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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78. 오 작가.


“인사해, 여기는 오 작가 님.” “아, 안녕하세요?” 방에 들어오자,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건 애린이었다. 수수한 메이크업과 소두의 상징인 얼굴이 다 덮이는 검은 볼캡. 예상치 못한 게스트에 살짝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고 빠르게 방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으음.. 선수는 나 혼자라..’ 나는 자연스럽게 맞은편 여성, 오작가에게 눈인사를 하며 애린의 옆자리에 앉았다. “반가워요. 우와.. 근데 들은 것보다 훨씬 미남이신데요?” “하하.. 감사합니다.” 왠지 눈이 반짝이는 것 같은 오작가의 칭찬에 겸연쩍게 웃으며 잔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웬 작가?’ 문득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중요한 건 일. 대략 2~3주 만에 만난 것 같은 애린과 가볍게 아이컨텍을 하며, 언더락에 얼음을 채우고 술을 따라 각자에게 돌렸다. “먼저 한 잔 하실까요?” 뒤이어 미소 지은 나는 잔을 살짝 들어 올렸다. “좋죠~” “짠~” 자연스러운 흐름에 애린과 오작가 모두 경계 없이 잔을 들었다. 꿀꺽, 첫 모금부터 부드럽게 넘어가는 로얄샬루트 21년 산. ‘흐음.. 골든블루 마시던 애린이가 로얄이라..’ 나는 잔을 입에 댄 채, 투명한 유리잔 너머를 투영하며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아이돌과 작가라니. 깔려 있는 술로 봤을 때 오늘의 주인공은 오작가인 듯 싶다. 대략 30대 중반. 평범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현기가 깃든 듯한 눈동자. 힐끔힐끔 나를 살피는 눈빛까지. ‘단순히 술만 마시러 온 건 아닌 거 같은데.’ 이들의 목적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애린의 태도를 기반으로 눈치껏 테이블의 분위기를 오작가 쪽으로 주도했다. 물론 애린이 섭섭해하지 않을 선에서였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이어졌을 때 즈음. 오 작가는 나의 노골적인 케어에 어느 순간 마음이 편안하게 풀렸는지, 나를 보며 방긋 웃곤 말했다. “근데.. 호빠 선수들은 다들 이런 거예요?” “어떤..?” 열기에 찬 듯한 오작가의 목소리. 나는 슬슬 이들이 온 목적이 드러나는 것 같은 분위기를 느끼며 경청하기 시작했다. “제가 호빠는 처음이라. 원래 다들 이렇게 잘생기고 매너도 좋아요?” “음.. 글쎄요.. 사람마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 다를 거예요.” 묻고 싶은 게 있다면 편안하게 물어보라는 내 제스처에, 소파에 파묻혀 있던 오작가의 몸이 앞으로 살짝 기울었다. 그 순간, 조용히 술을 홀짝이던 애린이 테이블 아래로 내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언니. 그냥 편하게 묻고 싶었던 거 물어보고 해. 그리고 선수는… 내 경험상 민우 같은 애는 거의 없어.” “그래..?” 오 작가는 애린의 말에 신기하다는 듯이 그와 나를 번갈아봤다. 대충 상황이 파악됐다. 달칵, 나는 테이블 위에 잔을 살짝 올려놓았다. 그리고 앞에 있는 오작가에게 술을 한 잔 따라주며 부드럽게 웃었다. “애린이 말대로 궁금하신 거 있으시면 편하게 물어보세요. 제가 아는 선에서는 다 대답해 드릴게요.” 그러자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오작가. 그는 부담스럽게 양손으로 잔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실은 제가 글을 쓰다 막힌 부분이 있어서……” 한 시간가량이 지난 뒤. 어느 정도 중요한 얘기가 끝났음을 인지한 내 추천에, 처음으로 선수를 초이스 해본다는 오작 가는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새로운 선수와 꽁냥대기 시작했다. 애린에게 한쪽 손을 뺏긴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술을 한 모금 홀짝였다. 오작가가 온 이유는 명확했다. 화류계 주제의 영화를 기획하는 중이라는 그녀는. 쉽게 말해 호빠 한 번 와보지 않은 상태로, 그저 겉핥기 식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인터넷으로만 조사한 결과로 글을 쓰다 보니 막히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결국 나는 한 시간 동안 그녀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도우미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태로 70프로 이상을 쓰다니. 신기하네.’ 나 같으면 리얼함을 위해서라도 한 번은 와봤을 텐데. 창작의 영역이라서 가능한 건가? 확실히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괜찮지..?” “응?” 그때 옆에서 눈치 보며 묻는 애린의 모습에, 자연스레 술을 따라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가?” “아니.. 괜히 나 때문에 시간 뺏기는 게 아닌가 싶어서..” 뭔가 했더니.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 뭐 어려운 부탁이라고. 그리고 보답도 한다는데.” “그럼 다행이고 히힛.” 내 너스레에 기분이 풀렸는지, 애린은 양손으로 내 허리를 감싸며 가슴팍에 머리를 비볐다. 그녀가 말하는 건 오작가의 부탁이었다. 자신이 대본을 보내주면 틈틈이 확인을 해 줄 수 있느냐는 부탁. 아마 현실적인 개연성 부분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솔직히 내 입장에선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번호도 교환했고. ‘작가 인맥도 하나 있으면 좋겠지.’ 약간의 사심이 들어간 것도 한몫했다. 그리고 여차하면 보안 문제 때문에 계약서라도 써야 하나 싶었는데. 작가가 애린이랑 굉장히 친한지, 다행히 그럴 필요는 없었다. ‘하긴. 연예인이 직접 호빠에 데려올 정도면 조금 친한 걸로는 안 되겠지.’ 나는 캥거루처럼 안겨 있는 애린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잔을 들어 오작가에게 짠을 외쳤다. “오작가님 짠.” “네네, 짠~” 옆에 있는 선수가 왜인지 부러운 눈빛으로 보는 것 같았지만. 뭐, 어쩌라고. 이건 내 자의가 아닌 걸. 그렇게 화려한 또 하루가 흘러갔다. * * * 다음날 점심. 타는 목마름에 주섬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옆에 있는 나체의 미인. 나는 도자기 같은 피부 곡선을 한 차례 쓰다듬은 뒤, 조심스레 거실로 나왔다. 물을 한 잔 마시며 테이블 위에 놓인 담배를 물고 널찍한 통창문을 열었다. 칙칙 후우우우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오는지,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니코틴과 함께 내 몽롱한 정신을 깨웠다.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가구들이 즐비한 이곳. 그렇다. 수영 누나의 집이다. 어제 퇴근하고 어디로 갈까 하다가, 유주네 집은 민폐 같아서 결국 수영 누나의 집까지 대리를 불렀다. ‘확실히 시간대가 안 맞으니까 이런 불편함이 있네.’ 물론 유정 누나도 있고 막상 유주네 집도 조심스럽게 들어가면 상관없겠지만. 후우우우 퀘스트를 깨려면 어쩔 수 없었다. 술 취한 상태로 장거리도 힘들고. 덕분에 애린이 많이 아쉬워했지만. 나는 눈물을 머금으며 떼어냈다. ‘아직은 아니야.’ 괜히 내 쓰레기 같은 하렘에 더 이상 감당 못할 인원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우선은 친구로 더 지내보고, 끝까지 나를 좋아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장은 세 여자에게 집중할 생각이다. ‘이제 씻자..’ 나는 우리 집보다 큰 욕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며 비약 6병을 구매했다. [정력의 비약 6개] 까드득- 벌컥! 벌컥! 수영 누나가 깨기 전 빠르게 비약 섭취를 마친 나는 상태창을 열었다. (김민우 20세 남성) [외모: 80/100] [체력: 50/100] [정력: 42/100] new [피부: 70/100] [분위기: 50/100] [키: 187cm] [성기: 18.2cm 11cm] [특성: 말재주5, 선구안5, 테크닉5, 심미안5, 판단력5, 언어1.] [퀘스트 상점] 끓는 듯한 충만감을 느끼며 반투명한 홀로그램을 확인하던 중. [호의적인 인연이 한 명 확인되었습니다.] -인연 등급 상승으로 사용자에게 필요한 ‘보상’을 선정합니다. [현재 선택 가능한 보상 목록] 1. [현금, 해당 사용자의 상황에 맞게 지급] 2. [랜덤 아이템 뽑기] 인연도 상승 메시지가 들려왔다. ‘차유린? 누구였더라…’ 낯선 이름에 잠시 고민하던 나는, 문득 애린의 본명이 차유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 오른 거지?’ 오를 이유가 없는데 오른다라.. 어젯밤 애린의 반응을 떠올려봤다. 끝까지 취한 척 나를 홀리려 하던 그녀는 내가 재차 설득하며 차 안으로 밀어 넣자, 굉장히 아쉬워하다가, 또 금세 미소 지으며 떠났다. ‘뭐… 이런 남자는 니가 처음이야! 이런 거야?’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만약 그게 맞다면 애린도 참 고약한 심보였다. ‘아이템이나 뽑자..’ 상념을 떨쳐낸 뒤 랜덤 아이템 뽑기를 눌렀다. 핑그르르 거리며 돌아가는 룰렛. 지금 와서 돈을 뽑을 이유는 없다. 저금통 덕에 두 배로 늘릴 수 있다지만, 막말로 보상이 아니어도 돈은 언제든지 벌 수 있고, 의식주 역시 수영 누나가 책임져주니까. 펑! [존재감의 반지를 획득합니다.] ‘존재감?’ 나는 손안에 떨어진 은색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저번에도 반지였는데. 이걸로 반지만 두 개가 됐다. 쌍 반지라니 기분이 뭔가… 뭔가 했지만. ‘아이템이니까 뭐..’ 나는 중지손가락, 그러니까 해독의 반지 바로 옆자리에 존재감의 반지를 착용했다. 이번에도 사이즈에 맞게 자동으로 조절되는 반지. 쩝.. 누가 보면 관종인 줄 알겠다. ‘설명이나 보자.’ [존재감의 반지] -착용자의 존재감을 상승시킵니다. 간단한 설명에 순간 고개가 모로 돌아갔지만, 아이템은 언제나 효과가 좋았으니 개의치 않기로 했다. “민우야~ 화장실이야?” “어, 누나. 지금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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