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이야기
[똑똑]
“야 몸은 좀 어떠냐?”
떠올랐던 해가 어느샌가 중천에 걸리자 낡은 문이 끼익하는 불쾌한 소음과함께 열리더니 아직까지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남성이 목발을 짚은 채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말하기 싫다고 범…. 그 미친년한테 말했었던 것 같은데? 씨발 면회객 사절이라니까 당당하게 들어오고 자빠졌어. 여기 환자 관리가 영 부실하잖아”
“나도 같은 환자거든? 긴말 말고 일단 이거나 먼저 받아라 문병 선물이니까”
남성의 손에서 무심하게 날아와 품 안에 안착한 익숙한 모양의 네모난 갑, 내가 그렇게나 피우고 싶어했던 담배였다.
“그 미친 레즈비언년이 너 그거 말고는 절대 안 피운다고 지랄하길래 널려있는 시체까지 하나하나 전부 뒤져가면서 찾은거니까 고맙게 생각해라?”
두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적의가 없다는 몸짓을 취하던 남성이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않자 허락이라고 생각한 듯 구석에 널브러져 있던 의자를 가져오더니 내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버렸다. 뭐, 뜻밖의 선물도 받기도했고 몇 마디는 해줄까...
“...네가 이렇게 까지 할만큼 궁금한 거냐?”
“안 그러면 내가 살짝만 움직여도 더럽게 아픈 몸을 굳이 이끌고 나가서 시체까지 뒤졌겠냐? 닥치고 기다려 줄 테니까 한 대 피워”
얼굴을 구기며 손을 털어내는 남성의 얼굴에는 첫날부터 보였던 적의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한 꺼풀 벗겨진 것 같았기에 살짝 헛웃음을 띄우며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푸후...”
약간의 쪼잔한 복수로 몸속 깊숙이 머금었던 담배 연기를 남성의 얼굴에 그대로 뱉어버린 나는 꼬맹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살짝 일으켰다.
“나도 몰라 일어나보니까 그 개새끼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어.”
“콜록, 콜록 뭐? 뭐라고 했냐?”
나는 담배를 태우며 잠깐 생각하다 연기 때문에 계속해서 기침을 토해내던 남성에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도 일이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 모른다고. 눈을 뜨니까 뇌는 사라지고 없었고 꼬맹이만 남아있더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말하기 싫으면 싫다고...”
“나도 높은곳에서 떨어진 것도 모자라 중상을 입은 상태였어. 온몸의 뼈가 부러지고 체력도 남아있지 않아서 일어설 수조차 없었지. 씨발 믿기 싫으면 그냥 믿지않아도 상관은 없는데. 내 생각에는 아마 그 총잡이가 전에 말했던 대로 배가 차거나 기분이 좋아서 돌아간걸 태니까. 운이 좋았어.”
“...”
남성의 시선이 한순간 이불 밑에 들어가 있는 꼬맹이에게로 향했기에 나는 곧장 칼을 뽑아 들어 얼굴에 들이밀었다.
“야 상황이 좀 이상하긴 해도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라? 나는 몰라도 꼬맹이는 확실하게 사람이야.”
“...내가 너 같은 새끼도 아니고 의심이 간다고 쉽게 그러겠냐? 그냥 믿기 힘들어서 그런 것 뿐이니까 과잉 반응하지 마. 쯧 꼬마한테 그렇게까지 집착한다니 옛날 같았으면 경찰에 체포되어서 뉴스에 나왔을걸? 다행인줄 알아라 이 이상 성욕자 자식아”
“성인이라니까? 꼬마가 아니야.”
“예이 예이 네 눈에는 당연히 그러겠지. 뭐 중학생이면 아줌마 그런 거냐?”
“씨발…. 이럴 줄 알았으면 꼬맹이 신분증이라도 챙겼어야했는데..”
“푸핫 뭐? 신분증? 이딴 꼬맹이한태 그런게 있다고?”
“이쪽은 심각하니까 비웃지 마라? 나도 원래는 풍만한 여성이 좋았다고 가슴도 크...!!”
어느새 일어난 건지 꼬맹이가 내 이야기를 듣고는 나의 거기를 강하게 내려쳤다. 농담이 아니라 불알하나가 으깨지는 것만 같은 고통에 나는 말도 채 끝맺지 못하고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유아 퇴행이라더니 그래도 말은 잘 알아듣는 모양이네”
“아파!! 진짜 미안 꼬맹아 지금은 너밖에 없으니까 용서해 주라 진짜 아프다니까?! 나는 지금 환자라고 환자! 이해하는 거지? 환자!! 아픈사람!!”
으르렁거리면서 나를 이곳저곳 때리거나 물어뜯는 꼬맹이에게 반격은커녕 계속해서 사과하며 당하기만 하는 모습을 보던 남성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저런 여자아이한테 반항 한 번 못 하는 이딴 약골이 괴물이라니. 아무리 패닉에 빠졌어도 나도 참 한심하네”
“아앙?”
“됐다 됐어 전부 바보 같네 하아...여튼 담배나 마저 태워라 밥가져다 줄태니까”
무언가 중요한 걸 말을 할 것 같던 남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저녀석 진짜 상황이 궁금해서 들어온 것뿐인가…. 앗 진짜 적당히 해주라 꼬맹아!”
삐진 것처럼 도리도리 얼굴을 저으면서도 나의 눈치를 살피는 것인지 불알 공격을 그만둔 꼬맹이가 나를 올려다보더니 꼬맹이가 작게 입을 열었다.
“....싫어”
기절하기 직전같이 뚝뚝 끊기는 말이 아닌 제대로 된 단어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꼬맹이의 모습에 나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꼬맹이의 머리를 잔뜩 쓰다듬었다.
“그래도 이제 진짜 말도 할 수 있게 됐네”
“...읏”
여기에 오고 나서 뜻밖에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갑작스럽게 웃어주거나, 나를 껴안거나, 사람을 살리라고 나에게 명령하거나…. 키스를 해주거나.
나는 화가 누그러진 고양이처럼 가는 눈빛으로 나의 손길을 받아들이던 꼬맹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어 높이 들어 올렸다. 분명 여전히 죽은 통타와도 같은 눈동자였음에도 기분 탓인지 꼬맹이의 눈이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이야야야야!”
장난기랄까, 꼬맹이가 또다시 웃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올라온 나는 그대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꼬맹이를 들어서 안은 채 빙글빙글 제자리를 돌거나 천장에 닿기 직전까지 꼬맹이를 던져 올렸다 받는 등 어린아이를 놀아주는 감각으로 몸을 움직였다.
“헤헤”
나와 노는 게 즐거운 것인지 연신 싱글벙글 웃음을 지어주는 꼬맹이. 이제는 체온만 어떻게 보완한다면 완전히 인간과 똑같은 것 같았다....남성의 말처럼 진짜 어린아이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때보다는 좋은가.”
“어라? 꼬맹이도 정신 차린 거야? 이거 점점 마음이 놓이는데?”
나의 혼잣말에 대답을 돌려주는 목소리에 나는 풀어졌던 표정을 가다듬었다.
“남을 몰래 엿보는 건 실례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괴물이라 상식이 부족한 거냐?”
“몰래 엿본다거나 그런 거 아니거든요? 대장이 오빠 일어났으니까 가서 밥 챙겨주라고 했단 말이야 걱정되서 한걸음에 달려와 줬더니. 취급이 너무하지 않아?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지?!”
“자기가 아니라고 말했잖아”
“좀비들이 몰려왔을때는 그렇게 귀엽게 벌벌떨면서 나한태 매달렸었는데...슬프네”
“읏 그건..”
“하아 됐으니까 나가서 꽁량거려라 오늘은 좀 내버려 둬 달라고 말했잖아”
“은근히 생각해 줬더니만 그렇게 소리칠 것까지는 없잖아. 오빠 진짜 너무한거 알지?”
“나가!!”
“...시끄러워”
“...미안 조용히 할게”
“뭐야 방금 말한 거야?! 어떻게?!”
내가 소리치자 배시시 웃으며 몸을 돌리려던 범죄자가 꼬맹이의 목소리를 듣고 놀라면서 거리를 좁혀 다가왔다.
“.... 뭔지몰라도 꼬맹이가 여기 와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어. 유아 퇴행이란 게 언제 어떻게 치료될지 모르는 거잖아? 나도 정신병이 있긴하지만 그쪽까지는 잘 모른다고”
나는 우리를 바라보는 총잡이의 시선에 말을 가려 했고 범죄자도 잠깐 총잡이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네, 뭐, 일단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다행인 일이긴 하잖아 성대하게 축하해 줘야지!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 줘 오빠)”
나를 끌어안으면서 작게 귀에 속삭이는 범죄자는 후후하고 내 귀에 작게 바람을 불어넣고는 윙크를 해왔다.
“야 총잡이 레즈나 게이나 나랑 연관 없으면 나도 관대한 시선이긴 한데 이년은 진짜 조심해라. 남자든 여자든 맛만 좋으면 다 따먹고 다니던 걸레 같은 년이니까”
“오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꼬맹이 또한 내 손에서 간단하게 벗어나더니 나의 다리를 꽉 끌어안고는 범죄자를 가리켰다.
“....변태”
“꼬,꼬맹이마저?!”
“조심할 게 고마워 꼬맹이. 그…. 너도”
시끌벅적해진 방안이었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나를 꽉 끌어안고 있는 꼬맹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 손을 빠져나갔을 때 좀비였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날렵한 몸놀림이었다.
옛날, 꼬맹이가 물리기 전에 보여준 움직임과는 완벽하게 다른 움직임. 좋은 일이라는 건 알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갈때 이런 것도 중요하니까…. 하지만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오빠 듣고 있어?!”
“어? 아 뭐가?”
“이왕이면 나가서 다 같이 밥이나 먹자고”
“....마음대로 해라”
“엥 허락할 줄은 몰랐는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 걸까나?”
“딱히, 꼬맹이가 그러고 싶어 보이니까 그럴 뿐이야. 더우니까 붙지미라 꼬맹이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쳇~ 그럼 나는 자기한테..!”
“미안 나한테도 들러붙지 말아 주라”
“두둥...”
진짜 충격을 받았는지 이리저리 몸을 흔들다 쓰러진 범죄자를 내버려 둔 채 우리는 방 밖으로 나와 총잡이의 안내에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