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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4화 : 정오의 안부, 스치는 단서


-정오의 안부, 오늘 첫 사연입니다. 한강 교정센터에서 온 사연이네요. 안녕하세요, 아나운서님! 저는 지금 한강 교정센터에서 형기를 보내는 수용자입니다. 오오오오! 방송을 듣고 있던 수용자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이들은 모두 한강 교정센터에 징역 중인 수용자였다. -이렇게 사연을 보내는 건 얼마 전에 이곳 의료관리동에서 정말로 축복할 만한 일이 생겼기 때문인데요. 그게 뭔지 궁금하시죠? 그건 바로, 아이가 태어난 것입니다! 아, 여기 아기 사진이 함께 왔네요? 어머, 너무 귀엽다! 정오가 되면 전국 모든 교정시설에서 수용자들을 위한 교화 방송을 틀어 준다. ‘정오의 안부’라는 제목의 이 프로그램은 보통 라디오 방송처럼 사연을 받고, 신청곡을 받아 들려주었다. “요즘 수용자들은 아주 별걸 다해요.” 관구실에서 방송을 듣고 있던 박 부장이 픽 웃음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그는 동의를 구하듯 맞은편을 보았다. “안 그래요, 윤 부장?” “네. …네? 뭘 말입니까?” 한참을 손바닥만 들여다보던 서준이 놀란 듯 어깨를 움찔거렸다. 박 부장이 수상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윤서준 교사님, 요즘 왜 이러시는 겁니까? 진짜 배가 아니라 머리가 뚫렸나?” 가져다준 지 20분이 지난 커피는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평소라면 쿠키 한 박스를 옆에 끼고 있어야 할 인간이 이상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틈만 나면 손바닥만 들여다보기 바빴다. 미간을 구긴 박 부장이 서준의 손목을 턱 붙잡았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나도 좀 봅시다. 가뜩이나 핸드폰 출입도 안 돼서 심심한데.” “아아! 부장님!” 당황한 서준이 손목을 비틀었다. 그러나 이미 꽉 붙잡힌 상태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허무하게 힘에서 밀려 손바닥을 보여 줄 수밖에 없었다. 모서리가 살짝 닳은 명함이 드러났다. “뭐야, 겨우 이거 하나에 정신을 다 팔아먹은 거였어요?” “겨우 이거라니요! 이게 얼마나 소중한 건데!” 맥 빠지게 웃는 얼굴에 버럭 화를 내며 손을 거뒀다. 다행히 이번에는 쉽게 빠져나왔다. 두 손으로 명함을 소중하게 쥔 서준은 그 안에 적힌 11개의 숫자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이현의 핸드폰 번호였다. “윤 부장, 연애해요? 아니면 짝사랑? 그게 아니면 뭔 명함 한 장을 스마트폰 보듯 봐?” “그런 거 아닙니다. 저의 동경 어린 시선을 그렇게 해석하지 마세요.” “동경 어린 시선? 누구 명함인데 그래요?” “저 구해주신 의사 선생님 명함입니다. 우리 외부 진료는 거의 남산대병원으로 가잖아요.” “아아, 거기 외상외과에 있는 그 의사 선생님?” “네, 맞아요.” “생긴 것도 아주 잘생긴 게, 잘하면 그 얼굴로도 사람 구하겠던데요?” “그죠? 부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저도 반은 그 얼굴을 보고 나았답니다. 차마 뒷말까지는 잇지 못한 서준이 홀로 조용히 웃었다. 정말로 크게 다쳤음에도 빠른 회복력을 보였으니,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믿었다. “진짜 어떻게 그런 사람이 다 있지?” 이현의 얼굴을 떠올리며 한 번 더 명함을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황홀해하다가, 금세 고민 깊은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난번 카페에서 본 이후로 벌써 보름이 지났다. 보름 동안 선생님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외부 진료를 나가야 만날 구실이 생기는데, 외부 진료를 나갈 일이 생기지 않았다. 심지어 병원에 갈 만큼 몸이 아픈 일도 없었다. 대체 그 신의 손이 이 뚫린 배를 얼마나 잘 고쳐 놓은 건지, 격한 운동을 해도 복통 한번 호소하지 않는다. 그냥 따로 만나자고 해 볼까? 하지만 이쪽이나 그쪽이나 근무 시간 유동이 심하다 보니 아무 이유 없이 만나자고 하기는 조심스럽다. “하아….” 연달아 한숨이 터진다. 진짜, 진짜로 연락하고 싶다. 하지만 선생님께 피해를 주게 되면 어떡해? 아, 그냥 저번처럼 우연히 만나는 게 딱인데. 한 번 더 자연스러운 우연이 일어나기는 어려울까? 어깨가 축 늘어졌다. 누가 보면 상사병에 걸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표정이 아련했다. 박 부장이 별꼴을 다 본다며 커피를 들이켰다. --- 자연스러운 우연이 일어났다. 참고인 조사로 방문한 경찰서에서 이현과 맞닥뜨린 것이다. “서준 씨도 참고인 조사 때문에 들렀나 봐요?” “아, 네. 그나저나 여기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1시간 정도 일찍 올 걸 그랬다. 누가 봐도 이현의 모습은 참고인 조사를 막 끝내고 나온 모양새였다. 서준은 땅을 치며 후회하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았다. “선생님은 이제 참고인 조사 끝난 겁니까?” “네, 뭐.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조금 걸리더라고요. 서준 씨는 이제 온 거죠?” “네에.”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담당 형사와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고작 10분밖에 안 남았다. 게다가 능력 있고 바쁜 선생님은 곧장 병원으로 가 봐야 할지도 몰랐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무거운 입술을 떼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히 가라고 했지만, 보내기 싫은 티가 역력한 목소리였다. 어쩐지 기운 없는 서준의 모습에 이현이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분명 단정하게 걷고 있는데, 왠지 모르게 터덜터덜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이현은 한참 동안 서준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았다. “뭐지? 나한테 호감 있는 거 아니었나?” 잠깐 데이트 좀 할까 했는데. --- 서준을 찌르고 도망친 강도는 한 달이 넘게 지나도록 잡히지 않았다. 마스크와 모자를 쓴 탓에 제대로 얼굴을 본 이가 없었고, 사건 현장에서도 건질 만한 단서가 없었다. 주변에 설치된 CCTV와 참고인 조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저희가 좀 살펴봤는데 말이죠. 하남에서 동선이 끊겼더라고요. 블랙박스에 일반 가게 CCTV까지 다 뒤져 봐도 흔적을 찾을 수가 없어요. 아무래도 시일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하남이면 차를 타고 도주했을 텐데, 차도 아직 발견 못 한 건가요?” “차량은 확인이 됐는데 도난 차량이어서요. 원래 차주분도 오셔서 조사받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이렇다 할 단서가 없는 거군요.” “네, 그게 참 면목이 없네요.” “….” “저, 혹시라도 신변이 위협될까 걱정되시는 거라면….”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잠시 시선을 내린 서준이 그때 일을 떠올렸다. 약국에서 강도 사건이 일어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카운터에서 머뭇거리던 남자가 갑자기 칼을 꺼내자 약사는 기겁했다. 깜짝 놀란 서준이 넘어질 뻔할 정도로 비명이 요란했다. 칼을 쥔 강도는 약과 함께 돈을 요구했다. 어떤 약을 요구한 건지는 모른다. 얼핏 듣기는 했지만, 발음이 부정확하고 단어가 생소한 탓에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 그때, 조용히 그곳을 벗어났다면 칼에 찔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 도망치는 것보다 몰래 강도의 뒤쪽으로 접근하는 것을 택했고, 그 덕에 생사를 넘나드는 아찔한 경험을 얻었다. 칼은 빗장뼈 밑을 스친 뒤, 바로 끝을 세워 뱃가죽을 파고들었다. 휘두르는 몸짓은 어설펐지만, 단번에 살을 파고들어 장기를 스칠 만큼 힘이 좋았다. 찌르고 빼기까지 체감상 10초도 안 걸린 듯했다. 뭘 해 볼 새도 없이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그 범인은 뭐가 목적이었을까? 수면제나 마약류의 약을 요구한 것 같지는 않은데…. 잡히지 않으니 알 길이 없다. 수사도 벌써 두 달이 넘게 제자리걸음 중이다. “오늘도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다른 게 더 생각나거나 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톡톡 키보드를 두드리던 담당 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따라 일어난 서준이 가방을 들고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네, 알겠습니다. 저도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 서준은 긴 복도를 느릿느릿 걸으며 손으로 배를 짚었다. 칼에 찔린 자리였다. 로비를 가로질러 중앙 회전문을 밀고 나올 때였다. “아, 서준 씨.” 문 옆에 기대 있던 이현이 반가운 기색을 내비치며 바로 섰다. 그러나 해맑게 지은 미소가 무색하게 서준은 슥 지나쳐 갔다. “어디 안 좋은가?” 의아한 이현의 시선이 멀어지는 뒷모습에 박혔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얼른 쫓아가 서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윤서준 씨.” “어? 선생님?” 앞을 막은 뒤에야 놀란 눈이 이현을 담았다. 아직 이곳에 있는 줄 전혀 몰랐다는 눈빛. 그 빛 안에는 반가움이 뒤섞여 있었다. “저 기다리신 겁니까?” “네, 기다리고 있었어요. 바쁘지 않으시면 얘기 좀 나누고 싶어서.” 그 말에 동그랗게 뜬 눈이 가늘게 접히며 휘어졌다. 환하게 웃은 서준이 곧장 답했다. “저 하나도 안 바쁩니다! 오늘 쉬는 날이거든요!” 사실 이후에 형과 점심 약속을 했지만, 그런 건 당장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 빠르게 등 뒤에서 손가락을 움직여 메시지를 보냈다. \[형혼 자 멉어ㅓ 안녕] 대충 써서 보내고 핸드폰을 뒷주머니에 쏙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쪽 엉덩이에서 미친 듯이 진동이 울렸다. 아마 불만 가득한 형의 연락일 것이다. 당연히 받지 않았다. “그런데 선생님은 병원에 안 가셔도 되는 겁니까?” “저도 오늘은 쉬는 날이라서요. 급한 연락이 오면 가 봐야겠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서준 씨 점심 아직이면 같이 먹을까요?” “좋습니다! 안 그래도 배고팠습니다! 아, 선생님 오늘 차 가져오셨습니까?” “아뇨, 조금 피곤해서 택시 타고 왔어요.” “그럼 제 차 타고 같이 가요. 저 오늘 차 가져왔습니다.” 차 키를 꺼내 버튼을 꾹 누르자, 멀끔한 고급 승용차가 번쩍 신호를 보냈다. 대충 보아도 주차된 차 중에서 가장 비싸고 때깔이 고왔다. 교도관 월급이 이 정도로 많았나? 잠시 멈칫한 이현이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차에 올라탔다. --- 도착한 곳은 뭐든지 적당한 면을 자랑하는 무난한 레스토랑이었다. 의사인 이현에게 비싼 점심을 대접하는 건 법에 어긋났던 탓이다. 손님까지 적당히 있는 레스토랑 내부를 보며 서준은 만족스러운 듯 만족스럽지 않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여기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더 좋은 걸 대접하고 싶었다. 두 사람은 커다란 창 옆에 있는 2인 테이블에 앉았다. 이현은 습관인 핸드폰에 시선을 던지곤 했다. 몇 번이나 무의식중에 같은 행동을 반복하다가,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곤 멋쩍게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버릇이라서.” “아뇨. 괜찮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음식이 나온 후에는 서로 소소한 안부를 물으며 천천히 식사를 즐겼다. 서준은 한 수저 크게 음식을 뜨다가도, 수저 위의 음식을 반 이상 덜기를 반복했다. 분명 그럭저럭 잘 먹고 있기는 한데 만족스럽게 먹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의 별난 식사 태도를 가만히 보던 이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응? 왜 웃으십니까?” “그냥, 같이 밥 먹으니까 좋아서요.” 이현은 몇 수저를 더 뜨다가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식사를 마쳤다기보단 뭔가 진지하게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서준 씨한테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그날 일과 관련해서 묻고 싶은 게 있어요.” 툭. 얌전히 놓으려고 했던 수저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이를 본 직원이 얼른 새 수저를 가져와 놓고 갔다. 그때까지 가만히 굳은 서준은 이현의 말을 속으로 되뇌며 고개를 들었다. ‘그날’이 언제를 뜻하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머리가 단번에 눈치챘다. 모를 수가 없다. 더군다나 참고인 조사까지 다녀온 직후다. “어, 그게….” 그답지 않게 우물쭈물하며 잠시 뜸을 들였다.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꺼려지기 때문은 아니었다. 서로 먼저 보도하겠다며 난리 치는 언론을 겨우 막았으니 처신 똑바로 하라는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을 뿐이다. 빠르게 주위를 훑은 눈이 다시 이현을 마주했다. 아무도 이쪽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서준은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 “뭐가 궁금하신 겁니까?”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누가 봐도 은밀하고 요란하게 묻는다. 이를 바라보는 이현의 눈에 의아한 빛을 띠었다. 최대한 타인의 눈에 띄지 않도록 애를 쓰는 것 같은데, 그게 더 이상해진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다. 작게 픽 웃은 이현이 똑같이 상체를 기울였다. 제 앞에 있는 반듯한 이목구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면 말이죠, 서준 씨. 그때 약국에서 강도가 뭘 요구했는지 기억해요?” “강도가 요구한 것 말입니까?” “네.” “그야, 약국이니까 돈과 약을 요구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게 어떤 약인지도 기억이 나나요?” 톡톡. 이현의 손끝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무의식에 나오는 습관 같기도 하고, 어딘가 초조한 것 같기도 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뭔가 알아내야 하는 게 있는 건가? 서준이 깊게 생각하듯 미간을 접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름을 듣긴 했는데, 생소해서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약학에서 쓰는 전문 용어 같다는 것 외에…. 아! 그래도 포장 상자 모서리가 약간 붉은색이었던 건 기억합니다.” “모서리가 붉은색인 포장이요?” “네.” “으음….” 이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뭔가 좀 부족하다 느끼는 모양새였다. “역시 이 정도로는 알기 어렵겠죠?” “아무래도 좀, 그러네요.” “그럼 형사님께 한번 여쭤볼까요?” “이미 물어봤는데 말하기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 범인이 잡히기 전까지 자세한 수사 내용은 알려 줄 수 없다네요.” “아, 그렇겠군요.” 확실히, 아직 용의자조차 추리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서준은 반쯤 꺼낸 핸드폰을 슬그머니 도로 넣었다. 결국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살짝 풀이 죽었다. 힘없이 수저를 들어 음식을 한가득 입에 넣으려다가 또 아차 하고 반을 덜었다. 그러다 뭔가 생각났는지 다시 이현을 보았다. “그럼 약사님께 묻는 게 어떻습니까? 약사님은 기억하실 것 같은데.” 넣었던 핸드폰을 또다시 꺼냈다. 약국 연락처를 찾아 전화해 볼 생각…. “약국에도 찾아가 봤어요.” 아. “그런데 주인이 바뀌었더라고요. 충격이 크셨나 봐요. 그 일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곳으로 가신 모양이에요. 어디로 가신 건지는 알 수 없고요.” 이미 약국에도 다녀오셨구나. 하긴, 약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가장 먼저 자신을 찾았을 리 없다. 칼 맞고 드러누운 사람이 뭘 알겠는가. “도움이 못 돼서 죄송합니다.” 눈썹을 축 늘어뜨린 서준이 고개를 숙였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왠지 밥맛이 떨어졌다. “아뇨. 서준 씨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죠. 고개 들어요. 너무 풀 죽어 있으니까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지는데요?” “하지만.” “괜찮아요. 그냥 궁금했던 것뿐이니까.” “….” “그러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알았죠?” 부드럽게 타이른 이현이 작게 미소 지었다. 손을 뻗어 서준의 고개에 가져다 대었다. 힘주어 올리자 여전히 미안함 가득한 표정이 드러났다. 그 정도로 이현의 행동은 그냥 궁금한 수준이 아니었다. 약국에 직접 찾아간 것도 그렇고, 경찰서 앞에서 자신을 기다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게 왜 궁금하신 건지 여쭤도 됩니까?” 서준이 넌지시 물었다. 볼과 턱에 살짝 닿아 있던 이현의 손이 느리게 떨어졌다. 기다란 손가락이 핸드폰의 검은 화면을 만지작거렸다. “그냥….” “….” “제가 아는 사건과 비슷한 것 같아서요.” “네?” 메시지라도 온 건지 알림등이 깜빡인다. 화면을 켠 이현이 잠시 핸드폰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별거 아닌 짧은 시선의 움직임이 왠지 낯설다. 여태껏 본 적 없는 눈빛이다. 말없이 그 낯선 빛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테이블이 지이잉 울렸다. 이현의 핸드폰 진동이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 사건과 많이 다르네요.” “….” “괜한 생각이었나 봐요.” 말을 마친 이현이 핸드폰을 쥐었다. 하필이면 이런 순간에 전화가 왔다. 분명,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한 얼굴이었는데. “죄송합니다. 먼저 일어나 볼게요.” 병원에서 온 전화인가 보다. 이현이 통화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어수선한 소리가 샜다. “그래서요? 아직 이송 전인가요? 구조대는 지금 어디 있죠?” 다급히 일어나는 이현을 따라 서준도 소지품을 챙겨 일어났다. 서두르는 걸음만 봐도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급하게 지갑을 꺼내며 카운터 앞에 섰다. “계산! 계산이요!” “어? 계산, 방금 나가신 분이 하셨는데….” “네?” 아니, 그 급한 와중에 계산은 또 언제 했대? 대접하려고 데려왔는데 오히려 얻어먹는 꼴이 되었다. 당황해서 멍하니 서 있다가 아차 정신을 차리고 다시 뛰어나갔다. 택시를 타려는 듯 큰길로 뛰어가는 이현을 향해 소리쳤다. “선생님!” “서준 씨? 왜 벌써 나왔어요?” “제 차로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급하잖아요! 여기 사람 많아서 택시 잡기 힘듭니다! 빨리요!” 얼결에 얻어먹게 된 거긴 하지만, 이대로 받기만 하고 헤어질 순 없었다. 덥석, 이현의 팔을 붙잡아 이끌었다. 무사고 10년의 운전 실력을 발휘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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