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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4화. 소설속으로 들어왔다


4화. 소설속으로 들어왔다 "해윤아! 오늘 미팅인 거 알지? 5시에 모이자!" 해윤? 해윤이가 누구지? "야. 너 괜찮냐?" "어? 어, 응 괜찮아." "오늘 아침부터 상태 이상하더만. 너 설마 오늘 미팅한다고 기대해서 그러냐? 푸하하!" 뭐가 그리 웃긴지 내 등을 팍팍 친 녀석이 눈물을 닦으며 웃음기를 줄였다. "너도 남자긴 남자구나! 이 형은 감동했다!" 헛소리 하는 녀석의 얼굴을 보았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인데?' 어디서 봤더라? 기억이 잘 안 나는 거 보면 중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남자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는 내게 인상이 남아있는 남자라면 중요한 인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쟤를 도대체 어디서 본 걸까? 생각에 잠긴 사이, 앳된 남자 놈은 이전의 당당한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오늘 우리 같이 홈런 한방 터트려보자고!" 그 순간 보였다. '왜 가소롭게 본 것 같지?' 물론 찰나의 순간에 스쳐지나간 눈빛이었다. 내가 잘못 봤을지도 모른다. 평소의 나는 저런 눈빛을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으니까. '그래, 잘못 본 거겠지.' 기억에는 남아있는 것 같은데 누군지 떠오르지 않은 소년은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얼굴은 썩 잘생긴 편은 아니나 목소리가 좋았다. 동굴 같은 저음은 아니나 저음과 미성이 섞인 부드러운 목소리. "어? 해윤아. 주찬이한테 연락왔다. 따로 떨어지지 말고 우리 먼저 모여서 준비하자고 하네?" "주찬…?"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다. 근데 얘도 누군지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뭐 곧 만날 것 같은데 보면 알지 않을까? "응 주찬이. 아, 저기 온다! 여기야 여기!" "여기 있었구나! 이야 너네들 준비 제대로 하고 왔구나?" "누가 할 소리. 이 새끼 근육 부각시킨 거 봐라. 근육 페티쉬 있는 여자는 무조건 잡고 가겠다는 생각이 여기까지 들린다 여기까지. 아주 투명한 새끼야." 구리빛 피부에 시원한 인상, 거기에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는 우락부락한 근육까지. 물론 잘생긴 편은 아니지만 보디빌더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은 근육으로, 근육을 좋아하는 여자라면 앞뒤 따지지 않고 달려들 매력이 있는 인상의 남자였다. "아잇! 이거 비싼 옷 입어 놓고 나한테만 존나 뭐라하네? 야이 쪼잔한 새꺄~" 둘 다 깔끔한 스타일로 입었다 생각한다. 처음 만난 소년미를 내는 놈은 본래 치수보다 한 사이즈 큰 옷을 입었는데 박시함을 돋보이게 하여 본인의 이미지와 너무 잘 어울렸다. 반대로 주찬이라 불린 근육질 놈은 깔끔하지만 근육을 부각시키는 옷으로 남자다움이 돋보였다. '나는 어떻게 입었지?' "형준이는?" "준비 다 끝났다고 무궁화실 앞에서 기다린다던데?" "그래? 그럼 일단 가볼까?" 주변에 거울은 없었다. 일단 녀석들의 큼직한 보폭을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발을 놀렸다. 바쁘게 가던 중 큰 거울이 보였다. 그 앞에 서자 드디어 내 모습이 거울에 비치게 됐다. '얘 누구냐?' 거울에 비친 남자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26년 내내 보던 내 모습이 아니었다. '뭐 저렇게 못생겼냐?' '뭔데 저렇게 난쟁이냐?' '옷 이거 뭐냐?' 거울에 비친 나는 총체적난국이었다. 잘생겼던 얼굴은 어디가고 개성 하나 없는 못 생긴 얼굴이 나를 반기고 있었고. 몸은 마르거나 뚱뚱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키가 미친듯이 작았다. 185cm였던 원래의 키에 비해 훅 줄어든 키. '저거 160cm 정도 아니야?' 키가 작았던 적이 길지 않았던지라 이 정도 키가 몇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대충 165-7cm 정도 되어 보이긴 하지만 160이든 170이든 내게 있어서 난쟁이 똥자루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얼굴+키만 봐도 이미 테러 수준인데 옷도 가관이었다. 패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흰색 또는 검은색만 입어도 반은 간다는데, 이 자식은 무슨 자신감이 있었는지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솔직히 형형색색의 옷이라도 잘 어울리기만 하면 상관없겠으나 문제는 전혀 조화롭지 않다는 거다. '이거 벌칙 게임하는 거잖아.' 아직 한 명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이대로 미팅에 참가한다면 바로 폭탄 예약이다. '헉. 시발 설마?' 잘생긴 얼굴이 없어진 건 좆 같긴 하지만 그런대로 참을 수 있다. 키가 작아진 것도 남성성이 사라진 것 같지만 이것도 그런대로 참을만 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남성에게 있어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 그것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나는 다급히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안돼. 절대 안돼. 제발.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제발 남아있기를. 그건 내 자존심이라고. 떨리는 마음으로 바지를 들췄고. '후우. 시발 다행이다.' 평소 욕을 잘 하지 않던 나지만 지금은 절로 욕설이 나왔다. 날 구성하고 있던 요소들이 대거 바뀌었지만 단 하나 바뀌지 않았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남자다움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여전했기에. 자지만은 지켰다. '잠만…? 이 얼굴도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자지를 보고 안도하던 중 돌연 내 얼굴이 누구 얼굴인지 떠올랐다. "아! 김해윤! 김해윤이었어!" "그래 임마! 니가 김해윤이지 뭐 박해윤이냐? 크큭." 근육이 제일 눈에 띄는 김주찬이 옆에 있었다. "형준이 기다리고 있대. 빨리 가자." "어, 어. 미안." 일단 다시 발을 놀렸다. 걸으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김해윤. 찐따남 여성 정복자가 되다!의 주인공 이름이야.' 이걸 왜 잊고 있었을까. 키가 167cm에 몸무게 58kg에 자지가 겨우 8cm인 김해윤. 항상 주변 남자들에게 여자들을 뺏기기만 하는 병신 노답 주인공이 바로 김해윤이었다. '그리고 나는 김해윤이 되었고.' 빙의인지 소설 속으로 들어온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이제 김해윤이 됐다는 거다. 이제 김해윤으로만 살아야 한다는 거다. 누군가 지금 내 상황을 봤다면 절망적인 상황이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절망적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도리어 기회라고 생각했다. '눈치 안 보고 여자들을 따먹을 기회야!' 소설을 보면서 얼마나 답답했던가. 나라면 이렇게 했다고, 매일매일 훈수를 두지 않았던가. 답답함을 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거기에 내가 후회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여기 여자들이 존나 이뻐.' 찐따남 여성 정복자가 되다!라는 소설에서 유일하게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히로인 일러스트였다. 돈이 많은 작가였던지 히로인 일러스트를 많이 뽑아서 올려줬는데, 일러스트마다 절로 감탄을 자아냈었다. 물론 히로인이 주인공의 여자가 되지 못해 히로인이 아니게 됐지만 아무튼. '작가가 돈이 많아서 일러스트를 올렸던 게 여신이라서 그랬던 건가.' 그보다 여신은 잘 있는 건가. '보지 맛있었는데…' 예뻤던 여자, 그것도 처녀를 단 한 번만 먹고 버려야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졌다. 나는 먹버는 하지 않는 남자인데 말야. 잠시 여신을 떠올리며 아련해졌지만 정신을 차렸다. 지나간 여자는 지나간 여자, 지금 상황에서 내가 뭘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미팅. 분명 남자들은 미팅을 간다고 했었다. 내가 알고 있는 미팅이라면 김해윤의 히로인 후보들이 상대로 나오게 될 미팅일 터. '특히 유주아. 유주아를 놓치면 안돼.' 소설 초반부에 나오는 히로인들은 저마다 목적을 가지고 미팅에 참가한다. 유주아도 마찬가지인데 미팅에 참가하는 여자들 중에 유주하는 유일하게 '처녀'를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20살이 됐음에도 처녀를 가지고 있다니. '유니콘이야 뭐야.' 내가 임상철로 살던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여자들의 평균 첫경험 나이는 15-17세다. 상당히 이르게 첫경험을 한다는데 유주하는 20살이 됐음에도 처녀니. '무조건 내가 먹어야해.' 스킬 좋은 여자도 좋지만 뭐니뭐니해도 풋풋한 맛이 나는 처녀가 몸도 좋고 기분도 좋다. 또한 내게 처녀를 바친 여자들도 내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기에 지배욕이 강한 나로선 처녀들이 너무나 좋았다. '물론 유주하도 처녀를 잃을 뻔한 적은 많았지만 어마무시한 로망을 가지고 있어서 말이지. 너무나 고맙게도 로망 덕분에 처녀를 지켜줬어.' 그 조건을 만족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물론 나는 합격이지만.' 하지만 '김해윤'이라는 지금 조건은 아무리 나라도 좀 많이 빡샜다. 유주하의 로망을 건드리는 게 유일한 해답인데 거기까지 가기가 솔직히 너무나 불가능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설에서 20살동안 지켜왔던 처녀를 잃게 돼….' 바로 오늘 미팅으로 인해. 미팅 처음부터 남자들한테 집중 마킹 당하면서 술을 존나 먹여지게 된다. '존나 꼴아서 이후에 개 같이 따먹혔지…' 그 장면을 봤을 때 얼마나 답답하고 짜증이 나던지. 절대 그렇게 두면 안 된다. 그럼 술 꼴을 때까지 존버타고 있다가 중간에 뺏어야 할까? '아니야. 이건 하책이야. 그리고 저 새끼들이 뺏길 놈들도 아닐 거고.' 잘못되면 힘으로 짓누를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육탄전은 가면 안 된다. 오직 유주하 본인의 선택으로 나와의 첫날밤을 만들어야 한다. '하. 일단 해봐야지.'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어렵긴 하겠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까. '나 임상철이야. 할 수 있어.' 남자는 자신감이다.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전투 태세에 들어간다. "어! 형준아!" 생각을 다 정리했을 때 오늘 미팅의 마지막 친구를 만났다. "어 왔어?" '와 시발. 존나 잘생겼다.' 저건 뭔 생물체냐? 누구에게나 잘생겼다는 소리를 듣던 나보다 더 잘생긴 놈이 있었다. "이야. 너는 오늘도 미모가 빛을 발하는구나." "형준이는 항상 제철이잖아." 형준. 형준. '형준? 설마 이형준?'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이름이었는데 얼굴과 함께 들으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형준. 눈으로 봤듯이 연예인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미모를 가진 놈은 엄친아였다. 이 소설을 통틀어 비교해도 대적할 사람이 없는 먼치킨이기도 했고. '시발 좆 됐다.' 진짜 좆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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