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키넷 단편야설

한 편 완결 소설

성인소설 목록

최신 단편

야설 읽기
밍키넷 소설
토스트 메세지 나오는곳
텔레그램 공식채널

밍키넷 공식보증업체

68화 마담 벨라


어깨까지 덮인 이불이 미세하게 들썩인다. 로웬은 숨을 죽인 채, 손끝으로 애프릴의 머리칼을 쓸었다. 정사 후의 잔열이 식어가는 방 안에서, 아직 남아 있는 그녀의 체온은 열병처럼 그의 피부를 덥히고 있었다. 피부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 젖은 눈꺼풀 아래로 감긴 푸른 눈. 오롯이 그를 향해 열리고 울던 입술. 고요한 방안에 색색거리는 애프릴의 숨소리만이 울리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이불을 그녀의 어깨까지 꼼꼼히 올려덮고는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자신의 얼굴을 쓸었다. "......" 딸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자신을 꼭 닮은 딸.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 밀어붙였을 때, 그 안에서 터진 희열이 지금까지도 생생했다. “미쳤군.” 의자 등받이에 몸을 눕히듯 기대며 로웬은 무너진 숨을 내쉬었다. 딸을 범했다는 죄책감과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 그러면서도 감출 수 없는 희열과 만족감. 애프릴을 키워오며 자신의 부족함을 수 없이도 느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잠든 애프릴의 얼굴 위로 그녀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겹쳐진 딸의 어린 시절은 점점 더 어려지더니, 아주 어린 아이의 모습이 되었다. 그는 자연스레 자신의 전처 벨라를 함께 떠올렸다. 그리 반가운 얼굴은 아니었기에, 전처의 얼굴을 떠올린 로웬의 미간이 자동으로 찌푸려졌다. 살갗을 훑는듯한 날카로운 눈매, 마른 체형, 무뚝뚝한 표정 안에는 기이한 탐욕을 숨긴 듯 했다. 계모라 해도 믿을 만큼 애프릴과는 닮지 않은 외모. 벨라 또한 그들과 같은 금발에 푸른 눈이었지만 그 결은 조금 달랐다. 그녀의 머리색은 보다 짙었고 푸른 눈동자는 기이할 만큼 창백했다. 로웬은 종종, 벨라를 볼 때마다 파충류가 떠올랐다. 뱀이나 악어 같은 것들. [68. 마담 벨라]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 갓 사교계에 들어선 듯한 소녀가 상기된 얼굴로 벨라에게 다가섰다. “마담!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아니, 당연히 잘 지내셨겠죠! 이번 컬렉션 정말…!” 벨라는 단정한 미소를 지었다. 소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귓가 가까이 얼굴을 기울였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그러나 날이 서린 목소리로 조용히 읇조렸다. "영애. 먼저 본인을 소개하는 게 예의랍니다. 내가 그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찌 반가울 수 있겠어요." 소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벨라는 손을 털어내듯 소녀의 어깨를 놓고는, 굳어 있는 그녀를 뒤로한 채 천천히 걸어갔다. 사교계는 잔인한 전쟁터였고, 벨라는 그 중심에서 싸워 이겨낸 승리자였다. 그녀에게 있어, 사교계에서의 위치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 '저런 어린 것이 감히…' 유망한 상인의 딸이라는 이유로 초대했지만, 오늘부로 그 소녀는 초대 명단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때, 공작부인이 다가왔다. "공작부인을 뵙습니다." "어머, 벨라. 우리 사이에 무슨 인사야. 그렇지 않아요?" 모두가 그녀를 "마담 벨라"라고 부르지만, 공작부인만은 예외였다. 물론, 벨라가 허락한 적은 없었다. 공작부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장식된 얼굴 너머로, 비틀린 호기심이 배어 나왔다. "그나저나 벨라. 내가 이번 살롱에서 그대의 남편을 봤지 뭐에요. 공식 석상에 나온 건 오랜만이죠? 여전히 근사하시더군요." '남편'이라… 벨라는 그 단어에 실소할 뻔 했다. 공식적으로 이혼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사이는 이제 남보다 멀다는 걸 공작부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공작부인은 마치 그런 사실을 모르는듯, 이렇게 한 마디씩 던져서 벨라를 자극하곤 했다. "그렇습니까." 건조한 대답과 함께 얇은 미소를 띄웠다. 입꼬리만 살짝 올린 그 표정은 어떤 감정도 쉽게 읽히지 않았다. "그래요! 그런데 당신 딸은 요즘 어떤가요? 로웬 백작에게도 물어봤지만, 말을 아끼시더라고요. 여러모로 걱정이 되어서요." 공작부인은 어깨를 으쓱이며 천진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그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음침한 속내가 가려지는 건 아니었다. 불편한 감정이 일었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공작의 정치적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었기에, 겉으로라도 그와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해야만 했다. "...네. 잘 지냅니다." 간결한 대답. 공작부인은 공작부인은 반응이 시원찮자 손등 위 먼지를 털 듯 가볍게 손목을 움직이며 미소지었다. 마치 그녀가 원하는 반응을 얻지 못한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는 몸짓이었다. "으음~ 그렇구나. 그거 다행이네요. 아, 컬렉션은 정말 눈부셨어요. 전부 제 공작저에 걸어둘 예정이랍니다. 절대 놓칠 수 없는 작품들이에요.” 벨라는 공작부인의 말을 잠시 묵묵히 듣고는, 미소를 머금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영예롭게도 부인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네요." 공작부인은 더 말을 이을 뜻 없이 미소만 조금 더 짓고는 한 걸음 물러서며 덧붙였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컬렉션에 대해 좀 더 깊이 얘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럼, 좋은 하루 되세요. 다음에 또 뵙죠." 공작부인이 돌아서자, 벨라는 잠시 시선을 따라가다 발코니 쪽으로 걸음을 옯겼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 차가운 빛이 어렸다. 벨라는 은색 담배케이스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이 닿자 담배 끝이 붉게 타올랐다. 벨라는 연기를 깊게 들이켰다. 쓴 연기가 폐를 덮으며, 천천히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말없이 연기를 내뿜었다. 향이 짙은 연기가 주변을 감싸며, 그녀를 잠시 다른 공간으로 데려간 듯했다. "하아..." 자주빛 드레스가 바람에 스쳤고, 웃음소리와 현악기의 선율이 안쪽 살롱에서 흘러나왔다. 열여덟. 그녀가 로웬과 결혼했던 나이였다. 자작가의 넷째 딸이라는 신분으로는 감히 꿈꿀 수 없던 혼처였다. '찌질하고 멍청한 로웬' 담배 연기가 하늘하늘 피어올랐다. 벨라는 가늘게 웃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어린 신부는 남편의 불안정한 모습에서 묘한 즐거움을 찾았었다. 그는 언제나 동생 에단과 비교당하며 자란 탓에 뒤틀린 구석이 있었다. 동생 에단을 질투하고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던 그의 눈빛. 그가 보이는 결핍들은 벨라에게 우월감을 안겨주는 오락거리였다. 로웬은 그런 그녀를 본능적으로 꺼렸다. 처음엔 외모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가 했는데, 그것보다는 뭐랄까, 더 원초적인 불편감을 느끼는 듯 했다. 하지만 벨라는 상관하지 않았다. ‘백작부인’이라는 지위는 그녀가 원하던 모든 것을 가져다주었으니까. …애프릴이 태어나기 전까진. 하지만 애프릴의 탄생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처음엔 별다른 감흥도 없었다. 아이는 유모에게 맡기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자신의 뱃속에서 나온 아이가 로웬보다도 더 멍청하다는 사실을. 사교계는 금세 떠들썩해졌다. 벨라가 백치를 낳았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그녀가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온 위엄은 단 한 줄의 말로 무너졌다. 나무 사이로 가늘게 불어오는 바람에, 단정히 묶었던 머리카락 몇 가닥이 흐트러졌다. 그녀는 무심히 턱을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달빛에 비친 금발을 새월을 증명하듯 조금 하얗게 새어있었다. "딸에 대해 뭐가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내 딸이 나를 닮지 않았다. 그건 안도였고, 동시에 실망이었다. 그런 애프릴을 볼 때면, 벨라는 손톱 밑에 박힌 작은 가시처럼 거슬렸다. 눈에 띄지 않는 듯하다가도 문득문득 피를 나게 하는 종류의 존재. 벨라는 잠시 어릴 적 애프릴의 모습을 회상했다. '엄마.' 그 조용한 부름이 불쾌했다. 애프릴은 천천히 다가와 무릎 위에 작은 손을 얹었다. 손끝엔 흙이 묻어 있었고, 벨라는 반사적으로 눈썹을 찌푸렸다. '밖에 나가도 돼요?' '무슨 소리야, 눈이 오는데.' '눈을 먹고 싶어서요.” 그 말에 벨라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애프릴은 조금 기다리다, 다시 말했다. '그럼, 엄마는 왜 눈 안 먹어요?' 불필요한 질문, 느린 반응, 어설픈 흉내. 그녀는 애프릴에게서 ‘결함’을 보았다. 마치 잘못 재단된 옷처럼. 고쳐 입을 수도 없고, 버리자니 애매한. 애프릴을 돌보던 유모는 그저 '조금 느릴 뿐'이라고 했지만, 벨라는 믿지 않았다. 벨라는 기다릴 줄 몰랐다. 한 번 삐뚤어진 단추는, 끝까지 틀어져야 직성이 풀리는 여자였다. 그 애는 감정조차 어색해했다. 울고 웃는 것도 어설펐다. 마치 인간인 척 연기하는 무언가 같았다. 벨라는 목걸이의 진주를 무심히 만지작거렸다. 애프릴의 맑은 눈동자가 떠올랐다. 인형처럼 예쁘지만, 그 안은 텅 비어있는 듯한 눈빛. 로웬은 그 아이를 지나치게 아꼈다. 벨라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딸의 빈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자신의 모습을 찾던 남자. 살롱에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벨라는 천천히 몸을 돌려 안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서 귀족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벨라는 구두굽으로 담뱃불을 비벼 끄고는 숨을 들이켰다. 향이 옅어지는 공기 속에서, 그녀는 다시 조용히 웃었다. 벨라는 손끝을 비벼 남은 재를 털어내고는 다시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로 나섰다. 백작부인의 자리는 이제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살롱은 달랐다. 여기서 그녀는 여전히 여왕이었다. . . . 백작저를 나서던 날, 벨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 애가 울었는지도, 찾았는지도.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고객센터 Sup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