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다시 아파트로
“아…. 으우으으아아”
아무런 걱정 없이 오토바이의 속도를 높여 거리를 내달리자 꼬맹이도 기분이 좋은지 알아먹을 수 없는 옹알이를 내지르며 쏜살같이 지나가는 거리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뭔가 개방감이 느껴져서 너도 기분좋지 꼬맹아?!”
“...아 우아아아”
나에게는 분명 네라고 대답하는 것 같았기에 소리를 지르는 꼬맹이의 머리를 한손으로 쓰다듬었다.
“지금부터 우리가 갈 곳은 한층 더 굉장한 곳이라고? 기대해도 좋아”
◆
“이야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뭔가 더더욱 엉망진창이 돼버렸잖아? 쯧 하긴 몇 달은 그냥 방치했으니 어쩔 수 없으려나?”
'뚜두둑' 하고 팔에서 칼날을 끄집어내 주변에 진을 치고 있던 좀비들을 큰 어려움 없이 배어버린 후 꼬맹이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서 우리가 목적지로 정했던 장소를 올려다보았다. 처음 우리가 만났던 장소이자 내가 홀로 틀어박혀 있던 트라우마가 가득한 아파트.
“여기가 우리가 처음 만났던 장소야 꼬맹아 기억하지?”
“...”
무슨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썩은 동태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꼬맹이의 얼굴을 마주보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껏 고생해서 우리가 쳐두었던 바리케이드도 전부 뜯겨나가 있었고 좀비들과 한때는 거리의 생존자였던 것으로 보이는 시체들이 뒤섞여 나뒹구는 살벌한 풍경…. 음 나 같아도 이렇게 달라진 아파트의 광경을 보고 뭔가를 떠올리라고 한다면 무슨 영문 모를 소릴 하는 거냐며 욕하면서 화를 냈을 것도 같았다.
“일단 올라가 보는 게 어때? 옛날하고 달리 지금은 너를 업고 올라가도 체력이 충분하니까 빠르게 옥상까지도 갈 수 있을 거야”
“아아으으아”
문이 전부 부서져 있는 아파트의 입구에 발을 내딛자 얌전하던 꼬맹이가 품 안에서 꿈틀거렸다.
“뭐야.. 니 다리로 올라가고 싶은 거냐? 쯧 위험하니까 이상한 짓은 하면 안 된다? 또물리면 어떻게될지 몰라서 위험해 심지어 무서운 사람도...”
“아우아!”
“알았어! 알았다고 닥치고 올라가겠습니다. 그러니까 짜증을 내지 말고 손잡아”
근처에 오토바이를 처박...아니 주차 시켜놓은 뒤 나와 꼬맹이는 손을 맞잡은 채 느긋하게 우리가 살던 장소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푸흣 여기서 바리케이드를 혼자 보강하겠다면서 공구를 들고 날뛰다가 계단에서 구를뻔한거 내가 구해줬잖아 품 안에서 어린애 취급하지 말라고 엄청나게 칭얼거렸었지!”
“아아 맞아!! 계단에서 섹스해보고 싶다고 칭얼대다 내 자지를 억지로 붙잡아서 끌고 가려 했던 거 기억하냐? 결국에는 하다가 등이 살짝 까져서 피난다고 울뻔했었잖아”
“음, 여긴 네가 보초를 서던 나를 마중 나오다가 계단이 너무 어두워서 얼어붙어 있던 장소였지 아마? 그때도 엄청 귀여웠는데 말이지 푸하하”
단순히 꼬맹이와 함께 계단을 오는 것일 뿐임에도 이곳에서 지냈던 추억들이 주르르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뭐, 같이 올라가는 꼬맹이는 아무런 생각도 없는지 대꾸 한 번 없이 묵묵하게 계단을 올라가고 있긴 하지만... 엄청 작아도 좋으니 무언가 느꼈으면 좋겠네.
“...”
주저리주저리 혼자 떠들던 나는 살짝 발걸음을 늦췄다. 전에 대머리와 왔을 때 게이와 남성을 처음 만났던 장소. 23층... 그때는 게이를 여자로 착각해서 데려갔었는데,
“으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보다 꼬맹아. 너는 언제가 되면 완벽하게 고쳐질까? 빨리 주인님 소리가 다시 듣고 싶거든 하고 싶은 말도 잔뜩있고”
“...”
내말을 알아듣지 못한 건지 알아듣지 못한 척을 하는 건지. 꼬맹이는 묵묵히 내 손을 잡은 채로 계단을 올랐다. 그래도 단 하루 만에 흐느적거리던 좀비 시절보다는 많이 호전되었는데 너무 욕심을 내지 않는 게 속이 편할 것이 분명하리라.
“(역시 사람은 욕심쟁이일 뿐이려나….) 자 힘들었지 이제 도착...?”
잠깐 생각에 잠겨있던 도중 어느새 내가 살던 층에 도착했기에 비상계단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자 어딘지 모르게 휑하고 적막한 분위기가 나를 감쌌다.
“꼬맹이 잠깐 이쪽으로 와”
단순한 직감이었음에도 나는 곧장 손을 잡고 있던 꼬맹이를 품 안에 안아 든 뒤 칼날을 뽑아 들고는 우리 집의 문 앞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가구들로도 모자라 문까지 때어내 바리케이드를 보강하려고 했던 건가?”
그나마 집을 보호해주던 문짝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곧바로 보이는 현관 너머는 정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씨발 역시 집을 비우면 안 됐는데 말이야 약간 화나에 내가 털어먹었던 집사람들도 이런 기분이었던 건가?”
트라우마를 자극하던 물건들이 전부 사라져 약간의 해방감과 함께 꼬맹이와의 추억까지 전부 사라졌다는 상실감이 가슴속에 피어올랐다.
마치 우리가 살았던 장소는 어디에도 없다는 듯 꼬맹이와 떡을 치던 침대도, 임시로 밥을 먹던 작은 식탁도, 서로를 품 안에 끌어안던 작은 소파도 그 무엇하나 없이 텅텅 비어져있었다.
“...아으..”
복잡한 내 기분을 읽어준 걸까? 폭하고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려 품 안으로 파고들어 오는 꼬맹이. 나는 그런 꼬맹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다 고른 숨소리를 듣고 슬쩍 꼬맹이의 얼굴을 보았다.
“엥, 뭐야 참나 단순히 졸릴 뿐인 거..?!”
정말 자는 것처럼 눈을 감은 채 그저 고른 숨소리만을 내뱉는 꼬맹이의 모습은 나를 놀라게 만들기 충분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잠은커녕 피곤한 기색마저도 없었는데 이제는 잠까지 자게되다니... 뭔가 깜짝 놀라서 방금까지 타오르던 약간의 분노가 사그라들다 못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그래 이렇게 점점 사람으로 돌아와 줘라 꼬맹이”
집안에 가구가 없지만 무슨 상관인가, 꼬맹이가 이렇게 나아지고 있는데 나는 잠깐 꼬맹이를 끌어안은 채로 집안 벽에 기대어 앉아 깨진 창문과 텅 빈 내부를 바라보았다. 음, 그래도 여기서 계속 살기에는 좀 위험하려나?
“흐음, 쓸만한 가구들을 전부 가져온다고 해도 여기서 꼬맹이랑 지내기에는 좀 그렇겠는데... 뭔가 더 안전하게 지낼만한 장소가 있으려나?”
나는 잠시 생각하다 이내 꼬맹이의 집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꼭대기 층임에도 공포에 질린 꼬맹이가 덕지덕지 바리케이드로 꾸며져 있으니 내가 깬 창문만 어떻게 손보면 여기보다는 훨씬 그럴듯할 것 같았다.
“뭐 꼬맹이 집도 그렇다면 한집 한집 전부 확인해서 쓸만한 방을 찾을 수밖에 없을 테지만...엄청 귀찮을 것 같은데 쯧”
행동 방향을 정한 나는 지체 없이 완벽하게 곯아떨어진 꼬맹이를 품속에 안고서 꼬맹이의 집으로 올라갔고, 다행스럽게도 그곳은 우리가 나간 뒤 다른 생존자들의 거점이 된 듯 꽤나 깔끔하게, 아니 전보다 더욱더 멋지게 인테리어까지 되어있는 꼬맹이의 집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꼭대기 층이니 나름대로 전망이 좋아서 여기다 베이스를 차린 건가, 참 느긋한 집단이었나 보네”
마치 방금까지 이곳에서 사람이 살던 것처럼 약간의 인기척이 느껴지는 집안은 내가 부쉈던 창문마저 새로 달려있을 정도였기에 약간 긴장하며 집안을 살폈지만, 이미 전부 떠난 것인지 좀비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으음, 그래도 흔적을 보면 몇 달은 여기서 지낸 것 같은데 우리가 떠난 뒤에 곧바로 들어왔던 건가? 어쩌면 여기서 계속 지냈으면 엿같은 대머리대신 이 느긋해 보이는 그룹과 만났을지도 모르겠네...”
나는 편집증 적으로 집안이 완벽하게 안전한지 몇 번 더 확인한 다음 꼬맹이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혔다. 무언가 먹는 꿈이라도 꾸는 건지 입을 우물거리는 꼬맹이는 정말 천사 같아 보여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넌 언제나 나를 웃게 만들어 주네 고맙다 꼬맹이”
꼬맹이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나는 느긋하게 시간이라도 때울 겸 집안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보기 시작했다.
꽤 급하게 빠져나갔는지 음식 약간과 바리케이드를 보강하기 위해 썼던 것 같은 공구들, 그리고 소설책과 전공 서적 같은 것들이 가득 꽂혀있는 전에는 없었던 책장...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이걸 전부 두고간 걸까?
“우리야 좋지만, 이 정도로 통조림이나 공구도 전부 두고 갔을 정도면 어지간히 급박했던 상황이었던 건가?”
좀비들의 습격이라던가? 나는 코웃음을 치면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는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시체와 좀비 작게 보이는 변종들 어디서 불이 났는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계 여전히 지옥 같은 풍경이었지만, 어느새 자라난 식물들 덕분에 이곳이 그나마 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푸후, 참 엿같은 세상이네”
한참을 그렇게 바깥을 내려다보던 나는 담배꽁초를 바깥으로 던져버린 뒤 커튼을 쳤다. 상념에 젖는건 꼬맹이가 완벽하게 나은 다음이라도 늦지않는다. 지금은 집안에 남은 물품들을 찾은다음 다시 정리하는게 좋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