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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미쳐버린 딸쟁이와 의사의 고찰


“뭔가 안정감을 되찾은 것 같았는데 저의 착각이었던 모양이네요 여전히 전이랑 다름없이 훌륭한 츤데레인 것 같아요 좋은 의미로나 나쁜의미로나” “츤데레는 무슨 츤데레야 대머리가 언제 변덕을 부려서 또 끌려갈지 모르니까 이상한 말 지껄이지 말고 당장 꺼져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건 진짜 사양하고 싶으니까” 둘만 남아서 그런 건지 오랜만에 여자처럼 삐진 듯 고개를 휙 돌려버리는 게이의 모습에 역함을 느낀 나는 방금보다 더욱더 강하게 엉덩이를 걷어찼다. “내 말 똑바로 안 듣냐? 바로 꺼지라니까?” “으악!! 그, 그만 차시라고요 아프다니까요?! 알았어요 알아어 갈게요 가면 되잖아요!! 오랜만에 단둘이 말좀 주고받고싶었는데 형은 악마예요!!” “그래그래 괜히 정신사납게 주변에서 얼쩡거리면서 지랄하지 말고 집이나 지키고 있어” “흥... 그래도 돌아와 준 건 고맙다고 생각해요. 형” 두 번째 킥은 꽤 아팠는지 엉덩이를 부여잡은 채 방방 뛰던 게이는 구시렁거리면서도 내 지시에 따라 집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고 이윽고 대머리처럼 골목길 저편으로 사라졌다. 잘 돌아왔다니 아주 지 하고싶은거 보고싶은거만 보는 새끼들이네 “괜히 기운만 빠진 느낌이야.” 게이와의 의미 없는 대화에 방금까지 뜨겁게 달아올랐던 분노는 맥이 풀려 어이없는 정도로 간단히 가라앉아버렸고 더 이상 화를 낼 생각조차 사라져버렸다. 하여튼 어느 의미로 굉장한 새끼라니까... “하아... 싫다 진짜” 잠시 사라진 게이와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있을 덩치를 떠올리며 머리를 긁적거리던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들의 걱정스러워하는 얼굴을 떨쳐낸뒤 편의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엑 여전한 악취네”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자 바닥에 놓여진 이름을 알수없는 식물 줄기와 말려있는 종이나 지폐, 흰색의 묘한 가루 등이 난잡하게 흩뿌려져 있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편의점에서 원래부터나던 퀴퀴한 냄새까지 섞여 형용할 수 없는 괴기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무슨 마약중독자들 소굴도 아니고 쯧, 나중에 덩치나 게이한테 좀 치우라고 해야하나…. 야 의사 안에 있지?! 문 좀 열어봐” 토악질이 올라오는 냄새 때문에 코와 입을 막은 채 바닥에 널브러져 길을 막고 있던 물건들을 대충 발로 치우며 불평을 늘어놓던 나는, 이내 닫혀있던 창고의 문을 두드려 의사를 호출했다. “아,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곧 열겠습니다” “그어어..” “(응? 방금 좀비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기분탓인가?)” 무언가를 하고 있었는지 한참 동안 문안 쪽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오더니 마침내 철컥하고 잠겨있던 문이 열리며 무척이나 피곤해 보이는 의사가 나를 맞이했다. 어제보다 한층 더 상태가 악화한 것 같은데 또 밤을 새면서 일한건가? “야 방금 안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괜찮냐?” “아...별거 없었습니다. 단순히 혈액샘플에 대한 실험을 하던 중이었고 정말 정말 안전하게 진행 중이었기에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키에에엑!” 또다시 들려오는 좀비의 울음소리에 의사의 표정으 딱딱하게 굳어졌다. 정말 안전한지 모르겠네 “...그러냐? 그럼 문은 왜 잠그고 있었는데? 안전하면 열고해도 상관없잖아” “대머리가 계속 약 좀 만들어달라고 귀찮게 해서 어쩔 수 없이 잠가두고 있었을 뿐입니다. 음, 계속 여기서 말하는 것도 그러니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겠습니까?” 비틀거리면서 걷는 의사의 안내에 따라 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벽과 기둥 쪽에 단단히 묶여있는 좀비들과 산처럼 잔뜩 쌓여있는 종이들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어떻게 하루 만에 이 정도로 어지럽힐 수 있는 건가 싶어 눈을 의심하다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쓸어 넘겼다. “하루 오지 않았을 뿐인데 왜 수백 배는 더 어질러져 있는 거같냐? 분명 약품이랑 식량도 전부 여기에 있어서 위생에 신경 써야 할 장소 같은데 대머리가 보고 한마디도 안 했어?” “편의점에 남아있던 식량들은 방금 대머리가 수금하듯이 대부분 가져가 버렸습니다 남은 건 실험 도구나 의약품들뿐이라 안심하십시오” 의약품도 더러워지면 안되는거 아닌가? 싶었지만 며칠간 밤을 새워서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것인지 의사가 형용할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나를 바라보고있었기에 애써 말을 삼켰다. 사람이 어떻게 폐인이 되어가는지 실시간으로 보는 기분이네... “아아 됐어 됐어 괜히 더 신경 쓰면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 넘어가자고”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저도 좋아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닙니다. 바이러스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면 필연적으로 일지 같은 걸 기록해둘 필요가 있는데 전기가 끊긴 지금 쓸 수 있는 건 종이뿐입니다. 시간은 배로 걸리지, 적는 건 팔 아프지, 저도 이것저것 고행입니다. 좀비는 뭐...보안에 더신경쓰도록 하죠” “그러냐... 너도 참 고생이겠네” “연구를 위해서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래도 저의 고통을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하고 인사를 건네는 의사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졌다. “그러면 슬슬 찾아오신 이유 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한창 좋을 때... 가 아니라 바쁠 때였기에 말이죠. 바이러스의 이상 현상? 아니면 신종변종이라도 나타난 겁니까?” “뭐 이것저것 말할 게 많지만 우선 사과부터 하는게 좋겠네 현미경을 찾아내기는커녕 네가 준 플라스크 병조차 써보질 못했어! 미안하다” 나는 품 안에 조심스럽게 넣어두었던 플라스크 병을 의사의 앞에서 꺼내 흔들어 보였다. 이번 탐색에서 얻은 건 그저 나를 위로해주는 육인형 하나였기에 의사에게는 정말 면목이 없었다. “... 그렇습니까? 딱히 큰일은 아니니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욕설을 내뱉을 줄 알았던 상황에서 놀랍게도 의사는 나의 사과 아닌 사과에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쓰려고 했는데 가까이 갈만한 변종이 없었달까 나간 뒤로 좀비들에게만 죽도록 쫓겨 다녔거든 탐색은커녕 짐 덩어리만 가지고 돌아와 버렸어.” “방금 말했지 않습니까? 그렇게까지 죄송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들어낸 좀비 전용 폭탄이야 나중에 쓰면 되는 거고 필요한 도구들과 실험체는 어제 대머리가 전부 보급해줬습니다. 당분간은 이걸로 충분할 겁니다. 아, 오히려 신경 쓰게 해서 제가 미안합니다.” “자, 잠깐 대머리가 필요한 도구들을 전부 찾아왔다고? 현미경 하나 찾기가 그렇게 빡셌는데? 어떻게한거야 심지어 좀비들까지 묶어서 데려오지 않았어?!” “낙담하지 마십시오 대머리는 대머리만의 강점이 당신은 당신만의 강점이 있으니 제가 위험한 줄타기를 통해 목줄을 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의사가 이렇게 시원스럽게 넘어가 준 건가? 뭔가 대머리에게 빚을 진 느낌이라 석연치 않긴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겠지. “하하 그러냐…. 그럼 내가 도움이 될만한 걸 해볼까?” “네?” “이래 봬도 바이러스 감염자잖냐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치료제 개발이나 좀비들과 싸우는 단순한 것들뿐이니까 그거라도 해야지 어쩌겠어.” “...흐음 여유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뭔가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만? 나가서 무슨 일 있었습니까?” “푸흣 게이랑 덩치도 그러던데 너도 그 말이냐? 서로 짠 거 아니야?” 내 말을 듣던 의사는 게이와 덩치와도 같은 오묘한 표정으로 내 온몸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네 감금당한 이유 엄청나게 몰려있던 정신이 안정을 되찾은 것 같습니다. 약간 활발하고 친근한 듯한…. 이게 진짜 성격입니까?” 웃음이 쏙들어갈 정도로 냉철하게 나를 바라보는 의사의눈에 순식간에 소름이 돋아났다. “...야 하나만 물어봐도 되냐?” “네 물어보십시오” “너 말이야 진짜 무슨 의사였던거냐?” “...무슨 의사였는지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지금이 중요하지” “진짜 진실되게 내과인지 외과인지만좀 알려주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싱긋 싱긋 웃는 의사, 이 새끼도 점점 능글맞아지는 것 같네 “쯧, 됐어 아무튼 간에 내몸에 침투한 바이러스에 대해 뭔가 알아낸 것 같아” “오오 대발견 아닙니까?! 뭡니까?! 도대체 뭐를 알아내신겁니까?!” 방금까지 여유로운 표정이 거짓말이라는 듯 눈을 반짝거리면서 몸을 밀착해오는 의사를 피하며 나는 입을 열었다. “우선 너도 약속할게있어 지금 듣고 있는 건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마 대머리를 포함해서 말이야” “어라 혹시 저를 믿어주시는 겁니까?” “...단 한 번이야 지금 내 정신으론 단 한 번밖에 믿을 수 없어” “저의 의사로서 긍지를 걸고 약속드리죠” “외과인지 내과인지조차 알려주지않는 의사가 긍지고 뭐고 있는 거냐고 묻고 싶긴 한데 뭐, 됐다 한번 믿어주기로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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