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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5화. 각성


5. 이름을 소개하고 잠시간의 시간이 이어졌다. 손님들은 서 있는 우리들을 상품처럼 짧은 시간 동안 하나하나 스캔하며 뜯어보기 시작했고. 선수들 역시 손님들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어필의 시간을 가졌다. 예외인 건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왕자지라거나 태국 왕자 등의 코멘트는 따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순수한 외모, 서 있을 때의 분위기 같은 것들이 모든 걸 결정했다. 그 짧은 찰나의 시간. 대략 10~20초가량의 시간 동안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앞에 있는 여자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으로 행복회로를 돌리는 것뿐이었다. ‘저 정도면... 내가 돈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실장은 문 앞에서 여자들을 보며 눈빛으로 선택을 종용하고, 여자들은 스캔이 끝난 뒤 실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까딱인다. 그걸로 끝이다. “퇴장할게요~” 맨 마지막에 들어온 선수가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니 뒤에 있던 선수들도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나 역시 세 번째로 들어온 선수의 등을 보며 따라 나갔다. ‘흐으으으… 긴장돼서 미치겠다.. 진짜 미치도록 예쁘네.. 와….’ 로비로 나오자 선수들은 일상이라는 듯 서로 대화를 하거나 계단 쪽으로 나가 담배를 피웠다. 그 모습들을 두리번거리며 지켜보던 중. “어때요?” 세일이라는 사람이 슬쩍 옆으로 와, 첫 초이스에 대한 감상을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았지만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하다 나온 말은 결국 하나였다. “너무 예쁜데요…?” 세일은 내 대답을 듣곤 쓰게 웃음을 지었다. “뭐.. 그렇긴 한데.. 여자는 손님이에요. 그것만 명심하면 돼요.” 아직은 알 수 없는 아리송한 세일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이내 끄덕였다. 뭐가 됐든 호빠 선수, 아니 인간으로서,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걸 8층의 대화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 . . *** “오빠 장난해? 낫 베드..?” “아이 은지야~~ 아직 열 시도 안 됐다. 지금 10명이면 낫 베드가 아니라 나이스지~” 화려한 방 안에서 손님들과 실장이 한창 기싸움 중이다. 선수를 빨리 앉히려는 자. 실장의 고름을 조금 더 짜려는 자. 은지는 소파 위에 발을 쭉 뻗은 채 옆에 있던 친구들을 힐끗 보며 눈짓 했다. “난 1조에 1번 할게” “난 2조에 1번. 존나 서캉준 닮았네.” 세일이와 캉준이의 번호에 실장은 손님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굿 초이스”라고 한마디를 하곤 은지를 쳐다본다. “흐음…. 없는데.. 아 그리고. 2조에 그 얼빵한 애는 뭐야.? 가게 면접 안 봐?” 은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비아냥거리니 실장은 ‘누구지..?’ 하는 얼굴로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오늘 첫 출근한 애야. 호빠 아예 처음. 쌩 아다. 돈 벌겠다고 온 건데 얼빵은..” 친한 듯 같이 비아냥거리는 실장의 말에 은지는 살쾡이 같은 눈을 뜨며 실장에게 말했다. “난 걔.” . . . *** 스으윽 방문이 열림과 동시에 실장이 밖으로 나와, 모여 있는 선수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초이스 끝이요~~! 1조에 1번, 2조에 1번. 그리고~ 민우 씨? 일로.” 모여 있던 선수들이 우르르 계단으로 나가고... 실장은 나를 손짓을 하며 부르더니 방문 앞에서 어깨를 잡고 설명했다. “민우 씨. 일단 내가 장부에 이름 적어둘 테니까. 오늘 일한 건 아침 8시 지나서 1층 카운터에서 받으면 돼요. 그리고… 쟤네들이 장난을 좀 칠 수도 있어요... 혹시라도 기분 많이 나쁘면, 깽판 치면 절대 안 되고 조용히 나와서, 저한테 전화 주세요. 오케이~?” 고개를 끄덕이자 실장은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대기해 있던 세일과 캉준을 데리고 방문을 활짝 열었다. “세일이가 왼쪽, 캉준이가 상석. 우리 민우 씨가… 오른쪽~ 필요한 거 있으면 톡 해. 은지야?~” 캉준과 세일은 자연스럽게 본인들의 파트너를 보며 눈인사를 하고, 자리에 맞게 테이블 사이로 들어가서 앉았다. 실장은 은지를 바라보며 ”제발... 적당히 해라..“ 라는 눈빛으로 내 어깨를 스윽 밀었다. 그게 나의 호빠 인생 첫 초이스, 첫 메이드였다. . . *** 화류계 용어에는 골프장, 혹은 도박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일반 사람들이 처음 들으면, 뭔 소린가..싶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령 내가 뽑힌 걸 메이드되었다라고 표현하거나, 내가 출근한 대형 가게를 퍼블릭이라고 하거나. 퍼블릭의 뜻은,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우리 가게를 비롯해 아가씨들 가게에서도 많이 사용된다 한다. 그걸 지금 왜 설명하냐고.? 내가 지금 뺀찌. 방에서 강퇴를 당해 계단 앞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 . *** 화려한 방 안으로 들어온 나는. 나를 초이스했다는 은지라는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며 소파로 들어갔다. “오빠. 거기 말고 이 안쪽으로 앉아.” 이런.. 문과 가까운 겉면에 앉으려 했는데 은지가 자신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오라 한다. 왼쪽에는 은지가 있고, 오른쪽에는 예쁜 여자가 있다. 아. 물론 이 셋 중에선 은지가 가장 예뻤다. 몸모랜드 욘우랑 살짝 비슷한 느낌에 가슴은 또 수박 마냥 엄청나게 컸다. 얇은 긴팔과 트레이닝 바지를 입었는데. 얇은 긴팔에 투영되는 큰 덩어리 두 개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좆나 예쁘네… 와.. 와…’ 처음 보는 고급진 외모에 앉아서 멍하니 은지만 바라보며 감탄했다. 탁. “오빠. 술 안 따라.?” 아 이런... 넋 놓고 있다가 사소한 실수를 해버렸다. 은지가 육각형의 둥그런 잔을 들고 있길래, 테이블을 바라보며 술병을 찾았다. 양주를 찾았는데 너무 멀리 있다.. 기다란 테이블이 원망스럽긴 처음이다. 양주병과 눈싸움을 하다가 자리에 일어나려 하는데.. 상석에 앉아 있던 캉준이가 양주를 손으로 슈우욱 밀어줬다.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로 미끄러지며 날아 오는 양주가 퍽 멋있다는 생각을 하며 탁, 손으로 받았다. 은지의 잔에 양주병을 기울이니. “아니 아니 오빠. 얼음부터 넣어줘야지.” ‘크흠…’ 뭔가 상황이 꼬이는 것 같다. 얼음통은 세일이가 슈우욱 밀어줬다. 참 착한 사람들인 것 같다. 달그락 소리를 내며 긴장 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은지와 내 잔에 얼음을 넣는다. 양주를 따를 땐 정말... 내 손이 장애인인 줄 알았다... 은지는 따라 준 양주잔을 손목으로 휘휘 돌리더니 조그마난 애기잔에 검지손가락을 받히며 양주를 따랐다. 뭔가 있어 보여 따라 해 봤지만. 내 애기잔은 편식이 심한지 양주가 줄줄 흘렀다. ‘엄...’ 심히 당황스러웠지만.. 얼른 티 안 나게 물수건으로 가렸다.. “오빠는 뭘 잘해.?” 은지는 술을 한 잔 마시더니 다리가 불편한지 테이블 끄트머리에 걸치며 말했다. “어…. 잘 모르겠는데요..”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하여 어버버거리다 대답했다. “아니.. 오빠가 잘하는 게 하나는 있을 거 아니야.. 키랑 얼굴 이런 외적인건 패스하고.“ “노래 잘해.?” “아니요..?” “춤 잘 춰?” “아니요..?” “술을 잘 먹나.?” “어.. 아니요.?” “아니면.. 말을 잘하나.?” “아니요…?” “그럼 여기서 왜 일해?” “...그러게요…” 스스로 자괴감이 들면서 할 말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잘하는 게 없었다. 이들은 소비자. 값을 지불하고 선수라는 상품을 대여하는 것이다. 순간, 욱-하는 마음과 만감이 교차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딱 하나였다... “…마음에 안 드시면 제가 나갈게요...“ 부들부들 떨리는 얼굴을 애써 감추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주변에선 말소리가 멈추고 모두가 우리를 바라본다. 캉준은 딱하다는 눈빛으로... 세일은 저년 또 저러네라는 눈빛으로. 여자들은 뭐든 빨리 좀 끝내라는 눈빛으로. “다리 좀 치워주세요.” 은지가 책상에 걸터놓은 다리를 안 빼길래 말했더니, 여전히 그대로 둔 채 나를 빤히 바라본다. ‘이개씨발련이…’ 순간, 좆까라는 마음으로 허벅지로 다리를 밀면서 나갔다. . . 밖으로 나오니 고급진 로비가 나를 반겼다. 그리고 그 로비는 왠지 나에게. “이곳은 네가 올 곳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야 세일이 말했던 ‘시작점이 잘못됐다.’라는 말이 이해가 됐다. 모멸감과 수치심,그와 반대로... 당연한 건가... 라는 마음이 들어서 계단으로 나가 담배를 물었다. “아 네.. 실장님 저 뺀찌 먹었어요..” “아이고.. 알겠어요 민우 씨. 쉬고 있어요. 15분 일한 건 제가 반티 챙겨서 드릴게요.” 알겠다며 말하곤 쭈그려 앉아 담배를 빨았다. 알고 보니 반티는 1시간의 반을 나눠서 한티, 반티더라. 이날. 나는 반티로 2만 원을 벌었고. 평생의 기억을 서비스로 받았다. 후우우우 “호빠 재밌네…” 내 안의 뭔가가 조금..비틀리기 시작했다. . . . 담배를 총 2개 피우곤 아까 있던 8층의 대기실로 올라왔다. 사람이 한 명도 없길래 톡을 추가해서 실장에게 물어보니 출근할 때 제외하곤 계단이나 옥상 식당, 혹은 개인적으로 대기한다 한다. 옥상에 올라가니 층 전체가 매점과 식당이다. 밥 생각은 당연히 안 나니 1층으로 내려와 편의점에 갔다. 가게 안은 왠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전생의 업’ 명명: 전생의 업 ㅡㅡㅡㅡㅡㅡㅡㅡ 김민우 20세 남성 외모: 48/100 특성: 말재주 2, 상점 퀘스트 야심한 밤의 편의점 불빛이 비추는 거리. 야외에 비치된 테이블에 앉아 레쓰비 하나를 놓고 담배를 피우며 시스템을 쳐다봤다. 후우우우… ‘이 고난을 뚫고 호빠를 하라는 거지? 전생의 김민우야.? 왜 하라는 건진 모르겠지만, 전생의 내가 선물로 준 거라니…. 알겠어.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뭐.’ 담배를 다 피울 즈음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온 나는 입가를 뻐근한 듯 매만지다 조커처럼 억지로 활짝 웃었다. 달칵 “실장님. 저 오늘은 먼저 들어가 볼게요.” “아이구우… 그럴래요 민우 씨? 우리 정산 8시니까, 돈은 내일 출근하면서 받아요.” “네 알겠습니다.”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도로를 걸었다. 길을 몰라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샌가 길이 나왔다. . . . 버스가 집 근처에 도착하고 쓴 마음을 달래러 편의점에 들어갔다. 맥주 두 캔과, 소주 한 병을 고른 뒤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가는데 “어..?”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낮에 버스에서 만났던 여자가 토끼눈을 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아 네…” 이내 시선을 돌리곤 계산을 한 뒤 편의점을 나섰다. 평소라면 살갑게 인사라도 했겠지만 오늘은 왠지 아니였다. 그렇게 털래털래 걸어가며 손에 든 봉투의 무게감이 슬슬 무거워질 때쯤 집에 도착했다. “아이고고고…” 8평짜리 방에 들어온 나는 옷도 벗지 않은 채 조그만 좌식용 걸상을 펼치며 라면을 부셨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본 소맥 비율을 떠오르며 집주인이 주고 간 머그컵에 술을 섞었다. “이렇게 하는 거 맞나.? 크으으…음.? 좀 단데..?” 생각보다 먹을 만한 소맥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한 잔 더 따를 때 문득 전화가 울렸다. “누구지 이 시간에? 이름도 없는데..” 휴대폰을 빤히 바라보다 혹시 강남에서 온 전화일까 싶어 통화를 누른다. “여보세요?” “어디 가셨어요?” “누구세요…?” “… 낮에 번호 물어보시고 저장도 안 하신 거예요..?” “아… 미안해요. 정신이 없어서 확인을 안 하고 그냥 받았어요.” ‘뭐지..? 내가 이렇게 말을 잘 넘긴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소맥을 마시며 전화를 이어간다. “계산하고 같이 마시려고 나왔는데 안 계셔서 전화해 봤어요. 이미 들어가셨으면 어쩔 수 없고요.” “아까 그 편의점에서요?” “네.” “아직 거기 계시면 제가 거기로 갈게요.” “음… 알겠어요.!” ‘혼자 마시는 것보단 같이 마시는 게 낫겠지..’ 잔에 남은 소맥을 쳐다보다 원샷하곤 허름한 철문을 열고 나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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