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꿈같은 세상(2)
머릿속으로 여성이 말했던 특별한 냄새를 되뇌이며 동료의 머리통이 말 그대로 장난감처럼 단번에 뽑혀 나가는 장면에 넋이나간 여성한명을 붙잡아 바리케이드로 막혀있던 창문 밖으로 내던졌다.
“정신 차려 새끼들아 이대로 죽을 거냐?!”
“씨발...씨발”
“어쩐지 아침부터 불길하더라니...이럴 줄알았어 이럴줄 알았다고!”
밖으로 던져진 여성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다른 녀석들이 제각기 무기를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나를 내려치려 했으나. 이제는 익숙해진 거대한 팔 하나가 내가 여성을 던져 부숴버린 창문 안으로 들어오더니 나를 노리던 녀석들의 몸을 마치 종잇장처럼 그대로 꿰뚫어 쓰러뜨려 버렸다.
“고맙긴 한데...너도 온 거냐?”
“키...”
괴물은 창문 밖에서 작게 울음소리를 내더니 작게 긍정했다. 아마 몸이 커져서 안으로는 못 들어오고 있는 모양인 것 같은데... 모처럼 도와줬으니 나도 조금 도와줄까?
가벼운 마음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던 슬레지해머를 손에 쥐자 오랜만에 쥐었음에도 손에 착 들러붙는 감촉이 뭔가 향수를 자극했다. 내가 필사적으로 버티던 대머리가 명령을 내리던 시절 필사적으로 살아남기위해 노력했던... 왜그렇게 열심히 했었더라?
“으음 그래 단순한 착각 기분탓이겠지”
“키이익..?”
“아아 미안 뭐랄까 옛날에 들었던 것 보다 훨씬 가벼워서 묘한 기분이 들었거든 뭐, 어쨌든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으니까 창문에서 떨어져”
나는 아직 창가 근처에서 얼쩡거리고 있던 괴물에게 경고를 한마디 하고는, 그대로 벽면을 향해 해머를 휘둘렀다.
[화-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내가 내리쳤던 벽은 완전히 무너져내려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렸다. 몇 번은 내리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오늘 내 몸의 상태가 말도 못하게 좋은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얼굴에 여성과 비슷한 무기질적인 미소가 지어졌다.
“커억..막아..아무라도..아무라도 좋으니까 막으라고 주민아 성미야 씨발...씨발!!”
“이야 아직도 살아있는거야? 시끄러우니까 좀 조용히 해”
괴물이 육중한 몸을 구멍 안으로 억지로 욱여넣어 안으로 들어오자 바닥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던 남성한명이 다급히 소리쳤으나 이미 그를 제외한 나머지 녀석들은 괴물의 손에 의해 시체로 변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아무도 들어줄 리 없는 시끄러운 목소리를 더는 듣고 싶지 않았기에 남성의 머리를 걷어차 조용히 킨 뒤 괴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너도 참 힘들겠네 몸이 그렇게 크면 조금만 건물이 작아도 마음대로 들어가지도 못하잖아?”
“키에에에!!”
“야야 그렇게 화내지 마 미안해 미안하다고 고막이 나가겠어”
괴물은 내 말에 기분이 나빴는지 커다란 소리로 울부짖었고 당황한 나는 다급히 사과를 건넸지만, 괴물이 단순히 기분이나빠 울부짖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그아”
내가 만든 구멍을 출입구삼아 시체썩은 냄새를 풀풀 풍기는 변종과 좀비들이 괴물의 울부짖음에 맞추어 건물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좀비...몰려..!!”
“막..죽..!!”
이쪽만 그런 것이 아닌지 마치 하나의 군대처럼 수많은 발걸음 소리와 문이 부서지는 소음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이 하나로 섞여 건물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모하기는 충분한 듯싶었다.
“뭔지 모르겠는데 네가 한 거야? 아니면 네 주인?”
“키...”
괴물은 내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그 육중한 몸으로 변종과 좀비들을 이끌고 사람들이 왔던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뭐야 갑자기...여성이 명령이라도 내렸나?”
갑작스럽게 나를 무시한채 앞을 향해 나아가는 괴물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 뒤를 쫓아 발걸음을 내디뎠다. 기껏 나온 오래 만의 바깥 나들인데 시체 썩은 냄새와 시궁창 냄새가 뒤섞인 쓰레기장에서 아무런 말생대도 없이 홀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니 나도 참 운이 없다니까...
“...”
“오…. 뭐야 그런 꼴로도 살아있는 거야? 진짜 대단한데? 박수라도 쳐달라고 멈춰새운거야?”
괴물에게 꿰뚫린 것도 모자라 나에게 걷어차였음에도 숨이 붙어있던 남성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턱뼈가 완전히 부서지다 못해 간신히 얼굴에 붙어 덜렁거리고 있었고 내장이 밖으로 끄집어내진 모양새를 보면 아마 간당간당하게 숨을 쉬고 있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버릴 것 같았다.
“으음. 너 특별한 냄새가 나는 사람 못 봤냐?”
“....”
“사람을 좀 찾고 있거든 무슨 냄샌지는 모르겠지만 맡아보면 단번에 알 거라고 하던데?”
나는 쭈그리고 앉아 남성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여전히 시궁창 같은 냄새가 심하긴 하지만 고통에 일그러진 모습이 참으로 ‘먹음직’스러워보였다.
“알려주면 어떻게든 살려줄 테니까 뭔가 아는 거 있어?”
“개...새...끼”
남성은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흐르고 있는 침을 보더니 배를 움켜잡고 있던 손으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아마 무슨 짓을 해도 자신이 죽을 거라고 눈치챈 듯 싶었다.
“그래...? 흐음 나머지는 전리품이라고 했으니 지금 먹어도 상관없으려나? 그 엄청난 깡따구하고 그 질긴 목숨을 저주하게 해줄게 친구”
나는 고약한 냄새를 흩뿌리는 남성의 분홍빛 내장을 단숨에 몸에서 끄집어내 다른 시체를 집어먹고 있던 좀비에게 던져주고는 아직 신선한 팔뚝에 이빨을 쑤셔 넣어 물어뜯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신선한 고기의 맛. 질긴 잔 근육과 풀풀 풍기는 시궁창 냄새가 조금 흠이긴 하지만 아직 살아서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절망하지 않는 남성의 얼굴이 무척이나 매력적인 조미료였기에 그 어떠한 쓰레기 음식이라도 진미로 느껴지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아..아”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한 것인지 굳은살이 잔뜩 박여있어 씹는 맛이 있는 손가락을 지나. 내가 한번 물어뜯었던 잔 근육이 붙어있는 팔뚝. 그리고 치킨의 뼈를 씹는 것 같은 단단한 어깨까지 그 모든것들이 나에게 무자비하게 뜯어먹히자. 마음대로 신음조차 내뱉지 못하던 남성의 숨이 점차 옅어져 갔다.
“그래 그거야 그 얼굴...흥분해서 쌀 것만 같아”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남성의 얼굴은 초췌하기 그지없었으나 의지가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한 얼굴... 이제 죽음이 눈앞에 있음에도 어째서 이런 얼굴을 할 수 있는 걸까?
아마 이남자가 여자였다면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이 자리에서 바지를 벗어 던지고 범하거나 딸딸이를 치고 있을 것 같은데말이지.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껏 가학심을 불러일으키는 그 얼굴을 한참을 마주 보다 남성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 그를 꽉 끌어안은 뒤 목덜미에 이빨을 박아넣었다.
남성의 마지막 숨소리가 귓가에 울러 퍼지며 내가 이성애자임에도 자지가 빳빳하게 발기가 되는 게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남성이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나는 너무나도 큰 아쉬움을 느꼈다.
이 욕정을 누구에게 풀 수 있을까?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괴물의 주인? 안된다. 그것만은 절대 안된다. 그녀와 몸을 섞는다면 이 감정도 금세 사그라질 것이 뻔했다. 한 명...또한명 이 남자와 똑같은 여자가 있으면 좋을 텐데..
진한 아쉬움과 가라앉지 않는 욕정과 함께 아직 온기가 남은 남성의 혈액을 끝까지 들이마시자 내가 남성의 내장을 던져줬던 좀비가 내 곁으로 다가와 남성의 시체에 손을 뻗었다.
“그..아아”
“쯧...그래 너 먹어라”
나는 이제는 온기조차 남지 않은 시체를 미련없이 좀비에게 던져주고는 발걸음을 돌려 괴물의 뒤를 쫓았다. 여성이 말한 특별한 냄새는 집어치우고 빨리 그 남성과 비슷한 여성을 만나고 싶다. 내가 양팔을 먹어치워도 꺽이지않는 눈빛을 가진 여성을 범하고 싶다. 먹고 싶다. 정말 미칠 듯한 갈망이 내 몸에 휩싸였다.
“빌어먹을... 내 몫도 조금 남겨놔야 할 거 아니야”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괴물이 지나간 장소는 이미 초토화가 되어있었다. 내 눈길을 끌 만한 사람은커녕 변종에 의해 호떡처럼 눌린 시체나 반으로 찢어져 죽은 시체 그리고 좀비가 먹고 있는 고깃덩어리 밖에 남은 게 없었다. 사라있는사람...여자 여자는 없는건가?
“야 드디어 찾았네 내 몫도 조금 남겨놔야 할 거 아니야”
“키이이”
겨우 괴물을 따라잡자, 그 앞에는 이 건물에 마지막으로 남은 생존자들로 보이는 이들이 결사항전을 각오한 채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숫자는 대략 10명 정도 저 안에 과연 내 갈망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이라면 아마 남자라고 해도 게이정도의 모습이라면 어떻게든 가능할 것 같다는 강렬한 충동을 억누르며 일단 손을 흔들면서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가 괴물과 좀비 그리고 생존자들 중앙에 섰다.
“이봐 반가워”
“사람...?”
“변종이야 변종 말하는 변종 있다고 했었잖아”
“그렇지만 저렇게 유창하게 말을...”
“다들 조용히 해”
갑작스럽게 다가와 친근하게 말 거는 나의 모습에 그들은 놀랐는지 한순간에 소란스러워지긴 했으나. 누군가의 한마디에 그 소란은 단숨에 사그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