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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던전의 1계층


금이 간 마름돌로 이루어진 고성의 기둥은 당장이라도 썩은 나무토막처럼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껏 성은 건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고작 성 하나가 그 오랜 세월을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는 세계수와 던전의 마력이 이 성을 지탱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마나의 안개가 드리우지 않는다. 그러나 단순히 마력의 운용을 방해하고, 몬스터들을 조금 더 강하고 흉포하게 만들었을 뿐인 마나의 안개와는 다르게, 이곳에는 보다 직접적인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 고성의 지하 가장 아래층에는 던전의 1계층으로 향할 수 있는 포탈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는 망자들의 육신이 걸어 다니며 모험가들을 시험한다. 흑마법으로 되살려낸 것이 아니기에 사제의 성법으로도 구제할 수 없다. 오직 모험가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앞을 가로막는 뼈무더기들을 헤치고 나아가야만 한다. “어둡네. 좀 더 밝게 만들면 안 돼?” 촛불은커녕 썩은 가구 하나 보이지 않는 황량한 복도를 거닐던 와중, 리네가 진이 띄운 빛의 구체를 가리키며 요구했다. 구체는 천장 가까이에 붙어 어둑했던 복도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왜, 무서워?” “누가 무섭다는 거야! 그냥 몇 발자국 앞만 겨우 보이니까 그렇지. 답답하잖아. 그리고 코 앞에 와서야 볼 수 있으면 대응하기 힘들다고.” 시야가 협소하면 대응하기 어렵다는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밝기를 키우면 오히려 시야에 방해가 될 수 있었기에, 그 대신 진은 구체를 몇 개 더 만들어 앞으로 멀리 날려 보냈다. “이제 좀 낫네.” 복도 끝까지 시야가 확보되자 리네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1층의 스켈레톤은 다른 모험가들이 이미 처리해 놓았는지 부서진 뼈 무더기만 무성했다. 던전으로 향하는 길은 간단하다. 고성에 수십 개 정도 존재하는 좁은 원형 계단의 끝으로 내려가고, 최하층의 복도를 가로질러 포탈이 있는 곳에 닿으면 끝이다. 중간중간 지하의 다른 층으로 가는 문이 나타났지만 모두 폐쇄되어 있었다. 천 년이나 지난 만큼 털릴만한 건 진작에 털리고 텅 비어버린 곳이기 때문이다. 굳게 닫힌 문을 허물어봤자 더 많은 해골들이 모험가들을 막아 세울 뿐이다. 진과 리네는 계단을 재빠르게 내려갔다. 마치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문 앞을 지나칠 때마다 무언가가 문을 두들겼다. 스켈레톤이 분명했다. “이제 집중해. 여기서부터 해골이 떼거지로 나온다고.” 리네가 최하층의 복도로 들어서는 입구 앞에서 경고했다. 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리네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곧바로 닫았다. “……왜 이렇게 많지?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왜? 얼마나 많길래?” “복도에 꽉 차 있어!” 그때 문이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쾅쾅거리기 시작했다. 리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떼거지로 나올 것이라 경고했던 리네가 당황할 정도라니, 도대체 얼마나 많길래? 금고처럼 튼튼하게 봉쇄된 다른 복도의 철문과는 달리 최하층의 문은 열고 닫기 좋게 상당히 얇았다. 그 탓에 당장이라도 문이 부서지고 스켈레톤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하지? 당장이라도 뚫릴 것 같아!” 리네의 꼬리가 곤두섰다. 진은 재빠르게 머릿속으로 작전을 구상했다. “도망쳐봐야 뭘 어쩌겠어? 뚫고 들어가야 돼.” 진이 문 위에 손을 올리고 마력을 운용했다. 문 건너편에 푸른색의 거대한 마법진이 띄워졌다. 영창을 머릿속으로 되뇌이며 진은 곧바로 마법을 발동시켰다. [파도 계열 파괴 마법: Neptuni Whims] 마법진에서 거대한 해일이 터져 나와 움직이는 해골들을 쓸어버렸다. 폭포수가 쏟아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복도의 모든 것들이 떠밀려 내려갔다. 잠시 후, 바닷물이 복도를 가득 메울 정도가 되어서야 거센 물줄기가 멎었다. 그 위로 박살 난 해골들이 꿈틀거렸다. 문 뒤에서 진이 마법을 조율하자, 복도에 들어찬 바닷물이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졌다. 진은 마법진을 작게 만들어 팔에 덧씌우고 문을 살짝 열어 주위를 확인했다. 스켈레톤과 잡동사니가 파도 마법에 붙들려 둥둥 떠다녔다. “가자. 이거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 “어, 응!” 리네는 진이 선보인 마법에 놀란 눈치였다. 진이 앞서 나가자 리네는 주위를 둘러보며 뒤따라왔다. 복도를 한 번 휩쓸어버린 바닷물 때문에 바닥이 미끌거려 빠르게 뛰어다니기 어려웠다. 특히 리네는 샌들을 신고 있었기에 미끄러지지 않게 비교적 천천히 움직였다. 그때 팔다리가 비교적 멀쩡히 붙어있던 스켈레톤 하나가 리네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다행히 검은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깜짝 놀라 미끄러질 뻔한 리네가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겨우 중심을 잡았다. “이게!” 화가 난 리네가 망치로 스켈레톤의 머리를 후려쳤다. 두개골이 그대로 박살 났지만 스켈레톤은 칼을 든 팔뼈를 휘적거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언데드, 말 그대로 죽지 않는 자라는 이름 다운 불사성이었다. 리네는 뒤로 물러서며 진절머리를 쳤다. “그거 붙잡지 말고 빨리 와! 슬슬 힘들다고!” “아, 몰라!” 리네는 화풀이를 하는 것도 지쳤다는 듯 질색하며 다시 진의 뒤를 따라갔다. 바닷내음이 짙게 풍겨오는 복도를 가로지르기를 한참, 드디어 푸른 에너지로 밝게 일렁이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수십 개에 이르는 성의 모든 통로가 모이는 거대한 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낡고 닳아버려 동굴에 가까워진 모습이었지만, 세계수의 줄기 한가운데에서 홀로 빛나는 포탈은 이곳을 폄하하는 모든 평가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적어도 마법사인 진이 보기엔 그랬다. 저것은 단순히 공간과 공간을 잇는 마법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 불가사의한 기적이었다. ‘나중에 꼭 연구해 봐야겠어.’ 포탈 앞에 선 진은 그렇게 다짐하며 리네에게 손을 내밀었다. 포탈은 랜덤성이 강해 어디에 도착하게 될지 알 수 없었다.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운이 나쁘면 깊은 구덩이 같은 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었다. 물론 마법사인 진에게 큰 걸림돌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이 랜덤성이었다. 서로 접촉한 채 이동하지 않으면 동시에 포탈을 넘어가도 일행과 전혀 다른 곳으로 떨어져 버리고 만다. “아, 응.” 리네는 잠시 당황한 듯하더니 이내 손을 맞잡았다. “준비됐어?” 드디어 진짜 던전이라 할 수 있는 1계층으로 가는 순간이었다. 이곳에서 무엇을 경험하게 될까. 진은 얼굴을 짙은 푸른빛으로 물들이는 포탈을 들여다보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후우……. 좋아. 가자!” 진은 리네와 동시에 포탈 속으로 뛰어들었다. 눈에 비치는 모든 것들이 그저 흑백이었다. 몸뚱이가 우주 속을 떠다니는 것 같은 편안한 감각만이 느껴졌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다. 혹시 손을 놓쳤나? 불안감이 든 진은 무심코 리네와 맞잡았던 손에 힘을 주었다. 무언가 손안에서 꿈틀거렸다. 다행히 손을 놓치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후우웅! 기묘한 파공음과 함께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암흑뿐이던 세상이 뒤집혔다. “와…….” 진은 어느새 따스한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들푸른 초원에 서 있었다. 팔레움에서 볼 수 있는 밀밭과는 사뭇 다른, 키 낮은 풀들과 꽃송이가 완연하게 펼쳐지 있는 낮은 언덕. 풀벌레 소리가 옅게 울리는 동화 속의 동산이었다. 진은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켜 보았다. 향긋한 풀내음이 폐부를 가득 채웠다. 마탑의 답답한 공기, 시골의 구수한 거름 냄새, 도시의 활력 넘치는 열기와는 또 다른 모험의 향기가 느껴졌다. 진은 이것만으로도 그동안 쏟은 모든 노력과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 * * 텐트를 칠 곳을 찾기 위해 걷다 보니 금세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밤이 되어서도 안전한 자리를 잡지 못하면 위험해질 수도 있었기에 서둘러야 했다. “저기로 가자.” 진이 가리킨 곳은 절벽이었다. 초원이 숲으로 바뀌는 곳에 높다란 산이 포진해 있었는데, 그중 수직에 가까운 경사를 자랑하는 바위산이 있었다. 리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저기서 뭘 어떻게 하게?” “나무를 타는 동물은 있어도 절벽을 기어 올라오는 동물은 없으니까, 둘이 자리 잡을 만한 동굴을 찾으면 안전할 거야. 불침번을 설 필요도 없겠지.” 진은 그곳을 베이스캠프로 쓸 생각이었다. “찾는다고? 동굴을?” 리네는 더더욱 알아들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은 피식 웃으며 손짓했다. “일단 따라와.” 진은 리네를 데리고 숲을 지나 바위산의 낭떠러지 밑으로 이동했다. 깎아내리는 거대한 절벽을 보니 안심이 들었다. 이 정도면 날짐승 빼고는 절대 침입하지 못할 것이다.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였다. “이제 어떻게 하게?” 진은 설명하는 대신 마법으로 보여주기로 했다. 발밑에 마법진을 띄우자 진의 몸이 바닥에서부터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리네가 입을 떡 벌렸다.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불가능을 가능하게 해주는 게 마법이지.” “그런데 나는?” 리네가 발로 마법진을 밟았지만 딛고 떠오를 수 없었다. 그저 공기처럼 허무하게 통과할 뿐이었다. “부유 마법으로는 시전자 밖에 날 수 없어.” 거짓말이었다. 리네에게 부유 마법을 시전하면 그녀도 충분히 날 수 있다. 하지만 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 “내 발 밟고 서. 잡아줄 테니까.” “진짜로?” “부츠 좀 밟는다고 안 상해. 빨리 안 올라타면 버리고 간다?” 진이 손을 내밀자 리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발을 밟고 올라탔다. 하지만 발등이 안정적인 발판은 아니었기에 휘청일 수밖에 없었다. 그 틈을 타 진이 그녀를 슬며시 끌어안았다. “진짜 뭐야…….” 리네는 궁시렁거렸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음흉하게 미소 지은 진은 빠른 속도로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그러자 놀란 리네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꺄아악! 천천히! 천천히!” 품 안에서 그녀의 몸이 굳는 것이 느껴졌다. 비행기는커녕 놀이기구도 타 본 적 없는 리네가 이런 부유감에 익숙할 리가 없었다. “으아아악! 주, 죽는다……! 내려줘! 빨리!” 그러다 발이 미끄러지자 리네는 아예 벌벌 떨기 시작했다. 몸부림을 쳤으면 진짜 떨어질 수도 있었기에 진은 안도했다. 조금 위험한 장난이었나 보다. 빠르게 절벽을 관찰한 진은 적당한 동굴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이동했다. 가까이 다가가 바람 마법으로 먼지와 무너진 새 둥지의 잔해를 날려버리고 그곳에 리네를 내려놓았다. 리네는 잽싸게 동굴 안쪽으로 기어들어 갔다. “살았다. 살았다. 살았다…….” 리네는 그곳에서 한참 동안 애처롭게 떨었다. 진에겐 재미있는 놀이기구 수준이었지만, 그녀에겐 너무 강한 자극이었나 보다. 결국 혼이 나간 리네를 두고 진은 혼자서 텐트를 쳐야 했다. 입구에 쐐기를 박고 텐트의 일부를 바람막이로 쓰면 됐기에 오래 걸리는 작업은 아니었다. 작업을 마칠 때 즈음 리네도 정신을 차렸다. “진짜, 다시는, 안 날아! 절대!” “그런데 이미 여기에 캠프를 차렸잖아. 내려갈 때도 날아야 하고, 내일 코카트리스를 못 찾으면 다시 여기로 올라와야 하는데?” 그 말에 리네는 울상이 되었다가, 이내 굳은 결심을 한 얼굴로 말했다. “어떻게든 내일 코카트리스를 잡으면 되는 거잖아!” “그럼 나는? 얻은 건 공평하게 나눠야 하잖아. 적어도 코카트리스의 마석값은 벌어야 수지가 맞지.” “아.” 코카트리스를 두 마리 사냥하지 않는 이상 하루 만에 끝날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코카트리스는 1계층의 필드 보스 같은 위치였기에 수가 극히 드물었다. 즉, 진의 몫까지 챙기기 위해선 아무리 짧아도 이틀은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리네는 풀이 죽은 채 밤을 준비했다. 저녁은 리네가 챙겨 온 육포로 대충 때우고, 침낭을 꺼내 잘 준비를 했다. 그쯤 되어서야 해가 완전히 저물고 밤이 찾아왔다. 바람막이로 쳐 놓은 텐트의 틈새로 찬 공기가 새어 나오는 듯했다. “조금 쌀쌀하네.” 리네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가죽 앞치마를 벗었다. 유일하게 몸에 걸쳐 놓았던 의복마저 사라지자 그녀의 알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여성만의 매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굴곡진 몸매. 흠잡을 곳 없이 새하얀 피부. 진은 그녀의 모습에 눈을 빼앗겼다. 언제 보아도 여성의 나신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었다. 잘 준비를 마친 리네는 그대로 침낭에 누워 눈을 감았으나, 이리저리 뒤척이더니 다시 눈을 떴다. “잠이 안 오네.” “왜?” “글쎄. 아까 날아다닐 때 너무 무서워서? 아직도 다리가 떨리는 것 같아.” 리네가 늘씬한 두 다리를 붕붕 휘저으며 웃었다. “그럼 내가 마법으로라도 재워줄까? 일찍 자야 내일 코카트리스를 찾으러 갈 거 아냐?” “음, 그럼 마법사님의 도움 좀 받아볼까?” 리네가 긍정하자 진은 손을 그녀의 머리 위에 얹었다. 그 손에 마법진을 띄우고, 진이 밤 인사를 건넸다. “잘 자.” “응, 너도.” 마법진이 은은한 빛을 내뿜는 것과 동시에 리네는 고른 숨을 내뱉기 시작했다. 진은 그렇게 알몸으로 잠에 든 리네의 가슴을 움켜쥐고 그 감촉을 즐겼다. 너무 무방비했다. 사기꾼에게 전 재산을 맡긴 꼴이나 다름 없었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이라도 따먹고 싶었지만, 하루 이틀 보고 말 사이도 아니었기에 최대한 자중하기로 했다. 원래 맛있는 건 아껴먹는 법이다. 그래도 이 정도는 괜찮겠지. 진은 옷을 벗고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딱딱하게 발기한 남근을 끼운 다음 스마타를 즐겼다. 이것도 질내의 감촉과는 다른, 나름의 부드러운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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