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쉬어가며
하늘이 노을빛으로 점차 짙어지기 시작하는 시간대였다.
“하악……. 하악…….”
나리가 많이 지쳤다. 진과 리네와는 다르게 학생인 나리에게 산맥을 넘어가는 행군은 힘겨운 고행이었다. 그 탓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숨은 거칠어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폐에 구멍이라도 뚫릴 것 같아…….’
입에서 단맛이 나는 걸 넘어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물론 착각이겠지만, 그만큼 나리는 체력적으로 한계에 몰려 있었다.
“나리야. 괜찮아?”
“괜찮, 아요.”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 슬슬 자리 잡고 쉬자.”
“저는…….”
목이 쉬어버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나리가 말을 잇지 못하자 진은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몇 번이고 안겨 보았던 남자의 품이었기에 나리는 저항 없이 들려졌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스스로에게 분한 감정이 솟구쳤다.
“짐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짐이라니?”
“저는, 두 분처럼 강하지도 않은데다, 체력도 약해서. 그래서…….”
나리는 숨을 고르며 애써 대답했다. 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직 던전의 2계층에는 도달하지도 않았는데 이러면 어떡해? 이러다가 몸살이라도 나면 그땐 진짜 짐이 될 수도 있어. 던전은 위험한 곳이야. 이런 곳에 내려왔으면 컨디션에 더 신경을 써야지.”
“그치만……. 뒤처지긴 싫은걸요.”
“아이고.”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리네가 고개를 내저었다. 나리는 얌전한 것 같으면서도 은근 고집이 있었다. 하긴, 고양이 마음을 누가 알겠나.
“내일은 정령 타고 다녀. 이렇게 힘들어할 줄 알았으면 정령을 물리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제 잘못이죠…….”
“너무 자책하지 말고. 그리고 이제 슬슬 자리를 잡아야지. 적당히 텐트 칠 곳 찾아서 하룻밤 묵자.”
진은 나리를 안아 든 채 산을 오르다 작은 물줄기가 흐르는 시냇가를 발견했다. 자갈이 깔려 비교적 평탄한 시냇가의 지형에 리네는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오, 여긴 어때?”
하지만 진은 고개를 내저었다.
유수가 흐르는 곳은 기본적으로 야생동물이 물을 마시러 모여드는 우물터와도 같다. 1계층의 마수들이야 몇몇을 제외하면 그닥 강하지는 않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래도 일단 여기서 쉬자. 나리도 좀 씻어야지. 아주 땀 범벅이야.”
어느 정도 숨을 고른 나리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리네의 주장에 동의했다. 여자는 자신의 체취에 민감한 법이니까. 더군다나 연인과 함께 있다면 더더욱.
“그럴까?”
잠깐이면 괜찮겠지.
나리의 의견에 진은 나리를 그대로 시냇물에 담갔다. 그러자 나리가 귀를 치켜세우고 물장구를 몇 번 치더니, 다시 품에 안겼던 것처럼 쭉 뻗어버렸다.
날뛸 기운도 이젠 없는 듯 보였다. 뺨을 부풀린 나리가 힘겹게 고개를 치켜들고 도끼눈으로 진을 쳐다보았다.
“선생니임……!”
“여기서 좀 씻고 있어. 난 잠깐 자리 좀 비울게.”
진이 나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말에 나리는 뾰로통해진 얼굴로 일갈했다.
“리네 언니랑 하시게요?”
정곡을 찔린 진은 순간 몸을 움찔 떨었다. 그 모습에 왠지 모를 승리감을 느낀 나리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새삼스럽게.”
뭐랄까,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 애써 자식들을 재우는 부모 같은 태도이기는 했다. 셋이서 같이 침대를 얼마나 많이 뒹굴었는데 말이다.
“다녀오세요. 저는 진짜,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어서…….”
힘겨워서 그걸 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피로해진 몸뚱이를 달랠 휴식을 가지고픈 생각뿐이었다. 그 이외에는 아무래도 좋았다.
“저랑은 내일 해요.”
시냇물에 몸을 담근 채 피곤한 웃음을 짓는 나리의 모습은 어딘가 신비한 분위기를 불러일으켰다. 너울지는 물결에 왜곡되는 나신이 진을 유혹하는 듯했다.
그 모습에 진은 남근이 꼿꼿이 서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나리는 많이 지쳤기에, 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을 나리와 입을 맞추고는 리네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텐트 칠 자리를 찾아 앞서 나가고 있었다.
나리는 수풀 사이로 사라지는 진을 바라보다 품에서 정령들을 소환했다. 계약자가 다시 그들을 불러준 것에 신이 난 듯 위아래로 요동쳤다.
“뭐가 오나 대신 망 좀 봐줄래? 잠깐 쉬고 싶어서.”
나리의 말에 정령들이 알겠다는 듯 개성 넘치는 울음소리를 내뱉더니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나리는 가만히 눈을 감고 땀과 열기를 씻겨주는 차가운 물줄기를 즐겼다.
* * *
“여기 어때?”
“글쎄…….”
리네는 시냇가 근처에서 텐트를 설치하기 좋은 평지를 찾을 수 있었다. 진은 시냇가와 가깝다는 이유로 다른 곳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적당한 곳이 없어 결국 이곳에 텐트를 치기로 했다.
텐트는 금방 설치했다. 둘이서 코카트리스를 찾아 1계층을 돌아다니며 매일같이 텐트를 쳤으니까, 이젠 노하우가 생기는 것도 당연했다.
“나리는 왜 아직도 안 와? 혼자 두면 위험하지 않아?”
“정령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보다 말이야…….”
진은 가방을 뒤적거리던 리네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쪼그려 앉았던 자세가 무너져 리네는 진의 허벅지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엉덩이를 찌르는 딱딱한 육봉의 감각이 느껴졌다. 진이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은 리네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그와 눈을 맞추었다.
“흐음. 하긴, 평소답지 않게 참는다 싶었어.”
“저번처럼 여유 부리기엔 길이 머니까.”
화산의 마그마처럼 쉴 새 없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진의 욕구를 생각해 본다면, 오늘은 많이 참은 편이었다. 첫 던전행에서는 걷는 시간보다 섹스하는 시간이 많을 정도였으니까.
오늘은 인내심을 많이 발휘하고 있는 거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인내심도 이젠 끝인가보다. 진의 손이 갑옷을 풀어 헤치며 리네를 나신으로 만들었다.
“으응. 하고 싶어?”
진은 대답하지 않고 벌거벗겨진 리네의 몸을 탐미했다. 가슴을 제 맘껏 주무르는 손길을 느끼며 리네는 웃었다. 진은 마치 아기라도 되는 양 리네의 가슴을 좋아했다.
리네는 간단한 손짓으로 그의 바지춤을 헤치고 남근을 꺼냈다. 육봉을 손으로 쥐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진은 어떻게 이렇게 커다란 물건을 달고 다니는 걸까. 가끔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하읍…….”
손에 쥔 남근을 움직이니 진이 기습적으로 입을 맞췄다. 가슴을 주무르던 손이 아래로 내려가 음부를 헤집었다. 질내를 파고드는 손가락의 감각에 리네는 환희했다.
몸이 달아오른다. 사타구니를 희롱하는 손길은 다리를 비비며 허리를 꼬아도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꺄앗!”
그러다 진은 갑작스레 리네를 밀치듯 바닥에 엎드리게 만들었다. 당황한 리네의 위로 진이 몸을 포개오며 남근을 그녀의 질내로 밀어 넣었다.
“하응!”
리네는 꼼짝 못 하게 된 채로 진에게 강간당하듯 보지를 내어주어야 했다. 가슴이 짓눌려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진은 언제나 이랬다. 평소에는 저자세로 리네의 기분에 맞춰주었지만, 욕망을 해소하는 순간만큼은 폭군처럼 난폭하다.
부풀어 오른 귀두가 질주름을 훑어내리며 자극한다. 사정없이 쑤셔 박는 남근에 리네는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난폭하다. 쾌락이 머릿속을 난폭하게 헤집어 놓는다.
“아흐으으으!!”
진이 사정하기도 전에 리네는 절정하고 말았다. 온몸이 파르르 떨리면서 질이 남근을 발작하듯 조여댔다. 곧이어 리네는 하복부 안으로 쏟아지는 이물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진도 쾌락을 음미하며 잠시 멈추었다. 하지만 리네는 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밤낮없이 허리를 흔들었으면 흔들었지 이대로 끝낼 사람이 아니었다.
“돌아봐.”
“아읏…….”
진이 리네를 돌려 눕혔다. 결합되어 있는 남근이 빠지지 않은 채였기에 리네는 신음을 흘렸다. 진은 그대로 섹스를 이어나가려 했다.
그때였다.
“들어갈게요.”
나리가 텐트를 열고 들어왔다. 서로를 끌어안고 있던 진과 리네가 우뚝 멈춰 섰다. 하지만 나리는 익숙하다는 듯 둘에게 시선을 보내지도 않았다.
나리는 물을 뚝뚝 흘리며 들어와서는 무릎을 통통 두들기며 가방을 뒤적였다.
“혹시 여기 수건 있나요?”
“……손수건 말고는 딱히?”
빨랫감을 늘려봤자 괜히 짐만 늘어나기에 가져오지 않았다. 우린 캠핑 온 게 아니라 던전으로 모험을 온 것이었으니까.
효율을 위해 작은 불편은 감수할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옷도 제대로 입고 다니지도 않고, 젖은 건 걷다 보면 마르기 마련이니까.
“그래요? 그럼 이대로 자야 하나…….”
니리가 침낭을 내려다보며 고민했다. 진은 리네에게서 떨어지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크흠, 어처피 내일 말릴 테니까 그냥 자.”
“그래야겠죠?”
별수 없었다. 나리는 젖은 몸을 침낭 안으로 욱여넣었다. 침낭이 축축해지는 게 불편한 듯 나리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이게 최선이었다.
“나도 잠깐 씻고 올게…….”
“다녀와…….”
리네는 다리 사이로 백탁액을 뚝뚝 흘리며 텐트 밖으로 나섰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헨젤이 빵조각으로 남긴 표식처럼 흔적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리는 어느샌가 푹 잠들어 있었다. 많이 피곤했나 보다.
진도 바지를 여미고 침낭에 들어갔다. 왜인지 잠은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