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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화 엿같은 만남


사람들이 매복해있던 4층을 지나 어느덧 쇼핑몰의 최상층 직전까지 다다른 우리는 제각기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멈추었다. 건물에 진입하자마자 보인 음식물 찌꺼기처럼 기괴하게 남아있던 시체들을 지나자 나타난 괴물이 만들어낸 식량창고. 그 두 패턴이 층을 올라갈 때마다 끝없이 반복되어 마치 같은 장소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만들정도로 무한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저항의 흔적만이 갈수록 거새질뿐 찾고있는 생존자도, 쓸만한 무기도 식량도 아무것도 건질것이 없었다. “사람들을 죽이고 나아가봤자 있는건 고작해야 시체와 창고뿐이라니...하! 설마 꼭대기까지 올라가도 허탕치는거 아닌지 모르겠네... 빌어먹을” 머리가 지끈거려 잠깐이라도 숨을 돌릴 겸 창문에 기대어 밖을 내려다보자 벌써 해가 지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았지만 이대로 돌아갈수는 없었다. “자 여기 불” 아무리 생각해도 이러다가는 정말 여기서 밤을 보내야 될 것 같았기에 끄응 하고 신음을 토해내며 담배를 입에 물었더니 센스 좋게도 옆에 있던 경찰관이 불을 붙여주었다. “형씨 기억하지? 적어도 백 명은 넘게 죽어있던 거. 전부 군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소 소대규모의 인원들이었어 무장도 잘 갖춰졌던 것 같고 수류탄에 기관총...뭐 전부 부숴져 있긴 했지만 저항의 흔적도 만만치 않았어” 멍하니 담배 연기를 밖으로 길게 내뱉으며 경찰관의 말을 흘려듣자 경찰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한숨 쉬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살아있는 군인 한 명만 찾으면 바로 밖으로 나갈 거라니까? 그 탱탱 볼 같은 거에 조종당하는 사람들도 몇 명 밖에 안 마주쳤잖아.” “그것도 충분히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형씨?” “말했잖아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든 돌아가도 상관없어” “...굳이 이 위험한 상황에서 끝까지 군인을 찾아야겠어?” “꼭 찾아야 해 우리를 고통 속에 밀어 넣은 그 개새끼들도 찾아야 하고. 의사랑 약속한 것도 있으니까. 뭐더라 자기를 찾으러 온 사람이 있으면 대가리 한 대 때린 뒤에 백신 좀 나눠주랬던가?” “....그러냐?” 평소 내 말투를 따라 하듯 냉소적으로 말을 내뱉은 경찰관이었지만 얼굴만은 여전히 미소짓고 있었다. 정말 나를 도와주기 위에 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속내가 있는 건지 눈동자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아 아직도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사람 보는 눈 좀 길렀어야 했는데... 하긴 그런 게 있었으면 여자친구랑 그 개새끼들한테 뒤통수도 안 맞았으려나?” “엉? 형씨 방금 뭐라고 했어?” “아니 아무것도...그냥 옛날이야기니까 신경꺼” “싱겁기는, 할거면 빨리하고 나가자고 형씨” 툭하고 내 어깨를 두드려준후 나에게서 멀어지는 경찰관의 모습에 고개를 주억 거리며 담배를 비벼 껐다. 이제 남은 층은 한층. 만약 여기까지 뒤졌는데 아무것도 없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음... 무작정 헬기가 날아갔던 북쪽으로 오토바이를 몰고 나아가볼까? 꼬맹이도 나보다 훨씬 강해졌으니 충분히 가능할 것도 같은데... 경찰관과 사서도 억지로 따라오겠지만 꽤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럼...마지막 층이네” “조,조심하세요!” “그래그래..” “...가까이 오지 마” “마지막까지 시끌시끌하네 뭐 긴장이 풀려서 좋지만 말이야 으하하” 뚜벅 뚜벅 사람들을 베어 넘겨 피범벅이 되어있던 나와 꼬맹이가 앞장서 꼭대기 층으로 올라서자 하수도의 오물찌꺼기가 갑작스럽게 코앞에 들이밀어 진듯한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로 역한 냄새가 확 풍겨왔다. “크윽...못참을 정도로 심한 악취네. 썩은 음식들이 발효될 때 맡았던 것보다 더 심한 냄새야” 경찰관의 약한소리를 무시하며 주위를 둘러보자, 벽지라도 되는 것처럼 사방에 들러붙어 있는 젤리 같은 검은 물질에 의해 벽면에 고정된 채 옅은 숨을 몰아쉬는 사람들이 보였다. 다행히 아직은 감염이 되지 않은 것 같아 군번줄을 매고있는지 확인하려 손을 뻗자 기절에 있던 남성이 인기척에 놀라 고개를 황급히 들어 올렸다. “사,살려...살려줘” 남성은 우리가 자신을 버리고 갈 것 같았는지 발버둥까지 치며 무척이나 간절한 눈동자로 애원했다. “안 그래도 도와줄 거니까 닥치고 가만있어” [쾅!] “씨발…. 존나 단단하네 야 꼬맹아 좀 도와줄래?” “...응” 젤리같아 보이는 주제에 무척이나 단단한 검은 물질은 내 힘으로도 부수거나 뜯어낼 수 없을 것 같았기에 꼬맹이에게 손짓하자 꼬맹이는 잠시 벽을 바라보다 남성의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끄..읍! 끄아악!” 꼬맹이 또한 벅찬지 한참을 벽과 씨름을 하고나서야 마침내 남성이 살점이 뜯겨지는 역한 소리와 함께 조금씩 벽에서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살았다..살았어..!” 자유를 얻은 대신 양어깨가 탈골됐고 등가죽이 전부 뜯겨나가 등 근육이 그대로 보였음에도 남성은 아프지도 않은 것인지 미친 듯이 웃고만 있었다. “이봐, 일어..” “꺄악!” 정신이라도 나간 건가 싶어 내가 발로 툭 건드려보자 남성은 바퀴벌레처럼 꿈틀거리다 이내 덜렁거리는 팔과 함께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길을 막고 있던 사서를 몸으로 밀쳐낸 후 우리가 올라왔던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헐레벌떡 달려나가려했다. “이거 놔! 여기서 빨리 도망쳐야 해 도망쳐야 한다고!” “이거 참... 정말 버르장머리없는 친구네 이봐 형씨 도와준 사람을 밀치면 쓰나?” 경찰관이 사서를 밀친 것이 화가 났는지 남성의 머리를 내려찍자 남성은 그대로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야 너 군인이냐?” “아니..아닙니다. 절대 군인이 아닙니다. 그 개새끼들...” 머리를 잘못 맞은 것인지 아니면 넘어지면서 코를 다친 것인지 코피까지 줄줄 흘리던 남성은 또다시 주먹이 날아올까 두려워 몸을 웅크리며 재빨리 내 물음에 답했다. “이야 이거 표지판에는 가까이 오면 사격하겠다더니 사람은 또 받은 모양이네 알다가도 모를 놈들이야” “그 괴물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가까이 오면 경고사격하고 빨리 꺼지라고 그런데...그런데” “빨리말해 시간없어” “군인들이 근처에 몰려든 사람들을 갑자기 전부 받아주더니 그 괴물이랑 몰려든 좀비들과 싸우게 시켰습니다! 전부 무찌르면 북쪽에 있는 자신들의 캠프로 데려다 준다고 그랬습니다!” 말을 흐리는 남성을 재촉하자 남성은 몸을 떨며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쯧, 그래도 헬기에 북쪽 캠프라면 잘 찾아온 것 같은데... 야 살아있는 헬기 조종사 좀 찾아야 하는데 도와줄수...” 횡설수설 말을 내뱉던 남성에게 손을 뻗어 일으켜 새우려 했지만, 그보다 한발 앞서 남성이 떨리는 손으로 내 뒤를 가리켰다. “괴,괴물!” “뭐야 갑자기 왜 그래?” 남성은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번쩍 몸을 일으켜 에스컬레이터 아래를 향해 전력으로 내달려 사라져 버렸고 우리는 남성이 바라보던 장소를 향해 무기를 들이밀었지만 차가운 공기와 어둠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군인도 아니였으니 굳이 따라갈 필요는 없겠지. 저 상처로는 얼마 못 가 죽을 것 같긴 하지만... “이거 예감이 안 좋은데...우리도 도망갈까 형씨?” “목에 군번 줄 찬 새끼만 찾아서 구한다음 나간다니까 아까 말했잖아?” “...그래 그래 말했었지” 남성과 함께 매달려있던 사람들은 군번줄이 없었기에 그대로 무시한 채 우리는 빠르게 어둠을 뚫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그래도 도와줄수 있으면 도와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괜히 시간만 더 끌뿐이야 지금도 어두운데 해까지 지면 더 어두워질걸?” 나와 똑같이 피가 몸에 잔뜩 튀어있던 사서의 동정 어린 말을 무시한 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어어” “키에엑!” 방금 보았던 사람들처럼 벽지처럼 발려진 검은 액체에 붙잡혀있는 좀비와 변종들. 검은 액체로 조종하던 사람들처럼 이것들도 여기를 점령 하기위해 쓰다 버릴 패였던 건가? 꼬맹이가 먹은...해치운 뇌만큼 지성이 있다는 걸까? “어, 어쩌죠 그냥 무시하고 가기에는 불안해요” “...어쩔 수 없어 말했잖아 빨리 찾고 나간다고” 식량을 발견한 좀비들의 우렁찬 울음소리를 무시한 채 플래시 라이트를 이리저리 비추어 보았다. 옆자리 좀비에게 얼굴을 뜯어먹히고 있는 녀석도 아니다. 간신히 목에 걸려 달랑거리는 군번 줄을 맨 덩치 변종도 아니다. 기괴한 살덩어리로 변하고 있는 이 녀석도 아니다. 정신줄을 놓은 듯 기괴하게 웃는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는 이 녀석도 아니다 아니였다. “사,살려...살려줘” “닥쳐” 한 녀석 한녀석 살아있는 사람들을 전부 구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타들어가는 속마음에 맞춰 점점 빨라지던 발걸음은 이제는 달리는 속도와 완전히 똑같아 졌지만, 보이는 것들은 그저 시체와 좀비 일반인들뿐이었다. “저,저쪽에 저쪽에 아직 살아있는 군인이 있어요!” 사서의 외침에 마침내 나의 발걸음이 멈췄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눈에 익은 군복을 입은 남성 두명. 정말 감염도 되지않았는지 비교적 깨끗해보이는 몸과 얼...굴...? “하! 너 이 개새끼들 아직도 살아있었냐?!” 한시도 잊은적이 없던 두사람의 얼굴. 우리를 총으로 위협해 좀비들이 잔뜩 몰려들고있던 장소에 그대로 버린 군인과 헬기 조종사가 나란히 벽에 걸린채 신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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