제차의 엔진부를 완전히 박살내어 버린 강호가 크게 주먹을 휘두르자 전면 유리창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박살 나며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운전석에 있던 남자는 이제 갓 20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싶은 젊은 청년이었는데, 시선이 마주치기 무섭게 강호는 놈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잔뜩 겁에 질린 얼굴 뒤로 눈동자가 기이할 정도로 풀려 있는데다가, 동공도 크게 확장되어 있는 것이 단순히 사고의 충격 때문이라고는 보기에 어려웠다. 어쩌면 술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어떤 약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손을 뻗어 놈의 멱살을 쥐고 끌어당기자 강호와 비슷한 체격의 남자가 힘없이 끌려 나온다. 놈을 끌어 낸 채로 한 손에 들고 가까이서 바라보자 술 냄새가 확! 하고 풍겨온다. ‘개새끼!’ 음주 운전은 살인 미수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강호다. 다행히 사고 현장에서 당장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나중에라도 병원에서 사망자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고 보면 단매에 때려 죽여도 시원찮을 놈이었다. 그동안 게란트롤 오가며 살생이란 행위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강호였지만 아직 살인이라는 행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게란트에도 인간형의 몬스터가 있고, 아직 만나지는 못했지만 인간과 비슷할 것으로 추정되는 수인족이라는 종족도 있는 만큼, 언제고 살인에 준하는 살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멀리하려고 노력했다. 아직은 살인이라는 선을 넘을 마음의 준비가 온전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 때려 죽여도 시원찮을 인간을 마주하고 보니 저도 모르게 살심이 피어올랐고, 푸른 안광이 번뜩이는 두 눈에선 진득한 살기가 폭발적으로 일어나며 남자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커억! 케에엑!” 강호의 살기는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생명을 빼앗는 살생을 통해 체득한 살기인 만큼 짙은 피냄새를 동반하고 있을 수밖에 없고, 현대의 안락한 생활에 길들여진 평범한 이들이 감히 감내할 수 있을 만 한 것이 아니었다. 강호의 눈빛에 남자의 얼굴에서 핏기가 급격하게 사라지는 것과 함께 눈동자마저 썩은 동태눈깔처럼 흐리멍덩하게 변하다 싶더니 돌연 어디선가 지독한 악취가 풍겨오기 시작한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극한의 공포 혹은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게 되면 한 순간에 온 몸의 기운이 쑥하고 빠져나가버린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 이르면 심할 경우 무의식적으로 통제하고 있던 근육의 제어가 풀리게 되는데, 항문 근육도 여기에 포함된다. 특히, 지독한 공포에 의해 똥오줌을 지리게 되면 평소보다 악취가 더 지독하다고 하는데, 감정이 호르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콧속으로 지독한 악취가 파고들자 들끓던 살기가 한 순간에 팍 하고 식어 내리더니 이성이 돌아온다. 마음 같아서야 때려 죽여도 시원찮지만 이곳은 게란트가 아니다. 게다가 주위에는 보는 눈도 많다. “후우!”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정리한 강호가 남자를 냅다 뒤쪽으로 던져 버렸다. 족히 70Kg은 넘어갈 듯 한 체격의 남자가 5, 6미를 날아 바닥에 떨어져 내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했다. 그들의 표정을 보며 너무 흥분한 나머지 튀는 행동을 했다는 생각에 강호는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주변의 상황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데다가, 몇 몇 차량에서 다시 연기가 피어오르며 어수선해진 탓에 강호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 틈을 타고 강호가 재빨리 현장을 벗어났다. 사고가 컸던 만큼 부상을 당한 이들이 꽤 많았고, 한 눈에 보기에도 중상으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다행이라면 사망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큰 사고가 나고도 사망자가 없다는 점은 사실 기적이라 할 만 했다. 그런데 웃긴 것은 이토록 큰 사고를 낸 과속 차량의 두 운전자는 거의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다는 점이었고, 그것이 사람들을 더욱 분토케 했다. 사고가 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와 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하고는 빠르게 교통 통제와 현장 정리에 들어갔다. 한의사인 중년의 남성은 비록 외과 면허는 없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응급처치 정도는 할 줄 알았기에 구급대가 오기 전까지 사람들을 살피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중이었다. “이거 문짝이 뜯겨 나간 거 맞지? 사고가 날 때 뜯겨 나갔나?” “여기 자국을 보니까 사고가 난 후에 누가 뜯어낸 거 같은데요?” “이상하네. 빠루 같은 거로 뜯어낸 것도 아닌 것 같고. 흔적이 너무 깔끔하잖아.” 현장을 정리하고 있던 소방대원들의 말에, 사고 경위에 대해 진술을 마친 중년의 남자가 옆으로 슬쩍 다가서서 그들의 대화에 끼어 들었다. “어떤 젊은 남자가 손으로 뜯어 낸 겁니다.” 그 말에 소방대원 둘이 말도 안 된다는 얼굴을 했다. 교통사고 현장을 가장 많이 접하는 이들 중의 하나가 바로 소방대원이다. 당연히 자체의 프레임이 휜 상태에서 닫힌 문짝을 힘으로 뜯어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기도 했다. 소방대원 두 사람이 쉬이 믿지 못하자 중년의 남성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기 지금 경찰한테 진술하고 있는 청년이 그때 현장을 촬영한 게 있으니까 확인해 보세요.” 그 말에 소방관이 후다닥 달려가자 마침 젊은 청년이 경찰에게 사고 당시를 촬영한 영상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얼른 옆에 달라붙어 영상을 보던 경찰과 소방대원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십대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차 위에 올라가 주먹을 내려치자 유리창이 대번에 박살이 난다. 이어 문짝을 쥐고 힘을 주자 얼마 지나지 않아 철근이 휘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힘없이 떨어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소방관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눈만 껌뻑거렸다. 이어 그 남자가 어떤 여자에게서 건네어 받은 소화기로 차량의 화재를 진압하고는, 차량과 좌석 사이에 끼인 남성마저 구출하는 장면에서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얼핏 보기에는 좌석을 밀어 올려 살짝 공간을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파와 함께 찌그러진 차제의 일부를 다리 힘으로 들어 올린 것이다. 무엇보다 자동차의 하부는 골격 프레임으로 이루어져 있어 저렇게 쉽게 휘고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도망치려는 가해자를 향해 마치 하늘을 날듯이 차량 위로 뛰어 내리더니 대번에 전면유리를 박살내어 버리고는 남자를 한 손으로 꺼내어 저 멀리 집어 던져 버리기까지 한다. 순간 두 명의 소방대원의 머릿속으로 차량의 전면 보닛이 완전히 찌그러지다 못해 엔진까지 내려앉으며 박살나버린 외제차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동안 숱한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온갖 사고차량을 보았던 소방대원들은 간혹 낙석 사고에서 이런 식으로 파손된 차량을 보았었기에 조금은 의아해 하던 차였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낙석이나 그 비슷한 무언가조차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외제차에 남은 흔적이 사람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몇 번이고 해당 장면을 계속해서 돌려 보았다. “이... 이 사람 지금 어디 있습니까?” 소방대원과 경찰의 말에 중년의 남성이 다시 끼어 들었다. “그게 저도 찾아보려고 했는데 언제 사라지고 없더군요. 아마도 상황이 대충 정리되자 그냥 가버린 모양입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그저 허! 하고 한 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때, 현장을 촬영했던 젊은 남자가 영상 속에서 소화기를 건넨 여성을 가리키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그런데요, 여기 이 여자요. 어디서 본 거 같지 않아요?” 그 말에 사람들이 여자를 자세하게 들여다보았다. 급박한 순간에 촬영된 영상이라 흔들림도 심하고, 야간인데다 뒤쪽에서 촬영된 것이라 쉽게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화면이 인명을 구조하는 곳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보니 여성의 얼굴이 전반적으로 흐리게 찍혔다. 다만, 이따금씩 카메라 쪽을 향해 돌아볼 때면 스치듯이 선명한 얼굴이 잡히기도 했는데, 확실히 이목구비가 낯설지 않았다. 무엇보다 입고 있는 옷이나 체형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이런 체형이나 분위기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딘가 낯설지 않은 얼굴에 예사롭지 않은 복장과 체형. 하지만 지금 당장은 여자의 정체를 밝히기보다 현장을 정리하는 것이 더 중요했기에, 정체를 밝히는 것은 잠시 미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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