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라희
060
라희의 머릿속에 붉게 물들었다.
나영이 목줄을 잡아끌 때만 해도 오만가지 생각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웠는데.
주혁에게 뺨을 맞을 때만 해도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머리가 난잡했는데.
지금은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았다.
질척거리는 소리만이 라희의 귀를 어지럽혔다.
주혁이 발등을 움직일 때마다 나는 불규칙한 소리였다.
클리와 보지 입구를 눌릴 때마다, 라희의 골반이 옆으로 뒤틀리며 반응했다.
자세를 유지하고 싶어, 통제권을 상실한 것처럼 라희의 몸이 꿈틀거렸다.
육체의 주도권을 두고 다툼을 벌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랫배에서 시작된 저릿함이 라희의 이성을 천천히 갉아먹었다.
머릿속에 존재하는 차분한 색들이 온통 붉어진다.
고작 발로 보지를 짓눌리는 행위 하나로, 쾌락에 젖어 눈앞이 흐려졌다.
라희가 애써 자세를 잡는 와중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녀의 눈엔 초점이 없어졌고, 벌어진 턱에선 침이 고여 흘러내리려 했다.
‘아.........’
라희는 이 감각들이 익숙했다.
이성이 쾌락으로 점철되어, 육체를 통제당하는 감각.
이미 오래전부터 보지와 자궁이 그래왔다.
처음엔 주혁에게 반응하는 것뿐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말 그대로 통제권을 넘겨주어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라희는 그런 육체를 통제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분명 자기 몸인데도 제멋대로 움직이고,
라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쾌락을 주입 당해 저항할 이성조차 날려버렸다.
아주 조금 남아 있던 거부감이 완전히 지워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거부감 없이.
쾌락을 탐하고자 하는 육체에 이성이 완전히 복종한 상태.
그래, 복종이다.
주혁은 ‘복종’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없었지만.
라희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 떠올리는 생각들이 복종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쾌락에 머리가 멍해진 상태일 때만 그런 게 아니다.
주변에 주혁이 없고, 이성이 온전하게 남아 있을 때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알게 되었다.
주혁은 ‘복종’하는 것 하나만큼은 라희 스스로 알아가길 바랐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
주혁이라면 충분히 명확한 복종을 라희에게 주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늘 가장 중요한 것은 간접적으로 조교 했다.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보다.
그렇게 행동할 때마다 벌을 줄 뿐이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그게 하면 안 되는 행동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그걸 라희가 알아차리고 안 하게 되면.
주혁은 그제야 상을 주었다.
가장 큰 벌은 삽입 섹스를 안 해주는 것이었기에.
벌을 받는 기간 동안 욕구불만인 채로 살아야 한다.
그것만큼은 못 참는 라희였다.
자지 없으면 못 사는 몸으로 만들어 놓고, 자지를 안 주는 벌이라니.
어떻게든 주혁의 의도를 파악해야 했다.
그가 어떤 점을 싫어하고, 어떤 부분을 거슬려 하며, 어떤 부분을 용납하지 않는지.
라희는 그렇게.
자기도 알게 모르게 스스로 복종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생각했다.
그 결과 라희는 상벌이 주어질 때,
간단하게 생각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아까처럼.
살짝도 아닌, 고개가 돌아가고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뺨을 10대나 맞은 상황에서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처럼.
찌걱-
발등으로 보지 입구를 눌린 상태로 문질러지는 상황에서는 두 가지만 생각하면 된다.
하나는 상에 대한 감사한 생각과,
다른 하나는 상을 받느라 정신이 팔려 주혁에게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
뺨을 10대나 때려놓고, 대뜸 기분 좋게 해주는 주혁의 행동은.
라희가 생각하기에.
방금 잘못을 용서해 주겠다는 의미 같았다.
겸사겸사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이런 상을 주겠다는 의미 같기도 했다.
찰그락-
목줄의 사슬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라희의 보지에 닿아있던 주혁의 발등이 떨어졌다.
발등의 감촉이 사라졌음에도, 아직 여운이 남아 있는 건지.
라희가 사라진 발등 위치에 보지를 비비는 것처럼 골반을 움직였다.
찰그락-
다시 사슬 소리가 들렸을 때는.
목줄 손잡이가 주혁에서 나영으로 바뀌어 있었다.
***
주혁에게 목줄을 건네받은 나영이 라희를 내려다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적개심이 엿보이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어졌다.
그 짧은 사이 라희의 눈빛은 180도 바뀌어 있었다.
뺨을 너무 세게 맞아서 정신이 이상해진 걸까.
아님, 발등으로 보지가 문질러져서 발정이 난 걸까.
나영이 보기엔 둘 다 아니었다.
‘신기하네.’
나영은 목줄을 잡아끌며 천천히 뒤로 걸었다.
라희가 딸려 오며 천천히 바닥을 기었다.
두 걸음 걷고 멈춰서니, 뒤따라오던 라희가 무릎을 꿇고 나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뭘까. 저 눈빛은.’
만약, 힘으로 찍어 누르거나 약점을 잡아 반강제로 따르게 했다면.
우울과 절망이 엿보이는, 반쯤 포기한 상태의 눈빛을 지었을 텐데.
그런 표정은 전혀 아니었다.
‘전혀 모르겠어.’
나영은 스스로 라희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라희가 얼마나 자신을 싫어할지도 대충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싫어하는 걸 넘어 적개심을 품을 정도의 사람에게.
저런 생기 돋아나는 눈빛을 지을 수 있다니.
‘이게 맞나......?’
도연에게 주혁이 말하긴 했다.
라희를 노예로 길들일 거라고.
라희의 상태를 보니, 이미 길들여졌다.
그것도 단순하게 말로만 주인을 따르는 노예도 아니었다.
마치 주혁을 신처럼 모시는 사이비 광신도에 가까웠다.
나영은 자신을 가만히 올려다보는 라희를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집어삼켰다.
나영의 눈에는 라희가, 주혁의 말이면 원수와 떡을 칠 수 있는 광신도로 보였다.
원래 나영은 라희를 자기가 갖고 놀며,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망가뜨릴 계획이었다.
절망과 좌절 속에서 눈물마저 메마르게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라희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그렇게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이는 것도 있었다.
나영이 고개를 들어 주혁을 쳐다보았다.
“내가 할 일은 없어 보여.”
나영의 말에 주혁이 픽 웃었다.
“왜, 흥이 깨졌어?”
“조금.”
나영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냥 다음 차례로 넘길래.”
그리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2번이 채 되지 않아, 상대가 나영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냥 지금 들어와도 될 거 같아. 응.”
전화를 끊은 나영은 목줄 손잡이를 잡아당기며 거실 중앙에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기어 오던 라희가 테이블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나영이 말했다.
“올라가.”
계속 무릎으로 기어다녔던 탓에 엉거주춤 일어난 라희가 테이블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었다.
라희가 기어다닌 바닥과 테이블마다 보짓물이 뚝뚝 떨어져 있었다.
“배변 패드라도 깔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
라희가 중얼거리며 목줄을 툭툭 잡아당겼다.
“야, 다시 내려와.”
라희가 테이블 아래로 다리를 먼저 내리고 바닥에 무릎을 꿇자마자.
나영이 라희의 뒤통수를 잡고 바닥을 향해 찍어 눌렀다.
“흘린 보짓물은 전부 닦고 올라가.”
머리카락과 얼굴로 바닥을 문지르려다가 나영이 손을 멈추었다.
“아, 아니다. 닦지 말고 전부 핥아.”
나영이 말에 라희가 군말 없이 바닥 위에 떨어진 애액을 핥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주혁이 중얼거렸다.
“왜 갑자기 짜증이 났어.”
“아, 몰라.”
나영은 짧게 답한 뒤.
다시 라희를 테이블 위에 올리고 눕혔다.
“등 대고 누워.”
나영의 말에.
테이블 위에 있던 라희가 조심스럽게 몸을 돌려 등을 대고 누웠다.
“다리는 들고.”
그 말을 끝으로 나영은 옆에 있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
테이블 위에 누운 라희가 어정쩡하게 다리를 들어 올렸다.
꼭 산부인과에 있는 의자에 앉을 때나 할 법한 자세였다.
위치상으로 나영은 옆에 앉아 있었고,
다리를 들어 올리는 정면에는 주혁이 앉아 있었다.
주혁이 자신의 보지와 항문을 정면에서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다시금 뜨거운 감각이 아랫배를 움켜쥐고 흔들었다.
“......읏.....”
라희가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보지가 벌렁거리며 뜨거운 열기를 내뿜어 대는 것만 같았다.
그 열기는 전부 빠져나가지 않고 전신을 돌아다니다 입 밖으로도 튀어나오려 했다.
“하......”
라희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는 사이.
별장 건물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누군가 거실을 향해 걸어오는 발소리도 들렸다.
라희의 두 눈이 천천히 감겼다.
주혁이 싫어하는 건 안 하고, 좋아하거나 시키는 건 하면 된다.
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새로운 누군가가 이 거실에 들어온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들어온 사람은 누구일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나영은 왜 자신에게 이런 자세를 취하게 만든 걸까.
거실로 들어오게 되면 주혁이 있는 위치일 텐데.
그럼 오자마자 보짓물이 잔뜩 흐르는, 벌렁거리는 보지를 보게 될 텐데.
처음 보는 사람이면, 첫인상이 얼굴이 아닌 보지라니.
라희가 이미 감고 있던 눈을 질끈 감았다.
들고 있던 다리가 후들거리며 점점 내려가려 했다.
거실로 가까워지던 발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윽고, 발소리의 주인이 거실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나영이 인사했다.
“어, 왔어?”
나영의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라희의 귀에 파고들었다.
반말하는 걸 보면, 동갑이거나 동생이다.
‘누구지?’
잘 모르겠다.
인사를 받아줄 때 목소리라도 들리면 좀 알 거 같은데.
발소리의 주인은 말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한 건지. 손을 흔든 건지. 목소리가 들려오지는 않았다.
주혁마저도.
인사를 손으로 한 건지 말이 없었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턱-
바닥에 가방을 내려둔 건지. 투박하고 둔탁한 소리가 바닥을 울렸다.
캐리어 끄는 소리가 안 들렸다는 걸 생각하면,
저런 무거운 걸 들고 다니는 건 남자일 확률이 높았다.
라희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오랜만이네요.”
미성이긴 해도, 확실히 남자의 목소리가 테이블 옆에서 들려왔다.
나영의 반대편으로 온 남자는 가만히 선 채로 라희를 내려다보았다.
‘오랜..... 만이라고?’
라희가 고개를 천천히 돌려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연한 갈색 피부의 차가운 눈매를 지닌 남자가 서 있었다.
‘......어?’
어디선가 본 얼굴이다.
하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라희의 두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기억이고 자시고. 지금, 이 상황에서 뭐라고 답해야 할지 막막한 탓이었다.
“저 기억 못 해요?”
남자는 실망스럽다는 표정으로 라희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테이블 옆에 앉았다.
소파가 아닌 바닥에.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아까 내려두었던 가방을 연 듯했다.
그러는 동안.
라희가 머뭇거리며 답했다.
“......네.”
그러자 나영이 기가 찬다는 듯 중얼거렸다.
“원래 가해자는 기억 못 한다더니.”
주혁도 한마디 거들었다.
“내가 뭐랬어. 신경 못 쓸 거라고 했잖아.”
주혁의 말투를 많이 들어온 라희는 어렴풋이 주혁의 모습이 떠올랐다.
왜인지. 어깨를 들썩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신경 못 쓸 거라고 했지. 기억 못 할 거라곤 안 했잖아.”
“그거나, 그거나. 목적은 달성이지.”
라희는 주섬주섬 무언가를 챙기는. 기억 안 나는 남자를 쳐다보며 혼란에 빠졌다.
‘이게, 무슨.......’
목적? 목적이라니.
주혁은 무슨 목적을 같고 자신에게 접근했던 걸까.
‘아, 생각났다.’
남자의 정체가 아닌. 주혁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예전에 주혁이 자신을 반강제로 따먹을 때, 누군가의 복수를 해준다는 식으로 말했었다.
‘복수?’
라희가 빠르게 머릿속으로 자기가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복수.
그건 자신에게 원한이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앞으로 기억하면 되죠.”
무언가. 묘한 기류를 풍긴 남자의 손에는 라텍스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그 두 손에는 펜처럼 생긴 도구가 들려 있었다.
“전 타투이스트 도준이고요.”
자신을 도준이라 소개한 남자가 말을 이었다.
“한, 두 달 전쯤. 당신이 성폭행으로 신고하겠다고 협박당한 사람이에요.”
“에?”
도준의 말에 라희가 멍청하게 헛바람을 내뱉었다.
그리곤 도준이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오늘 이후로, 당신이 노출 있는 옷을 못 입게끔 할 사람이기도 하고요.”
도준은 손에 들린 타투 장비들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그 미소는 결이 달랐다.
이때까지 봐온 사람들의 미소나, 자신을 괴롭힐 때 짓던 주혁의 미소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