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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화 반격


팔이 문에 끼었는지 옴짝달싹 못한 채 문 주변만 미친 듯이 긁어대는 벌레의 커다란 손을 멍하니 지켜보던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곰팡이와 섞은 시체냄새, 그리고 왜인지 모르게 무척이나 끈적거리는 탄 상자를 침구류 삼아 잠시나마 눈을 부쳤다. ‘아마 눈을 떴을 때는 괴물과 그 주인이 이미 돌아왔을 테니까 내 이성은 남아있지 않을 텐데....또 언제쯤 지금처럼 이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영원히 노예처럼 주인을 따를까?’ ‘그 여성은 무사히 밖으로 나갔을까?’ ‘....내 기억은 언제쯤 온전히 돌아올까?’ 슬금 슬금 떠오르는 부정적인 잡생각들을 억지로 머릿속에서 밀어내며 그저 편히 잠에들수있기를 바라던때. 돌연 무언가가 문밖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든 벽을 뚫으려는 벌레들이 힘을모아 폭발물이라도 가지고 온걸까 하는 쓸대없는 생각을 하던것도 잠시. 연쇄적으로 들려오는 폭발음과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덜덜 떨리는 방안의 모습에 머릿속으로 나의 어깨를 두드렸던 한 명의 늠름한 군인 같았던 여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했던 모든 행동들을 보고도 나를 구하러 온 여성의 웃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던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하! 그냥 도망치라니까...” 나도 모르게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며 쌓아두었던 급조한 바리케이드를 황급히 뛰어넘어 버둥거리는 벌레의 손을 양손으로 내려찍자 움푹 파여 들어가는 바닥과는 다르게 젤리처럼 출렁거리는 살덩어리는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는 듯 한층 더 격하게 꿈틀거렸다. ‘아마 충격을 흡수하는 것 같은데, 무언가 엄격한 날카로운 물건이...’ 생각을 채 마치기도 전에 오른손에서 타오르는 듯한 통증과 함께 삐죽하고 튀어나오는 날카로운 뼈. 그 모습을 보자 잠겨있던 기억들이 점차 솟구쳐올랐다. 좀비들을 때려 배어 넘기며 보았던 피로된 무지개, 옥상에서 보던 조잡한 수련장. 나를 보며 웃고 있는 익숙한 작은 여자아이의 모습. “으..윽” 떠오르는 기억들을 등에업은채 고통을 참아내며 뼈를 뽑아내자, 그것은 마치 하나의 작은 별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두운 공간 안에서도 반짝이며 빛을 냈다. 나조차 비쳐 보일 정도로 잘 벼려져있는 뼈의 단면...나는 그것을 양손에 감아쥔 채 있는 힘껏 벌레로 된 손을 내려찍었다. 커다란 손이 마치 두부라도 되는 것처럼 간단하게 칼날이 안쪽으로 파고들어 가는 감미로운 감촉. “키에에엑!” 벌레가 날뛰면 날뛸수록 칼날은 더욱더 안쪽으로 파고들었고 방 바깥에서는 여성이 미친 듯이 폭격을 퍼붓고 있는 듯 굉음이 쉬지 않고 들려왔다. 베고 찌르고 의태 했던 모습을 풀고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벌레들을 무참히 짓밟아 으깨며 나는 방 밖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벌써부터 방밖에있는 여성의 웃음소리가 들리는것 같았다. “크르르..”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듯 손을 크게 휘두른 벌레의 공격. 허나 나는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 몸이 통제에서 벗어난 듯 움직여지지않아 피할 수 없었다. “...빌어먹을” 몸통을 향해 직격으로 날아드는 거대한 주먹질을 정통으로 맞은 나는 그대로 튕겨져나가 땅바닥을 뒹굴었다.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강렬한 쾌감이 느껴졌다. “개같은 벌레들 같으니...이건 내몸이야 개같은 새끼들아!” 나의 고함소리를 시작으로 이제는 내 몸 전체를 이루는 그것들이 멋대로 꾸물거리며 형태를 변형해간다. 직격으로 공격을 받았던 몸통이 쩍하고 벌어지며 내장이 있어야 할 공간에 날카로운 이빨이 달리고 근육들이 재구축되어 만들어낸 거대한 입. “키이이..” 다시금 날아드는 벌레로 된 손을 내몸은 덥석 하고 물어뜯었다. 아직까지도 나를 괴롭히던 갈증과 허기가 충족되어간다. 내몸이 베어 물어 커다란 이빨 자국이 남아버린 손을 보자 침이 흘러나왔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녀석은 그저 내 먹잇감에 불과하다. “빌어먹을...빌어먹을 으아아!!” 몸이 멋대로 튀어 나가 커다란 손에 박혀있던 뼈로 된 검을 뽑아들어 손가락을 잘라내자 꾸물거리던 내 몸이 그것을 멋대로 삼켰고 나는 그것을 반복했다. 조금씩. 조금씩 내 몸을 이루는 벌레들이 포식 때문에 엄청난 충족감을 쾌락으로 변형시켜 전능감과 해방감마저 들기 시작했을 무렵. 마침내 문을 막고 있던 손이 갈기갈기 찢어져 막혀있던 곳을 열어주었다. “키...이이” 끼인 손 때문에 박격포를 몇 번이나 직격으로 맞았는지 형체조차 제대로 남지 않아 멋대로 꿈틀대기만 할 뿐인 벌레를 잠시 내려보던 나는 그 시체 조각들로 걸음을 옮겨 입으로 변해버린 배로 폭식을 계속하였다.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뇌를 마비시킬 정도의 강렬한 쾌락만이 나를 움직인다. 온 세상이 꽃밭처럼 느껴진다. 빙글빙글 회전한다. 침이... 흘... ㄹ ㅓ... ㄴ ㅏ .. “이봐 괜찮은가?” “...” “하, 생각했던 대로 완벽했지 않은가” 벌레들에게 이곳저곳 상처를 입었는지 온몸이 너덜거리는 상태로 벽에 의지한 채 나에게 다가오려던 여성의 모습. 나는 반사적으로 달려들려던 내 몸의 주도권을 벌레들에게서 간신히 되찾아 멈춰 섰다. “가까이 오지 마. 지금 냄새를 맡으면 아마 전부 먹어버릴 거야.” “푸흡... 지금 그 대사 엄청나게 야릇하게 들리는 거 아나 자네?” “...농담 아니야” “알고 있다네” 농담스러운 어조와는 달리 여성은 말을 마치자 그대로 미끄러지듯 땅바닥에 앉아버렸다. “후...” 여성의 상태는 멀리서 봤을 때에도 꽤 심각해 보였다. 여기저기 피가 잔뜩 묻어있고 찢어지거나 베인 상처들. “다행히 물리진 않았으니까 그렇게 보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말일세.” 치익하고 담배에 불을 붙인 여성은 그것을 깊게 들이마신후 내뱉었다. 여성에게서 풍기는 달콤한 냄새가 약간이나마 옅어져 나는 그제서야 깊게 심호흡을 할 수 있었다. 점차 완전히 주도권을 되찾은 내 몸은 꾸물거리며 원상태로 되돌아갔고 몇 분이 지나자 완전히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끄..읍” 갑작스럽게 구역질이 올라와 바닥에 쏟아내자 방금까지 입으로 변해있던 배로 맛있게 먹고 있던 살점...그러니까 벌레가 그대로 다시 토해져 바닥에서 징그럽게 꿈틀거렸다. “...벌레를 입에서 쏟아내다니 그걸 보는 나조차 토를 하고 싶은 기분일세” “직접 겪은 나보다 더할까?” 피식하고 마주 웃은 우리는 잠시 시선을 교환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나가게나 나는 담배나 마저 피우면서 조금 쉬었다가...” “스읍...하아” 나는 깊게 숨을 들이 마쉰 다음 여성을 어깨에 짊어지고 빠르게 뛰어올랐다. 물컹거리는 가슴의 감촉과 탄탄한 허벅지가 몸에 밀착되었으나 지금은 성적 흥분이고 뭐고 피곤해 죽을 것만 같았다. “이보게 자네 지금..”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벙커의 출구로 되돌아와 한 손으로 사다리를 올라 마침내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도로 위 이딴 곳에 이런 벙커를 왜 설치했을까... 언젠가 했을법한 생각을 하던 나는 잠시 여성을 내려놓고 숨을 골랐다. “하...힘들어 죽겠네.” “그 몸으로 힘들기도 한가?” 바닥에서 피를 흘리던 여성이 의외라는 듯 물었기에 나는 얼굴을 구겼다. “벌레로된 몸이라고 지금 차별하는 거냐? 정신적으로 힘들 수도 있잖아. 방금도 너를 업고 오면서 육체 주도권을 두고 벌레들이랑 치열하게 싸워서 힘들다고.” “푸흣, 그것도 그렇군” 여성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기서 헤어지지.” “....그몸으로?” “잠시 쉬면 나아질걸세.” 아무리 봐도 중상으로 보이는 여성의 강인한 발언에 슬금슬금 올라오는 식욕을 억누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안전한 곳. 거기까지는 데리고 가줄게 상처도 치료해야 하고...” 나는 한 번 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다음 여성을 업은 채 도로를 달려나갔다. ◆ “쿨럭,쿨럭...자네 무슨 자동차라도 되는 건가? 안전띠도 없이 타려니 속이 다 울렁거리는군 그래” “적당히 하고 가만있어” 그나마 운이 좋은 것인지, 위스키밖에 남아있지않은 허름한 상가에 앉은 나는 근처에 있던 커튼을 찢어 여성의 상처들을 하나하나 조치해나가기 시작했다. 긁히거나 심하면 찢긴 상처들....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이빨 자국. “...물어뜯겼군” 물리지 않았다는 여성의 말이랑은 다르게 훤히 보이는 이빨 자국에 작게 중얼거리자 여성의 몸이 움찔거렸다. “난전이었으니 말일세.” 여성은 쓰게 웃었으나, 딱딱하게 굳은 내 얼굴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럴 거면...도대체 왜 돌아온 거지? 내가 원망스럽지도 않아?” “박격포를 써보고 싶어서 말일세 남자의 로망이지 않나?” “...남자 같은 소리하네. 그 커다란 가슴이나 숨기고 말씀하시지” 벌레에게도 감염능력이 남아있을까? 내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자, 놀랍게도 여성의 상처 안에서 작은 알갱이 같은 것들이 꿈틀거리며 손끝으로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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